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입춘

20240204

링클의 안 by 링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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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봄이 올 겁니다.”

마리는 입술 바로 앞에서 홍차를 멈췄다. 내리깔았던 눈동자를 슬쩍 올리자 세자르가 빙긋 웃어 보였다. 얕게 숨을 내쉬면 붉은 수면이 바르르 떨리다가 다시 고요해진다. 한 모금을 머금을까 고민한 마리는 결국 입을 대지 않은 채 잔을 내려놓았다.

“봄이 온다는 게 무슨 뜻이죠?”

“그러니까…”

길고 창백한 검지손가락이 펼쳐진다. 마리는 무의식적으로 그 손을 따라 창밖을 내다보았다. 순백의 들판. 희게 흐려진 창 너머로 끝없는 설원이 펼쳐져 있다.

“저 눈이 전부 사라진다는 거예요.”

마리는 눈을 깜빡인다.

“왜죠?”

“눈은 따뜻해지면 녹으니까요.”

그거야 그렇지. 마리는 어릴 적 함박눈 아래서 오라비들과 함께 눈싸움을 하던 기억을 떠올린다. 장갑을 벗어 던지고 맨손에 눈을 받으면 곧 손바닥이 축축해졌다. 그러면 메이드가 다가와 손바닥을 손수건으로 닦아 주고는 잘 마른 새 장갑을 다시 끼워 주었고… 하늘에서는 눈이 내렸다. 던질 눈을 떠내며 생긴 요철이 금세 메워지고 눈사람은 발이 눈에 잠겼다.

“그건 알고 있는데요. 저 눈이 어떻게 따뜻해진다는 건가요.”

“눈만이 따뜻해지는 게 아닙니다. 공기가… 아니, 모든 것이 따뜻해지는 거죠.”

세자르는 손을 천천히 내리더니 제 몫의 잔을 쥐어 들었다. 찻잔의 입술 너머로 희끄무레한 형상이 훅 끼쳐 올라왔다가 금세 또 흩어진다. 그가 한 모금을 마시고, 다시 잔을 내려놓는 동안, 마리는 여전히 창밖을 가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요?”

세자르가 눈을 가늘게 좁히며 웃는다.

“설명하자면 길어요.”

“마법인가요?”

“아닙니다. 자연 현상이죠.”

자연 현상.

그 단어가 마리의 머릿속에 그려내는 이미지는 대체로 희뿌연 색이었다. 눈보라, 안개, 욕탕의 물 위로 피어오르는 김, 염소의 젖과 닭의 알. 그리고 눈. 긁어내고 밀어내도 또다시 쏟아져 모든 것을 지워 버리는 새하얀 눈.

“봄이 올 거예요. 눈이 녹고, 꽃이 필 겁니다. 바깥에서도 입김이 나오지 않고 맨손으로도 동상에 걸리지 않을 거예요. 저 들판은 녹색으로 물들 겁니다. 식물은 강인하니까.”

창밖에는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잘 못 알아듣겠어요.”

“괜찮습니다.”

마리는 세자르를 바라본다. 단안경 너머로 반짝이는 녹색 눈. 녹색.

“그래도 반드시 봄은 옵니다.”

마리는, 알지 못하는, 봄이란 것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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