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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그는 운명을 실험대에 올리고 반으로 갈랐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2차 창작 / 2020년 작

소마 by 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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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미션 작업물

- 드림주 루프 설정과 희망하는 장면을 안내받은 후 작업

그리하여 그는 운명을 실험대에 올리고 반으로 갈랐다

MARIAN X VICTOR

 

난제에 부딪혔을 때의 해결책. 견디기 어려운 고난에 맞닥뜨리면 신께서 내린 섭리라 여기고, 이 시련을 버티어내겠노라 다짐하고, 가혹한 운명을 거두어달라 기도한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명석한 자였으므로 이 보편적인 행동방식의 편리함과 유용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 고루한 해결책을 빅터 프랑켄슈타인에게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전제와 필요조건의 문제였다. 제시된 행동방식은 순응과 한계 수용에 기반했으나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객관적 평가에 근거해 판단하기로도 이단의 길을 타고났다. 사소한 일상에서조차 언제나 막힌 벽 앞에서 등을 돌리기보다는 벽에 구멍을 뚫을 방법을 고안하는 ―간혹 그저 벽을 걷어차 부수어버리는― 쪽에 속했으니 구태여 신까지 운운할 필요도 없다. 다음으로 그는 섭리를 부정했으며, 운명이라면 질색했다. 

그러나 그는 종종 섭리와 운명이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바로 옆에서 숨 쉬고 있을지 모른다는 착각에 휩싸이곤 했다. 

마치 기막힌 실험의 발상이 떠올랐을 때처럼 모든 현실의 괴로움과 급박함을 헤집고 솟아오른 상념을 억누르며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정신을 차렸다. 코트를 어깨에 걸치던 중 들려온 목소리에 짧은 순간을 그렇게 멈추어 있었다. 다시 참혹한 현실이 손끝을 뻗쳐 그의 뇌를 서서히 뚫고 들어온다. 시야가 회복되고 감각 기관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상념의 원인을 바라본다. 손에 든 램프 불빛이 어른거리는 연분홍빛 눈동자가 갈망을 담은 채 그를 응시하고 있다. 그래…… 이를테면, 그의 친애하는 마리안 클레멘스와 함께할 때 그는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꼈다. 

마리안 클레멘스가 재차 묻듯 그에게 다가선다. 재주 좋은 동료라기에도 연인이라기에도 애매한 이 상대는 언제나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변수였다. 그는 전기를 흘려보낸 실험체를 관찰하는 듯한 태도로 마리안 클레멘스를 살핀다. 머릿속의 보고서에 이상 반응 표시가 그어진다. 절박함과 체념은 공존할 수 있는 기의이던가? 고개를 흔들어 떨치고 다시 보니 그녀는 그저 무고하며 투명한 얼굴로 간곡히 요청할 뿐이다. 

회고하자면 마리안 클레멘스를 처음 대면한 순간부터 그랬다. 친척이 살았다고는 하나 연고 없는 제네바에 불쑥 나타났다는 아가씨, 다소 독특하지만 평범하고 생기있는 20대의 숙녀, 동시에 몹시도 이상한 여자였다. 탐구욕에 불타 실험과 연구에 매료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나 빅터 프랑켄슈타인 개인을 향하는 무겁고도 열렬한 감정은 대체 어디서 기인한단 말인가? 그러나 의아함에 내치거나 반대로 내빼기도 전에 빅터 프랑켄슈타인 역시 마리안 클레멘스에게서 멀어질 수 없음을 깨닫고 말았다. 수렁에 발목을 잡힌 듯 섬뜩하게도 알 수 없는 거대한 흐름에 빨려드는 느낌이었다. 

그를 볼 때마다 이채를 띠는 맑은 자색 눈동자의 이면에서 무어라도 읽힐 것 같았다면 우스운가? 작은 몸과 차분한 행실 안에 녹아 있을 진실을 엿보는 일이 내키지 않았다. 이따금 보이는 초연함과 표면 위로 튀어 오르는 상반되는 감정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혹은 그녀 스스로 주도하기라도 하는 듯, 기묘한 마리안의 반응은 그녀를 세계로부터 유리된 존재처럼 보이게 했다. 동떨어진 그녀를 세계와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끈을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쥐고 있기라도 한 듯 마리안은 그에게 전념했다. 

그럼에도 그는 마리안 클레멘스의 능력이 필요했고, 무한한 동경과 신뢰와 애착에 감히 기대었다. 마리안의 곁에 있으면 모든 것이 순리대로 흘러가는 것 같았고, 그는 그 사실에서 기이한 안정감을 느꼈다. 순리라니, 이 얼마나 빅터 프랑켄슈타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인지! 세간에서 말하는 사랑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했으나,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다. 

함께 데려가 주세요. 

오롯이 진심을 담은 목소리는 절박한 동시에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마치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당연히 이 요청을 거절할 거라고 기대하는 듯이, 그러나 실상 그녀가 정말로 바라는 것은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허락이 아닌가? 물론 그는 홀로 그곳을 향할 생각이었으나 또다시 발견한 모순 앞에서 결국 멈추어 섰다. 그는 서서히 고개를 돌리며 평생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던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단단히 감싼 운명의 껍질을 떠올린다. 

운명의 방증과도 같은 마리안 클레멘스의 존재를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드디어 모든 눈을 열고 마주한다. 이제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어쩐지 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을 목도한 어린 아이 같은 기분이 되어, 사뭇 불경한 감각에까지 사로잡혔다가, 비틀거린다. 하여 이 불경한 이단은 다시 한번 섭리를 모독하기 위해 시도하길, 마리안의 기대와는 상반되는 답을 내놓는다. 

마리안 클레멘스는 그가 내민 손을 붙잡으며 동그란 눈을 크게 뜬다. 힘을 주어 가까이 당기자 램프가 흔들리며 울렁이는 빛그림자가 진다. 마리안 클레멘스의 무척이나 놀란 얼굴에는 모순이 부재한다. 모든 환희와 희망이 바닥난 가슴 속에서 그는 약간의 긍정적인 감상을 긁어모은다. 어쩌면 이조차 친구를, 가족을, 소꿉친구를 죽게 한 저주받고 미친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착오일지 모르나 그에게는 아직 거역할 여지가 있다.

그리하여 그는 운명을 실험대에 올리고 반으로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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