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사장 - 지적 대화를 위한 얕고 넓은 지식 1, 2

20240303~20240306

20240310~20240317

저는 왜 황금 같은 주말에 게임도 마다하고 아무도 써달라 한 적 없는 리뷰를 자꾸 쓰는 걸까요? 정답은 제게 그럴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무지함, 내지는 무식함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다. 아니, 있다. 중3 때부터 예체능을 하겠다고 나대느라 멀쩡히 잘 하던 공부를 팽개쳤고, 친구들 다 아는 원의 방정식, 무리수 같은 건 머릿속에 넣기를 진작 포기했다. 그래서 한다던 예체능을 잘 했으면 모를까, 그마저도 아니였다. 그렇게 사는 사이에 벌써 20대 후반이다. 내일 모레면 서른이다. 지금이야 서른도 젊은 나이라는 걸 잘 알지만 어릴 때 내가 상상하던 서른 살의 자신과는 너무나도 다른 어른이 되었다. 10살에 상상한 30살의 나는 집도, 차도 있고, 결혼도 했고, 어떤 일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사’자 들어가는 직업을 가지고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었다. 20살에 상상한 30살의 나는 적어도 차는 가지고 있고, 특출난 구석은 없어도 남들처럼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20대 후반이 된 나는 30살의 나를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대신 과거에 대한 후회를 더 많이 했다. 그때 공부를 할 걸, 학원을 그만두지 말 걸, 성실하게 살 걸, 자퇴하지 말 걸, … 등등 대부분 배움에 대한 후회였다.

그래서 그런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들 시간을 ‘활용’하며 보내는지 참 궁금했다. ‘보통 사람들’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심심찮게 했다. 잘 모르는 무언가를 접하게 되면 무식이 들킬까 남몰래 검색해놓고는 원래 알고 있었던 척 하거나… 그런 적이 많다. 남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는 걸까봐, 그게 약점이 될까봐 전전긍긍했다.

근데 좀 더 지나고 보니 사실 다들 비슷하더라. 누군가 잘 아는 걸 내가 모르고, 내가 잘 아는 걸 누군가는 모르고. 원래 다 그렇게 사는건가 보다, 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받아들이긴 했는데, 그렇다고 그냥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콤플렉스는 지금까지도 여전해서, 조금이라도 많이 알아두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있었다. 그동안은 신빙성 측정 불가인 구글을 통해 해소하느라 이도저도 아닌 상태가 되었지만 지대넓얕을 읽고 조금은 정돈이 되었다.

내가 그동안 관념적으로만 인식하던(‘관념’이라는 단어조차 관념적으로 인식했다) 것들에 대해, 아주 자세하진 않지만 큰 틀을 파악할 수는 있을 정도로 설명해주었다.

1편은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 2편은 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를 주제로 다룬다. 작가는 그 두권을 ‘현실’과 ‘현실 너머’로 구분했다. 1편은 다른 공부 때문에 독서 시간을 다소 뺏겼는데도 꽤 빨리 읽었고, 2편은 철학 부분에서 속도가 더뎌졌다. 1편은 대체로 분노를 일으키는 자극적인 주제였고, 2편은 그해 반해 약간은 밍밍한 주제였던 탓도 있으리라.

공부는 놨지만 나름 사회, 역사, 지리 같은 과목은 좋아했는데 성인이 되니 대부분을 까먹었다. 학교 공부라 자의적인 배움이 아니였다는 이유도 있을 것 같다. 1편은 분명히 학교에서 배운 것 같은 내용들이다. 근데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보수와 진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등등 분명히 구분되는 개념들이지만 누가 나보고 설명하라고 하면 어버버 하게 되는 것들을 머릿속에서 정리할 수 있었다. 2편도 비슷하게 절대주의와 상대주의, 회의주의 같은 개념을 중심으로 다루며 앞서 말한 주제들을 시대순서로 정리하고, 비슷한 사상을 연관지을 수 있게끔 했다.

모호하지만 어쨌든 가지고 있긴 했던 정치관, 종교관, 윤리관 등을 스스로 다듬을 수 있게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주제를 대조되는 두 가지 사상으로 나누었는데, 내가 느끼기에는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쓴 내용이라고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특정 사상에 기운 사람이라면 다르게 느낄 것 같기도 했다(그치만 그거야말로 중립에 가깝다는 뜻일수도 있다).

이 책도 도둑맞은 집중력처럼 나에게 어떤 답을 제시해주진 않았다. 대신 내가 어떻게 생각해왔는지 알게 하고, 앞으로 어떻게 생각하며 살지 결정할 수 있는 선택지를 넓혀준 건 틀림 없다.

그리고 지대넓얕 1편을 완독하고, 2편을 일기 시작하기까지 그 사이에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을 읽었는데, 1편에서 자본주의, 공산주의, 민주주의, 독재정치 같은 개념에 대해 재정립한 직후라 소설에서 그려진 상황에 대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동물 농장에 대한 이야기는 언젠가 쓸 리뷰에서 제대로 하고 싶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이건 소크라테스가 말한 ‘무지의 지’인가!?

아니다. 남들도 ‘내가 모른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나도 ‘남들이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린 모두 쌤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