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유령

3. 오후 3시

글러 49제 by 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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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니는 학교에는 한 시시콜콜한 소문이 전교를 조막만한 여러 발자국에서 거인의 발자국으로 진화하며 천천히 학교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오후 3시, 모두가 교실에 있을 창체 시간에… 운동장에 등장하는 낮의 유령을 본 적 있니?

진짜 시답지도 않은 말이다. 처음에는 소문을 퍼트렸을 아이를 제외한 모두가 믿지 않았다. 하지만 늘상 이런 소문에는 목격담이 따라오고, 목격담의 연속은 소문을 사실로 만든다. 사실이 된 소문은 가라앉을리 만무했고, 어느새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들이 ‘사실’이라고 정의 내렸다.

유령은 윗층의 교실을 바라보고 있었어.

유령은 누군가를 찾으러 온 것일까?

유령은 옥상에서 극단적 선택을 해버린 누군가일까?

꼬리의 꼬리를 무는 유령 소문에는 점점 이야기가 붙었고, 예전에는 그런걸 믿어? 라고 하면 부인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그딴 소문을 아직 믿느냐고 하면 되려 나를 이상하다고 보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이상한건가? 막상 궁금해서라도 창문을 빤히 보는 날에는 그런 걸 본 적이 없는 것을 어쩌라는거지!

그렇기에 나는, 목격자를 자처해보기로 했다. 내가 그 유령인지 사람인지도 모를 이 때문에 이상한 취급을 받는 것이 너무 억울했기에 어차피 잠만 연달아 자던 창체 시간에 자리를 벗어나 운동장으로 향하였다.

2시 50분.

2시 55분.

2시 59분. 이제 곧 시간이군.

정각에 가까운 시간, 운동장이 제일 잘 보이며 누가 오며가는 것까지 보이는 학교 정문에 기대어 있으니 시간은 의외로 금방 지나갔다.

1분 전까지도 운동장은 어디 서부 영화처럼 회전초가 굴러가도 자연스러울 정도로 모래바람만 칼칼하게 흔적을 지우고 갈 뿐이었다.

3시. 저 멀리서 정각마다 울리는 교회의 종소리는 바람을 타고 귀를 간지럽혔고, 눈을 감았다 뜨면 눈 앞에 새하얀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서있었다. 아무 말 없이 얼굴을 뜯어보는 시선을 유지하다가, 잔잔하게 운을 뗀다.

“ 너도 날 구경하려고 왔어? ”

“ …윽, 너 때문에 내가 이상한 취급 받았다고! 그래서 무슨 대단한 유령인지 보러왔다. 왜, 기분 나쁘냐?”

“ 솔직하네, 괜찮아. 구경하려 오는 학생들은 많았는데, 이렇게 나랑 말해주는 학생은 네가 처음이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령은 아냐. 이 시간에 등교할 뿐이야. 5분만에 하교하고. ”

그리 말하며 내밀어진 손, 미심쩍게 보다가 덥석 잡으면 서늘하지만 사람의 온도가 느껴졌다. 머쓱하게 손을 뒤로 빼면 도로 잡혀서는 거리가 가까워졌고, 싱긋 웃는 얼굴만이 시야 가득 찼다.

“ 너도 수업을 넘긴거지? 그럼, 이대로 자유를 찾아 떠날래?”

“ 내가 왜 유령, 아니…아무튼, 모르는 너를 왜 따라가?! ”

“ 난 너를 알아. 늘 책을 바라봐서… 내게는 한정적으로 닿던 시선을 알지. 나랑 놀아주면서, 내가 누구인지 기억해주길 바라. 우린 분명, 아는 사이거든. ”

환각도, 환청도 아닌 실제적 존재는 나를 알고, 나는 그를 잊었다고 한다. 무슨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지만, 그의 손길은 나를 이미 교문 너머로 이끌었다. 하늘거리던 검은 머리칼은 푸른 하늘과 대비되어 더욱 눈에 띄였고, 그의 흰 피부를 산화시킬 듯한 태양빛은 우리를 덮었다.

아, 나는 이 뒷모습을 기억한다. 어렸을 적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하다 너무 숨어버려 아무도 못 찾아주었을 때, 노을이 막 지기 시작한 푸른 하늘을 가로지르며 온 손길. 집까지 데려다 준다던 나보다 작은 아이. 이후 집안이 빚에 도망치듯 이사를 떠나버려 동네 아이들에게, 물론 그 아이에게도 인사를 못했었다.

우리 학교와는 다른 교복, 그는 오로지 이 5분을, 나를 찾기 위해 와준 것이었다. 기억났다. 느지막히 뒤에서 그의 이름을 불러본다. 앞에서는, 그때와 변함 없는 아이같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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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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