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Q. 어디까지 포기 가능?

20240107

링클의 안 by 링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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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치킨 포기하고 십억 받을 수 있으면 포기할 거야? 그런 질문을 하면 그 사람은 항상 코웃음을 쳤다. 그런 식으로 못 받은 돈이 삼천사백 칠억이거든. 아니, 그러지 말고. 만-약-에 말이야. 그러니까 그런 만약에 무슨 의미가 있는데?

상상하고 가정하는 일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그 사람은 단지 예상하고 추측했을 뿐이다.

나는 많이도 우는 인간이었다. 불안해했다. 상상하고 가정하는 인간은 그렇게 되기 쉬우니까. 나는 특히 그 사람이 날 버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에 자주 사로잡혀서, 울면서 심정을 고백하기도 하고 너무 사랑하지 않으려고 거리를 둬 보기도 하고 술을 퍼마시기도 하고 심지어는 헤어져달라고 말하기도 하고, 하여튼 별짓을 다 했었다.

그 사람은 그럴 때마다 날 안아 주면서도 표정조차 바꾸지 않았다. 평소 그대로의 얼굴. 나는 네가 그런 불안을 품는다는 사실을 몰라서 널 사랑하는 게 아니라고 말해 주는 듯한 얼굴. 그는 별 위로를 해 주지도 않았지만, 그런데도 그에게 안겨 있으면 신기하게 불안이 잦아들곤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이 없으면 안 됐었다. 나조차도, 그 사람이 없는 삶만큼은 상상할 수도 가정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 사람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었다.

그 사람과 헤어지고 십억을 받을 수 있다면? 안 돼, 포기 못 해. 그 사람과 헤어지고 연예인이나 재벌과 결혼할 수 있다면? 아니, 그 사람이 아니면 싫어. 그 사람과 헤어지고 초능력을 얻을 수 있다면? 무슨 능력인지 들어 볼 것도 없고 안 해. 절대 안 해! 나는 그 사람이 없으면 안 되니까. 하지만 만약…

그 사람이 없어도 살 수 있다면?

나는 십억을 가지지도 않았고, 연예인도 재벌도 아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거나 시간을 되돌리거나 과거를 바꿀 수 있는 초능력도 없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없으면 안 된다는 건 그런 뜻이잖아.

만약 그 사람이 없어도 살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그렇지만 그런 만약에 무슨 의미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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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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