데일리

잠자는 인간

20240108

링클의 안 by 링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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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야, 태어난 걸 축하한다.

너는 죽을 때까지 평생 인간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건 곧 음식을 먹어야 하며, 옷을 입어야 하고,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집이 필요하다는 뜻. 그렇게 하는 것이 반드시 어려우리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네가 그것들을 가진다 해도, 가지지 못한 인간들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란다. 너는 그들의 존재를 모른 척할 수 있을지언정, 그런 이들이 없게 할 수는 없을 거다.

너는 백 년 혹은 그 비슷한 시간을 살아갈 것이다. 그 시간 동안 너는 반드시 슬퍼하고, 분노하고, 실망하고, 안타까워하고, 무력감을 느끼고, 원망하고, 갈망하고, 외로워하고, 괴로워하고, 짜증을 내고, 무어라고 정의하지 못할 감정에 속이 상할 거야. 그것이 인간이므로. 너 또한 인간이므로. 이것이 지성의 대가로 인간에게 내려진 저주이므로.

너는 삶을 당연히 여기겠으나 언젠가 반드시 죽을 것이다. 이곳에는 마법도 없고, 영원을 약속하는 의료 기술도 없으며, 우리는 모두 한낱 인간일 뿐. 죽음을 두려워한 이들도 바란 이들도 외면한 이들도 모두 똑같이 스러져 갔단다. 몇천 번 몇만 번, 아니, 몇백억 번… 어쩌면 그보다도 많이.

그것이 네 운명이란다.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세상에 손톱만 한 금 하나도 긋지 못한 채 사라지는 것 말이다.

이것은 내가 초대받지 못한 요정이기에 내리는 저주 따위가 아니야. 이 세계에 그런 것은 존재하지도 않잖니. 요정도 마녀도 마법사도 드래곤도 그리고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도 없는 세계라니, 얼마나 황량한지!

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이곳에는 여전히 축복이 남아 있단다. 자, 너는 인간으로서 살아가야 한다. 백 년도 살지 못하고 죽는다 해도, 네 인생은 인간인 네게 주어진 축복이란다. 너는 세계를 바꿀 수 있어. 손톱보다 작은 흠집일지라도, 수십 번 덧입혀지고, 수백 명이 함께하고, 수천 년간 이어진다면, 그것으로 세계를 바꾸어 가는 거야.

이것이 포기하지 않는 인간에게 주어지는 축복이란다. 그러니 아이야, 태어난 걸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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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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