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단 하나 유일한

20240101

링클의 안 by 링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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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어도, 내 방의 물건은 치우지 말아 줘.”

“왜?”

그 애는 대답도 없이 웃었다. 그런 사람이었다.


신원 확인. 문이 열립니다.

잔뜩 부은 발이 구두에 꽉 끼어서는 잘 벗겨지지 않았다. 뒤꿈치에 손가락을 넣다가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 대충 닫은 중문이 덜컹, 하며 반쯤 다시 열렸다. 제대로 닫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거실을 돌던 청소기가 붉은빛을 깜빡이며 제 집으로 들어갔다. 깜빡. 깜빡. 모르긴 몰라도 백 개는 족히 있을 램프들. 집안일 따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시대다. 불빛이 깜빡이는 기계들도 할 수 있는 일들 뿐이니까.

소파에 누웠다. 깜빡, 깜빡. 정말로 우스운 일이지만, 그런 시대에도 사람들은 출근을 해야 했다. 기계를 쓰기에는 아까운 일들마다 인간의 손이 닿는다. 하나같이, 내가 아닌 누구라도 괜찮은 일.

줄곧 그런 존재였다.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는. 이름조차도 필요 없을 만큼…

하나야.

이름조차도…

윤하나.

내 이름은 윤하나. 기계들에겐 입력한 적 없는 이름.

다녀왔어?

분명히 그 애의 목소리였다.

집안에서 뛰지 않는다는 상식 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방문을 연다.

들어와.

“어떻게 된 거야?”

미안해, 음성 인식 기능은 없어.

방은 그 애가 쓰던 그대로였다. 깔끔한, 그러나 곳곳에 잡동사니가 놓여 있는 방. 손을 든다. 떨리고 있었다. 손을 댄다. 그리고 그 때마다 네가 내게 말을 건다. 그 영화 재밌었지. 목걸이 끊어먹어서 미안해, 버리진 못했어. 오늘은 상사가 뭐라고 안 해? 하나야, 이제 슬슬 잘까.

“전부 네가 해 놓은 거야?”

대답은 없다. 고작해야 적외선 센서, 배를 누르면 아이 러브 유를 말하는 인형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너는 나를 너무나도 잘 알아서,

하나야. 나는 언제나 네가 아니면 안 됐어.

네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말들만을 남겨 둔 거구나.


또 나만이 울고 있었다. 그 애는 끝까지, 한 번도 우는 법이 없었다.

“그러니까 너무 외로워하지 마.”

나는 이해할 수 없는데도 고개를 끄덕인다. 너는 다시 미소를 짓고,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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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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