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청춘은 노숙이지 (2)

하데스

♪: Snow Patrol - Chasing Cars


역에서 잠을 깬다는 건 굉장히 이상한 일이었다. 아직 잠이 완전히 달아나지 않아 아직도 무거운 눈꺼풀을 몇 번 깜빡이면서 천천히 눈꺼풀의 무게에 익숙해지는 동안이면 의외로 빨리 깨는 게 청각 기관이다. 목적지가 같지 않은 이상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만의 지도를 머릿속이나 손에 둔 채로 걸어가는데, 그게 겹겹이 쌓이며 시끄럽다는 생각이 들 때쯤 눈이 제기능을 다하기 시작하며 한 번 보이고 말 사람들의 모습이 갑작스러운 해상도로 보이기 시작한다. 회색 끈이 묶인 중절모를 쓰고 가는 신사, 핸드카트를 끌고 가는 역무원, 종이 봉지를 끌어안은 중년의 여성을 멍하니 보고 있으면 실내였기 때문에 몇 시인지는 알 도리가 없었지만 갓 구운 빵과 깊은 뜨거운 커피 냄새와 분주한 걸음만이 지금이 아침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꼴은 킹스 크로스 역에 있을 때보타 훨씬 처참할 텐데 바라보는 사람 하나 없이 각자의 목적지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이 곳이 절망스럽게도 킹스 크로스 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줬다. 그 깨달음이 머리에 닿으면 천천히 어젯밤의 기억을 느린 속도로 회고하던 키오건은 그 몇 년 동안 기사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체화한 육하원칙으로 자신이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러 왔는지를 되짚어본다.

홀리헤드 기차역까지는 걸어서 30분(원래는 20분인데 살짝 헤맸다), 거기에서 체스터까지는 열차 오는 시간 포함 2시간 정도가 걸렸으니 웨일스에서 2시간 반 정도를 체류한 셈이다. 그런 다음 막차를 타고 한 30분 정도를 갔는데, 이상하게도 시간만 놓고 계산하면 3시간이 지나야 했으나 이상하게 하루가 거의 끝나있어 정말 이상한 기분으로 숙면을 취해야 했다. 이 사실을 굉장한 죄책감과 함께 바니카에게 전했을 때 바니카는 예의 그 표정으로 제법 담담하게 이 이야기의 제목이기도 한 말을 전했는데, 과연 이것을 청춘이라고 해도 될성싶은지 하는 생각과 함께 처음 바니카가 집을 방문했을 때의 상태보다 더 처량해진 것 같아 굉장히 미안했다. 좋은 말을 듣고 한 일이라고 해도 그게 전부 좋은 행동과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니구나 하는 안타까운 교훈만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지금 천천히 머리는 작금의 상황으로 되돌아왔다.

그러니 결론, 여긴 영국에서 철도 노선이 몰려있어 철도 애호가들에게는 꽤 유명하며 벌써 몇 년 전 같은 그 이상한 웃음을 가진 표 판매원을 빗댈 수 있는 그 체셔 고양이 속담의 원산지 지방이지만 키오건에게는 그저 도착했을 때 밤이었기 때문에 그저 잠깐 올라가지 않는 의자 손잡이를 비집고 누우려다 그마저도 실패한 뒤 그냥 의자에서 팔짱을 끼고 손가방을 안은 채로 잠들어 찌뿌둥한 몸으로 일어나게 된

크루

의 철도역 대합실일 뿐이었다. 지도에 의하면 첫 차가 출발하기까지는 이제 20분이 남았다. 하지만 현실은 지도가 아닌지라,

“아니 어떻게 첫 차가 지연이 돼요? 첫 차잖아요, 첫 차, 첫, 차.”

“그걸 나한테 물어본다고 해결이 되겠냐, 자슥아? 엔진한테나 물어봐라.”

전날 구매한 것으로 추정되는 모를리스 햄버거를 들고 새벽부터 진상을 만난 역무원은 그걸 저 젊은 진상의 머리에 던져 버릴 듯한 짜증과 함께 대답했다. 애꿎은 역무원에게 따져 봤자 별 이득도 없을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 키오건은 그 분에게 더 묻기를 관두고 대합실에 앉았다. 열차 지연으로 예정 시간보다 40분이 밀린 첫차를 기다리며 할 게 없었던 키오건은 역의 노상가게 근처를 어슬렁거리다가 승강장으로 갔다. 어차피 열차 출발 시간을 앞당길 수 없다면 타는 시간이라도 앞당기고 싶었다.

그러고 나서도 할 게 없어 승강장의 맨 앞과 뒤를 왔다갔다 어슬렁거리던 키오건의 발치에 신문지 하나가 발에 채였다. 떨어져라 떨어져 - 염불을 외며 허공에 발길질을 가볍게 몇 번 했는데도 붙어 있어 결국 키오건은 직접 신문지를 떼어내야 했는데, 왼발이 신문지 한 면을 밟고 있어 떼어내는 과정에서 신문은 보기 좋게 두 동강이 났다. 손이나 씻어야지, 하며 신문지를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 넣으려는 순간 기사의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새벽의 선택이라니? 힐끗 발행처를 확인해 보니 어제 발행되어 오늘은 제기능을 잃고 땅바닥의 먼지 쓸개로 전락한 런던 타임즈였다. 하지만 헤드라인이 비마법사 신문에서 볼 만한 헤드라인은 아니었다. 급하게 아래 내용을 확인했다.

멸망에 대해 이야기하면 허황된 소리라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몇몇 기사가 증명하듯 '징조'는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이 기사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징조들을 다룬다. 

런던 타임즈는 더 썬이나 데일리 익스프레스 같은 아까의 노상 가게에서나 팔 타블로이드 찌라시 신문들과는 달리 나름의 공신력을 가진 신문이었으나 그건 종이의 재질과는 무관했기 때문에 몇 번이고 밟히고 찢어지기까지 한 신문에서 건져낼 수 있는 내용은 더 이상 없었다. 그래도 일단은 이 쪼가리라도 챙겨야 할 듯했다. 키오건은 무거운 걸음과 거기에 대비되는 빠른 행동으로 열차의 계단을 밟았다. 창밖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흐렸다. 곧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은 키오건은 아까 건져왔던 신문지를 바니카에게 내밀었다. 니카 혹시 이거 봤냐..? 런던 타임즈 비마법사 신문 아냐?

유스턴 역

에 곧 진입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올 때쯤부터 발을 동동동동동동 구르며 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키오건은 문이 열리자마자 단숨에 튀어나가 역 밖으로 나갔다. 기억하기로는 남서쪽으로 쭉 걸어가다 보면 바로 보이는 게 판크라스 역과 킹스 크로스 역이라고 했다. 15분 정도 거리였으니 굳이 택시나 버스를 탈 필요도 없었었다.

그 와중에 로브 밑단이 주욱 찢어져서 끌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그게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배에서 그랬는지, 아니면 크루 역에서 자다 일어났을 때 어디 걸려서 찢어졌는지 짚이는 곳도 지나온 곳도 너무 많았고 로브에 신경쓰기에는 너무 바쁜 상황이 많았다. 그렇다고 지금 레파로를 쓰기에는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어차피 주변에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이 길거리에 즐비한 것과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무방비하게 마법을 써서 사소하게라도 시선을 끌어버리는 건 굉장히 다른 일이었다. 시선에 담기는 여러 결의 차이는 이미 7년의 경험으로 익히 알았기 때문에 키오건은 그냥 가면서 로브를 완전히 찢어버렸다. 이건 그냥 이따가 열차 타고 고치지 뭐 하는 생각으로 들고 가는데 얇지만 긴 게 손에 계속 들고 있으니 거슬려서 그냥 이마에 묶었다.

그렇게 속은 비우고 머리는 불면으로 어지러웠으나 내리 10분 안 되는 시간을 계속 간 탓에,

킹스 크로스 역

에 도착하자마자 온몸의 긴장이 쭉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터덜터덜 걸어들어가 9와 4분의 3 승강장까지 정처 없이 걸어갔다. 이 기차역 역시 바쁜 장소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지로 향하느라 바빴거나 혹은 아예 향할 집이 없어 기차역을 점거해 키오건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한 꼴은 아니라 그 누구도 그의 꼴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하거나 수군거리지 않았다. 열차의 승강장으로 가야 오히려 시선은 더 쏠릴 것이다. 하지만 뭐, 기차역에는 그렇게 사람이 많은데 자신을 새벽의 아이(라고 부르기에도 뭐할 정도로 자란 기분이지만)로 바로 판단하고 말할 만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루 새 내 이름이 까발려진 것도 아닐텐데, 뭐. 키오건은 논리로 묶이지 않은 생각이 흘러가게 두었다.

죽겠다. 아니 죽을 것 같았다. 누군가가 여기서 밀기라도 하면 눈 떠 보면 호그와트에서 유령으로 깨어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아니 그러면 어쨌든 호그와트에 가는 목표는 달성한 셈이니까 차라리 그 쪽이 이득인가 싶을 정도로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키오건은 생각한다. 이런 죽겠다는 생각은 절대로 죽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생각이며 오히려 생생하게 살아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일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은 이 대장정에서 멋지게 생존한 것이니 보상으로 좀 자야 할 것 같았다.

출발은 하지 않은 열차에 탄 키오건은 반대쪽에 손가방을 던져놓고는 그대로 한 칸에 몸을 구겨넣었다. 분명 2학년 때에는 누워서 잠깐 잤던 것 같은데 키가 꽤 커가서 그런지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냥 옆의 빈 객실로 가서 바닥에 누웠다. 자세나 다른 조건들을 더 고려하기에는 잠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잠에 들기 직전 키오건의 머릿속에 떠오른 아주 공포스러운 사실 하나: 이 과정을 다 겪고도 아직 호그와트 도착 안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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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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