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작업물

돌발고장태엽축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2차 창작 / 2022년 작

소마 by 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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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미션 작업물입니다.

돌발고장태엽축

Victor X Marian

도련님은 더 어려서부터 영특했다고, 으레 어린 소년에게 따라붙곤 하는 칭찬을 마리안은 한 귀로 흘리지 않았다. 손이나 발 같은 평범한 신체 부위의 지칭보다도 더 익숙한 ‘뇌’의 반쯤은 하녀장의 말에 집중했고 반쯤은 제 심중 깊이 뛰어들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윗사람의 말을 듣는 데 다소 건성이라 하여 불성실한 사용인은 아니다. 마리안은 그의 젊디젊은 신체에 비해 모든 일에 지나치게 노련한 인물이었고 절반쯤의 정신을 어디 떼어 둔다 해도 한 사람 몫은 충분히 해냈다. 경험이 과다했다. 

항상 두 세계에 발을 걸친 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쪽이 쉴 새 없이 변화하고 소통이 오가는, 요컨대 살아 움직이는 세계라면 다른 쪽은 온통 고요했다. 다시 말해 그는 정갈한 하녀 옷을 입고 성의 계단을 오르며 짐을 옮기는 동시에 정신의 반대편에서는 검은 벽에 기대 주저앉은 채 이번 생의 색다름에 대해 골몰하는 것이다. 

때때로 마리안은 이 삶이라 부르기에도 기이한 현상에 대해 고찰하며 인형극이나 가극 같은 것을 연상했다. 극은 폐막이 없다. 영원히 계속되고 언제나 1805년부터 1816년쯤의 어느 시점에서 시작한다. 퍽 자유로워서, 배우들은 즉흥 대사를 읊거나 기행을 벌이기도 했으나 이 잘 짜인 극본은 그 어떤 돌발적인 전개에서도 반드시 하나의 결말로 맺어졌다. 

이를테면 그들은 철로 위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 위에서 춤을 추고, 노래하고, 경합하고, 무슨 짓을 해도 차단기가 올라가고 기차가 들어오기 시작하면, 종국에 기대할 수 있는 결말은 하나다. 

마리안은 극본의 주조연쯤 되어 그가 맡은 역할을 이행한다. 조명 아래서 빅터 프랑켄슈타인과 앙리 뒤프레로부터, 워털루의 군인들과 성의 사용인들까지 배역에 맞게 차려입은 인물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나 무대 뒤를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마리안뿐이다. 마리안만이 두 세계를 오갈 수 있다. 실제의 극에서라면 무대 뒤 역시 못지않게 급한 걸음들로 가득 찼겠지만 정교한 세트를 넘어서면 오로지 시간의 축을 돌리는 태엽과 마리안 단 두 가지만 존재했다. 

발밑에는 태엽이 맞물리며 돌았고 마리안은 교묘한 틈 사이를 걸어왔다. 정교하게 작동하는 기계는 지금껏 실수한 적 없다만……. 

여기서 잠깐 멈추어, 한 가지의 극을 수없이 연기하다 보면 질리기 마련이라 마리안은 이따금 이상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곁에서 배운 실험정신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기로를 제멋대로 틀어 버릴 적도 있었지만 아무쪼록 극의 뼈대는 고수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마리안은 극의 유일한 연출가이자 가장 광적인 관객이다. 

극을 망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다시는 극이 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시간축이 뒤틀려 그를 예상치 못한 시기에 떨군 것은 분명 사고겠지만, 어쩌면 잠시 똑같은 극을 보는데 질려 무대 장치를 하나쯤 망가뜨려 본 것일지도 모른다. 다음 상연에는 분명 고쳐져 있을 테다. 어쨌든 마리안에게는 망가진 무대 위에서도 극을 이끌어갈 책임이 있다. 그는 이제쯤 노련한 연출가이자 배우였으며 대처는 어렵지 않았다. 

숱한 회귀 끝에 얻게 된 것은 빈틈없는 위장이라 겉보기에 마리안은 완벽히 얌전하고 순종적인 신입이었고 답지 않게 능숙했다.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이며 마리안은 하녀장의 말을 곱씹었다. 영특한 도련님. 별난 도련님. 당최 뜻 모를 소리만 하는 우리 도련님. 

결코 성질이 순하다거나 좋은 분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은 쉬이 예상한 바였고 얼마쯤 유쾌하기도 했다. 그렇다 해도 영 험담과 나쁜 눈치가 오가지는 않았는데, 마리안에게는 그 자체로 꽤 생경했다. 건방진 프랑켄슈타인 대위, 저주받은 빅터 프랑켄슈타인, 그 이름이 술집의 안줏거리로 오르지 않고 부채로 가려진 입술에서 입술로 옮겨 다니지 않는 것이 놀라웠다.  

마리안은, 마리안 쇼는, 마리안 클레멘스는, 마리안 뮐러는, 지금껏 빅터 프랑켄슈타인보다 몇 살이 어렸다. 즉 직접 그의 두 눈으로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유아기를 목격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했다. 더불어 프랑켄슈타인 성이 불타기 전의 모습을 보는 것 또한. 

 그러나 마리안은 상식을 앞지른다. 지금 마리안이 바삐 거니는 프랑켄슈타인 성은 곳곳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고 미미한 활기가 있었다. 을씨년스럽던 성에도 이런 때가 있었구나 싶었다. 불에 그슬려 시커먼 자국이 보기 싫게 여기저기 남아 있지도 않았으며 마루와 층계를 밟을 때도 삐걱대지 않았다. 수년간 사용되지 않아 먼지 쌓여 있던 복도와 손님방은 깔끔히 정돈되어 축일 장식이 매달리기도 했고 깨진 창문은 구석진 곳의 사용하지 않는 방을 제외하면 찾아볼 수 없었다.  

성의 모습이 증명하듯 아직은, 정말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손가락질받을 이유 없다. 굳이 그의 죄를 묻자면 그가 태어난 후 프랑켄슈타인 부인의 몸이 너무도 약해졌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니까 이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아직 무결하다. 

 새삼스러운 깨달음이다. 아직 저주받기에는 이른 나이였다. 그에게도 선명한 집념과 비관적인 확신이 부재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니 이쪽은, 마리안이 수백 번의 반복 동안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빅터였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유년기적 모습을 모르지는 않았다. 프랑켄슈타인 성의 한구석 무겁게 떨어지는 붉은 벨벳 커튼 뒤에 거대한 초상화가 있었다. 마리안 클레멘스가 지금의 삶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자연히, 마주치지 못했던 프랑켄슈타인 부인이 머리를 틀어 올린 채 입가를 빳빳이 굳히고 있었고 그 앞에 어린 소년이 앉아 있었다. 짧게 다듬어진 검은 머리카락, 눈 아래의 작은 점, 치켜뜬 눈까지 그가 아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축소판이나 다름없었다. 감명이 깊었던 쪽은 어머니였다. 문득 엘렌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성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용인이 귀한 빅터 도련님과 마주할 일은 거의 없다. 어린 도련님은 아직 유모 품에서 싸고돌아질 나이였고 조숙한 면이 있으니 예상컨대 홀로 서재에 틀어박히거나 투정이나 부리고 있을 터였다. 서재 청소를 맡겠다고 우겨 죽치고 있자면야 만나지 못할 리 없지만 이쪽에서도 서두를 마음은 없었다. 

 먼저 발견한 것은 오히려 프랑켄슈타인 부인이다. 침대 옆 화병의 물을 아침마다 갈아야 했다. 초상화를 보고는 엘렌과 닮았다 여겼는데, 이목구비는 썩 닮았을지언정 홀쭉한 얼굴과 생기 없는 모습이 도무지 엘렌을 연상시키지 않았다. 부인은 주로 침대에 누워 지냈지만 종종 창가에 앉아 책을 읽었다. 간혹 잔잔히 웃을 때는 어렴풋이 엘렌의 얼굴이 보였다. 프랑켄슈타인 도련님은 꽤 자주 안주인의 방을 찾아 답지 않은 어리광을 부리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우연히도 마리안과 마주친 적은 없었다. 

 머지않아 부인은 마침 마을에 돌고 있던 흑사병에 걸렸다. 마리안은 안 그래도 병약하던 부인의 상태가 심상찮다는 얘기가 들린 그날 하녀장으로부터 서재 청소 담당 허락을 얻어냈다. 

 사용인들 사이에서 빅터 도련님이 서재에 있을 때 그곳을 청소하는 것은 금기까지는 아니었으나 제법 꺼려지는 일이었다. 아직 어려 봐줄 만했지만 도련님은 ‘솔직히 성질이 조금 남다른’ 아이다. 방해받는 게 싫은 거예요. 가끔은 붙잡고 이상한 질문을 늘어놓아서 당황스럽다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은 하나도 못 알아듣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애. 도련님인데 못 들은 척할 수도 없고.

마리안은 다 큰 빅터 도련님을 떠올렸다. 심기를 거스르면 잔뜩 골을 내던 그 어른이 어딜 가겠는가. 다행스럽게도 마리안은 그의 심기를 거스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를 어떻게 대하면 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비록 이 시기의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다룬 적은 없지만. 

 소년은 문을 등진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직 짧은 다리를 공들여 꼬았고 옆에는 책을 열 권이 넘도록 쌓아 두었다. 머리카락 옆으로 보이는 볼이 통통했다. 문을 닫는 소음에 아이의 뒷모습이 한순간 움찔거렸으나 뒤돌아보지 않고 책에만 집중하는 듯했다. 너무 요란스럽게 굴면 미움을 산다. 조심스럽게 물통을 내려놓고 걸레를 담갔다. 건성으로 책장을 닦으며 곁눈질로 빅터를 살폈다. 

 조용히 찰박이는 물소리가 끝내 거슬렸는지, 책에 거의 머리를 처박고 있던 소년이 홱 고개를 든다. 당장에라도 무어라 불평할 것 같던 소년은 눈이 동그래져 그대로 멈춘다. 마리안은 이제야 시선을 느꼈다는 듯 걸레에서 눈을 떼고 돌아서 열렬한 직시에 대응한다. 

 “너, 이름이 뭐야?“ 

“……마리안이에요, 도련님.“ 

소년이 인상을 찡그린다. 무언가 탐탁잖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다시 한번 묻는다. 목소리가 또랑또랑했다. 이 목소리가 나중에 그토록 낮아진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성은?”

 “클레멘스, 예요. 마리안 클레멘스.”

 천천히 이름을 댔다. 소년이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여전히 불만스럽다는 얼굴을 하고 팔짱을 낀다. 익숙한데. 어디서 들었나. 아닌데. 소년이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린다. 마리안의 심장이 잠시 크게 박동했으나 곧 안정을 찾았다. 소년은 책을 탁 덮고 손깍지를 끼며 팔걸이에 양팔을 걸쳤다. 이 광경으로 마리안이 적잖이 놀랐다. 책을 덮을 줄이야. 이렇게까지 큰 관심을 끌 생각은 없었다. 더불어 저 버릇, 지금까지 수없이 보아왔던 것이다. 

“이 성에 너 같은 머리색의 사용인은 없었어.”

“도련님이 사용인에게도 그렇게 관심을 두시는 줄은 몰랐어요.”

“관심 없어. 얼굴도 잘 몰라. 다만 네 건 너무 튀잖아. 난 태어나서 처음 봐.”

마리안은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것을 참아 넘겼다. 태어나서 처음 본다는 말을 채 십 년은 살았을까 싶은 꼬맹이가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상대가 아무리 대단하신 프랑켄슈타인 도련님이라 할지라도 웃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태어나서 이삼십 년쯤 살아도 보기 힘든 머리칼이긴 했다. 지금까지의 빅터 프랑켄슈타인들도 그 말을 몇 번이고 했으니. 

“응? 말해 봐, 언제부터 일했어? 왜 난 지금까지 몰랐지?”

“도련님께서는 모르는 걸 다 아셔야 직성이 풀리시나 봐요.”

그야 도련님은 침실과 서재만 오가니까요. 마음속 말을 삼키며 마리안이 대꾸했다. 소년은 무언가를 재어 보듯 마리안을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나도 그렇……진 않아. 내가 궁금한 분야에 대해서만 전부 알고 싶은 거지.”

목소리는 어려도 그 나이대 아이치고 문장이 유창하다. 평소 단백질이니, 유기질이니 하는 책을 줄줄 읽고 있으니. 마리안은 대답을 고른다. 몇 주 되었어요. 도련님의 방이 있는 층으로는 잘 가지 않아서 못 보신 걸 거예요. 적절하고 모범적인 답안들이 떠오르지만 또다시 격심한 충동에 사로잡힌다. 

 이럴 때 마리안은 두 세계의 중간에 있다. 조금 붕 뜨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마리안이 소년을 똑바로 응시했다. 이제 보니 눈동자 색도 특이하네, 같은 생각을 소년이 하고 있을 때 유독 느린 투로 마리안의 대답이 돌아왔다. 

“전 언제나 도련님 곁에 있었어요.”

그새 심드렁해진 채 의자에 기대어 있던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눈을 깜빡였다. 유리 같은 눈동자에 이채가 든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눈으로 묻는 듯했다. 빅터의 귀에 여자의 목소리는 어쩐지 몽롱하게 들렸다. 

“나는 언제나 여기 있었고, 어쩌면 아주 먼 옛날부터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거예요.”

 “…….”

이야기는 진술 혹은 고해처럼 들렸다. 빅터는 한참을 말이 없었다. 

“…… 넌 어딘가 섬뜩한 얘길 하네. 뭐, 나도 책에서 비슷한 이야길 읽은 것 같긴 해.”

잠시 후에는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빅터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떨리는 손을 의자와 몸 사이에 숨기며 태연히 대꾸했다. 이건 뭐지? 그저 묘한 이야기를 들어서라는 이유로는 답이 되지 않을 만큼 순간 미약한 공포에 질렸다. 들어서는 안 될 것을 들은 듯. 그러나 동시에 비로소 공명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는 항상 어딘가 어긋나 있던 것이 잠시나마 맞아들어가는 듯한 기분. 

 마리안은 짧은 찰나 머리를 지배하던 고양감에서 벗어났다. 어느새 공기가 식어 있었다. 더 뭐 필요하신 것이 없다면 마저 청소해도 될까요? 마리안의 물음에 빅터는 대답 없이 덮었던 책을 펼치고 눈높이로 들어 올렸다. 마리안은 예의 바르게 물러나 걸레를 집어 들었다. 

 두꺼운 책 너머로 푸른 눈동자가 도르륵 굴러 힐끔거렸다. 

안주인의 병은 며칠이 지나도록 차도가 없었다. 그럼, 물론이지. 안주인은 죽음을 맞이하고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처음으로 순리에 도전할 계기가 되어야 했다. 어차피 흑사병에 걸리면 오래 가지 못했다. 마리안은 누군가가 듣는다면 경악할 생각을 하며 무심하게 병실을 나섰다. 

“아빠가 뭘 하는 건지 모르겠어. 엄마를 절대 못 보게 하거든.”

“마님께서는 원래 아프시잖아요.”

“아니, 조금 달라. 날 성 밖으로도 못 나가게 하고…….”

빅터는 불퉁하게 말하며 작게 난 창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턱을 괸 제 얼굴 뒤로 비질을 하고 있는 침착한 하녀의 모습이 비쳤다. 영 건성으로 대꾸하는 것 같아 기분이 상했다. 

“…… 하녀들이 떠드는 걸 들었어. 마을에 병이 돈다고. 그거 때문이지?”

“무서운 병이에요, 도련님. 조심하셔야 해요.”

도련님이 성 밖으로 나갔다 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그건 정말로 큰일이니까. 한 차례의 기회를 완전히 날려 버리고 싶진 않았다. 마리안은 조심히 지뢰를 피해 걷듯 심지 없는 말만 종알거렸다. 

“엄마 방에 가 봤는데, 텅 비어 있었어. 침실을 옮긴 거야? 누나는 말이 없어.”

“마님께서 상태가 호전되실 때까지 치료에 집중하셔야 한다고 침실을 옮기셨어요.”

저 특이한 머리색의 하녀도 어차피 내게 진실을 말해 줄 생각은 없다. 빅터는 그렇게 단정 짓고 얼굴을 굳혔다. 하녀들이 떠들던 말은 단지 전염병이 돌고 있다는 것뿐이 아니었다. 쉿쉿거리며 프랑켄슈타인 남작의 거동에 대해 말이 오갔다. 몇백 년 전에나 사용되던 가면을 쓴다지. 이상한 주술 도구들을 나른다지. 갈수록 성격이 괴팍해지신다는데.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그런 이야기들을 전부 알지는 못했고 하녀들 역시 어린 도련님의 귀에 별별 말이 다 들어가게 할 정도로 처신에 불숙하진 않았으나 문제라면 소년이 너무도 총명하다는 데 있었다. 기실, 그의 삶을 통틀어 생각해 보아도 어떤 재능은 저주였다. 

 오늘따라 비질이 길다. 사용인들은 빅터가 어쩌다 말을 걸어 무언가를 물으면 난색을 보이곤 했기에 그 역시 최근에는 입을 다물어버리곤 했지만, 저 하녀라면 왠지 기꺼이 답해줄 것도 같았다. 창문에 비친 침착한 얼굴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듯 물었다. 

“난 지금까지 궁금한 게 있으면 무슨 수를 써서도 다 알아내려고 했는데. 만일 알고 나서 후회하게 된다고 해도 그게 맞을까?”

대답이 없었다. 빅터는 몸을 돌려 마리안을 마주 보았다. 유리에 비친 상이 아닌 실물은 더욱 색이 짙다. 친절하던 하녀의 얼굴에서 슬며시 표정이 사라지는 것 같다고 생각할 때 그가 입을 열었다. 또, 아주 먼 곳을 바라보는 것 같은 얼굴로, 제 것 아닌 이야기를 읊는 듯한 얼굴로. 어쩐지 그 얼굴은 이전과는 달리 조금쯤 쓸쓸한 듯도 보였다. 

 마리안은 주먹을 꾹 쥐고 가슴에 얹었다. 치밀어오르는 죄책감을 밟아 짓눌렀다. 수없이 반복된 일을 바꾸어서는 안 된다. 선로를 이탈하게 할 수는 없다. 자칫 새로운 길이 생겨나 버릴지 모른다. 고장 난 태엽축은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모든 말은 진심이다. 

“저는 아주 많은 순간을 망설였지만 결국 무얼 해도 같더라고요. 하고 싶은 일을 저지른대도 후회는 남지만, 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쳐 결과를 알 수조차 없어요.”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아서는 안 돼, 너도 그렇게 생각해?”

“그럼요. 도련님 뜻대로.”

책 표지를 두드리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하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있는 대로 신경이 곤두선 빅터가 흠칫, 들썩였다. 

“그럼, 저는 나가 볼게요.”

“어딜 가?”

“……마님께 가봐야 해요.”

마리안은 고개를 반쯤 틀고 힘을 주어 말했다. 문가로 다가서는데 뒤에서 망설이다 벌떡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동굴을 걷는 오르페우스라도 된 것처럼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허리를 꼿꼿이 편 채 침실까지 직행했다. 작은 발소리가 두 번씩 더 들려왔다. 정신없이 치료인지 주술인지를 진행하는 남작을 흘긋 보고 빨랫감을 챙겨나오는데 근처를 배회하던 엘렌과 맞닥뜨렸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빨래방으로 향할 때, 복도 모퉁이 뒤에서 빼꼼히 나온 검은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당장 나가!”

“도련님, 여기 계시면 안 돼요!”

“아빤 미쳤어!”

등 뒤에서 들리는 소란에 마음의 안정이 든다. 이내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퉁겨지듯 방 밖으로 뛰쳐나왔다. 엘렌이 빅터를 끌어안아 달래는 것을 보며, 조금 전까지는 소년이 몸을 숨기고 있던 모퉁이 뒤에 서서 안고 있는 빨랫감을 꽈악 끌어안았다. 

 머지않아 안주인은 숨을 다했다. 흑사병에 걸린 것치고는 오래 버틴 형편이었다. 병에 걸린 시체는 퍼지지 않도록 불태워 없애야 한다. 마땅한 수순이었다. 성 아랫마을에서는 화장이든 매장이든 될 겨를도 없어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전염이 두려워 장례가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급히 치러진 탓에 어린 빅터 도련님은 어머니의 마지막도 눈을 보고 배웅하지 못했다. 마리안은 장례 준비를 성심껏 도왔지만 화장터 근처로는 가지 않았다. 

 안주인이 사라진다 해도 하룻밤 지나 날이 밝고 성의 일상은 같았다. 실상 그 역은 진작부터 맏딸인 엘렌이 수행하고 있던 터였다. 제법 겁 없고 비위가 좋은 애로 찍힌지라 주인 없는 방을 청소하라 등 떠밀어졌다. 

 근처에서부터 느껴지는 메스꺼운 악취에 마리안은 문간에 선 채 잠시 멈추었다가, 방 안으로 거리낌 없이 들어갔다. 끔찍한 이질감으로 눈에 턱 걸리는 것이 있었다. 새하얀 침대 위에 단정히 놓인 빼빼 마른 시체는 공포스러울 정도로 해괴했다. 완전히 타지 못한 부인의 시체는 언뜻 미라처럼 보였다. 평범한 하녀였다면 당장에 구역질했겠지만 마리안은 구석에 서서 흔들림 없는 눈으로 방을 한 번 훑었다. 첫 생애를 박제사로 시작한 사람이 시체를 보고 동요한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물론 그 뒤의 숱한 삶의 족적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역시 ‘불에 탄 시체’라는 점은 조금 견디기 힘겨웠다. 마리안은 여전히 너무 맑고 밝아 새하얗게 보이던 하늘과 정수리를 뜨겁게 달구던 태양을 기억했다. 팔과 몸은 한 번에 단단히 묶여 있었고 아래에서 웅성거리는 목소리는 무어라 하나하나 구별해서 알아들을 수 없었다. 바람이 살짝 불었고 자줏빛 머리카락이 눈앞으로 하늘하늘 날렸다. 비현실적이던 그 감각. 빅터 프랑켄슈타인. 마리안은 꼼짝달싹 못하는 상태로 눈을 내려 와글와글 몰려든 인파의 둥근 머리, 머리, 머리, 머리 사이에서 짧게 자른 검은 머리카락과 반듯한 얼굴을 찾아 헤맸다.

 언젠가 실험이 차도를 보인다며 흔치 않은 미소를 보였던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모습만큼이나 내리쬐는 태양이 눈 부셔서 마리안은 어지러웠다. 기이한 흥분과 열기에 사로잡혀 얼굴을 붉히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 중에 목표를 찾아내기도 전에 형을 집행하는 소리가 들렸다. 안 돼, 아직, 생각하지만 눈물이 앞섰다. 시야가 흐려졌다. 고통 속에 정신이 점멸했고, ……

 퍼뜩 정신을 차리자 문이 열려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는지 복도를 지나치던 다른 하녀 한 명이 슬쩍 문 너머로 고개를 내뺀 채 살피고 있었다. 이게 무슨 냄새야? 찌푸리며 들어온 하녀는 이내 쩌렁쩌렁하게 비명을 질렀다. 이게 뭐야! 

“마님의 시체가 집으로 돌아왔어……, 시체가 걸어 다니나 봐!”

어린 빅터 도련님이 방으로 들어오는 것도 의식하지 않던 하녀가 마녀의 짓이라 외치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일순간 하녀의 눈에 도련님을 향한 경멸과 공포 같은 것이 실렸다. 마리안의 시선이 혼비백산한 하녀의 뒤를 잠시 쫓았다. 

 처참한 광경이었다. 곱게 차려 입혀 둔 도련님이 흙바닥에서라도 구른 것처럼 더러운 꼴을 해서는 정성껏 물에 적신 수건으로 다 타버린 시체를 닦고 있었다. 비명을 듣고 뒤따라 들어온 하녀가 경악하며 접시를 떨어뜨렸다. 쨍그랑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소년은 열의에 가득 차 시커멓게 탄 거죽을 벗겨내기라도 할 듯 몸을 문질렀다. 커다란 눈동자가 반들거렸다. 

 몇 명이 목격하고, 소리치고, 뛰쳐나가는 동안 마리안은 말이 없었다. 누군가 목격한다면 이 가엾은 어린 하녀가 시체를 보고 너무 큰 충격으로 굳어버렸다고 생각할 테다. 멀찍이서 미동 없이 선 채 그 장면을 빠짐없이 눈에 담았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활활 타오르는 집념, 그 탄생을 지켜보았다. 기시감이 들었다. 수없이 보았던…… 그를 탄생시킬 때의 눈빛. 

 목 안쪽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것이 있었다. 안타까움, 걱정, 두려움, 경외나 환희 같은 것. 어린 소년이 중얼거렸다. 

“절대, 엄마를 뺏어갈 순 없어…… 아무도……”

“내가, 내가 살릴 거야. 내가 꼭……”

마리안은 다음 상황을 알고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수없이 들어 넘겼던 이야기다. 

 제네바의 시민들은 횃불을 치켜들었다. 마녀가 성에 숨어 있다는 것인지, 죽은 줄로만 알았던 프랑켄슈타인 성의 안주인이 실은 마녀라는 것인지, 분명한 말은 없었지만 어쨌든 프랑켄슈타인 성의 모든 것이 지독히도 수상쩍고 괴이하게 보였음은 틀림없다. 가면을 쓴 미치광이 남작과 병환을 앓는 부인, 밤새 돌아온 시체, 시체를 두려워 않는 도련님. 그러나 이 성에서 굳이 가장 수상쩍고 괴이한 것을 하나 골라내자면 바로 여기 서 있는 마리안의 존재다. 

 더 이상 겁내지 않는다 해도 화염과는 여전히 친하지 않았다. 언제 이 성에 속했냐는 듯 도망쳐 외치는 하녀들 틈에서 마리안은 불타는 성을 지켜보았다. 열에 들뜬 사람들의 표정은 마리안 클레멘스의 화형을 구경하던 자들의 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서서히 성은 마리안에게 익숙한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그때 성이 불길에 휩싸이지 않았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이런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 오래된 일이다. 불행은 탄생부터 끈덕지게 그를 쫓아왔으니. 

군을 떠나 성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거대한 실험 장비들을 벌려놓고 남의 눈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곳은 거기뿐이다. 화재 사건 이후 슈테판은 보수 공사를 하는 대신 성의 출입을 금지했지만, 아무렴 어떤가. 성의 주인은 프랑켄슈타인이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성이 불탄 이후 엘렌의 치마폭에 숨어 주변을 둘러보다 마주친 눈동자를 떠올린다. 침을 뱉고 수군대며 멸시하는 얼굴 중에는 그간 자주 스쳐본 얼굴도 있었다. 사실 빅터는 성의 사용인 하나하나를 알지 못했으나 이를 깨물며 그의 손을 꽉 쥐는 엘렌의 반응으로 넘겨짚곤 했다. 이제 와 생각하기로는 그때의 엘렌 또한 한참 어린 소녀에 불과했다. 

 다만 빅터 프랑켄슈타인도 나름의 호기심이나 염려를 가졌던 것이 있다. 의미 모를 이야기를 나누던 하녀의 행방은 성이 불탄 이후로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어쩌면 그날 변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그 하녀도 붉은 기가 도는 보랏빛 머리를 가지고 있었지. 너무 어릴 적의 기억이라 그런가 가물거렸다. 나누었던 대화도, 모습도, 목소리도. 분명 들었던 것 같은 이름은 새하얗게 지워진 듯 떠오르지 않는다. 그가 관심을 둔 무언가를 잊는 일은 퍽 드무니 희한한 일이다. 

 기차가 출발하려는 듯 덜컹거렸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수첩을 펼치고 발상을 끄적였다. 보라색은 어쩌면 그렇게 특이한 색은 아닐지도 모른다. 아니, 특이한 건가? 이상하게도 얼굴도 이름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 어릴 적의 하녀 한 명. 눈앞의 깜빡 졸고 있는 실험 보조. 둘 외에는 본 적이 없었다. 아, 하나 더 있을지도. 

 슈테판의 미움을 사고 제네바를 떠나 독일 유학길에 오르기 전에 기차역에서 언뜻 보랏빛 머리카락의 여자를 본 것도 같다. 표를 잃어버려 기차를 놓칠까 당황하고 있을 때 모자를 눌러 쓴 여자가 말없이 쥐여주고 떠났던 기억이 난다. 워낙 다급한 순간이라 잘못 보았을지도 모르지만 워낙 독특한 색이라 눈길을 잡아끌었다. 

 미심쩍을 정도로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삶, 분기의 한가운데서 불쑥 나타나곤 하는 강렬한 색채가 있다. 

 말도 안 되는 생각. 비과학적이고 미신적이라는 결론에 고개를 내저으며 빅터는 잡념을 지웠다. 어쩌면 먼 친척 관계일지도 모르지…… 눈앞의 여자, 마리안 클레멘스는 불쑥 나타나 실험을 돕겠다고 나섰지만 예상외로 훌륭한 조력자였다. 온갖 지식에 해박했고 그 나이에 갖춘 실력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노련했다. 그거면 충분했다. 무엇을 더 의심할까. 

 그만 졸고 이쯤이면 일어나서 향후 방향성에 관해 이야기나 해 보자고 말을 걸 심산으로 빅터는 마리안을 툭툭 건드렸다. 눈이 반짝 뜨이며 진분홍색 눈동자가 드러났다. 마주치는 순간 어째서인지 약간 놀라, 빅터는 머뭇거렸지만, 마리안은 눈치채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아무렇지 않게 수첩을 들이밀며 그려둔 도해를 가리키자 마리안은 곧바로 집중했다. 

태엽축은 이상 없이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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