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say it "ditto!"
너도 그렇다고 대답해줄래?
삶에서 절대, 라는 가정이 의미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지만, 겉모습에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가장 먼저 하게 되는 판단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예를 들자면 지금껏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생면부지의 타인을 처음 만났을 때라던가, 아니면 지금까지의 인간관계에서 겪어본 적 없는 성격의 사람을 만났을 때 같은 경우들 말이다. 그런데 참 공교롭게도 김서우는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말 한 번 나눠본 적 없는 타인들이 만나 30일의 시간 동안 연인으로 발전해 연애할 수 있는지 실험하는 이달의 연애를 통해 만나, 연인으로도 하물며 친구로도 만나본 적 없는 성격의 사람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 내가 절대 좋아할 일 없겠다. 하는 일종의 편견이었다.
동갑이라는 것과 둘 다 예술업계 창작가라는 점, 똑같은 향을 좋아한다는 점을 빼면 비슷한 점도 닮은 점도 없는 사람이라 그랬던 것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내가 지켜본 김서우는 이달의 연애에 신청해서 참가하고 있지만, 그다지 간절하게 새로운 인연을 원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고. 적당한 장난스러움으로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거 같다가도, 어느 순간 보면 한 발짝 떨어져서 지켜보는 것처럼 보였고. 좋아하는 사람들 때문에 속앓이를 하는 사람들을 이해 못하는 거 같은데, 그러면서도 은근히 잘 들어주고 상담도 잘 해주는 사람이었다.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누군가의 전부를 판단하는 게 바보 같은 일인 건 틀림이 없지만, 김서우는 저번에 그랬으니까 이번엔 이러겠네, 하는 나름의 경험에 의한 예측도 번번이 빗나가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갔던 거 같다. 처음에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그다음에는 그 사람의 행동이, 조금 더 지나서는 너의 하루가, 알고 싶어져서 결국엔 나의 하루가 너로 가득해서. 그냥, 문득, 갑자기 벼락에 맞은 것처럼 깨닫게 됐다.
망했네.
나, 김서우 좋아하네.
폐장 직전의 관람차에서 너와 나 단둘이 있었을 때 너는 어땠을지. 무서우면 먹으라던 구슬 아이스크림에 담긴 마음은 어떤 거였는지. 장난감 수갑은 정말 말 그대로 장난이었을 뿐인지. 일러스트 페어에 날 보러 가는 거라서 상관없다는 말은 뭐였는지. 아직도 고양이 인형은 잘 보관하고 있는지. 묘하게 엇갈리는 대화 속에서 내가 가진 관심과 네가 가진 관심의 결은 과연 같을지. 과연 내가 널 생각하는 만큼, 너도 날 생각하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지만 차마 물어볼 수 없는 질문들이 쌓여만 가서, 나는 그만큼 네가 궁금해 서우야. 넌 언제나 직설적이고, 돌려서 말하는 법도 없고, 숨기거나 꾸며서 말하는 걸 싫어하잖아. 그게 누군가에겐 좋게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아도 네가 누군가의 판단에 흔들리지 않는 애라는 것도 잘 알아. 그러면서 눈치도 빠르고 생각도 많고 감정 정리도 빨라서 넌 내가 눈을 깜박하는 사이에 결정하고 판단을 내리잖아. 너랑 같이 있으면서 난 단 한 번도 관계의 주도권을 쥔 적이 없는 거 같아.
‘윤슬 여기서 관심 있는 사람 누구야?’
‘도차윤 구공현 아니면 최산호?’
이런 순간마저 주도권을 뺏길 줄은 몰랐는데. 너를 쏙 빼놓고 언급되는 이름들에 울컥하는 마음을 너는 알고 있을지, 알고서도 이러는 거면. 넌 정말.
‘ㅋㅋ 내가 왜 말 안 했을 것 같아’
‘지금이라도 대답 바꿀래?’
너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모르는 척 넘기는 네 행동에 속상한 마음도, 눈가가 시큰거리는 것도, 할 수만 있다면 네 말을 막고 싶었단 것도, 넌 아마 다 알고 있겠지. 그러니까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했던 거 아니야? 근데 서우야 너도 참 넌데, 나도 참 나더라. 내가 널 왜 좋아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말투도, 관심 접으라던, 나 같은 애 만난 적 없다는 단호한 네 말에도, 내가 어쩔 수 없는 목소리 같은 부분들도, 이렇게 널 좋아하지 말라고 해도.
‘근데 우린 앞으로 안 보는 게 맞을지도’
‘어차피 나랑 봐서 좋은 일 없었잖아 ㅋㅋ’
그런데도 널 좋아해 서우야. 상처 안 받는다고 하면 나도 거짓말이니까, 차마 그렇다고 할 수는 없어도. 그래도 널 만나서 난 좋았어. 사람 마음이라는 게 뜻대로 되는 법이 없잖아. 너를 좋아해도 계속 다투게 되는 것처럼. 그러니까 너도 날 좋아하게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소원 같은 거 안 빌 테니까, 제발 딱 하나만 바랄 테니까.
‘윤슬 다음에도 만날래?’
‘이대로 너 안 보기는 좀 아쉬워졌다고 해야 하나’
‘다시 생각해보니까 목소리 작은 거 매력 있는 거 같아’
나 좀 헷갈리게 하지 마, 서우야. 나한테 관심이 없으면 내가 다른 사람이랑 무슨 일이 있었던, 데이트에서 뭘 했던 일관성 있게 관심을 끊던가. 전에 칵테일 바에서 내 옷이 얇은 건 왜 신경 썼는지, 날 데려다주고 싶었던 거 아니냐던 차윤 오빠 말에는 왜 그랬을 수도 있다고 말한 건지, 보화 언니가 공현 오빠랑 가길 바랐던 거면 나를 데려다주고 싶었단 말 말고도 표현할 말이 있었을 텐데. 네 삐딱한 말투가 신경 쓰이면서도, 너와 지완 언니가 나눴을 대화들이 더 거슬렸다고 하면 넌 장난스럽게 웃으며 ‘윤슬 나 그만 좋아해~’ 하고 날 놀리며 대화가 더 깊어지지 않게 다른 이야기로 주제를 바꿀 널 알아서 그런가, 좀 슬픈 거 같기도 해. 내가 널 좋아하는 것처럼 네가 날 좋아하길 바라지만, 네 마음까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어쩌면 영영 보답받을 수 없는 마음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그런가, 좀 슬퍼졌어. 미로를 헤매는 것처럼 길 잃은 내 마음이 어떻게 해야 출구에 닿을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언젠가 네가 내 마음에 모르는 척도, 못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대답하는 날에는 나도 미로의 끝에 도착해 길고 긴 이야기의 끝을 맺을 수 있을 거라 믿어. 그러니까 내가 너한테 보고 싶다고 하면, 너도 그렇다고 대답해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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