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죽을 수 없어도 제정신으로 사는 법

20240102

링클의 안 by 링클
4
0
0

“영원히 살 수 있다고 하면 오케이 할래?”

지수는 읽던 책에서 고개를 들었다. 소파에 기대어 앉아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재하는 평소의 무뚝뚝한 얼굴 그대로였다.

“뜬금없이?”

“갑자기 생각나서.”

원래 ‘갑자기 생각’하는 타입의 인간이었나? 그것도 소파며 바닥에 퍼질러져선 만화책 따위를 보고 있던 오후에. 잘 모르겠지만, 어쩐지 아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 생각… 이 초 혹은 삼 초의 침묵. 재하는 아예 팔걸이를 베고 누워 버렸다.

“이런 얘기 좋아하는 거 아니었냐?”

“아니, 좋아하긴 하는데. 갑자기 물어보니까 당황한 거지.”

눈이 두어 번 깜빡이더니 감긴다.

“거절할 수 있는 거면 거절할 것 같은데…”

“왜?”

겨울날의 오후, 둘만의 거실은 고요해서 들리는 것이라고는 창 너머로부터 간간이 넘어오는 자동차 소리 정도뿐이다. 그리고 둘의 목소리.

“아니, 왜냐고 말해도… 무섭잖아.”

재하가 천천히 눈을 뜨자, 눈이 마주친 지수는 머쓱한 듯 웃었다. 설명은 그제야 덧붙기 시작했다.

“영원히 산다고 하면 음, 소중한 사람들도 먼저 죽어버릴 거고, 그럼 그런 기억을 가지고 계속 살아가야 하잖아. 또 죽을 수가 없다는 것도 역시 뭔가 소름 끼치지 않나? 또… 또…”

“어, 그럴 것 같더라.”

“...그리고 잊어버리는 건 그것대로 슬프니까. 미안하기도 하고.”

재하는 미간을 조금 좁혔다. 분명 화가 난 얼굴은 아니었다.

“갑자기 또 뭐야. 너 기억상실증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백번은 말했잖아. 그게 니 잘못이냐? 아니 그리고, 어쨌든 기억은 안 나도 친구 같기는 했다며?”

“응.”

“그래서 다시 친구로 지내잖아?”

“응.”

“근데 뭐가 그렇게 미안해서 그런 얼굴을 하냐니까.”

“그래도.”

잠깐의 침묵. 또 차 한 대가 지나간다.

“나는 네가 나를 잊어버려도 아무 상관 없어.”

그건 언뜻 흘려 말하는 것 같기도 했고, 한 글자 한 글자 눌러쓰는 듯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내가 알아서 할게.”

물론 지수는 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또한 특별하지 않은 기억으로 새겨졌다가, 지워질 것이다. 언젠가.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