廻光返照 (3)

회광반조 / 오버마인드와 다이너모

“…….”

“애드님? …혹시 본 기체가 실수했습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수면 전 마지막으로 관찰한 얼굴 근육보다 경직되셨고, 별도의 외부 자극 없이 동공이 축소되셨습니다. 이 두 가지 생명 반응을 조합하면 유사한 예시 데이터는 놀람, 당황스러움……”

“그, …그만, 놀란 건 맞다만 네가 실수하진 않았어. 오히려……”

 

여전히 얼얼하다는 느낌이 드는 볼. 언제 위에 타월을 덮어뒀는지 조금은 더워도 더는 따갑게 느껴지지 않는 발. 어느 시점부터 약간 풀이 죽어서 눈썹이 내려가고 있는 다이너모 타입-오버마인드에 대하여, 제게 내밀어진 유리잔을 건네받은 오버마인드는 정말 오랜만에 말문이 꽉 막힌 기분을 느꼈다. 그 기분이 부정이나―불호나―불편과 같은 감정들은 아니었다. 그저, 차가운 잔의 겉면을 잡자마자 손바닥을 식혀주는 분명한 냉기라거나, 손의 온기에 천천히 녹아내리면서 반짝이는 소르베의 얼음 결정이 선명한 점이라거나, 그 위로 스며드는 시럽이 눈에 익은 하늘색이라는 부분들에서 알 수 있는 마음이라는 게. 긴장한 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제 기체에게, 어떠한 칭찬을 하더라도 부족할 것만 같아져서. 되려 목이 막히고 마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라, 어떻게 칭찬해 줘야 할지 생각하다가… 시간이 지나버렸군.”

“그럼 애드님에게 불필요하거나 거부감이 들지는 않으시는 거죠?”

“그래, 긍정적인 말을 얼마나 붙여야 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아. …물론 그중에서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말이 하나 있는 거 같으니. 다이너모?”

“예!”

“고마워.”

“…….”

 

…너무 체면치레를 빼고 얘기했나? 뭐, 이 녀석한테는 상관없을 수도 있겠지만… 변명할 수 없이 민망한 기분이 된 애드는 애써 다이너모의 반응에서 시선을 돌렸다. 소르베와 유리잔 사이에 낀 숟가락을 뽑아 들어서, 푸른 시럽에 젖은 얼음이나 한 차례 제 입에 떠넣었다. 이 행동만으로도 당장 부연 설명을 덧붙여버리고 싶은 입을 스스로 막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햇볕을 쬐지도 않았는데 화끈화끈하게 느껴지는 귓바퀴나 볼을 식히기에도 이 포도 소르베의 냉기와 단맛만 한 게 없으리라 생각했다… …만. 세 번이나 소르베의 겉을 숟가락으로 긁듯이 떠서 혀에 올려놓고 맛을 음미하기까지(오버마인드는 이 과정에서 얼음 위를 코팅하듯 덮은 하늘색 시럽이 진한 설탕 맛을 톡톡히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는데, 깨달았을 때는 다이너모가―소르베를 코팅하고 싶기라도 했는지 아주 듬뿍!―뿌려놓은 시럽이 한 부분도 빠짐없이 소르베를 적셔두었다는 점도 눈치채게 됐다) 돌아오는 반응이나 말이 없으니 아무리 애드라도 인간적으로 조금 뻘쭘해지게 됐다. 공들여 식혀놓은 얼굴에 다시 열이 오를 듯한 고요함 속에 인물의 귀에는 파도 소리만이 야속하게 쓸려 오고는 한다. 저렇게 고개를 숙여서 얼굴까지 가리고 있을 정도로 별로인 말이었나…

 

“……애드님.”

“왜 그러지? 역시 뭔가 문제가 있었…”

“……사실 본 기체는 소르베 말고도 애드님께 드리려고 준비한 선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보다 소르베 쪽이 마음에 드실 수도 있고, 저와 애드님의 미감이 달라서 취향이 아니실 수도 있고, 사용하시기에 불편해서 원하지 않으실 수도 있다고 판단해서, 드리기를 재고하려―”

“다이너모.”

“…예.”

“이후로도 유사한 상황마다 재고하기보다는 차라리 지금 내보이는 게 데이터를 모으는 데에 편하지 않겠어?”

“……그렇습니다….”

“그러니 앓고 끙끙댈 시간에 보여줘 봐.”

 

설마 이것 때문에 방금까지 그렇게 싸매고 있던 건가? 하여간 이런 점이… 쿡쿡 웃어버리고 싶은 속을 꾹 참은 오버마인드의 시야에서 무언가 찰강거렸다. 작고 흰 소라, 연보랏빛이 도는 둥근 패각, 먼 하늘의 빛을 받은 양 진한 보라색 내부가 반짝거리는 조개껍데기, 그들을 꿰어서 엮은 얇은 체인의 연한 은빛과, 그 끝을 잡아서 오버마인드의 빈손 위에 올려두는 다이너모의 흰 손이 따라서 눈에 들어왔다.

 

“…이거,”

“아까 애드님이 해변의 조개를 주우면서 돌아다니는 거도 괜찮다고 해주셨으니까요. 색이 예쁜 걸로 모아서, 팔찌로 만들어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어째, 갈수록 말문을 안 막는 때가 없군…!”

 

오버마인드가 웃었다.

손바닥에 내려놓아진 조개껍질을 인지한 순간 크게 웃고 말았다.

다이너모가 대답 대신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선베드에 앉은 채 세워뒀던 상체가 조금 뒤로 넘어가도록 웃었다. 웃지 않고는 도저히 배길 수 없다는 듯 큰 웃음을 터트린 것이다. 하지만 그 웃음은 누가 듣더라도 정말로 즐겁게 느껴졌으므로, 어떻게 보면 긴장감이 풀려서 밝아진 인간 같기도 했다. 오버마인드의 오랜 웃음이 이어질 동안, 애드는 제 손에 올려진 팔찌를 소중히 쥐어봤다. 다시 손을 펼 때쯤에는 웃음이 잦아들었지만 그럼에도 기쁘게 보였다.

 

―아, 하하! 대체 무슨 고민을 한 거지, 다이너모? 농담 아니야, 정말로 마음에 들어! 여태 받아본 선물 중에 이만큼 기쁜 걸 찾으라면 손에 꼽을 거라고!”

“……정말입니까?”

“설마 이 몸이 네 앞에서, 그것도 네게 받은 선물로 거짓말을 하겠어? 이런 선물을 생각 해냈다는 점까지도 칭찬 해주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을 지경인데?”

“…바로 이해하기에는 연산이 지연되고 있습니다만, 애드님이 기쁘시다면 더할 나위 없는 행동이었다는 거군요! 칭찬 해주시는 겁니까?”

“그래, 그래. 원하는 만큼 쓰다듬어줘도 모자라다고 할까. 하지만 그 전에 몇 가지 더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지, 들어줄 건가?”

“물론입니다, 부탁이 아니더라도 저는 애드님의 기체니까요.”

“그걸 알면서도 부탁하고 싶을 때가 있거든. 지금이 그런 때고. 네가 괜찮다면야, 자.”

……그런데 왜 다시 주시는 겁니까?!

“그거야, 소르베가 있으니 혼자 손목에 차기는 무리잖나?”

“아.”

“네가 채워줬으면 좋겠다만,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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