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린가련]
*
"...! 자, 잠시만요!"
갑작스럽게 유린에게 팔을 붙잡혀 뒤를 돈 여자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
약간 올라간 눈꼬리로 인한 고양이상에 눈 밑의 연한 눈물점이 인상적인 여자였다. 유린은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저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급히 여자의 손목을 놓으며 유린은 몇번이고 고개를 숙여 미안하다 사과하기 시작했고, 조금은 과한 반응에 여자는 순간적으로 유린의 양 볼을 붙잡고는 저를 마주보게 만들었다.
"아..저...그러니깐, 전 괜찮아요."
"..."
자신이 잡아놓고도 민망한지 곧바로 손을 떼고는 장난스럽게 손을 탈탈 털어보이며 착각할수도 있죠 라며 다정하게 말하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던 유린은 이내 다시한번 고개를 꾸벅 숙여 미안했다 사과하고는 뒤돌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여자가 유린의 손목을 붙잡는 터에 다시 앞으로 몸을 돌린 유린이 여자를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뭐하는거냐고 물을 틈도 없이 기왕 이렇게 된거 인연인거 같다며 바로 옆 커피숍으로 끌고갔기에 유린은 하는 수 없이 그녀의 손에 이끌려 함께 들어갔다.
"제가 실수했으니 커피는 제가 살게요. 무슨 커피 좋아하세요?"
"음...전 그냥 아메리카노 한잔 시켜주세요. 달달한건 별로 안좋아하거든요."
"어, 저돈데."
유린의 얼굴에 잠시 씁쓸함이 스쳐지나가는듯 했으나 이내 사람좋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주문을 한 뒤 여자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돌아왔다. 한동안 여자와 유린은 멀뚱멀뚱 서로 다른 곳만 쳐다보며 어색함을 달래다 먼저 입을 연건 여자쪽이었다.
"왠지 우리 인연인거 같은데, 어색하니깐 통성명이라도 할까요? 전 안가련이라고 해요."
"아. 전 강유린 입니다."
예쁜이름이네요! 가련은 환하게 웃어보이자 어색함에 잔뜩 굳어져 있던 유린의 얼굴이 조금은 풀어졌다. 가련씨도요- 하는 말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평송 워낙 칭찬에 인색한 유린이었던지라 차마 입밖으로는 내지 못한 채 결국 빙긋 웃어보이는 것에 그쳤다. 몇분전에 처음만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엊그제 만난 친한 친구처럼 살갑게 말을 걸어오는 가련에 유린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가련의 말소리가 어지러이 귀에 뒤엉켜 박히는 탓에 유린은 눈을 질끈 감으며 급하게 테이블 모서리를 집었고, 그 순간 지잉-거리는 소리와 함께 테이블이 진동하며 진동벨이 깜빡거렸다. 가련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유린은 벌떡 일어나 진동벨을 집고는 빠르게 카운터 쪽으로 가더니 커피 두잔을 손에 들고 되돌아왔다.
"미안해요. 어디까지 얘기했죠?"
"어디 아픈거 아니에요?"
걱정스러운 가련의 표정에 유린은 약간 미간을 찌푸리고는 이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가련은 머뭇거리는듯 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게.. 아까 저 왜 잡았냐고 물어보려고 했어요. 그냥 붙잡은건 아니잖아요."
가련의 말에 유린은 말없이 빨대를 두어번 톡톡 두드리다 한모금 쪽 빨았다. 잔 속에서 옅게 출렁이는 커피를 내려다 보며 유린은 입을 열렀다. 그녀의 목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의외로 차분했다.
"...제가 아는 사람이랑 많이 닮았어요, 가련씨가. 너무 많이 닮아서 제가 착각하고 실수를 범할정도로 너무 닮아서. 그래서 저도모르게 가련씨 붙잡았어요."
당연히 아닐걸 알면서도, 뼈저리게 알면서도 정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니었다. 그건 담담한게 아니라 담담한 '척'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속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애써 괜찮은척 이리저리 꽁꽁 포장 해두었는데 결국에는 또다시 열려버렸다. 커피잔을 잡고있던 유린의 손이 떨리고 목소리 역시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몹시 흔들리고 있었다. 유린의 예기치못한 반응에 가련은 어쩔줄 몰라하며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 결국 심하게 덜덜거리는 유린의 두 손을 꼭 붙잡았다. 그리고는 옆테이블의 냅킨을 몇장 집어 어느새 유린의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화장이 번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닦아주는 그 정성어린 손길에 유린은 고마우면서도 더욱 울컥하여 쉽사리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유린이 울음을 멈추지 못하자 결국 가련은 유린의 어깨를 끌어당겨 자신의 어깨에 편히 기댈 수 있도록 유린을 끌어안았다.
괜찮아요, 괜찮아. 힘들면 그냥 울어요. 얼마든지 기대도 되니깐 편하게, 속 시원하게 울어요. 난 정말 괜찮으니깐.
*
아래는 후원창입니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