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다

네스토르

돌아오는 길은 갈 때보다 험하지 않았다. 킹스 크로스 역에 도착한 키오건을 기다리고 있던 그의 아버지는 키오건의 손을 잡고 사람의 인적이 없는 곳에서 무언가에 손을 댔다. 그러자 키오건은 맥이 빠질 정도로 허무하고 무난하게 도니골의 고모 집에 도착해 있었다. 키오건의 가방을 들고 있던 아버지가 다시 문을 두드리면 집의 주인인 클로다 오’켈리가 문을 열었다.

“키온, 돌아왔어?”

고모는 도니골 아이리쉬 특유의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로 키오건에게 물었다. 고모는 항상 옅은 웃음을 얼굴에 걸고 있었는데, 조금만 더 우스꽝스러웠다면 체셔 고양이를 연상시켰을 테지만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부드럽지만 의뭉스러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동화 속 풍자적인 고양이보다는 켈트 전설에나 나올 법한 마녀를 닮았다고 키오건은 항상 고모를 보며 생각했다.

“네, 다녀왔습니다.”

정말이지 마법사들의 그 작명센스만큼은 정말 통탄스러워. 키오건은 고모 클로다의 집 앞에 있는 <둥지거나 등지거나Nest-Or-Rest> 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처음 봤을 때 저런 작명은 남매의 유전인 줄 알았건만 어둠의 마왕이니 하는 걸 보면 그냥 마법사들의 특징이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작명 센스만큼은 꼭 지키겠다고 다짐하며 (그리고 부디 앨 그레이가 이상한 제목을 보면 고쳐주기를 바라며) 문을 닫았다. 오래되었으나 썩지 않은 참나무 냄새가 집안에 가득했다.

클로다는 웃으며 동생에게 차를 타 오라 지시를 내렸고, 그는 별다른 반항 없이 걸음을 돌렸다. 키오건은 아버지의 발걸음이 굉장히 익숙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웃던 고모가 헛기침과 함께 키오건을 불렀다.

“앉지 그러니?”

“아, 네.” 키오건이 어색하게 근처 의자에 털썩 앉았다. 아버지와 똑같이 새까만 머리카락을 가진 고모는 웃으며 과자 바구니 쪽으로 지팡이를 휘둘렀다. 가벼운 아씨오와 함께 테이블 위에 바구니가 놓였다. 키오건은 이 집의 분위기와 맞지 않는 킷캣을 하나 집어들었다. 보글보글 물 끓이는 소리 속에서 조용히 포장지 밖으로 나온 킷캣이 입속에서 부서졌다.

“자, 키온. 학교는 어땠니?”

고모가 물었다. 키오건은 잠시 맛을 음미하는 척 답을 하지 않았다. 클로다는 현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굳이 조카를 재촉하지 않았다. 물이 다 끓고 컵에 따르는 소리가 날 때쯤 키오건이 입을 열었다.

“좋았어요. 그냥, 어…. 좋았어요, 진짜.”

이게 아닌데 - !! 키오건은 생각하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분명 생각할 때에는 뭔가 더 근사했던 단어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막상 말로 꺼내면 전부 날아가고는 했다. 골든 스니치도 이렇게 빠르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 일이 없어져 이미 넘겨버린 초콜릿의 흔적만 좇고 있는 혀가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그런 키오건을 보며 고모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별로였구나?”

“그건 아녜요.” 딱 잘라 말할 수 있었다.

“말하기 어려운 게 있어?”

“있긴 한데 나쁜 건 아녜요.”

어디부터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감이 도저히 잡히지 않았다. 그냥 저는 학교가 너무 좋았어요. 물론 이상한 것도 보고, 겪고, 항상 친구들이랑 사이가 좋기만 한 것도 아니었고, 과제 때문에 지쳤던 적도 있는데 그게 너무 즐거웠어요. 그런데 그걸 말로 꺼내면 뭔가 만족스러울 것 같지가 않아서…. 그걸 생각하는 소년에게 고모가 말했다.

“그럼 너의 과거가 대신 이야기하게 두는 건 어떠니.”

혹시 제가 이거 입 밖으로 내보냈나요?

“그래.”

이것도. 뚫린 입을 간수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며 키오건은 고모에게 다시 한 번 그게 무슨 말인지를 물었다. 과자 바구니에서 레몬 사탕을 집어든 고모가 답했다.

“과거랑 추억은 다르단다. 과거는 이미 일어난 것, 추억은 거기에 너의 색깔을 입힌 것. 너는 평가는 잘 하니 거기에다가 조금만 더 말을 붙여서 그 과거를 추억으로 사로잡는 거야. 그냥 날것의 감정 말고, 정확하게 어떤 구체적인 것이었는지 색깔을 좀 더 다채롭게 입혀 봐. 그러면 아마 네 앞에 놓인 세상도 그만큼 넓어질 거야.”

내 앞의 세상! 그 말이 단순한 키오건의 구미를 당겼다. 소년은 예나 지금이나 미래를 좇고 있었다. 과거야 알 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과거가 미래로 연결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잘 살고 싶었던 소년은 그래서 말을 오래 찾았다. 최대한의 좋은 말로 최대한의 내 감상을 말하기 위해 얼마 되지 않는 단어들을 사금 채취하듯이 골라냈다. 결국 끌어낸 단어들은 평소 쓰던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그의 고모는 가만히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차 단지가 열리며 은은한 캐모마일 향이 방을 채웠다. 천천히 키오건이 한 걸음을 내딛었다.

“호그와트에는 미래가 있어요. 저번에 고모께서 얘기해주셨던 것처럼요.”

일차적인 감정이 아닌 이상 남의 말에 토 달기가 더 익숙한 소년에게는 나름의 진전이었다. 더 얘기해보라는 양 고무적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는 고모를 보며 키오건은 천천히 과거의 물살을 거슬러 올라갔다. 배정식의 이상한 모자와 코스메틱 가게의 영업사원 같았던 상쾌한 소년, 완벽하게 복제된 바이올린 선율, 호박 주스 덕분인지 늦은 밤에도 반짝거렸던 눈과 같은 을 이야기하는 키오건은 벌써 그 때의 일들은 이미 일어난 지 오래인 일들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자신이 얘기하는 것들은 과거의 그럴듯한 재현이었다. 말하지 않았다면 저편에 그렇게 쌓여 먼지와 함께 흩어질 그런 기억들이 생각보다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건 전부 미래로 가기 위한 디딤돌이 될 테지만.

그렇게 밝은 미래를 꿈꾸는 소년을 보며 클로다는 또 다른 과거의 망령을 본다. 당연히 이 스트라반의 키온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겠지만 그가 앉아 있던 소파는 이미 몇 십 년도 지난 오래 전 누군가가 그 자리에 밀어두고 그 위에 올라가 벌게진 눈을 하고 자신은 한 시간 거리지만 국경이 다른 스트라반으로 가겠다고, 그 한 시간 너머에 있는 도시에서 살 것이라고 선언했을 때 그의 발받침이 되어주기도 했었다. 현재를 이야기하는 소년은 이미 누군가의 과거가 되어버린 찰나 위에 앉아 미래를 꿈꾸고 있었고, 그 사람은 이미 주방에서 캐모마일 차를 우려 싱크대에 기댄 채로 아무런 생각도 없는 듯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래서 클로다는 잠시 그 망령들을 집어넣기로 한다. 꺼지지 않는 불길들과 추억으로 덧칠할 수 없는 과거는 붙잡지 않는 쪽이 나았다.

불길한 예언은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고, 현현한 현재는 종잡을 수 없었다. 해결하지 않는다면 미래로까지 번질 어둠은 너무나도 많았다. 북아일랜드 분쟁은 다시 명목상의 휴전에 들어가 있었으나 예전에 그랬듯이 언제 또 다시 그게 깨질 지 몰랐다. 예언은 점점 범위를 넓혀 나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하필이면 마법사들의 세상에서 득세하고 있는 사람은 어둠의 마왕이었다. 나뉘어진 세상에서 이렇게나 안 좋은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도 이상할 정도로 세상은 기울어지고 있었다. 이러다가 어느 순간 완전히 균형을 잃고 멸망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세상이었다.

하필이면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서, 하필이면 마법사로 태어나서, 하필이면 이 시기를 살아가고 있어서. 클로다는 생각한다. 아마 조카가 그리는 것만큼 미래가 밝고 행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소년이 여정의 끝에서 만나게 되는 것들은 부디 그것만이 되지 않기를 클로다는 조용히 빌었다. 그의 의식이 현재로 거슬러 올라올 무렵 키오건은 녹색이 스민 안감과 함께 연회장을 나가 룸메이트의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정체 모를 식물과 보랏빛의 끝에서 탄생한 월계수 잎 가랜드, 오랜모아의 이름배반적인 혜성, 멸망 앞에서나 깰 혼수의 낭만, 한곳에서 쓰여 내려가는 역사와 이해하지 못한 제목을 가진 책들을 말하며 당시에는 신비롭고 채도 낮아보이기만 했던 슬리데린 기숙사를 다채롭게 물들이고 있었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