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클이안]행한대로 갚으소서

보존도서관 by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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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주차 주제 : 이건 분명 악몽일 테니까.

목표 글자수 : 4195/3000


이건 분명 악몽일 테니까.

탄창 빈 총에서 들리는,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들리는 틱틱거리는 소리. 비릿한 쇠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두께 얇은 금빛 머리카락이 손에 감겨오고, 제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아 그러나 분명 그의 것이 분명한 불규칙한 숨소리가 귓전을 메웠다. 두 손 가득 내리누르는 묵직한 무게. 그러나 그보다도 더 무거운 것은 형체가 없는 것이다. 이게 현실일 리 없어. 메클렌부르크는 되뇌인다. ……이게 현실일 리 없어. 쿵쿵거리며 박동하는 심장 소리. 이상하게도 나누어졌다가 합쳐지는 세상 속. 숨을 쉬는 이는 하나. 그는 방금 전 섬전처럼 찾아온 깨달음을 부정했다. 그럴 리가 없어.

이건 분명, 악몽일 테니까…….

 

 

**

 

 

알버트 메클렌부르크는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을 심각하게 여기는 부류는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항상 대의의 편에 있었으므로.

그는 물론 기득권이었고, 높은 이로서 그 가진 것을 낮은 이에게 ‘베풀’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그가 필요할 때 ‘노블레스 오블레주’를 실천하더라도 구태여 시시콜콜한 부분에까지 그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이들은 없었다. 어느 누가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국의 후계자에게 그런 것들을 강요하겠는가. 통치자의 미덕.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 비트리올 폭주자의 머리를 부수고 일을 ‘처리’하던 것 또한 그 통치자의 미덕에서 기인한다. 그는 나기를 통치자로 났고, 한 번도 그 의무에 반하지 않았으므로.

 

비록 태생부터 그와 맞지 않는 이들, 예컨대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이라거나, 루카스 아스카니엔 등과 있을 때 상대적으로 그 이름이 빛바래 초라해지긴 하였으나 분명히 그 태생이 고귀하고 뛰어난 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이는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분명, 소의 희생 따위는 아무렇지 않아야 하는데.

 

“…….”

 

이 지경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웃고 있는 얼굴을 메클렌부르크는 본다. 여타 신인류가 그러하듯 타인의 눈에 보기 좋게, 미적 기준에 부합하여 조형된 얼굴. 마치 살아있는 사람의 것이 아닌 듯 한 기묘한 느낌까지 주는 저 자. 열등감과는 어울리지 않았던 그가 가진 열등감의 근원.

검은 하늘 아래 새하얀 별이 반짝인다. 날이 맑았다. 밤그림자가 얼굴로 기울어지고, 바람을 따라 가는 금발이 흩날린다. 그리고 그 아래 걸친 익숙하고도 지긋지긋한 미소. 메클렌부르크는 말없이 총을 들었다. 익숙한 조준이다. 그리고 총구가 자신을 겨눴음에도 눈앞에 있는 저자. 아드리엔 아스카니엔은 입매를 부드럽게 올렸다. 마치 그들이 함께 교육원에 있었을 적, 그 때의 그 어린 알버트 메클렌부르크를 대하듯이.

 

“오랜만이야, 알버트.”

“…….”

“마지막으로 본 건 네 달 전이었지?”

“……우리가 그런 대화를 나눌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어지러운 생각이 머릿속을 메운다.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을 마주할 때마다 부여받는 것은 혼란이다. 저 아스카니엔 형제들을 마주할 때면 명확했던 확신도, 사고도 전부 어지러운 실뭉치처럼 흩어지기만 하여. 밤공기가 폐를 메우고, 참지 못하고 메클렌부르크는 한 마디를 더 덧붙이고야 만다.

 

“네가 아직도 마법부 차관이라고 생각해?”

“그보다는 내 친구를 만나서 기쁠 뿐이야, 알버트. 다른 사람들이 나를 범죄자라고 부르고 쫓는 것이 너와 내가 친구였다는 사실을 없애지는 않으니까. 그렇지?”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은 타고난 연기자다. 그가 내보이는 호의와 말투, 행동, 표정 하나하나는 실력 있는 조각가가 섬세하게 세공한 것과 같이 계산적이고, 보는 이로 하여금 그가 내보이는 것들을 믿도록 만든다. 속이 울렁거렸다. 아직도 친구라고 생각한다고? 아니, 거짓말이다. 그가 이십여년 간 사람들을 속이고, 니콜라우스 에른스트―루카스 아스카니엔. 자신의 동생을 플레로마로 몰아 사회에서 묻어버렸을 때도 그는 언제나 자랑스러운 안할트의 후계자였고, 동생을 사랑하는 훌륭한 형이었지 않던가. 그러므로, 이것은 그저…….

 

“여전히 칼 같네, 알버트.”

“…….”

“그렇지만 여전히 정이 많고.”

 

고민하고 있구나, 알버트. 뭘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 거야? 상부에서 네게 내려온 명령은 명확할 텐데. 다정한 목소리가 내려앉는다. 끝까지 저렇게 온화하고 상냥한 탈을 쓸 생각인가,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은?

마치 역겨운 무엇인가를 삼킨 것만 같은 기분이 가시지를 않았다. 아드리안 아스카니엔과 함께 했던 교육원 시절이 문득 스치운다. 무엇도 겉과 같지는 않았다는 것인가. 끝에서도 평소와 다르지 않은 뻔뻔하게 웃는 낯짝일 것이라는 예상은 들어맞았는데, 왜 모든 직감이 전부 빗나간 것만 같은 엉망진창인 기분이 되어 이렇게 서있는 것인지.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을 한 번이라도 넘어보기를 간절히 바랐으나, 이러한 형태일 것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정말로, 조형 뿐 아니라 모든 것이 불합리할 정도로 완전하였기 때문이다. 그의 유일한 결함은 피를 마시는 동생 뿐이었으되, 지금은 보라. 화려한 꽃조차도 채 열흘을 가지 못하지 않았나? 철컥, 냉기 머금은 쇠가 장전되는 소리.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은 틀리지 않다.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은 죄 없는 동생을 핍박하고 죄를 뒤집어씌운 명백한 악이었다. 그러므로 통치자 된 이로서, 황실 마법사 연합회의 한 소속으로서 그는 마땅히 할 일을 할 뿐이리라. 그러나 여전히, 어떤 일도 없는 것처럼 눈을 접어 웃고 있는 푸른 눈이…….

 

“입으로는 그 이웃에게 화평을 이야기하나 그 마음에 악독이 있나이다.”

 

푸른 눈이 빛나는 것만 같은 착각 속, 입술을 달싹여 아드리안은 한 구절을 읊었다. 마력도, 무엇도 없이 밤하늘 아래에서 그저 평온하기만 하였다. 장갑 낀 손 안으로 식은땀이 흘러 불쾌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아드리안은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온다. 표정은 여전히 평온하기만 한 가운데 손에 힘을 주는 메클렌부르크 앞에서 그는 속삭였다.

 

“하는 일과 행위가 악한대로 갚으시니, 손이 지은 대로, 그 마땅히 받을 것으로 갚으소서.”

 

그리고 먹먹한 격발음. 헉, 비명처럼 숨을 뱉은 메클렌부르크는 그제서야 자신이 숨을 쉬지 못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리고…….

 

“…….”

 

메클렌부르크는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이 그 앞에서 이러한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다. 비릿한 혈향. 입가에 여전히 드리운 미소, 창백한 달빛에 그 끝이 새파랗게 물든 금발……. 더러운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피가 묻는 것 따윈 질색이다. 메클렌부르크의 결벽증은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이 아는 것이었으되, 여전히 식은땀을 흘리며 그는 다가선다. 누가 보면 총을 맞은 것이 그라고 생각될 정도로 처참한 표정으로. 장갑 낀 채로 얼굴을 더듬던 그가 아드리안의 몸을 툭 건드렸다. 살아있을 때에도 이 세상의 것 같지 않았기에, 죽었을 때도 이 세상의 것 같지 않았다.

아니, 정말로 죽긴 했나?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은 타고난 연기자다.

떨리는 두 손으로 총을 들었다. 다시금 허공을 찢는 총성, 총성…….

 

“헉, 허억……. 헉…….”

 

첫 번째의 총성에 문득 웃던 미소가 스쳤으며, 두 번에는 그 자신에게 했던 부탁이 떠올랐다. 알버트, 부탁하나 해도 될까? 상냥한 목소리와, 특유의 그 표정. 그리고 세 번…….

틱. 탄환이 없어 나는 소리가 귓가에 걸리고, 그는 문득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이건, 어쩌면…….

 

아.

이건, 어쩌면……. 언젠가 교육원의 축제에서 진행했던 연극이 떠오른다. 축제 특유의 떠들썩한 분위기. 그의 반은 연극을 진행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온전히 구경꾼의 입장에서, 연극이 마친 후 친구들과 떠들어댔다. “구인류는 이해할 수가 없네. 그러니까 그들이 정의하는 사랑은 서로 몸을 비비고 육체적인 어떤 행위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거잖아?” 신인류인 그들은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무언가. 구인류가 이름 붙인 그 되도 않은 사랑이 아닌, 사랑이라 함을 우리 신인류는 또한 어떻게 정의할 수가 있는지. 소중하게 여기는 것? 그 사람의 무엇이라도 되고 싶은 것?

 

그렇다면, 그것조차도 아닌 이것을 나는 뭐라고 이름 붙여야 하지? 역시 열등감? 고작 이렇게 단번에 끝나버리고야 만 허무감? 저항조차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의심? 갑갑함? 아니, 그것이 아닌데. 그런 게 아닌데……. 그렇게, 정의할 수 있는 말이 아닌데…….

알버트 메클렌부르크는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을 싫어한다. 그로 하여금 태생부터 어울리지 않는 저열한 감정을 느끼도록 만드는 존재이기에.

 

“하, 하하……. 아드리안 아스카니엔, 끝까지…….”

‘하는 일과 행위가 악한대로 갚으시니, 손이 지은 대로, 그 마땅히 받을 것으로 갚으소서.’

 

그는 악이 아니기에 그 말의 주체가 될 수 없건만.

마치 악몽과도 같은 이 현실을 깨어날 방도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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