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연애

이게 사랑일까?

우리를 사랑이라고 말해줘.


윤슬에 대한 첫인상은 그리 강렬한 편은 아니었다. 하는 일도 비슷하지만 달랐고, 갈등 해결 방법이나, 성격 같은 것들도 비슷한 거 같으면 다른 부분이 툭툭 튀어나와서 그냥 나랑은 아예 엮일 일 자체가 없겠다 싶어서 신경 자체를 쓰지 않았다. 그나마 기억나는 첫인상이라곤 아주 사소한 것들뿐이었다. 그냥 목소리가 작다? 그리고 좀, 귀엽다? 누구나 윤슬을 처음 보면 할법한 그런 생각들뿐이었다. 그러니까, 머릿속 한구석에 이달연 참가자 정도로만 생각하던 윤슬을 이렇게까지 신경 쓰게 될 줄은 몰랐다는 말이다.

직접 신청한 이달연이지만 누군가와의 연애를 위해 ‘나’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 솔직히 회의적이어서 이러다 한 달이 지나도록 누군가를 선택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심은채와 서로를 선택하자고 얘기를 나눴던 날에도, 그 얘길 윤슬에게 했던 날도 나는 ‘나’도 ‘내 생각’도 바꿀 생각이 없었는데. 막판까지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서로를 뽑자며, 너라면 해줄 것 같다는 내 말에 순간 툭 던져진 윤슬의 답변에 순간 멈칫했던 것 같다.

‘뭘 보고?’

그러게, 난 뭘 보고 네가 내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서글서글하게 넘어갈 것처럼 생겨서 의외로 자기주장도 강하고, 고집도 있는 널 뭘 보고 그렇게 생각했을까, 그때의 나는. 정말 찰나와 같은 순간에 ‘어라?’ 하는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니 순간 관심이 확 생겼던 걸지도 모르겠다. 윤슬이란 사람은 과연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 어떤 게 얼마나 다를까? 하는 그런 종류의 관심이었는지, 아니면 그때부터 나도 모르게 호감을 기반으로 한 관심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 확실한 건 윤슬이란 사람에게 관심이 생겼다는 거였다. 나랑 엮일 일 없겠다고 미리 선 그어놓은 사람에게 희미해진 선을 지우고, 다시 처음부터 모든 가능성을 배제했던 것과 달리 이젠 그 어떤 가능성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재정립하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그 ‘관심’부터 시작하자 이달연 어디에서든 윤슬이 눈에 들어왔다, 한 번 의식하니 당장 가사 수정 때문에 종일 시간을 낼 수 없을 때도 널 지목하는 내가 있었고, 엇갈리겠다고 생각한 데이트에서 너도 날 지목했을 때 약간은 기뻤다고 하면 넌 거짓말이라며 의심할지도 모르지. 종일 작업 때문에 약속 시간을 훌쩍 넘겨서 만났을 때 뚱하니 화난 표정을 짓다가도 초밥 한 입 먹자마자 두 눈 동그랗게 뜨며 너무 맛있다고 화내던 것도 잊은 모습에 귀여워서 웃었다는 건 평생 비밀로 해야지.

몇 번의 데이트와 또 몇 번의 대화들 사이에서 순간순간 내가 생각하는 관심과 윤슬이 나한테 느끼는 관심의 결이 다르다고 느꼈고, 그래서 괜히 더 모르는 척하곤 했다. 윤슬이 생각하는 연애는 내가 이뤄줄 수 없는 부분이었고, 나는 내 모습을 바꿀 생각이 없었으니까. 이렇게 계속 엇나갈 관계라면 애초에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게 맞으니까. 설령 그게 윤슬에게 상처가 된다고 해도, 이후에 더욱 큰 상처를 받는 것보단 이렇게 지금 아프고 넘어가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지금이라도 그 말 취소해’

근데, 나중에 상처받든 지금 상처받든 결국 윤슬 네가 상처받는 건 변함이 없더라고. 그걸 확 깨달으니까 곧바로 미안하다는 말이 툭 튀어나오더라. 난 지금까지도 그렇고 앞으로도 이렇게 너한테 좋은 사람이 아닐 텐데 왜 나한테 관심을 가지는 건지 이해도 안 됐고, 그냥 윤슬 네가 나한테 상처를 안 받았으면 좋겠는데.

‘나도 너 같은 애 만난 적 없어’

‘잘 모르겠으니까 물어보지 마’

넌 내 생각보다 단단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 계단에서 넘어져 다치고, 명색에 데이트라고 만났으면서 난 너한테 관심 없다고 접으란 소리까지 들었으면 보통은 봐서 좋은 일 없으니까 앞으로 안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하잖아. 근데 윤슬 너는 항상 예상을 벗어나더라.

‘너도 반성은 하는 거 같아서’

‘그게 정말이면’

‘딱히 나쁜 기억 없어 너랑’

‘아무튼 그래 나는’

아, 내가 말하는 관심이랑 윤슬이 말하는 관심이 정말 다른 결이 맞나? 어떤 상황에서 예외 사항을 만들어가면서까지 그 사람을 생각하는 걸, 누군가한테는 호감이라고 하지 않나? 그럼 이 감정도 호감이 맞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남은 이달연 기간 동안 널 못 보면 아쉽겠다 싶더라고.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음에도 윤슬 네가 보고 싶어, 그리고 너도 날 보고 싶었으면 좋겠어. 솔직히 내 욕심이겠지만.

마음 못되게 쓴 업보가 이렇게 돌아온 건지 다음 데이트는 너와 함께하지 못했지만, 게임으로 얻은 데이트권을 나한테 쓴 윤슬의 솔직함이 귀엽기도 하고 기분이 좋기도 해서 오늘 데이트가 부쩍 기대되었다. 그래서 그런가, 평소라면 누군가와 같이 갈 생각도 안 한 곳에 가게 되고, 다른 사람 의견이나 생각 같은 거 궁금한 적 없는데 네 의견이나 생각은 궁금해지고, 너한테만 알려주고 싶은 게 생기는 게,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이 너한테 관심이 있더라고. 그래서 괜히 관심 있는 사람한테 짓궂게 굴고 장난치는 초등학생처럼 너만 보면 장난치고 싶어져. 윤슬의 하루에 오늘이 계속 떠올라서 내 생각으로만 가득했으면 좋겠거든. 뭐, 진짜 뽀뽀했어도 좋았겠지만.

아 그날도 생각난다. 프렌즈 데이 때 말이야. 너도, 나도 서로의 친구를 통해 각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던 때 있잖아. 원래는 상대방 친구랑 대화하면서 몰랐던 모습을 알고 마음을 깨닫고 그러지 않나 싶은데 이상하게 나는 내 친구랑 대화하면서 깨닫게 되더라. 의도한 적 없지만 어쩌다 보니 남들 애정 현황을 잘 알게 되고 그러면서 슬이 네가 얼마나 인기 많은지도 알게 되니까. 질투하는 거 되게 유치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러고 있더라고.

‘내가 정리해야지’

‘윤슬 데려가서 ㅋㅋ’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 내 행동을 보면 놀랄 만큼, 내가 널 좋아하는 거 같아.

김서우는 상대와 맞지 않는다면

피한다 vs 맞춰간다

그러니까 이런 질문에도 윤슬, 네 생각이 나지.

맞춰간다

너도 알지, 나 이런 거 안 맞춰주는 거. 근데 너라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윤슬이라고 생각하니까 ‘까짓거 못 맞춰줄 것도 없다.’ 싶더라니까. 네가 생각해도 웃기지, 슬아. 근데 제일 웃긴 건 미션 성공하고 받은 네 비밀이라며 보여준 스노우볼 데이트 이후 피드를 보니까 내 생각은 하지도 않고 재밌게 논 거 같아서 짜증이 나더라고. 물론 그때 너나 나나 서로한테 선물 보낸 건 알지만 윤슬 너랑 너한테 호감 가진 사람이랑 데이트했다는데, 신경이 안 쓰일 리 없잖아. 지금까지 누군가를 만나면서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는데 너랑 같이 있으면 내가 아닌 거 같아.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네가 하고 싶어서 찾았다는 연주회에서도 너랑 데이트하러 나온 거지 다른 사람 반주하려고 나온 게 아닌데, 오직 윤슬 네가 보고 싶어 하는 거 같아서 무대 뒤에서 준비하는 내 모습이 낯설더라. 그러니까 너도 꼭 알아줘야 해. 나 이런 거 함부로 안 해, 네가 하라고 해서 네가 원하니까 했던 거야. 그만큼 내가 널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너는 꼭 알아줘야 해.

너도 알다시피 나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건, 어떤 의견을 가졌건 신경 안 쓰잖아. 근데 윤슬 네가 말하는 거면 괜히 신경 쓰게 돼. 남들한테 직업 밝히는 걸 싫어하는 내가, 너랑 같이 가는 거면 스스럼없이 관련된 걸 하게 되는 게. 이달연에 참가하면서 누구를 좋아할 순 있겠다 싶었는데 이만큼 내가 ‘나’를 잃을 정도로 빠져들 줄 몰라서, 너 웃는 거 하나 보겠다고 질색하던 걸 하게 되는 내가 낯설어서, 현재 내가 가는 길을 계속 걸어가는 게 맞는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늦었지만 뒤돌아가는 게 맞는지 결정해야 하는데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이라 혼란스럽더라 그래서 그때는 그렇게 도망쳤는지도 모르겠어.

슬아, 윤슬. 우리는 만날 때마다 싸웠고, 서로 원하는 거 바라는 걸 이뤄줄 수 없는 사이인 것도 맞고, 이렇게 싸우다 누구 하나 지쳐서 힘들어지는 것보다는 아예 시작도 안 하는 게 맞는데. 지금까지도 그래왔는데. 오직 네 생각으로 만들어간 노래를 너한테 들려줬던 것처럼, 모든 상황에 너라는 예외를 만들게 되는 것처럼, 안 맞는 게 보이는데도 앞으로도 보고 싶고 만나고 싶다는 말을 바라게 되는 것처럼, 지금까지 나를 구성하던 모든 것들을 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게 사랑이라면, 이걸 사랑이라고 한다면. 너를 위해 기꺼이 모든 걸 바꿀 테니까 우리를 사랑이라고 말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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