廻光返照 (1)

회광반조 / 오버마인드와 다이너모

이하의 글은 ‘엘소드’ 장르의 캐릭터 ‘애드’와 애드의 영원한 동반자 ‘다이너모’를 좋아하는 지인에게 헌정하고 있습니다. 글을 읽음으로서 애드와 다이너모의 관계에 흥미가 생기셨다면, 모쪼록 다이너모 이야기를 한 번씩 해주시기를 희망해봅니다.


 

“애드님, 이거 보세요! 색이 예쁜 조개껍질입니다!”

“흠? 어디… 호오, 색도 그렇고 제법 상태가 괜찮은걸. 은은하게 보랏빛도 도는 게.”

“마음에 드십니까? 다른 색도 줍다 보면 나오겠죠?”

“그래, 나쁘지 않군. 이참에 비슷한 조개를 모으면서 돌아다니는 것도 좋겠지. 다녀올 건가?”

“예!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여기 계세요.”

이 몸이 널 두고 어딜 간다고. 입안을 맴도는 말을 삼킨 인물은 자신이 기대있는 선베드에서 떠나가는 기계를 향해 가벼이 손을 흔들어 보였다. 현재 선베드에 기대듯 앉아 파라솔의 그림자 아래에서 배웅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인물의 이름은 총 세 가지가 있다. 그중 여름의 바람에 긴 머리카락을 산들거리는 게 가장 어울리는 이름을 고르자면, 단연코 오버마인드가 되겠다. 염분기가 섞여 조금 까끌까끌한 바람에 귀 뒤로 미처 다 넘기지 않은 오버마인드의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그 바람의 짠맛을 녹이는, 파도가 모래사장 위를 긁고 다시 돌아가는 소리 사이로 새가 우는 소리가 드물게 섞인다. 포말이 부서져 적시고 간 자국 위로 쨍쨍한 볕이 내리면 모래는 계속해서 마르고 젖기를 반복하고, 그중 바싹 마른 모래사장 위를 골라 걸으며 멀어지는 기계의 뒷모습이 오버마인드에게 퍽 익숙한 것이었다. 선글라스를 벗어 머리에 올린 오버마인드는 그 뒷모습에서 살랑거리며 반짝거리는 뒷머리를 바라본다. 그렇다, 오버마인드는 지금… 한창 여름휴가를 즐기고 있다.

 

휴가의 발단은 특별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오버마인드에게는 특이한 시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오버마인드는 자신의 이명을 얻은 이래로 마땅한 사유가 없다면 병원을 3일 이상 떠나본 적이 없었으므로, 올해의 여름도 이변 없이 세계의 의료 산업에 종사할 생각이었다. 이 무더운 여름 태양보다도 네 잔소리가 환자들한테는 더 따가울 거라는 비평이 어김없이 들어왔으나 오버마인드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렇다면 잔소리가 두려워서라도 여름 감기에 걸리거나 그에 준하는 병세로 쓰러지는 녀석은 없을 거라는 뜻이군? 이라는 답변을 내놓아서 아주 질린다는 듯한 누군가의 표정을 얻어낸 전적이 있었다) 그런 오버마인드의 일중독자스러운 면모를 멈추게 만든 대상은 다름 아닌 그의 수족이었다. 다이너모 타입-오버마인드, 간략하게는 다이너모였다.

“그럼 애드님은 올해도 휴가는 안 가시는 겁니까?”

“새삼스럽게도 묻지 않나, 다이너모? 이 몸이 갈 데나 시간이 어디 있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여유 있게 쉬신 적부터 없으신데도요?”

“…….”

“가장 가까운 지난해의 휴가 일정 기록을 저장해뒀습니다! 열람하시려면 띄워 드리겠…”

“아니, …기억이 없는 건 아니니 됐다. 그보다 오늘치 처방전이나 다 모아서 띄워줘. 정보 요약 없이.”

“예…….”

이후 오버마인드의 시야에는 무려, 정리되어 띄워진 처방전들을 보는 내내, 왜인지 모르게 시무룩해진 다이너모의 표정이 들어왔다. 여태까지와 다를 바 없는 일정인데 대체 왜 저런 반응인지. 잠깐, 반응?

 

우연찮은 한 단어에 초점이 전환된 오버마인드는 살펴보던 처방전을 시야 아래로 내렸다. (그 순간에도 다이너모 타입-오버마인드가 소유자를 응시하고 있는 듯싶었으나 생각에 잠긴 오버마인드는 바로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오버마인드가 자신의 수족이자 가장 유능한 조수에게 인간형 기체를 연결해 준 건 길어야 한 해였다. 실상은 지난 가을이었으므로 1년조차 채우지 못했고, 이번 여름이 무사히 지나야 시험 가동을 마치는 셈과 다름없었다. 이 사실로 인해, 그는 제 수족에게―자신의 삶과 동일하게도―유의미한 휴가를 제공해 주지 않았다는 객관적 평가에도 도달했다. 다이너모 타입-오버마인드는 오버마인드가 지금까지 기억하고 또 참조한 다른 다이너모 타입들의 정서 모듈에 비해 더 순진하고 어리게 설계한 바 있다는 점까지 객관적 평가 위로 빨간 색연필을 그어대기 시작했다. 해당 기체의 학습에 적합한 프로그램이 적용되지 않음! 재고 여지 있을지 없을지 불명! 최악의 소유자!

“―애드님!”

“―아, 어? 그으…래, 다이너모. 무슨 일이지?”

“별도의 데이터 추가, 변경 없이 동일 페이지 열람을 지속하시면서 서 계셨던 시간이 15분을 경과했습니다!”

“……그랬나, 이제 다 봤으니 종료시켜도 돼.”

“예! 추가로 서 계신 시간 동안 일상 중 심박수보다 빠른 박동 관측, 동공 일부 확장 및 링크되고 있는 정신 에너지의 파장 안정성 저하가 확인됩니다. 피로 누적으로 인한…”

“다이너모.”

“…부분에 필요한 처방이 있겠습니까?”

“…….”

“애드님?”

“이번 여름에는 휴가를 좀 가볼까.”

“예?”

“이왕이면 바다가 좋겠는데.”

“예?!!?”

…그리하여, 오버마인드는 예정에 없었던 바다 여행을 일정으로 추가하고.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외마디를 외쳤던 다이너모 타입-오버마인드가 그의 동반자가 되어 잠시간의 휴가를 떠나오게 된 것이었다.

오버마인드가 팔자에 없던 여름휴가의 발단을 생각하는 동안 여전히 백사장을 돌아다니고 있던 다이너모의 뒷모습이 좀 더 멀어졌다. 저 녀석, 어디까지 가는 거야? 그렇게 생각한 오버마인드는 멀리서나마 기체를 응시했다. 다이너모 타입-오버마인드는 여전히 바짝 마른 모래 위만을 골라 걷고 있었는데, 이따금 몸을 숙이거나 제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일어나는 모양새가 해변의 조개껍질을 찾아다니고 있는 듯했다. 바다에 도착하고 모래사장에 처음 발을 딛었을 때 자신의 주변만 빙빙 돌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오버마인드는 그의 충직한 조수가 어찌 되었든 나소드 기계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어서, 휴가를 떠나기 전 시간을 들여 인간형 기체의 방수 기능을 점검해 준 바 있었다. 그러나 막상 다이너모는 제 반경에서 멀어지기는커녕 선베드에서 얼마 떨어지지도 않은 모래로만 손장난을 치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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