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서 유리된 반동분자

One way train - High way ehead!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길의 티켓을 끊는다, 3화

19일 오후 5시 13분의 악마가 마침내 라틴어 잘못 적어 소환 시간을 미스한 소환자를 마주치게 된 건 그로부터 10분 뒤의 일이었다. 한참 졸고- 아니, 머리 처박은 채로 베개에 파묻혀 피로를 덜어내고 있던 작가. 그러니 스이엔츠이에게 소식이 온 것이다. 정중하게 문을 노크하던 직원이 슬슬 문 고리를 잡아 돌려야만 할 정도의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었을 즈음. 스이엔츠이, 이 작가라는 인간이 문을 확 잡아 열며 낯선 이를 마주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 아. 일어나셨군요. 그러니까… 디어 시아 작가님!”

“스이엔츠이입니다. 작가라고 부르지 마시죠.”

“알겠습니다, 스이엔츠이님. 지금 2층 검사실에 귀하의 일행이라고 주장하는 분께서 나타나셨는데…”

“는데?”

“원칙상 비이능력자로 규명이 된 사람은 해당 센터에 머무르는 것이 어렵지만, 방금 일행 분께서도 이능력자인 것으로 구분이 되어 선천적인 계열인지 후천적인 계열인지 하는 검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허. … 그리 놀라운 사실은 아니군요. 강아지 한 마리와 함께 있었습니까?”

“네. 털이 아주 북실하고 큰 녀석이랑 같이 있었습니다.”

“예. 네 파트너입니다. 좀 더 쉽게 풀이하자면 생활 동반자요. 그렇지만… 법적으론 아직 인정 못 받은. 뭐가 됐든 낯짝 봐야 더 자세히 알려줄 수… 있겠습니다. 안내해주시겠습니까.”

“물론이죠, 스이엔츠이님."

그렇게 직원과 작가, 아니. 스이엔츠이는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선다. CCTV가 놓인 장소 안에서 직원이 조심스레 묻는다.

“스이엔츠이님께선 필명인 디어 시아로 불리는 것이 싫으신 건가요?”

“그래. 내가 망명자 신세에다가 여권 위조까지 한 적이 있단 걸 정부에 들켰으니 필명은 이제 의미도 없지.”

“그럼에도 디어 시아라는 이름은 SF 소설 한 번 들췄다 놓은 사람이라고 하면 아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유명인사나 어느정도 명성을 얻은 사람이 믿음을 통해 이능력을 얻게 되는 것이 당연한 시대에서 나보다 더 올랐다 내렸다 하는 신출귀몰한 사람들도 있겠지. 굳이 그렇게… 치장할 필요는 없지 않나.”

스이엔츠이는 어느 사이 상대방을 하대하고 있었다. 본래의 습관인듯 했다. 상대 직원은 그런 서비스업 직종에 익숙한 모양인지 의구심 없이 수용하고 있었다. 띵, 하고 자그마한 소음과 함께 철문이 열린다. 복도에는 몇몇 사람들이 흰 가운을 입은 채로 오가고 있고, 그 중에서 이능력자인 인간들은 발목에 검은 시계 같이 생긴 걸 차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분류를 하는 모양인가. 스이엔츠이는 생각했다. 직원이 실은 내가 당신의 팬이라서 그렇다 하는 말엔 정말 감사하지만 이 센터에 놓인 한 자신은 작가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고 간단하게 거절을 한 후 -그야 직원은 어째 스이엔츠이가 이능력이 생겼는지 감을 못 잡고 있었으니- 검사실로 들어섰다.


들어가자마자 본 광경은 가관이었다. 웬 총이니 미사일처럼 생긴 것이니 하는 걸 사람에게 쏴재끼고 있었는데 옷 하나 흠집 안 난 채로 주인은 멀쩡하게 서서 분노나 삭히고 있었다. 한 번 만 더 실험했다간 저 문을 열고 나와 사람 멱살 잡고 뭐하는 짓이냐 시비를 걸 것임에 분명했다. 그래서 그는 연구원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혹은 신경 쓸 필요도 못 느낀 제 파트너의 감정선에 대해 참견하기로 마음 먹었다. 스이엔츠이 아키타는 곧바로 연구원이 다음 실험을 안내하던 마이크의 앞 자리를 뺏는다.

“웨이싱. 나다.”

“그렇게 놀란 얼굴로 보진 말고… 내가 네놈에게 얼마나 혼날지 감도 안 잡히는군.”

“능력이 어떤 건지는 몰라도 딱 이 치들 말 잘 듣고 가만히 있어라. 다치거나 큰일이 날 경우에 도와줄 법한 사람도 여기 보아하니 넷이나 있으니 어디 아프거나 피 난다 하더라도 치명상으로 번질 일은 없을 거다. 차우는 여기, 저기. 뭐냐. 직원에게 잡혀서 아주 예쁨 받고 있기도 하고. ”

“무엇보다 나도 비슷하지만 아주 다른 방식으로 이능력을 확인했으니 조금만… 아주 조금만, 참고 있도록 하게나. 알겠나, 웨이싱. 내….”

뒷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스이엔츠이는 의도적인 침묵을 준 후 마이크에서 멀어졌고, 곧바로 녹음 중이던 버튼에서 손을 떼어내 소리를 차단했다. 그제야 상대 실험대상이 표정이 좋지 않았음을 확인한 연구원이 따지듯 스이엔츠이에게 물었다.

“굳이 그에게 잘 해줄 필요가 있으신가요?”

“문제라도 있는 듯한 투군.”

“아까 개인 이력서를 보니까 여권도 제대로 없고, 신분 증명이라곤 몸에 남은 칼자국 총자국이나 문신이 다였는데. 저런 살인자에게 좋은 취급을 해주는 건 어렵잖아요.”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밀기엔 그가 사람을 죽여 여기 온 게 아니라 뭐 일 치고 좋은 짓 해서 들여보내진 거 아닌가?”

“… 물론, 그가 정문에서 테러리스트 한 명을 잡아 프론트에 있던 여러 많은 사람들을 살리긴 했지만요.”

“거봐라. 인간은 입체적이지 평면적이지… 않습니다. 뭣보다 당신이 지금 막말하고 있는 대상은 내 파트너지, 연구원 페르자바트.”

“……. 실례했습니다.”

“거칠게 다뤄도 솔직히 상관은 없다마는… 그야 그런 일 하고 살아온 치고,, 나도 그 부분이 역겨울 정도로 싫으니… 적어도 인간적인 예의 만큼은 지키자고. 우리 다. …알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스이엔츠이 씨. 이만 올라가보셔도 좋아요. 오늘 저녁 일찍 실험 받으시느라 피곤하셨을텐데,”

“예의에 발린 말은 그만. 우리 집 강아지, 저짝. 차우 좀 돌보다가 내 남편 나오면 데리고 올라가보겠습니다.”

남편이라는 말에 벙 찐 연구원은 뒤로 한 채로, 연구원이 잘 데리고 있던 강아지 쪽으로 다가간다. 휘파람 소리 내거나 차우, 하고 이름 부르지 않아도 알아서 제 존재를 후각으로 알아차린 후 냉큼 뛰쳐나오는 털덩이. 뒤로 넘어지지 않도록 무릎 양쪽 다 바닥에 붙여둔 뒤 팔을 벌린 채로 기다린다. 예상 그대로 품에 가득 들어오는 뜨끈한 털. 희미한 화약의 향. 무슨 일이 있었는 지에 대해선 나중에 위천 본인에게 물어봐야 하겠군. 안경과 뺨 위의 점을 길게 핥아 올리며 헥헥거리고 꼬리도 마구 돌려 털을 연구실, 아니, 검사실에 흩날리고 있는 털덩이에게 스이엔츠이는 늦은 인사를 전한다. 늦게 만나러 와서 미안해. 챙기지 못하고 나와서 미안해. 너를 혼자 둬서 미안해. 자신의 반려 가족에게 긴 인사를 전한 후 껴안아 고개를 기댄다.


스이엔츠이와 위천이 다시 마주하게 된 건 그로부터 20분이 지난 뒤의 일이다. 시설에 대한 간단한 안내를 들은 후, 지금으로 부터 일주일. 길면 한 달 동안 이능력에 대한 확인 및 근원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할 여러 상담과 검사가 이루어질 예정이라고 설명하는 직원 앞에서도 얌전히. 배정된 1인실 방에서 2인실 방으로 변경이 된 후, 두개의 침대 옵션 대신 한 개의 큰 침대를 바란다고 희망사유서를 작성해 올리는 시점까지도 얌전히 있었다. 하물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정된 방으로 올라가는 순간까지도!

꼭지가 풀린 건 방 안에 들어서면서였다. 위천은 곧바로 작가의 옷을 확 잡아 끌어당겼고 스이엔츠이는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욕을 중얼이며 부드럽게 굴라고 다그쳤다. 손으로 뺨을 문질러주고 팔을 뻗어 목에 건다. 그러면 류 위천, 이 작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마주 팔 뻗어 껴안아주는 것 뿐인지라. 제대로 당했단 생각 한 번. 이 온기가 참 그립고 좋아서 찾아오길 잘 했단 생각이 아흔아홉번. 류 위천의 사고회로가 그렇게 움직이고 있을 사이, 스이엔츠이의 감상은 간단했다. 불사와 터미네이터라니. 누가 봐도 군사 작전에 투입 되기에 최적인 인간들 아닌가. CCTV가 존재하지 않는 방에서 입을 맞춘다. 헥헥 긁으며 자신도 예뻐해달라고 존재감 알리는 털 짐승에게도 콧등에 가볍게 쪽, 입을 맞춰둔 후 침대로 향한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있었던 거요."

"네가 없던 사이 날 죽이려고 하던 자가… 침입했지. 그런 얼굴은 하지말아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 그러다가... 난 죽었는데, …문을 열고 나오니 바닥엔 시커먼 잉크가 터져 있고 손 발발 떠는 살인자가 있더군. 그래서 다가갔더니 한 번 더 죽고. 이번엔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왔는데… 그 사람이 자진하더군. 보기 유쾌한 장면은 아니었다."

"스이엔츠이. 어디 다친 곳은 없나."

"네가 날 이리저리 벗겨두어도 …어디 흠집 하나 없을 거다. 기존에 다쳤던 것 말고는. 뭐. 검사라도 해보겠나?"

"그러지."

"농담이나 천둥벌거숭이야. 헛생각 말고 옆자리에 좀… 앉아줄 수 있나. 기대고 싶으니.“

"내가 얼마나 그짝 걱정했는 지는 알고 있수?"

"그래. …알고 있다. 네놈이 내 목소리 듣자마자 웬 얌전한 사자 꼴로 변해선… 그루밍까지 곧 있음 할 정도로 고분고분해져서 날 만나길 기다리고 있었지 않나."

"비유 하나는 죽여주는군."

"네놈의 혀가 짧아 말이 짧게 나오는 것 뿐이다. ……. 이제 됐다. 내 손 좀 다시 잡아다오. 아니면 안아준 채로 침대에 누워주거나. 네가 그리웠으니."

"내가 할 대사를 아주 잘 훔쳐가는군, 스이엔츠이. 작가 양반. 내가 겪었던 해괴한 일을 그쪽에게 말하려면, 어디 보자. 짧게 말했다간 타박 들을 것임에 뻔하니 노력 좀 해보지."

"보상은 없을 거다, 웨이싱. 그렇지만… 가능하다면 가장 길게 이야길 해다오. 네 이야길 듣고 싶다. 내가 없던 상황에서의 네 심정도."

재회는 이렇게나 감흥이 없고 질척거림이 존재하지 않는 계열의 것이다. 둘은 서로의 손을 길게 맞잡은 채로 눈 맞춰가며 많은 이야길 나눠야만 했다. 때로 음성 언어가 아닌 비언어적인 형태로 교류되곤 했는데, 그 사이사이엔 당연히 이 두 인간의 발치에 자리잡은 거대한 털덩이에 의해 방해 되곤 했다. 세 번째 입맞춤을 진행할 적인 헥헥대는 소리가 커지더니 기어코 위천의 허벅지와 명치를 둔하게 밟아 그 위를 점령하고선 뭔진 몰라도 쪽 소리 났으니 자신도 예뻐해달라고 중앙에 발라당 드러눕고 말았다. 차우가 이젠,… 날 밟으면 죽는 다는 걸 깨우친 모양이군. 날 밟아도 괜찮다는 걸 너무 일찍 알려준 건 아닌가 싶네만. 조잘조잘. 조용한 떠들썩함. 저녁이 저문다. 밤이 찾아온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부턴 새로운 것들이 들이닥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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