廻光返照 (2)

회광반조 / 오버마인드와 다이너모

“다이너모.”

“네!”

 

넌지시 부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자신을 돌아보는 기체의 파란 눈동자를 보니 제아무리 오버마인드라고 한들 말문이 바로 트이지는 않는 법이었다. 일과 없는 하루가 익숙지 않은 건 자신이라고 한들 다를 바가 없었지만, 새로운 장소에 온 만큼 주변을 탐색해 보는 정도는 제 기체에게 이상하지 않으리라 여겼었다. 하지만 이 행동은, 뭐랄까…….

 

“혼자 바다를 보고 오라고 하면 안 갈 생각이겠지?”

“애드님은 안 가십니까?”

“아직 해가 강하니 조금 앉아서 쉴까 했거든. 저물어갈 때쯤 되면 걸어볼까 싶긴 하다만.”

“…….”

“…그 표정은 뭐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돌아다녀도 괜찮단 거다.”

“그럼 역시 지금처럼 애드님 근처에…”

“그거 빼고.”

“………….”

“뭐…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는 건 아니야. 그래도 휴가를 왔으면 혼자서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는 여유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

“개인적인 시간이라면 시간을 보내는 목적과는 관계없는 겁니까?”

“부가 설명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은데.”

“스스로가 아닌 다른 대상을 위해서 시간을 보내지만, 그 시간을 혼자서 사용한다면 그건 개인적인 시간인지 판단하기 위한 질문입니다.”

“그 정도로도 일단은 괜찮겠지, 개인적인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꼭 물리적인 거리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기도 해. 당장 네가 이 정도 거리에서 모래를 만지고 있던 거도 경우나 대상에 따라서는 개인적으로 분류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말한 오버마인드는 선베드에서 몸을 약간 기울여서, 방금까지 다이너모가 무언가를 만들고 적던 모래 위를 내려다봤다. 습관적으로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파라솔 아래에서 아직 벗지 않고 있던 선글라스의 다리가 달그락거리면, 조금 어둑한 시야에는 모래가 뭉쳐진 작은 둔덕이 보였다. 모래 위로 약간 뾰족하게 올라간 두 개의 귀. 손가락으로 콕 찍은 양 옴폭 파인 눈, 코, 수염… 같은 특징들이 눈에 들어왔다. (눈 중 한쪽 아래에는 어쩐지 번개 모양의 패인 자국이 있었다 메워진 듯했으나 설마, 하는 마음으로 언급하지는 않기로 했다)

 

“…고양이를 만들고 있었나?”

“특별히 시키신 게 없으셨으니까요! 병원 주변에서 종종 보이는 유기체들의 정보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 확실히 몇 번 쓰다듬은 기억이 있지. 턱 아래의 털이 특히 부드러웠던 느낌이… …아니, 주제가 넘어갔군. 이런 조형물을 만드는 거도 여유 시간을 보내는 데 꽤 좋은 경험이 될 거다. 아니면 해변의 모래에서 뭔가를 찾거나 주워서 수집해도 괜찮고.”

“그런 거군요, 알겠습니다! 마침 조형물을 만들면서 본 기체의 손에 걸렸던 것들이 있었거든요. 이쯤이었는데…”

‘모래를 얘기하는 건 아니겠고, 바다 유리나…’

“애드님, 이거 보세요! 색이 예쁜 조개껍질입니다!”

 


 

분명 그랬었지, 그런데, 그 이후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저 멀리 모래사장을 걸어 다니나… 생각해 보자니 오버마인드의 심경이 왜인지 모르게 마냥 깔끔하지가 않은 것이다. 분명 선베드에서 떠나갈 즘에는 꽤 여러 번 뒤를 돌아봐서, 더 멀리 가도 된다는 의미로 손을 흔들었었는데. 하물며 금방도 백사장에 쪼그려 앉았다 일어나면서 제 쪽으로 고개를 돌렸던 걸 웃어 보이고만 (보였을지 보이지 않았을지조차 의심하지 않았다) 말았는데! 제 기체는 떠나보내 놓고 치사하게도 미련을 가진다 싶어진 오버마인드가 아무도 듣지 않을 한숨을 크게 쉰다. 아주 시원하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미지근하게는 부는 바람. 여전히 파랗게 치고 하얗게 밀려 돌아가는 파도 소리. 푸른 하늘 위로 점점이 떠가는 구름의 풍경은 쾌청하고도 깊기만 한데, 왜 시야에서 조금 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불안해지는 건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비유로도 실제로도 물가에 제 기체를 혼자 내놨기 때문인가? 그러나 병원에서 유사한 상황―다이너모가 시야 밖으로 나가다 못해 보이지도 않게 됐을 때―이 몇 번씩 벌어졌어도 그때마다 오버마인드가 지금처럼 조바심을 내지는 않았다. 그때와 지금의 차이는 뭐지? 다이너모가 내 곁으로 돌아올 거라는 확신이 있는지, 아니면 없는지인가?

 

간만의 고민거리가 생겨난 오버마인드는 결국 몇 분을 더 생각한 끝에 선베드에 몸을 기대 누웠다. 여전히 파라솔이 제 자리에서 마땅한 그늘을 만들고 있었지만, 오버마인드에게는 몸을 적적히 식혀주는 그림자의 냉기보다 미처 다 가려지지 않아 발목에 내리쬐는 햇빛의 열기가 따갑게 와닿는 듯했다. 스스로가 아닌 다른 대상을 위해서 시간을 보내지만, 그 시간을 혼자서 사용하는 행위. 그건 다이너모뿐만이 아니라 나한테도 적용되는 이야기였나…. 휴가치고는 금세 달궈진 듯한 머리에 파라솔을 올려다보던 인물이 고집스레 눈을 감아버렸다. 땡볕 아래를 돌아다니고 있는 건 저 녀석인데 왜 내 머리가 뜨거운지.

 

조금만 이러고 있을까. 사람도 없고, 다이너모도 멀리 갔으니…

 

 

…그렇게 생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물은 볼에 차가운 무언가가 닿는 느낌을 받고서는 인상을 조금 찌푸렸다. 냉기가 서린… 금속? 뾰족하지는 않고 끝이 둥근 것 같다. 감상을 정리하다 보면 뺨을 약하게 누르던 사물이 사라졌다가, 곧 다시 닿았다. 차갑다 못해 피부가 아릴 정도로 시린 유리. 게다가 유리에 약간 어린 물기? 사물의 정체를 끝내 다 알지 못한 오버마인드가 눈을 아주 약간, 고양이가 눈을 뜨듯 가늘게 떠 보이면, 유리잔을 들고 있던 기계가 오버마인드의 기상에 안면 부품을 웃는 얼굴로 바꾼다. 볼에서 차가운 유리잔이 떨어졌다.

 

“……차갑,”

“일어나셨습니까? 애드님의 뇌파 기록으로는 15분가량 수면하신 걸로 확인됩니다! 깨어나실까 싶어서 잠시 잔을 대고 있었습니다.”

“…눈을 감고 생각한다는 게 그대로 잠든 모양이지, 깨워줘서 고맙게 됐군. 그보다 그건?”

“본 기체는 애드님께서 넣어주신 쿨링 모드가 있지만 애드님께서는 없지 않습니까? 그늘에 계셨더라도 통상적인 실외 기온보다 몇 도 차이가 나지 않으니, 더위 예방 차원으로…”

“……소르베?”

“시원하게 만들어 온 포도 소르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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