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차 집-축하-파티-주간
05.16 - 샴페인 슈퍼노바 생일 축하해!
생일이라는 것은 기실, 한 해가 시작하기 전. 혹은 그 후,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마를 맞댄 채 날짜를 잡는 이벤트가 선행되어야 하는 사건이었다. 네로 커티스는 그렇게 몇 년을 보냈다. 보냈었다. 설익은 축하와 선행되어야만 했던 의식이 그리웠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고 답 할 것이다. 제공해주고 싶었던가, 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답변도 꺼내지 못했겠지만.
이 사실과 별개로 네로 커티스가 누군가의 개인정보를 외우는 것은 당연하면서도 당연하지 못한 일이었는데, 우선 그의 머리 저장고에 담아두는 내용의 9할은 의학적인 측면에서의 시각적 자료였다. 키, 체형, 몸무게, 형태, 기타등등… 그 외의 정보엔 취약했다. 어쩌면 저장고에 들어가야 하는 퍼즐들이 큰 탓에, 생일. 취미. 기호생활 등등의 평범한 영역은 밖으로 흘러나간 걸지도 모른다. 그로 인하여 본가의 집, 탁한 회색빛 벽지에 박힌 달력은 늘 큼지막했으며 벽면에 다닥, 다닥. 최대 5개월치가량의 종이를 뜯은 채로 붙여두어야만 기념일이나 약속 같은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다 못해 보조기구에 시간까지 입력하고…
서론이 길었으니 본론으로 돌아오자. 돌아오는 해의 5월 16일은, 올해. 혹은 몇 년 뒤의 같은 날은 한 사람의 축하를 위해 만들어진 날이다. 네로 커티스는 멋대로 소유를 표현하고자 다음 날을 제 생일로 지정해버렸다. 요는, 5월 16일과 17일은 나름대로의 집-축하-파티-주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것의 어필은 어떻게 했냐고?
그냥, 그저 그렇게. 오늘 하루 종-일 샴페인 슈퍼노바의 시간을 차지한 채 놀고 자빠졌다, 이 말씀. 아침에 냉큼 책이랑 옷 들고 침범하여 자기 할 일을 하지 않나. 그러다 점심 즈음엔 인근 레스토랑에 가서 한 입에 먹기 좋은 핑거 푸드를 기차로 만들어 줄줄이 먹어치우고. 저녁엔 씹는 맛이 나는, 향신료를 강하게 사용하는 닭고기-대체육 전문점에 가서 단란한 시간을 보냈다. 케이크의 경우엔 그래도 배를 꺼트리기 위해 산책을 한, 몇 번이나 했더라. 점심에 먹고 무 섬 세 바퀴. 저녁엔 반 바퀴, 그러다 춥단 이유 하나만으로 담요를 어깨 위에 둘러 한 자리에서만 빙글, 빙글. 발가락 끝도 시렵단 투정을 부릴 적엔 그대로 손에 손 맞잡아 방으로 도도독…
위화감을 느낀다. 이렇게나 평범한 생일을 보내도 되는 걸까? 그것도 내가 말이야. 고민은 길게 이어지질 않는다. 낯을 할퀴듯 잡는 손가락 마디나 귓가, 혹은 뺨을 꼬집는 손톱. 짧은 머리칼 마구 문질러대며 허튼 생각 하지 말라 호통치는 샴페인 슈퍼노바를 본다. 아차, 맞아. 아직 생일이 끝나지 않았어. 그리고, 모든 생일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행복해야 하는 관계로. 간만에 진행하는 관습이라고 까먹기는.
절차의 착실한 수행자가 되고자, 어설프게 웃으면서 품에 고갤 기댄다. 머리 좌우로 문지르며 바보 같은 소리도 내고. 오늘 하루 즐거웠냔 질문을 던진다. 즐겁기만 했겠냐? 답이 돌아온다. 시선이 아래로 떨어진 네로 커티스가 그제야 깨닫는 것. 방에 온통 놓인 자신의 물건, 상대의 물건, 그리고 사람 둘. 집이란 역할의 완벽한 수행이잖아! 키득키득, 깔깔. 결국 케이크는 내일 아침의 식사-전-디저트 타임에 먹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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