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의 결여

알 길이 없는 것은 비단 일 뿐만이 아니라 마음에도 해당되는 일이기에

우리는 이를 무지함이 아닌 미숙함이라 명명한다.

랑이라는 것을 분류하기 시작한 것은 개인을 향한 독점과 소유의 형태가 명확해지기 시작한 시대부터였던가. 네로 커티스는 폴리아모리와 법적 파트너, 사회적 후원제도라는 것이 등장하다 못해 보편화된 시대에서 길러진 한부모 가정의 입양 자녀였기에 ‘평범한’ 형태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었다. 고로 분류할 필요가 없다. 혓덩이로 타인과 교류하는 것에 있어 미끌거리는 타액의 교환이라는 의미 이상을 가지지 못했으니 말은 다 했겠다.

설탕과 달걀이 들어간 파이지, 바삭한 형태. 씹는 맛이 있는 겉. 장식으로 올라간 민트는 씹어먹지 않도록 유의한다. 블루베리 파이나 타르트나 모조리 입에 넣을 수 있단 점에서, 섭취가 용이한 음식이다. 보편화의 과정이 조금 엇나가지 않았나? 뭐 그런 부가적인 요소는 넘기자. 코코아 한 컵 까지 마신 뒤에야 그는 입을 열었다. 나누는 대화는 대부분 이 파이를 준비하는 과정은 무엇이었는지 취조하고 답하는 과정. 코코아 만드는 비율은 어떻게 측정했는지 꼬치꼬치 캐묻고… 레시피 취득이라기엔 녹음기조차 ON 상태로 눌러두고 있지 않은 상대를 보며 제 발 저린 케브란사는 고민 끝에 질문을 뱉는다.

“입에 안 맞았어, 네로? 내가 너무 많이 치댔나? 아, 블루베리 맛은 어때. 설탕을 덜 넣긴 했어. 그리고 또, …”

“무슨 헛생각을 한 건진 모르겠지만, 그건 아냐. 걱정도 많네요. 그저, 흠.”

“…그저?”

커티스는 사람의 불안을 자극하기에 최적화된 화법의 구사자였고, 하필 케브란사는 이에 잘 넘어가는 작자였다. 테이블 아래의 슬리퍼, 그 안의 발가락이 마구 꼼지락거릴 즈음에… 탁자 위에 놓인 손과 손이 맞닿는다. 손가락끼리 엮어 깍지를 단단하게 낀 채로 커티스는 의견을 전달한다. 시선을 맞추고자 노력하는게 보일 정도로 뜸을 들인다. 으음, 하고 단어를 정제중이라고 나름대로 알리기도 한다. 커티스 입장에선 몇 마디 전달하는게 왜이리 어려운가 싶고, 케브란사 입장에선 어떤 단어를 뱉으려고 하길래 그리도 시간을 소비하는 건지 걱정스럽다.

그러나 케브란사의 추측은 옳다. 그가 주는 것이 무엇이 됐든 간에 커티스는 기꺼이 받아들이고, 또 행복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저, 단순하게도, 이러한 선물과 애정어린 자원을 제공받는 건 몇 번이나 있어도 속 간질거리는 일이기에…

“기분이 좋아서 그랬어요. 음. 아니다. 보다 정확히는…”

“응. 듣고있어, 네로.”

“네가 만든 과정을 알려주면서 떠올리는 표정이라고 해야하나. 거쳐온 흔적을 짚으면서 말 할때 보이게 되는 낯에서 날 얼마나 생각하는지 알 수 있잖아요. 그래서 요구했어. 얼굴에 발갛게 열 올라온 것도, 고민이 섞인 것도, 창 밖을 보면서 그랬었지. 하고, 몇 시간 전의 일을 과거형 취급해서 알려주는 것도. 모조리 날 향한 마음이잖아요.”

색 올라온 낯은 이제와선 급한 걸음으로 오는 탓에 붉어졌다 변명할 수도 없을 것이다. 고개를 옆으로 틀어 못 본 척, 그렇지만 손아귀는 풀어둘 생각 않은 채로 시간을 죽인다. 오늘 한 것이라곤 공부, 할 일 확인, 그러다 오늘 한 번 즈음은 연락이 올 귀 밝은 대원들을 위한 시간 비워두기… 그리고, 예상 그대로 덫에 걸린 상대를 위해 방 청소해두기, 등등. 하여튼 그런 부스러기에 가까운 일들 투성이다. 제 앞에서 입술 열어 쉬이 답하지 못하는 이를 마주한다. 다시 고개 돌린다. 음. 역시 입을 맞추고 싶어진단 말이지.

이번에도 고민 끝에 자리에서 일어난다. 엮어둔 손을 테이블에 찍어 누른다. 빈 손으론 상대의 뺨과 귓가. 턱 어딘가를 감싸두며 허릴 숙인다. 입 벌려요, 퀘이. 양치도 안 했는데, 우악, 카르-

치열 사이에 자리잡은 단 맛을 모조리 삼켜간 뒤에야 입을 떼어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말. 이것도 먹을만 해서… 황당해하는 케브란사를 뒤로 한 채, 커티스는 디저트를 마저 섭취한다. 행복한 생일 시간이 이어진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