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vzie's Hell

Good night-my friend

잠 잘 수 없는 카밀라와 침대맡을 지키는 제스티얼

파운데이션 뚜껑이 닫혔다. 이제 다크서클은 덮여서 보이지 않았다. 오직 그것뿐이었다. 2주간의 불면은 전혀 가려지지 않았으니까.

"아..."

오늘은 어떠려나. 카밀라는 제스티얼이 가져온다는 차가. 카페인이 있어도 문제, 없어도 문제일 것이었다. 카페인이 있다면 가뜩이나 피곤한데 눈도 붙이지 못할 것이다. 카페인이 없다면 모처럼의 티타임에 넋을 놓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시간은 착실하게 제스티얼을 그녀에게 데려다 놨다.

"... 그래서 지레 겁을 먹고는 벌벌 떨었다지. 어리석기 그지없지 않는가."

"......."

"카밀라?"

"아."

카밀라는 그제야 찻잔을 들여다보았다. 아니, 본래 해야 했을 일은 시선을 제스티얼에게 두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어서 대답을 하면 되었겠지만 대화 내용이 기억나지 않았다. 바로 몇 초 전에 들은 것임에도.

"무슨 일이 있나?"

"으음, 별일 아니야, 제스티얼."

"그대가 파운데이션을 바를 정도라면 썩 별일인 듯하다만."

결국 카밀라는 한숨을 쉬고 두 손을 들어 보였다. 하여간 제스티얼에게는 숨길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제스티얼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오늘로 2주째야. 눈꺼풀이 뻐근해."

"고생 좀 했겠군. 여태 어떻게 버텼나?"

"커피, 차, 그리고... 데킬라."

"근본적인 해결이 아닌걸 알 텐데 그리 혹사하나."

"어쩔 수 없지, 무기상은 하루도 쉬지 않고 돌아가니까."

"흠."

낮게 깔려 울리는 목소리가 다가왔다. 카밀라는 제스티얼을 올려보았고, 제스티얼은 엄지로 카밀라의 눈가를 쓸었다. 파운데이션이 묻어나 지워진 자리는 시커멨다.

"아무래도 오늘의 티타임은 일찍 마쳐야겠군."

"그 정도인가. 일찍 보내게 되어... 미안하군."

뺨에 닿는 손의 온도가 서늘했다. 끓어오르던 열감이 한순간에 잠잠해졌다. 그래서 카밀라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그 차가움이 제법 마음에 들어서.

"내 걱정은 말게. 남아도는 게 시간이니, 조금 더 머무르도록 하지."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카밀라가 바로 눈치채기엔 불면증이 너무 길었다. 뭔가 이상한 말임을 알아챘을 때는 샤워를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어떤 부분이 잘못된 건지 알아차렸을 때는 제스티얼이 젖은 머리를 말려줄 때였다.

"잠깐. 왜 네가 내 머리를 말려주고 있는 건데."

"아까 말하지 않았나? 조금 더 머무르겠다고."

"그 머무른다는 것이 이런 걸 의미했나? 남의 잠자리 지척까지 잘도 다가서는군."

"무례했나."

"글쎄."

카밀라는 가만히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 속의 악마는 바짝 묶어 올린 머리도, 둥근 귀걸이도 없었다. 다만 다크서클을 숨기지 않고 무표정이 이쪽을 바라볼 뿐이었다.

"집을 조금 서늘하게 하는 게 답이었을까."

"그건 이제부터 시험해볼 것 아닌가. 내 망토는 언제나 주변보다 차가웠으니까."

달칵, 까만 손이 빗을 화장대에 돌려놓았다. 화장대를 떠난 둘은 조용히 침대에 앉았다. 적절히 푹신한 매트리스가 두사람 분의 무게를 받쳤다. 카밀라가 조심스럽게 침대에 누우면 제스티얼은 이불을 끌어올려 덮었다.

"하여간 너는 사람을 거절하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어. 솔직히 예전만 했어도 너와 말까지 놓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새삼스러운가? 어쨌든 눈을 감게. 그대가 편치 못하면 나도 걱정을 놓을 수 없으니."

카밀라는 눈을 끔뻑였다. 하얀 천장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시선을 조금만 옆으로 돌리면 제스티얼이 있었다. 두 쌍의 초록빛 눈이 이쪽을 바라보았다.

참 묘한 눈이라고 생각하던 순간, 차가운 감촉이 시야를 가렸다.

"!"

"내 손은 다른 이들보다 차가운 편이니까. 오늘은 이게 확실히 도움이 될 지 보도록 하지."

"..."

무어라 말하려던 카밀라는 조용히 입을 닫았다. 확실히 제스티얼의 손은 차가웠다. 늘 열감 있는 공기가 흐르는 지옥에서 기분 좋은 온도감이었다. 아까처럼 열감이 잦아들고 차분해졌다. 한차례 폭풍우가 휘몰아친 뒤의 수면처럼. 그래서 저도 모르게 얼굴 근육을 풀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잔잔한 수면 아래고 의식이 몸을 맡기고, 아무 저항 없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의식을 잃은 채였다. 세간의 표현으로는 잠들었다고 했으리라. 하지만 너무 오랜만의 휴식이었던 탓에 익숙하지 못했을 뿐. 몸을 뒤채 옆으로 돌아누운 이후, 그날 밤의 카밀라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날부로 제스티얼은 카밀라의 침대맡을 지켰다. 저녁 식사가 끝난 후 찾아오는 그는 샤워를 끝낸 카밀라의 젖은 머리를 말렸다. 잠자리에 든 카밀라에게 망토를 덮어주고 손을 잡으면 준비 끝이었다. 자장가 대신 하루하루 있었던 일에 대해 들려주었다. 그러면 어느 순간 카밀라는 새근새근 잠이 들었고, 제스티얼은 망토를 회수하고 자리를 떠났다.

종종 저녁 식사를 간단하게 먹은 날은 연습실을 들렀다. 카밀라가 피루엣을 돌고 그랑주테를 뛰면 제스티얼은 그걸 지켜보았다. 두 발꿈치가 땅에 닿은 이후, 제스티얼이 손수건으로 땀방울을 닦으면 카밀라는 가만히 이마를 내주었다. 그리고는 카밀라의 침실로 돌아가 수면의 경계선에서 헤어졌다.

오데트와 클라라는 그런 카밀라를 눈 시퍼렇게 뜨고 보았다. 그리고 어두운 거리를 걷는 악마들이 카마인 저택을 출입하는 제스티얼을 보았다.

그래서 어느 날 오데트는 카밀라에게 차 한 잔을 끓여줬다. 더도 덜도 말고 딱 한 잔.

"엄마."

"?"

"제스티얼 씨는 왜 아직까지 이름으로 부르는 거예요? '카밀라'하고."

"그게 무슨 소리냐."

"아니, 많잖아요. Dear, Honey, Carmil에 My queen까지도 할 만 한데."

찻잔의 림이 카밀라의 입술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카밀라는 천천히 제 딸을 바라보았다. 덕분에 오데트는 식은땀으로 제 어미의 시선을 받아야 했다.

"의외네, 너는 항상 제스티얼에게 예의 발랐는데. 어떤 근거로 제스티얼을 두고 그런 무례한 소릴 하는 거니?"

"무례...? 예?"

오데트의 입이 톡 벌어졌다. 저쪽에서 훔쳐보고 있던 클라라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그리고 당황스러운 반응에 카밀라는 황당해졌다.

"왜 그런 질문을 하게 된 거야."

"진짜 모르시겠어요? 솔직히 요즘 연습실 다녀오셨을 컨디션 좋으시잖아요."

"잠을 잘 잤으니까."

"......."

오데트는 미묘한 표정으로 제 어미를 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우린 차를 보았다. 그 찻잎도 일전에 제스티얼이 선물해주고 간 것이었다. 생각하기를 포기한 오데트는 조용히 찻주전자를 내려놓고 가버렸다.

그날도 여느때처럼 제스티얼이 찾아왔다.

"덕분에 요즘 컨디션이 좋아. 고마워서 어쩌지."

"우리 사이에 이 정도 쯤이야. 그러고보니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네."

"이야기?"

"어린 아이와 천 년의 밤을 산 자의 이야기지."

나직한 목소리가 이야기가 되어 공중에 퍼졌다. 카밀라는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었다. 제스티얼의 옛날이야기는 흥미로웠다. 몽글몽글 잠이 오는 듯 하면서 이야기가 궁금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잠이 천천히 오던 터라 잡생각이 길어진다는 점이었다. 무엇보다 오늘 낮에 딸들이 짓던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카밀라 카마인은 지혜로웠고, 그 표정의 의미를 알았다. 비단 딸들 뿐만 아니었다. 온 지옥의 카마인 체인점을 방문할 때마다 비슷한 소리를 듣곤 했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이 관계는 기묘했다. 친구사이라고 하기에 우리는 너무 가까웠다. 그 어떤 친구도 잠들기 직전까지 곁을 지켜주지 않는다. 이렇게 나직하고 달콤한 옛날이야기도 들려주지 않는다. 주기적으로 수면에 좋다는 찻잎을 선물하며 안부를 묻지도 않는다.

그러나 카밀라는 제스티얼의 망토가 좋았다. 그가 선물해준 차도 맛있어했다. 오늘 들려준 이야기도 좋았다. 따라서 제스티얼이 꽤 마음에 드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그 뿐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애석하게도 카밀라는 이 지옥판에서 사랑놀음이나 하기에 너무 바빴다. 자신보다 힘이 약한 두 딸을 지켜야했다. 거대하게 성장해버린 카마인 사도 건사해야했다. 부모로서, 오버로드로서. 이렇게 언제까지 제스티얼에게만 기댈 수 없었다.

하지만 조금 더 이렇게 있길 바랐다. 자신이 혼자서 잠들 수 있을 때까지. 카밀라는 그러했다.


제스티얼은 조용히 카밀라를 내려보았다. 머리카락 한 점, 호흡 한 숨 건드리지 않은채. 평소 날카롭게 떠있던 눈은 부드럽게 감겨있었다. 잔머리 하나 없이 올려 묶은 머리는 예쁘게 굽이치며 이불 위에 흩어진 채였다. 카마인의 수장, 오버로드 카밀라는 지옥의 붉은 밤을 덮고 자는 중이었다.

여전히 카밀라는 아름다웠다. 특별히 제스티얼의 눈에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다만 이렇게 평온히 잠든 얼굴을 몇이나 목격했을까? 그 점을 생각하면 뱃속에 나비가 날으는 것 같을 뿐이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제스티얼은 죄책감을 갖고있었다. 멀쩡히 자식이 둘이나 있는 여성에게 매일 밤 찾아오는 일을 아무도 잘하는 짓이라고 하지 않는다. 여기가 지옥인 것과 별개로 제스티얼은 부끄러움을 아는 자였다.

그래도 카밀라가 평안히 잠들기를 바랐다. 이 절경을 더 볼 일이 없어지는 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제스티얼은 자신이 두르고 있던 망토를 벗었다. 서늘한 찬기가 흐르는 망토는 카밀라의 이불 위를 한 겹 더 덮었다. 아마 이것만 있으면 카밀라는 천천히 혼자 잘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는 그의 필요가 덜어지는 때였다. 제스티얼이 조용히 작별했다.

"안녕히 주무시오, 카밀라."

쪽, 하얀 이마에 까만 입술이 착지했다. 길지도, 짧지도 않았다. 남은 자국이라고는 약간의 온기가 전부였다.

그런 줄 알았건만. 입술이 자리를 뜨기 전, 큰 손이 제스티얼의 뒤통수를 감쌌다. 그 손 끝이 단호하게 목덜미를 잡고 끌어내렸다. 제스티얼이 눈을 크게 떴고, 연둣빛 눈에 붉은 눈빛 한 쌍이 비쳤다. 아직 잠들지 않은 카밀라의 눈빛이었다.

"지금 이게."

뭘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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