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이 네게서 자취를 감출 즈음,
네가 죽지 않을 것 같을 때 떠나야겠다.
무르자고 말하지는 않네.
그렇다면 여전히 결정권은 오레스테의 손에 있었다. 오레스테는 요한의 말을 곱씹었다. 내가 불행해지길 원치 않는다. 그 말인즉 결국 자기를 따라가면 불행해진다는 말이 아닌가.
대관절 그런 걸 대체 왜 하고 있는 건가 싶다가도, 문득 무엇이 눈앞의 인간을 살게 하는 것인가에 생각이 미쳤다.
언뜻 보면 삶의 의지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보면 모든 것을 피하고 있다. 가족들을 보러 가라, 억지로 확답을 받아도 그런 말 따위 듣지 않았던 것처럼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현재의 결심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듯이.
목숨을 걸어 봤더니 지극히 유보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찬찬히 곱씹어 보니 불쑥 의심이 들었다.
애당초 살고 싶은 욕구가 있기는 한가? 사실은 세계를 부숴야겠다는 말마저 자기파괴적인 행동의 연장이고, 그렇게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가려는 것이 아닌가? 내가 따라가는 게 내키지 않는 것도, 내가 죽을까 봐?
“나는 화법이 직설적이라 돌려 말하면 못 알아들어. 필요 없다고 해. 아니면 버려. 못 그러겠어?”
오레스테는 항상 청개구리처럼 행동하는 습관이 있었다. 가라고 하면 오고, 오라고 하면 갔다. 혼자 남을 것 같으면 둘이 되어야 했고, 누군가 죽음을 향해서 박차를 가한다면 뒷덜미를 끌어당겨서라도 살려 놓아야 했다.
“넌 나를 너무 몰라. 내가 언제까지 네 뒤를 따라다닐 줄 알고 그래. 너 기억하냐? 언젠가 너한테 여행 가자고 했을 때. 길어지면 내가 거절했을 거라고 했잖아. 난 그때에서 전혀 변하지 않았어. 지금은 너한테 사람이 필요해 보여서 나를 끌어들이라 말하는 거고, 너한테 사람이 필요 없어진 것 같으면 난 갈 거야.”
그 ‘사람이 필요한 때’가 얼마나 길어질지는 모를 일이다. 판단의 주체는 요한이 아닌 오레스테였고, 오레스테는 요한을 혼자 두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적어도 안정을 찾을 때까지는.
“내가 불행해지는 게 싫으면, 맹세에 내가 불행할 때 지체 없이 떠나겠다는 조건을 걸면 되잖아. 나도 그 무게를 잠깐만 감당하는 것뿐이야.”
요한이 한 가지 모르는 것이 있다면, 오레스테는 애당초 가진 것이 없었다. 버리는 게 습관이라 변변한 물건 하나 가지고 있지 않을 정도였다. 목걸이 대신 맡길 수 있는 것도 없을 만큼.
애당초 소중한 것이 많았던 그와는 달리, 소중한 것을 만들지 않으려고 재깍 버렸다. 지금의 무게 또한 언젠가 제 손을 떠날 것이다, 그리 여겼다. 그런 사람에게는 선택도 변덕도 쉬웠다.
그 숱하게 버려진 것들과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지금의 선택이 친구를 향한 모종의 정에 기반했다는 점뿐이었다. 지금의 이 무게를 받아들인 것도, 이 무게가 언젠가 제 손을 떠나든, 너무 오랫동안 쥐고 있어서 손에 익어 버리든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한테 아주 조금의 짐도 넘겨주고 싶지 않은 건 알겠어. 넌 네가 나를 불행으로 끌어들인다고 생각하겠지. 그런데, 내가 어디 그런 것 따위에 휘둘릴 인간이야? 너도 지켜봤잖아. 내가 어떤 인간인지. 내가 그동안 내 불행을 어떻게 피해 왔는지.”
그리고 네게 왜 내가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난 너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는 없어도, 너를 덜 불행하게 만들 수는 있어.”
불행이 네게서 자취를 감출 즈음, 네가 죽지 않을 것 같을 때 떠나야겠다. 그게 아주 길어지면, 뭐… 같이 있을 팔자였던 거겠지.
오레스테는 제 목에 걸린 목걸이를 가볍게 움켜쥐었다.
“내가 떠날 때까지 이건 내 거야. 불만 없지?”
앞으로의 네 삶에서 아주 조금이라도 괜찮았다고 생각할 만한 순간을 내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충분히 짊어질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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