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로 커티스와 타윈 캄펜 사이의 유일무이한 공통점
길거리에서 맨발로 돌맹이를 차던 아이들의 청사진
낙인효과라고 아는가? 갑작스럽지만, 뭐 와이 책에 나오는 개념을 설명하려는 건 아니고. 단순하게 언급하자면 낙인 효과라는 것은 한 죄인에게 부여된 서사를 더는 바꾸지 못하게 낙인을 찍어두는 것으로, 타인들이 꾸준히 그 형태에 대해 논하게 되어 본인 조차도 그 속에 갇혀버린 나머지 그와 동일하게 동작하게 되는 효과를 의미한다. 지금의 타윈 캄펜과 네로 커티스가 스스로에게 하는 행위처럼 말이다.
“있잖아요. 당신과 나는 기를 좀 죽인 채로 살 필요가 있어요.” 네로 커티스가 말의 시작을 끊었다.
“뭔놈의 기를 죽이고 산답니까.” 타윈 캄펜이 부루퉁하게 답을 했다. 적어도 네로 커티스는 그렇게 느껴진다고 판단을 내렸다.
“우리가 스스로의 숨통을 조이고 자빠진 짓을 그만해야 한다는 이야기야.”
그러나 누구도 멈출 생각은 없었다. 방에는 적막이 돌았고, 그나마 남아있던 홍차의 잔 아래는 비워진 지 오래였다.
“당신도 참 지긋지긋하게 굽니다.”
“내가 지긋지긋하게 여겨진다면 스스로를 가해자라는 프레임 안에 집어 넣는 것도 슬슬 그만둘 때가 됐는데. 아직 나에 대한 귀찮음 그렇게까진 퍼지지 않은 모양이지?”
“지독하게 굴지 마십쇼, 네로 커티스.”
“나보다 더 지독한 사람에게서의 칭찬이라. 과찬이네!”
“인위적인 표정 하나 만드는 것엔 당신 만큼의 대가도 없을 겁니다, 깡통 나으리.”
“깡통이라는 단어 사용 금지!”
“되다가 만 고철덩어리.”
“흠.”
“뭐요. 왜 그딴 표정입니까.”
“약간 마음에 들지도 모르겠어서.”
맥락과 목적 없는 대화들이 오간다. 그 사이엔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단어도 있고, 책임과 무상함에 대한 개념도 분명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종잡을 수 없는 대화를 이어가고 목적성이 불분명한 담론이 몇 번이나 왔다갔다 한다 하더라도 둘의 초창기 목적과 신념은 그리 크게 바뀌질 않는다.
“결론은 이래요.”
“갑자기 말에 결론을 내리시는군.”
“당신과 나는 여유롭게 살 필요가 있겠어.”
“그쪽은 확실히 쉴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아니, 너와 나 둘 다 말이야.”
“글쎄요. 고민 좀 해보겠습니다.”
이로써 몇 번째 협상 결렬이지? 뭐,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타윈 캄펜이 어느 날 이 오래된 대화들을 곱씹으며 피해자성과 가해자성에 대해 생각해볼 것이며, 네로 커티스가 휴식이라는 것의 중점된 파츠가 무엇인가 고민을 하게 될 날이- 언젠가는. 정말이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더라도 우리가 나눈 모든 대화는 흔적과 상이 되어 파편 조각으로 굳혀져 우리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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