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이선

상영은 모두 종료되었습니다.

and then……

바다 속 by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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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관 안, 검은 화면에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다. 조명이 켜진 후에는 하얀 스크린만 덩그러니 있었다. 빈 상영관에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영화는 거기서 끝났다.

 

 

상영은 모두 종료되었습니다.

 and then……

 

 

현이선은 영화관을 벗어나지 못했다. 감상을 나눌 사람은 한참 전에 그곳을 떠났으므로 미련하게도 상영관 앞에 혼자 웅크리고 앉아 영화를 몇 번이고 곱씹었다. 현이선은 한영원을 잊을 수 없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도 의미를 두지 않고 흘려보냈으나 그 사람만큼은 손에 쥐고 싶었다. 그러나 잡을 수 없었다. 내민 손에 아무것도 걸리지 않으니, 손은 허공을 맴돌다 떨구기를 반복했다.

현이선은 자신의 감정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내리지 못했다. 미디어 매체에서 다루는 사랑과 애정에 대해 공감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삶의 우선순위는 언제나 포뮬러 원이었으며, 그것을 초월할 것은 없었다. ‘감정’으로 일을 그르치거나, 그것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 존재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반대로 그는 늘 사람 사이에 머물렀으므로 관심과 애정을 받는 일에는 익숙했다. 그러니 만나는 관계 또한 당연히 가벼웠다. 상대가 깊어질 것 같으면 제 쪽에서 먼저 끊어내거나 애초에 비슷한 무게로 만나는 경우도 많았다. 현이선은 ‘그런 감정’에 쏟을 시간이 없었다. 굳이 쏟고 싶지도 않았다.

그랬었다. 하지만 스테이지를 몇 번이고 거듭하며 타인에게 애정과 관심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현이선은 정제되지 않은 이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미숙했다. 찬란하지만 거칠고, 투박하며 어쩌면 초라한 것을 세상에 내놓기에는 서툴렀다. 그러나 자신이 지니고 있음은 분명했으니 숨기려 하지 않았다. 그것이 모난 형태라도, 내어주어야 또렷하게 손에 쥘 수 있는 게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한영원은 예외였다. 그에게 어떤 것이든 내어주고 싶었으나 그는 자신이 내어놓은 걸 가져가는 법이 없었다. 가끔은 가져가는 가는가 싶어 기뻐하자면, 다시 제 손에 쥐여주고 저 멀리 도망가기도 했다. 현이선의 속이 바짝바짝 탔다. 도대체 무얼 보여줘야 그의 마음에 들 수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결국 그중에 한영원의 마음에 드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다. 내민 손도, 자신이 내비친 애정도 제대로 잡아채는 법이 없었으므로 현이선은 더 욕심내지 않았다.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한영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일이었다. 영화가 끝난 상영관 앞에서 보이지 않는 상대를 되새기면서.

 


끝난 것을 붙잡고 매달리는 건 참으로 구질구질한 짓이다. 현이선은 과거에 매달린다고 현재가 달라지지 않음을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이렇게까지 과거를 헤집어 붙잡으려는 자신이 한심했다. 그 말을 하지 말아야 했는데. 그렇게 행동하지 말아야 했는데. 후회와 회한을 반복하며 현이선은 자꾸만 텅 빈 상영관에 가서 앉아있었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서킷 위이며, 핸들 앞이었는데 자꾸만 물처럼 흘러가는 생각에 입술을 물었다. 주인공 없는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영관을 벗어나려면 핸들을 쥐는 수밖에 없었다. 악착같이 쥔 핸들을 놓지 않으려 했다. 속도를 높이고 결승선을 통과한다. 끝나버린 영화는, 잊어야만 했다.

하지만 결국 잊지 못했다. 잊을 수 있으리라는 제 욕심과 오만이 불러온 결과였다. 정정하자면, 단 한 번도 잊지 않았다. 핸들 앞에 앉아 속도를 내면 낼수록 정제된 것처럼 한영원은 더욱 선명해졌다. 눈빛, 목소리, 얼굴, 그리고 온기와 제 살결에 닿던 감각까지. 이제는 자신이 그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그리고 자신이, 그에게 무엇을 주려 했는지 너무나 잘 알았다. 결국 머릿속이 터져버렸다. 아무것도 상영하지 않는 영화관 앞에 주저앉아 결국 눈물을 흘렸다. 보고 싶다며 겨우 목소리를 쥐어짜 외쳤다. 몇 마디 외침 후에도 계속해서 그 앞에 머물렀다.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가 이곳에 올 것이라는 기대는 없었다.

현이선은 그를 기다리는 게 아니었다. 단지 말하고 싶었다. 내가 이 자리에서 너를 많이 보고 싶어 했다고. 다른 말은 눈물에 삼켰다. 내뱉는 순간 제게는 닿지 않는 먼 곳으로 떠날 것 같았다.

 


현이선은 열려있던 상영관 문을 제 손으로 잠갔다. 그러나 열쇠는 버리지 못했으므로 그 앞을 서성이다 돌아가는 게 제 일과였다. 상영관을 잠가두었으니 언젠가 열쇠를 버릴 수 있을 테고, 발길을 멀리하다 보면 이곳에 상영관이 있었지, 하며 추억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네가 영국에 찾아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영원을 찾는 건 언제나 현이선의 역할이었다. 한영원은 그 자리에서 현이선을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현이선이 내민 손을 잡는 사람도 아니었으므로 엉망진창인 이 놀이는, 이 영화는 진작에 끝이 났어야만 했다. 그러나 네가 온 순간부터 상영관 안에서 미약하게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당신을 사랑해도 돼요?”

“사랑해 줘, 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 영화는 끝나지 않으리라. 앞으로도, 영원히.

They lived happily ever after…….

ever, 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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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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