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의 결여

케브란사 농장의 하루

2년차 봄, 초입.

귀농을 하게 된 이유야 간단했다. 네로 커티스는 악셀 케브란사의 실종을 극도로 두려워했고, 악셀 케브란사는 네로 커티스가 힘들어 할 적이면 그 말이 자기파괴적인 것이라 할지언정 들어주고 싶어했다. 그렇게 둘은 헌터 생활을 물로 씻어낸 뒤 던전과는 아주 연이 먼 곳으로 이사했다. K.I.L.L.의 이름이 W.I.L.L.로 바뀌었다는 것도 모르는 곳으로 말이다. 이능력자들이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 농사에 쓸만한 구석이 아니면 딱히 활용하지 않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니까, 이곳은 아예 다른 세상이었다. 마치 외딴 섬에 떨어진 사람 같단 마음도 품었으나 이방인이란 감각은 스며들지 않았다. 제 곁엔 악셀 케브란사가 있었으니까.

한 해가 거의 다 마무리 될 즈음, 어느 겨울. 둘은 푹신한 침대에 앉아 도란도란 말을 나누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올리가 남긴 편지에 대해선 어떤 식으로 답변을 해야 만족하게 될지. 호박등은 보아하니 계절 지나가면 그대로 썩어버리는 것 같았는데, 아예 마지막 날이 되기 전 창고에 고이 담아 모셔두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 조잘조잘. 그러고보니 물고기 연못에 담아두게 될 것은 뭐가 좋을지, 네가 연어 정찬이나 장어 튀김 같은 요리도 괜찮다면 언제든- 비록 그것이 향신료 가득 들어간 음식이라 할 지언정 만들어줄 의향이 있다고 비밀을 속닥거린다던가. 그런 시간들을 보낸다. 그러면서 차가운 밭 뒤집어 어디 씨앗이나 새하얀 눈마는 없나 살펴보고, 재스같은 아이들이 눈을 뭉쳐 고이 속닥거리고 있으면 괜히 꽃 한 다발씩 눈송이에 꽂아 꾸미게 돕는다.

조지씨의 입담이 험한 날엔 옆에 괜히 비켜 있다가, 거스가 맛있는 음식이라도 팸에게 해준다 싶으면 괜히 끼어들어 한 입 정도는 훔쳐-정당하게!-먹어본다. 솔직히, 악셀에 비해 사람들을 더 잘 알게 된 건 아니고. 약간, 왜. 마을 사람에게 친절한 푸르고 검은 머리 청년이 있는데, 그 사람이랑 같이 사는 사람이 저 검은 머리 양반이더라. 딱 그 정도의 느낌으로 공존하는 인간. 괜찮나? 오히려 과분하다. 누군가와 연관되어 있단 이유 하나 만으로 이런 사치를 부리고 살아도 된다는 점이…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온다. 아차. 오늘도 씨앗에 물을 주러 가야지. 침대에서 몸을 쭈욱 뻗으며 일으킨 후, 옆에 몸을 눕힌 제 파트너의 눈가에 입을 맞춘다. 평온한 농촌의 하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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