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구야 쨩의 혼마루 이야기

필연, 그것은 저주.

백중과 카구야

“무슨 일이려나. 부탁한 건 전부 가져다 준 것 같은데.”

아직도 힐끔힐끔 제쪽을 바라보고 있는 심신자를 바라보며, 야만바기리 쵸우기는 말했다.

기억을 더듬어 3시간 전.

쵸우기는 갑작스레 근시직을 떠넘겨 받았다. 그것도 제 사본인 야만바기리 쿠니히로에게. 설명을 들을 틈도 없이 쿠니히로는 다급하게 짐을 챙기고 제1부대와 혼마루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인수인계, 라는 개념도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 쵸우기는 한숨을 내쉬며 심신자의 방으로 향했다. 사실, 쵸우기는 아직 심신자와 그렇게까지 친근한 사이…는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속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있지만.

예전에는 좀 더 단순한 아이였다.

—처음 심신자와 만났을 때.

그것은, 쵸우기가 아직 정부에서 근무중일 때의 이야기이다. 한가로히 사무직에 임하고 있던 평화로운 어느날, 돌연, 쵸우기는 연련장의 관리라는 명목으로 허수아비가 되었다. 연련장에 그저 ‘배치’되어 있으면 그 외는 상관 없다고 한다. 마치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것처럼……

칼과 칼이 맞부딪히는 전장의 소리.

쵸우기는 의자에 앉은 채로 줄곧, 그것을 관망하고 있었다. 잊어버렸던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소리였다. 야만바기리 쵸우기 또한, 검이었다. 언제까지고 제 역할에게서 벗어나 가만히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도검남사에게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부러질 수 있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발도조차 허용받지 못한 검이, 멍하니 휘둘리는 것들을 바라보고 있다.

대체, 누가, 무엇 때문에…

이곳에 나를 밀어넣은 거지. 점점 초조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갑옷조차 착용하지 않고 앉아있는 자신에 대해 자꾸만 돌아보게 된다. 즐거운 표정으로 싸움터에 뛰어드는 동소체를 부럽다고 생각해버린다. 그리고 곁에 있는, 그 아이의 얼굴마저도 떠올리게 된다.

마치 따스함을 알아버리자 급격히 느껴지는 추위처럼……

가까워진 인기척에 현실로 끌려나오는 것처럼, 쵸우기는 퍼뜩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가치가 없는 일이라고 한들, 맡은 이상 완벽하게 해내야만 한다.

“무슨 일이니” 하고 말을 꺼내려고 했다.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초록색 눈동자와 마주치기 전까지. 무언가 말하려고 했다. 그 아이를 떠올리게 하는 반짝거림을 품은 것만 아니었다면.

나쁜 꿈이 점점 다가오는 것 같았다.

언제나 멀리에서만 보았던 주황 끈이, 마지막을 알리는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미안, 본가.”

그래, 이 눈이다.

너는 여전히 순진무구한 눈을 하고서는, 나를 그곳에 밀어 넣는구나.

……

기막힌 우연 따위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심신자와 사본이 연련장에 발걸음이 끊긴 어느 날, 야만바기리 쵸우기는 씰 교환을 통해 혼마루에 배속되었다.

그리고 지금…

“야만바기리 씨.”

불안하다는 듯 이쪽을 올려다보는 제 심신자를 바라보며, 쵸우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 있어.”

“…네.”

“손님을 맞이하러 가자.”

비척비척, 카구야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잔뜩 겁을 먹은 눈을 하면서도 쵸우기의 뒤를 쫓았다. 그래, 그녀는 도망가지 않는다. 그 아이가 끈질기게 본가, 라고 부르며 이 뒤를 쫓았던 것처럼.

“가주 님께서 보내신 편지입니다.”

필연.

그것은 저주.

존재하는 것은 과거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단 하나의 예외도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가 존재하지 않으면, 현재는 생겨나지 않기 때문에.

“저, 저는……”

단어는 문장을 이루지 못하고 흩어진다. 목구멍에서부터 작은 오열이 흘러나왔다. 눈물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차라리, 마음껏 미워하고 싶었다.

순진무구한 미소를 짓고, 나를 괴리된 세계로 밀어 넣은 이 소녀를. 불행의 조각조차도 모르는 것처럼, 맑은 눈을 하고서 이쪽을 올려다보던 소녀를.

차라리, 마음껏 미워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처럼 등을 돌린 사본을. 처음부터 무관했다는 것처럼 모르는 척을 하는 사본을. 옛날, 이 뒤를 쫓아오며 활짝 웃었던 주제에— 줄곧 도망가고 있는 아이를.

하지만 한낱 감정조차도 원하는 방법으로 휘두를 수 없는 것이다. 그만큼 ‘저주’라는 것은 성가시다. 숨통을 죄는 것처럼 딱 달라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이런 감정은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불행한 줄 몰랐다면, 다른 동소체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스스로 이상을 깨닫지 못했다면……

“반드시 전달하라고 명하였기에, 읽으시는 것을 확인하고 가겠습니다.”

아, 어쩌면, 전부 저주인 게 아닐까. 야만바를 벴기 때문에 줄곧 저주받고 있는 게 아닐까. 이렇게 줄곧 눌어붙는 것이 좋은 감정일 리가 없다. 존재해도 좋은 감정일 리가 없다.

평생 벗어날 수 없어……

계속 도망갈 수는 없어.

무관한 타인이 될 수는 없어.

결국 지금도 ‘야만바’에게서 도망칠 수 없는 것처럼… 야만바기리 쵸우기는 발도했다. 몇 번이고 다시 저주받는다고 해도, 야만바기리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상 베어낼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탄생하게 된 과정이기 때문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뒤늦게 도착한 쿠니히로는 혼란스러웠다. 제 2부대가 적의 협공에 퇴각하지 못하고 있어, 급하게 1부대가 지원에 나섰다.

돌아온 혼마루는 마치 폭풍이라도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고요했다. 평소에는 단도들이 마당에서 공을 차고 노느라 소란스러웠을 텐데… 아니, 쿠니히로가 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잠깐 나갔다 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쿠니히로는 걸음을 재촉해 심신자의 방으로 향했다. 복귀했다는 보고를 위해서, 가 아니었다. 단순히 그녀의 상태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어쩌면, 또 혼자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걱정이었다. 그녀는 울보였다. 자주 울지만, 진심을 다해 울지는 않았다. 눈물이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울고 싶을 정도로 슬픈 일’이라는 것을 잘 모르는 인간이다.

하지만 쿠니히로는 유일하게 그녀가 울고 싶어 하는 일을 알고 있다. 초기도이자, 제1부대의 부대장에, 근시이고—— 사본인 쿠니히로만이 유일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당장 그녀의 곁으로 가야 해.

그렇게 생각한 순간, 혼자 툭 내뱉은 말에 대답이 돌아왔다.

“자리를 비우고 있었던 가짜 군은 알 필요 없는 일이려나.”

쵸우기는 웃으며 말했다.

쿠니히로의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그 순간, 새삼스럽게, 쵸우기는 쿠니히로가 화내는 표정을 처음 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야만바기리.

언제부터였을까. 쵸우기가 그 부름에 돌아보지 않게 된 것이. 단 한 글자만 들어도 그것이 나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적이.

대체 언제부터…

단순한 울림 하나조차, 나의 것이 아니게 되어버렸지?

네가 밉다.

당신이 밉다.

……내가 밉다.

너는 이런 무력감은 느끼지 않겠지.

가장 이상적인 주인의 검으로서, 혼마루의 큰 기둥이 되는 너는. 그녀의 울음에 당당하게 제일 먼저 달려갈 자격이 있는 너는. 후세에 당당하게 야만바를 베었다고 알려지고, 내 이름조차 앗아간 너는…

이런 건 불공평해. 그렇게 말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쵸우기는 손에 쥐고 있는 편지를 구겨버렸다.

“가짜 군.”

“…사본은 가짜와는 달라.”

이 편지가 말하는 것도 그것과 비슷했다. 태어났던 것에서부터 도망갈 수 없는 것이다.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쵸우기가 아무것도 모르게 되는 것은 아니다. 행동에 어울리지 않는 유서 깊은 가문. 군데군데 빠져있는 상식. 고독을 두려워하고,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는 것까지도.

‘야나기하라’가 의미하는 것은. ‘야만바기리’가 의미하는 것은. 네가 도망가고 있는 이유는. 내가 외면하고 있는 이유는.

“나를 제쳐두고, 야만바기리의 이름을 팔고 있는 거잖아?”

야만바기리 쵸우기는 확실하게 검을 뽑았다. 정말로 베어 죽일 생각은 아니었다. 단순한 위협… 그러고도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조금의 피는 보게 되는 정도. 하지만 주인이 바란다면 정말 베어버려도 상관 없다.

아니에요, 그런 건 아니에요, 하고 그녀가 팔에 매달렸다. 쵸우기는 오늘 처음으로 그녀의 온기를 느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쿠니히로와는 질릴 정도로 사이좋게 붙어있었는데.

“이름은……—”

“가짜 군. 태어났던 때를 기억하고 있니?”

표면적으로, 아마, 나와 가짜 군의 관계는 양호한 편일 것이다.

다른 혼마루의 본가와 사본처럼 주먹질을 하거나 욕을 쏟아내지는 않으니까. 그렇다고 사이가 좋은 편이라는 것도 아니다. 만일 싸우는 것도, 서로를 동등하게 보는 것이기에 가능하다면…… 가짜 군과 나는 아닌 쪽에 속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다른— 사이가 안 좋다는 범위의 ‘본가와 사본’들이 훨씬 사이 좋게 잘 지낸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러니 안 된다.

나만… 이런, 감정을 품고.

너만 나를 올곧게 바라보겠다니…… 인정 못 해.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거야. 그녀가 깨어날 때까지, 라는 예쁜 말로 포장한대도 소용 없어.

쿠니히로는 주먹을 꽉 쥐고, 그리고, 심신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쵸우기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뒤를 돌아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향했다. 손에 쥔 편지는 그에게 돌려주지 않았다. 원래였다면 그가 대신 받아 들어 찢었어야 했을 편지를, 쵸우기는 품에 안고 태어나는 곳으로 돌아갔다.

부엌도 상관 없었지만… 역시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으니까. 이것도 전부, 아직 근시 자리를 양도하지 않았으니— 그가 한순간 자리를 비웠으니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우스워져서, 쵸우기는 불구덩이 속으로 편지를 던졌다.

필연.

그것은 저주.

아무리 외면해도, 언젠가는 올바른 흐름으로 돌아가게 되어있다. 역사를 바르게 되잡기 위해 태어난 도검남사라면 더더욱. 타들어가는 종이를 보며, 쵸우기는 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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