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의 결여

네로 커티스 > 이해 대상 [퀘이]

이건 너에게 바치는 하나의 시어이자 확언의 형태를 지닌 문장이다.

네로 커티스는 악셀 케브란사를 사랑한다. 그 청년의 시선이 제 눈에 확 들어올 적이면 빛 받아 반짝이는 것이 꼭 금수 같다가도 얇게 휘어지며 카르! 하고 밝게 부르는 음정이 덧대어지면 애정 듬뿍 어린 아이처럼 보였다. 머리칼의 방향에 큰 신경을 안 쓰다보니 이리저리 휙휙 넘기는 애가 꼭 자신이 선 쪽에 맞춰 가르마를 정리할 적이면 웃음이 새어 나오려고 했다. 가다듬은 손톱과 뻗은 신체, 언제나 제 관리를 위해 이리저리 바삐 돌아다니는 사람은 당사자면서 자신에게 시간 있냐고 물어볼 때엔 언제든 여유 있다고 답 하질 않나. 하여튼 웃기고 신기한 생명체다. 그러니 사랑하고, 그러니 더 애정하며, 그러니 더욱 두려워한다.

몰이해와 공감의 줄다리기 싸움

이건 너에게 바치는 하나의 시어이자 확언의 형태를 지닌 문장이다.

그러니까 문제가 생길 적이면 항상 자신에게 전화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도 위급한 일 생길 적 마다 언제나 전화하는 1번은 아니어도, 0번은 당연히 될 수 없어도, 3번 안에는 당연히 드는 사람. 열 손가락 꼽으라 해도 들어서고, 다섯 발가락 짚어보라 해도 멀쩡히 남아 있으며, 금은동 좋아하는 메달과 순위 매기기의 핏줄 답게 연속 삼관왕 혹은 특별 어워드에 자리 만들어져서 들어가는 사람. 네로 커티스는 그런 식으로 사람을 구분해 평가하길 좋아했다. 그게 편한 것도 있었지만 모든 사람 사이엔 순위가 있고 그 머리 위에 순번이 놓여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한정적이고 그들의 시간은 더 비좁거든. 그러니 나에게 할애할 것을 저들에게 주어서는 안돼. 아주 간단한 이치다. 그는 자신이 마땅히 가져가야 할 파이 조각을 타인에게 나누어주는 걸 싫어했다. 나 먹을 것 다 먹고 너에게 나눠줄 거야.

그러나 자신을 보살피는 과정이 자동화 되어버리다 보면 남에게 주는 파이 조각은 자연스레 거대해지고, 비대해진다. 기실, 악셀 케브란사가 생각하고 있는 사랑의 양은 많았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 네로 커티스도 어렴풋이 그 양을 헤아리곤 했다. 비대하다 못해 과하게 큰 자신을 향한 애정에서 고개를 돌리면 한없이 작은 크기였지만, 손에 담아 소중히 입 안으로 밀어넣어 삼키기엔 좀 벅찬 질량이었다. 그럼에도 씹어 먹었다. 어쩌다가 부스러기가 입을 타고 흘러 나왔지만 그럼에도 꾸역꾸역 삼키려고 했다. 끝내는 다 못 소화시키고 헛구역질 하며 역류하는 것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몸을 떨었지만- 결국 몇 조각을 제 것으로 만들어버리긴 했다.

그래. 이건 당연한 일이야. 너가 내 일부가 된다면 너도 두려워 하지 않아도 괜찮고, 나도 무서움에 몸을 떨며 밤을 지새우는 척, 시늉, 하여튼 그런 애절하고 구구절절 먹먹한 짓거릴 하지 않아도 된다. 내 일부로 판단할 수 있게만 된다면 난 널 영원히 사랑할테야. 내가 페더를 그렇게 영원히 그리워하고 있듯이.

영원이란 단어는 값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네로 커티스에게 있어서 곱씹을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세상을 제 발 아래에 두고 자신은 그 꼭대기 위에서 존재한다고 굳게 믿으며, 이런 걸 티내지 않고자 서른 해 족히 넘게 교육을 받고 있는 작자는 어쩔 수 없다. 남을 사랑하는 법도 기기괴괴 하다 못해 괴짜같기 마련이다. 하지만 부정은 하지 말아. 두려움도 지니지 말아. 네로 커티스는 그리 속살거리면 될 줄 알았다. 사랑의 결엔 다른 것이 있으며, 어떠한 사람들은 그 감정에 시름시름 앓다 못해 조금씩 곪아가며 아파한다는 걸 두 눈으로 목도하기 전까진.

그러니까, 남의 연애사에 관심은 없다. ‘타인’의 관계엔 관심이 없다. 아는 사람의 지인도 결국엔 ‘남’의 영역에 속한다. 실체를 지닌 존재를 만나기 전까지 귀에서 들어온 정보는 온통 허상의 값일 뿐이다. 애도한다, 블래스트의 전원에게. 실종이 된 블래스들에게도. 그런데 어쩌겠는가. 그러게 왜 그 던전에서 휙 휩쓸리고 말아버렸는가. 왜 생존자를 만들어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것들이 내게 거짓이 되게끔 만들었는가. 정보값은 1이라는 수치 이상을 지닐 수 없으니 언제나 0의 값을 가지고, 발화하는 자는 언제나 그 역의 100이라는 최대값을 지니니 늘상 완벽한 가치를 지닌 대상이 된다.

그런데 넌 뭐가 그리도 모자라서 상처받은 얼굴을 한단 말이야. 넌 뭐가 그리도 부족해서 내 마음을 알아듣지 못하고 다르다고 말을 하는 거냔 말이야. 내가 이렇게나 너를 특별대우하고 있는데, 내가 널 이렇게나 귀하게 여기고 있는데 넌 뭐가 부족해서 슬픈 얼굴로 날 보는 거냔 말이야… 납득할 수 없었다.

아마, 영원히도 말이다. 그는 제 곁에 자리를 잡은 채 색색 숨을 쉬며 자고 있는 청년을 내려다 보았다. 상대의 중지 손가락엔 맞춘 반지가 걸려 있었고, 이 관습은 반지를 던지는 것에서 시작되어 보다 다른 형태로 가공되어 끝내야만 바람직했다. 급소를 모조리 드러내고도, 이를 분해하다 못해 한 번 삼켜서 위생법에 걸려 병원 혹은 법정에 끌려가고 싶은 사람이 자신이라는 걸 알면서도 편하게 자는 치를 보아라. 너희는 사랑과 도덕, 믿음과 윤리라는 것 아래에서 많은 걸 묵인하고 용납하지. 너는 어디까지 나를 받아줄까. 너는 어디까지 날 이해하지. 너는 어느 선 까지 날 공감하며 눈물 흘려줄 수 있지. 내 괴로움이 네 괴로움인 것 마냥 절규하고 내 행복이 너희 환희인것마냥 즐거워할 수 있는 게 어디까지 가능하냔 말이야.

고개를 낮춰 이마에 입술을 누른다. 너는 영원한 몰이해의 대상이다. 난 너를 영원토록 받아들이지 못하고 타인으로 둘 것이다. 페더 만큼이나 널 사랑할 자신이 없다. 하지만 페더와 다른 방향의 사랑으로는 누구보다도 너를 사랑할 자신이 있다. 그러니 이건 그래프와 통계의 오류다. 너는 내 연애적 사랑에 있어서 유일이라는 표본을 지니고 있으며 성적인 행위의 연속이라는 분야에선 가장 많은 횟수를 차지한다. 그렇다면 이건 통상적으로 말을 하는 연애라는 절차를 밟아도 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너는 같은 표정을 보일까. 모르겠다. 그런데 너가 알려준 게 있다면, 모르면 부딪혀보고 알고자 하고, 노력하는 것이 사랑이라 했다. 가장 궁극적인 것이라고.

그러면 나도 그래야 마땅하다.

네가 나를 알고자 수많은 숨을 빼앗기고 몸에 자국이 남겨진 것처럼, 나도 마음 속에 칼을 그어 잘라내길 반복하고 몰이해를 망치로 두들기며 여린 부분이 어디 있는지를 찾아내야 한다. 너를 내 일부로 여기고자 하니, 그만큼 너를 으뜸의 자리로 올려두어 귀하게 대해야만 마땅하다. 그래야만 마땅하다…

그래서 네로 커티스는 페더 커티스의 던전 공략이 완료 되기 전, 미리 준비해 두었던 약혼 반지를 꺼내 고백을 했다. 담담한 언어는 상대가 돌아온 뒤에도 이어졌다. 마침내 검은 상복을 집어던진 뒤, 흰 베일 대신 검은 것을 이어서 쓴 채로 한정된 양 만큼의 시간을 약속했다. 등가교환이다. 네가 준다면, 나도 주어야 마땅하다. 너가 나를 사랑하니, 나도 너를 사랑해야 마땅하다. 너가 노력하니, 나 또한 노력해야 마땅하다. 네가 지금까지 날 기다려주었으니, 나 또한 앞으로도 너를 기다려주는 것이 옳다. 이 수식은 진리이자 참이요, 옳은 명제이자 불변하지 않을 결과값이다.

결국 네로 커티스는 악셀 케브란사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자신을 사랑하는 악셀 케브란사를 믿어 도전하기로 했을 뿐이다.

이건 너에게 바치는 하나의 시어이자 확언의 형태를 지닌 문장이다.

몰이해와 공감이라는 줄다리기에서 이긴 승자에게 이 마음을 바친다.


늦었지만 고록입니다. 이런 걸 12시간 수면 전 대가로 바치는 앤오는 괘씸하신가요? 하지만 가끔 인생이 그런 법입니다. 맛있는 식사를 하시고, 즐거운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악셀 케브란사야. 사랑한다! 비록 내 캐릭터가 목각인형똑디로살려고노력하는AI지만 그래도 널 정말 아끼고 있단다!(네로:그렇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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