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Dear. Hero

1967.04

나 또한 당신의 편지를 받을 때마다 하루의 피로가 위로받는 기분이 들어요. 당신의 편지 속 세상에서는 미스트나, 미믹같은 특이한 동물들도 나오고, 힘든 일이 있으면 진짜 마법으로 기적을 일으킬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잠들기 전에 침대에 누워서 당신의 편지를 읽으며 저도 당신이 말하는 것들을 상상하면서… 힘을 얻곤 해요. 당신도 그렇다면, 우리의 작은 행복이 기분 탓은 아닐 거예요. 아, 그래도 마물 잔해는 안 보내줘도 괜찮아요.

힘든 것을 이겨내고 다시 편지를 쓰고 있다는 것엔 칭찬을 해주고 싶지만, 일단 당신의 상태가 가장 걱정되는걸요. 저는 비교적 젊은 편에 속해서 제 주위 사람들의 죽음을 겪는 일은 몇 번 일어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당신은 2주라는 짧은 기간에 타인의 죽음을 목도했잖아요. 비록 다시 살아났다고 해도 말이죠. 죽음이 아니더라도 당신의 주변 사람들이 계속해서 다치고요. 그럼에도 당신은 그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무력감이…. 어떤지 제가 감히 짐작하기 힘드네요. 다른 이들은 일행에게 도움이 되는데 당신은 아무런 힘도 가지지 못한 것인지, 왜 아무것도 모르는 건지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을 것도 같아요.

지금은 당신 머리 위 숫자 아닌 물음표도, 가진 것들을 쓰지 못하는 자신도 원망할지도 모르지만…. 그러지 말아요, 아서. 다른 이들처럼 뛰어난 능력을 갖추지 않았어도, 가지고 있는 물건들의 쓰임새를 모른다고 하더라도 당신이 잘못한 것이 있나요? 정말로 아무런 도움 되지 않고 그저 짐만 되었을까요? 적어도 몇 번의 편지를 주고받은 나는 알 것 같아요. 당신은 서대륙 통일의 영웅들을 만나고 싶어 조사단에 참여했다곤 했지만, 당신은 애초에 선한 사람이어서 힘들어하는 다른 이들을 외면하지 못한 거잖아요. 스스로 그런 위험한 곳에 지원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비웃었으면서 그 자리에서 홀린 듯 신청서를 내는 사람이잖아요. 대공처럼 전투를 대승으로 이끌 수 있는 능력도, 마탑주처럼 어떤 적을 만나도 쓰러트리는 일도, 제독처럼 기묘한 물건들로 사건을 해결하는 능력 같은 것 없는데도 두려움을 이겨내고 다른 사람을 구하려 뛰어들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혹자는 그런 이들을 진정 영웅이라고 부르죠. 그리고 걱정하지 말아요. 만약 당신의 물음표에도 아무런 의미 없고 세상을 구해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도망친다고 해도 아무도 당신을 비난하지 않을 거예요. 아니, 모두 당신을 비난한다고 해도 적어도 나는 당신에게 ‘고생 많았다’라고 말해줄게요. 지금 나와 대화하는 이는 ‘영웅’ 아서가 아니라 내 ‘친구’ 아서니까요.

총알이 뭔지 모른다고 했었죠? 제가 사는 곳에는 마법도, 마물도 없지만 과학이 많이 발달했거든요. 물리 법칙이라고 하는 것을 보니 그쪽에도 과학이 있긴 한 것 같은데 아직 총은 발명되지 않았나 봐요. 아니면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거나요. 총이란 건 화약을 사용해서 총알이란 것을 고속으로 움직이게 해 멀리서도 공격할 수 있는 무기에요. 작금의 상황에선…. 전쟁에서 많이 쓰이고 있죠. 저번에 베트남전에 관해서 이야기했었죠?

사실 이번 일이 끝나면 그곳으로 출장을 가게 될지도 몰라요. 이번에는 악덕 상사가 보내는 것도 아니고 제가 지원해 간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총알비가 쏟아지는 곳으로요. 그곳은 아주 멀어서 서랍을 가지고 가는 건 무리일지도 몰라요. 위험하고, 멀고, 내게 도움도 별로 되지 않는 일을 왜 하러 가냐고 당신이 묻는다면…. 당신이 내게 동화 속 영웅과 같기 때문이에요. 첫 편지가 오고, 두 번째 편지를 받았을 때부터 당신을 본받고 싶었어요. 내가 사는 곳에서 영웅이 될 수는 없어도, 적어도 할 수 있는 일을 두고서 외면해 당신에게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거든요. 원래 일정이 확실히 정해지면 말해주려 했는데 힘들다고 말하는 당신을 보니 꼭 말해줘야겠어요.

당신은 이 정도로 힘들지 않은데 제가 괜한 걱정으로 이 편지를 채운 게 아닌지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네요. 민망하니 다른 이야기로 주제를 돌릴게요. 제 두 번째 출장에 관해서 이야기해 볼까요. 저번에는 공사장 인부들을 대상으로 인터뷰했는데, 이번엔 그 동네에 사는 이들의 인터뷰를 했답니다. 놀라웠던 점은 공사장 인부들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는 거예요. 인부들은 하나같이 귀신을 봤다는 둥,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둥 겁먹은 채로 인터뷰에 응했었던 반면에 마을 주민들은 그저 폐건물일 뿐, 아무런 영향도 없다고 말했어요. 그저 심약한 백인들이 우는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었죠. 그런데 조금 이상한 점은, 인터뷰하는 몇몇 사람들의 상태가 안 좋았던 것 같았어요. 아주 피곤해 보이거나, 감기에 걸려서 아파 보였어요. 막상 귀신을 봤다는 인부들은 멀쩡했는데 말이죠. 과민반응일 수도 있지만, 그곳에 전염병이라도 도는 것이라면 이 편지에 병균이 묻어서 가지 않길 바랄게요. 또 이상한 점이라고 한다면 동네가 유난히 조용한 것 같았어요. 창문은 닫혀있는 곳이 많고, 아이들은 대부분 자고 있었고요. 제가 공교롭게 그 동네의 낮잠 시간에 간 게 아니라면 말이죠.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불평불만 많았지만 당신 말대로 이렇게 사건을 취재하고 파헤쳐가는 게 꽤 재미있는 이벤트로 느껴지기도 해요.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제 삶이 기적이 되기도 하고, 따분한 출장 이야기가 흥미로운 신세계의 이야기가 되기도 하네요. 모두 당신 덕분이에요. 우울해하지 마요, 또다시 편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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