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way train - High way ehead!
인간은 언제나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길의 티켓을 끊는다, 1화.
타인에게 관심이 없어보이는 전형적인 외피를 DEAR.XIA는 소유한다. 가령, 핸드폰의 액정 두들기긴 커녕 종이 위의 면을 만년필로 박박 긁어대며 긴 문장을 호흡 끊어질 틈 없이 적는 것이라던가. 안경 썼음에도 뭐 못난게 보인다는 듯 구긴 미간과 무신경함이 안경알 너머로도 보이는 시선 처리. 모두가 이 세 가지를 근거로 들어 상대를 무감정한 존재라 논했다. 반대의 의견은 이랬다. 이빨로 연필 씹는 강박 같은 건 손가락 끝에 닿지도 않은 양, 만년필 뚜껑에 각인된 이름에 흠 하나 생기지 않도록 관리한다던가, 구두가 언제나 왁스칠 깔끔하게 되어 빛에 반사되곤 하는 날이라던가. 남이 지껄이는 저열한 농담 따윈 한숨을 가위 삼아 잘라내고. 지루한 평가 따윈 혀 한 번 차는 걸로 테이프를 붙여 끝마쳤다. 반대파의 결론은 이러했다. DEAR.XIA는 상당히 ‘인간’ 스러운 이능력자다. 단. 기준은 현 시대의 여러 문화 매체에서 적힌 후천적 이능력자 분포 평균치를 바탕 자료로 삼는다.
21세기, 바다 끝에 절벽이 놓여있질 않고 저 윗 하늘엔 셀레네의 눈이 아닌 밟을 수 있는 달이라는 걸 알게 된 시대에, 이번엔 존재를 갖춘 미신이 등장했다. 이능력자의 등장이었다. 그들의 생성 원인은 단순했다. 개인 혹은 집단이 가진 욕구, 욕망의 대상이 과도한 믿음을 얻게 될 경우 능력이 생겨났다. 바야흐로 신격화의 시대인 것이었다. 실로 몇몇 정치인들과 유명인사는 그에 버금가는 부와 명예- 실은 그 이상의 가치를 거머쥐게 되었다. 그러나 욕망이란 어떻게 보자면 믿음 아닌 질투랑 괴롭힘인지라, 이를 빌미 삼아 타인에게 폭행을 가하는 일도 비일비재해졌다. 사이비들이 진실로 거듭나고 개인이 도를 닦기 시작하는 것 등등 온 세계가 난리 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아라. 제 1세계에서 편히 살아가며 와인잔 올리며 자신이 이룩한 것들을 감상하는 백인 금발의 푸른 눈에게 욕망이 강하겠는가. 제 3세계에서 화상 입어 발목뼈 드러난 채로도 꾸역꾸역 아침 해에 의지해 글을 적고 공부하는 아이의 욕망이 강하겠는가. 판도는 뒤집어졌다. 부를 가진 자들은 목을 내놓아야 했다. 혹은 저들의 머리를 치켜 올리거나.
각 국가별로 이러한 이능력자들의 존재를 전폭적으로 분류하게 된 사유는 웬 서브컬쳐계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설정’, 그러니 기사에 적기 올바른 단어로는 ‘데이터’가 수집된 구글 스프레드 시트를 공유하면서였다. 강이 거꾸로 흐르고 돌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땅이 진동하며 비를 뱉어내는 날이 온다면, 그것이 곧 세계 종말의 날이 되지 않겠냐고 모 잡지에서 인터뷰를 한 DEAR.XIA, 그토록 유명한 21세기의 SF 소설 작가의 본명과 사진이 드러나며 이능력자로 분류된 것은 데이터가 공개된 지 나흘 뒤의 일이었다.
DEAR.XIA는 자신이 유일신이 될 거란 확신을 소지한 채였다. 자기애나 자만심, 뭐 그런 나르키소스같은 짓은 아니고. 그는 수많은 동포들의 유언과 동작, 뱉던 숨과 이야길 빼곡하게 적어 분류하는 일을 맡았다. 마오쩌둥의 권세 아래에서 도망친 모든 이방인들의 마지막 기록자였다. 도망은 사람을 외로이 만들며, 그 길을 거쳐간 적이 있음을 알리는 이정표는 희망의 발받침이 된다. 스이엔츠이는 때로 3층의 베란다, 카펫 잘 깔린 바닥에 ‘사과.’라는 단어 하나를 찢긴 쪽지처럼 버려두면 다음 날 아침 방 문 앞에 서너 상자가 돌아오는 걸 지켜보았다. 방 문을 열고 들이닥친 괴한들이 어느사이 나타난 ‘같은 편’에 의해 제압되는 것도 마주했다. 그리고 그 본질 속엔 자신이 아닌 자신의 기록이 놓여져있음을 깨달았다. (작가의 손이 섬섬옥수란 비유가 어울리는 것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신기인지 저주인지 뭔지 내려주는 방향성을 보아하니 인종차별주의자나 소수자배척자는 아닌듯 하여 가만히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던 그는… 19일 금요일 라틴어로 악마 소환하는 것을 실패해 과업을 온몸으로 얻어맞게 됐다.
악마 소환 과정의 실패는 이러했다. 제 파트너란 작자가 오늘은 저녁 5시에 꼬박 술 마시고 들어오겠다며 바람직한 약속을 내걸었다. 디어 시아는 브랜디가 이젠 꼬박꼬박 말 잘 지키며 살게 된 ‘좀 머리통 큰 놈’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장하단 말 대신 멱살 쥐어 내려 뺨에 입술이나 누르며 배웅했다. 그 이후, 오후 3시 즈음. 디어 시아는 의자에 앉아 태평하게 만년필이나 돌리며 유리창 밖의 세상이 얼마나 시끄럽고 번잡한 장소인지 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방 문이 벌컥 열렸다.
탕!
자신을 지켜주어야 마땅했던 19일 금요일 날의 악마는 예약 시간인 5시가 아니었기에 계약자의 죽음 쇼를 놓치게 됐다. 적어도, 한 여섯 번 정도의 연속 드라마를 말이다. 총에 맞은 디어 시아는 브랜디가 오기 118분 전에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와 죽어있는 자신의 눈을 마주했다. 브랜디가 현장에 도착하기 117분 전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며 정강이, 허리, 어깨. 그 외의 여러 곳에 총상을 입어 과다출혈이란 사인을 얻었다. 브랜디가 현장에 도착하기 112분 전, 갓 태어난 사슴보다도 못하게 달달 다리 떨며 스스로의 목구멍 아래에 총구를 겨눈 범인을 바라보았다. 111분 전. 죽은 사람도 하나, 산 사람도 하나, 대신 깔끔하게 닦여있던 나무 판자 바닥에 온통 검은 잉크가 스며든 뒤였다.
브랜디가 이 처참하고 괴이한 현장에 도착하기 104분 전. 경찰이 도착했다. 여러발의 총상을 듣고 패닉 한 옆집 이웃들이 급히 신고를 한 것이었다. 한 성별 미상의 청년이 안경줄에 묻은 검은 잉크를 닦아내며, 어째 범인으로 보이는 사람의 머리를 발로 짓누르고 있었다. 자신이 SF 소설가 DEAR.XIA이자 미국에 등록된 중국계 미국인인 스이엔츠이 아키타라고 밝힌 그는 살인 사건 혐의로 서에 협조하기도 전에 이능력자 등록 절차를 밟으러 갔다. 원고와 타자기, 만년필. 쓰지도 않은 노트북과 핸드폰, 그리고 그 외의 만일 안전하게 이사를 간다 싶으면 챙겨가야겠다 싶었던 조각조각 난 그릇과… 언급하지 말자. 잊힌 도구를 기억하는 건 자기 괴롭힘에 불과할 뿐이니까. 멀쩡한 것만 건져 보따리를 싼 후 집에서 떠났다. 제 파트너에게 연락을 해야겠단 생각은 할 수도 없었다. 자신들은 단 한 번도 그런 전화번호로 서로의 위치를 추적한 적이 없었으니까.
수갑 대신 수건으로 손목을 감싸 차로 ‘인도’해주는 자들의 솜씨는 상당히 수준급이었다. 아무래도 신고를 한 민간인의 진술에서 특이점을 발견한 이능력자 전용 대응 전담반이 출동한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로 그러했다. 사면에 붙여진 햇빛 가리개인줄 알았던 필름은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도록 하는 특수 필름이었다. 창 밖으로 지나가는 수많은 포스터와 안전을 강구하는 장비들의 세일 사인은 21세기의 경찰차 경적소리보다 자극적이지 않았던 관계로, 지나가다가 다른 차들이 요란스럽게 굴 적이면 몸을 움츠리며 평온을 되찾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보여주었다. 나, 이렇게나 여린 인간이라고. 디어 시아, 이름조차 안 알리고 살던 작가인 이 내가 당신들에게 기꺼이 협조를 할 약해빠진 인간이라고.
결과적으로, 이 시늉은 잘 먹혔다. 심문이나 조사, 경위서 작성 따윌 훌쩍 넘어간 스이엔츠이는 보호와 대접을 우선적으로 섭취했다. 뭐 어찌 설명하기에도 미묘한 여러 검사를 거친 후 가짜 여권에 새로운 태그가 생겼다. 아차, 실수. 이건 생각으로만 한 거다. ‘진짜’ 여권이 만들어진 것의 날카로은 모서릴 만지며 스이엔츠이는 생각한다. 생일과 발급일자조차 기존에 존재하던 가짜 여권을 토대로. 사진과 성씨, 이름과 외형조차 그대로. 실은 이 모든 정보 틀렸다 외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니 띡, 띡, 일정한 소리를 내는 검사대 앞에서 그럴 깜냥은 없었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비현실적 상황에 지친 것일수도 있었겠다. 죽음에 의한 충격은 실존의 위기를 자극하고, 실존을 향한 불안만이 인간의 원동력이 되어주는데… 나는 이제 무엇을 두려워하며 삶을 살아가지? 스이엔츠이는 제 자신을 무서워하며 희고 보드라운, 갓 구운 빵 향이 나는 이불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같은 시각- 19일 금요일, 오후 5시에 소환이 된 악마는 집에 온통 폴리스 라인과 취급 주의 딱지가 붙여져 있단 걸 발견한 순간 머리의 분노 조절 노즐에 금이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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