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Fools' Day

:: Poisson d'avril ::

화면이 꺼진 검은 액정을 바라보는 눈이 사선으로 기울었다. 테이블 위를 뚱하니 바라보는 얼굴이 포개지듯 놓인다. 저가 짐작하지 못 하는 문제를 두고 괘씸해 고심하는 눈이기도 하고, 새로운 퀴즈거리를 찾아낸 양 반짝이는 눈이기도 했다. ‘April Fools' Day’ 여름에 가까운 라스베이거스를 떠올리면 가히 짐작하기 어려운 답들 뿐이라 톡톡 액정을 두드리는 손끝이 바글바글 헛돌았다. 뭘까. 유리 테이블이 맞닿은 체온에 미지근해 질 무렵 별안간 의자 뒤로 몸을 기댔다. 시엘라의 건조한 모래 바람이 말갛게 웃는 뺨을 간질인다. 아이참, 이러면 내가 빨리 돌아갈 수 밖에 없잖아요.

“제인.”

“예, 보스”

“둥지로 갈까?”

고개를 제껴 제 비서를 바라보는 눈에 반짝 설렘이 담겼다. 어디까지나, 미카엘레 그의 기준으로.

“내일 오찬은 어떻게 할까요.”

“나 아프다고 해. 몸이 너어무 안좋아서 급히 둥지로 돌아갔다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 지껄이십니까, 하는 시선은 말간 웃음으로 넘겼다. 다른 방법 있어?

“크리스를 이쪽으로 오라고 하죠.”

“으응, 오늘 저녁까지.”

“이제 막 이륙했을텐데요.”

“내가 그것까지 알아야할까?”

“알겠습니다.”

제 좋을대로 사람 몇을 혹사 시킨 낯이 퍽 기쁘게 생글거렸다. 찻잔을 들때마저 달각 소릴 내는 흔치 않은 실수를 하면서도. 선물이 무얼지 추측하는 머리가 도록도록 굴러가는 동안 답례로 보낼 선물도 차곡차곡 계획안에 써넣었다. 내일은 안되고, 모레도 아슬아슬하고… 아니지, 모레는 될 것 같은데?

제 수하들이 들었다면 아찔한 얼굴로 안된다고 삭삭 빌었을 생각이 차곡차곡 접혔다. 비둘기 옷을 입은 가련한 우편 배달부가 방문을 두드릴 때까지.


퀭한 얼굴로 쇼핑백을 전달한 우편배달부가 나가고 나면 잔뜩 설렘과 기대에 부푼 낯으로 포장을 풀었다. 이윽고 드러낸 유리병은, 솔직하게 당혹스러웠다. 뚜껑을 열자마자 훅 끼치는 단내에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거울이 있었다면 곧장 얼굴을 가렸을 정도로.

탁한 유리병 사이사이 보이는 흐물거리는 종잇장은 아마 꽃잎일테고, 중간중간 보이는 으깨진 덩어리는 과일 같다. 라는 도출에 이르자 푹 숙인 고개가 파들파들 떨렸다.

유론 카나리아. 새의 이름을 한 뱀이 한 송이 한 송이 물어온 꽃잎으로 만든 잼이라니, 결과물의 완성도와 이런 생각을 한 것에 앞서 그 모습이 가히 상상이 가지 않아 끅끅대며 참은 웃음이 결국 비실비실 새어나왔다.

“하. 하하…하하하하”

차라리 이 병을 크리스가 가져와서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그 하얀 손에 들고 왔다면 아마 제 모습을 보고 가늘게 노려보고 있었을테지. 그 얼굴을 상상하니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웃느라 눈가가 발갛게 달아오른 낯으로 서둘러 핸드폰을 꺼냈다. 잠깐의 신호끝에 연결음이 끊기면 목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들뜬 서두가 앞다퉈 맞이했다.

J'ai bien reçu le printemps que tu m'as envoyé avec joie.”

“… 빨리 받았네요.”

“그럼요. 이럴 줄 알았으면 직접 받으러 갔을텐데, 언질이라도 주지 그랬어요. 매정하게.”

“이럴까봐요.”

웃음과 설렘이 섞인 말끝이 조곤조곤 이어지는 동안 찬장에서 버터나이프 하나를 꺼내 질척한 윗면을 살살 긁었다.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다는 말과 동시에 혀 위로 직행한 잼의 맛은, 과하게 달았고, 옅은 꽃향 위로 겹겹이 쌓인 과일향이 뒤섞여있었다.

즉, 맛 없었다.

“나쁘지 않은데요? 요즘 버터가 좀 질린 참이었거든요.”

그가 보스 위로 오른지 4년. 그간 딱 하나 고치지 못한 점이 있다면 그 까다로운 입이다. 그나마 겉으로 티내지 않는 수준에 그친게 고작이니 그 고집은 알만하지 않은가. 조금은 짜고 달고, 신 잼이 입에 안맞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수순이다. 다만…,

‘입에 안맞다고 마음에 안든건 아니지’

“못 먹겠단 얘기네요.”

“이럴수가. April Fools' Day? 그럴리가요. 마음에 들어요. 답례로 무얼 가져가야 하나 아주 고민할만큼?”

평소에 그가 탐내던 초판 레코드나 얼마전 경매에서 얌체같이 가로 채 간 슈만의 친필 악보 같은 것들을 떠올리며 다시한번 잼 윗면을 살살 긁은 나이프가 혀 위로 살포시 올라갔다. 음. 역시 너무 달다.

“아니면, 모레즘 시간 돼요? 내가 동부로 가도 되고… ”

“텍사스. 늘 보던 카페에서.”

“이럴때 보면 어떻게든 내가 동부에 못 가게 하려고 하는 것 같단 말이죠.”

“애초에 되겠나요?”

“저런 관광객도 배척하는 나쁜 뱀들. 나는 뱀들이 우리 둥지 기웃거리는 것도 눈감아 주는데.”

“미셸,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어쨌든 모레 2시까지 텍사스에서 볼까요?”

웃음기 서린 말이 조곤히 이어지다 끝나면 이틀 후에 보자는 약속과 함께 액정이 검게 변했다. 키득이는 웃음이 종래엔 비실비실 새는 실소가 되기까지 그리 오래걸리진 않았다. 빠르게 움직이는 머리속에 차곡차곡 일정이 정리되면 별안간 성큼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크리스, 내일까지 근처에서 괜찮은 바이올린 하나만 구해와. 하는 누군가의 야근과 과로를 얹은 약속을 준비하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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