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통첩
동질감은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오레스테는 거절에 죽자고 덤벼드는 법이 없었다.
하고 싶지 않은 걸 하라고 강요하는 게 얼마나 싫은 일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다른 사람에게 그만큼 깊이 관여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쩌면 자신의 모습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친구를 눈앞에 둔 지금은 이야기가 달랐다. 오레스테는 베아트리스가 진창의 흙에 숨이 막히거나, 더 깊게 가라앉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을 잃고 삶의 의욕마저 잃게 되더라도, 적어도 베아트리스가 자유가 된 모습은 보고 떠나야겠다. 그런 열망에 휩싸인 채였다.
“네가 싫다고 해도 그래야겠다면. 그럼 어떡할 거야.”
아주 잠깐이나마 느꼈던 동질감은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사람이 그 정도로 죽지 않는다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가장 잘 알아. 내가 그 뿌리 박혀 있는 곳에서 빠져나갔으니까. 만약에 내가 진창에서 너를 빼낸다고 쳐. 그것 때문에 네 숨이 막힌다고 해.”
오레스테가 눈을 내리깔았다.
“내가 너를 죽게 둘 것 같아?”
너 자신을 무엇에 비유한들 뿌리 생물에게는 그것만의 관성이, 파묻혀 살 수 없는 인간에게는 인간의 관성이 있는 법이다.
이미 지팡이를 겨눌 만큼 험악해진 사이에 이런 말을 하다니. 라이너가 보았다면 코웃음을 칠 일이었다. 그래, 네가 이래서 안 되는 거야. 이렇게 마음이 약해서야, 나를 끝내 이겨 먹었는데도 한심하게 굴지…. 어쩌면 그런 말을 들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건 오레스테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오레스테는 오로지 자신과 닮아 있는 사람 하나를 구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멍청하거나 마음 약하거나 무모하거나, 무어라 비난하든 오레스테는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누군가를 구하고자 하는 열망이 그만큼이나 중요했던 탓이다.
“딱 한 번만 더 물을게. 싫다고 하면 더 묻지 않고 떠날 거야.”
단어 그대로 최후통첩이었다. 오레스테는 베아트리스와 닿아 있는 곳을 놓거나 뿌리치지 않았지만, 빨갛게 달아오른 손에서는 힘을 풀었다. 이제 붙잡는 힘이 없으니 너는 원할 때 언제든 이 손을 놓을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손장난 따위가 아니었다.
네가 내 손을 놓으면, 완전한 단절만이 기다리고 있을 터다. 다시 잡지도 돌아보지도 또 한 번 권유하지도 않을 것이다. 억지로 이어붙이지 않는 이상 더는 서로를 눈에 담을 일 없음을 직감할 때가 있지 않은가.
“내가 너를, 정말로 그 진창에 놓아두고 가도 괜찮아?”
오레스테는 지금이 그 순간이라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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