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캄파뉼라는, 오늘도 안녕하십니까?
루예나 x 캄파뉼라 (기적마: 녹차와 홍차 대화 中)
옥상 꼭대기에서 달빛을 받는 당신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찬란하였도다. 정자의 지붕 아래 있으면서도 당신의 주변으로 달무리가 몰려 빛을 발하는 것이, 어쩌면 당신이 달 자체가 아니었을까, 싶은 착각이 들게 만들었다. 사람의 미(美)에 그리 관심을 두지 않는 그였다 하더라도, 감히 찬양할 만했다. 그리고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아름답고 빛나는 만큼, 당신은 강렬하고도, 위험한 사람이었노라고.
이리 오렴, 캄파뉼라.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속삭이듯 당신이 고갯짓한다.
기꺼이, 발걸음을 옮긴다. 조금 전 당신을 따라 계단을 오르고, 밤하늘 밑으로 나와, 마법 같은 장면을 목격했을 때처럼. 구태여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을까. 이것이 만다라의 힘이라는 것을. 달의, 공간의, 회색의 축복임을. 그런 당신을 섬기는 자들이 있는 것도 당연했으리라. 믿음을 기꺼이 바치는 것도, 아마 한 치 망설임 없이 목숨을 바치는 이들도 있었으라 생각하였다. 비록 자신은 그 누구에게도 이유 없는 믿음을 주지 않을지라도, 당신의 신도들은 오늘도 당신을 위해 노래하고 있으리라.
매력이라 하면 매력이었다. 진실에 가까운 개인적인 생각이었다. 제국을 휘어잡던 그 어느 황제라 해도 당신의 발끝에 미칠 수나 있을까. 영원히 머무를 것만 같은 당신에 비해, 천천히 민심을, 믿음을, 신앙을 잃어가는 제국의 태양은 어떤 선택을 내릴까. 황제 폐하, 그대의 빛 영원하소서, 비웃듯 그대의 백성이 한탄하는 음절을 읊조렸다. 황제 폐하, 일식에 집어 삼켜져, 당신의 목이 단두대에 오를 그날이 올 때까지.
어느덧 같이 신발을 벗고 정자에 올라 당신과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늘 그렇듯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같이 밤의 산들바람을 만끽한다. 그래, 당신의 질문에 답을 아직 안 했었던가, 떠올렸다.
"글쎄요. 바꾼다 해도, 크게 달라지는 점이 있을까는 모르겠네요."
사랑받던 체리시. 춤추는 캄파뉼라. 혁명을 피워내는 C.C. 자신이 특별한 존재인가 묻는다면 선뜻 긍정의 답을 주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자신이 다른 이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냐 물었다면 그렇다고 했으리라. 다르기에 특별하다 할 수 있는가. 다르고 특별하기에 대단하다 할 수 있는가. 부정도 긍정도 아닌 작은 고갯짓이었다.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에서는 주인공이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은 당신 말대로 '지나가던 여행자'와 다를 것 없었다. 나쁘지는 않은 표현이라 생각했다. 대단한 사람이든, 조금 부족한 사람이든, 선한 사람, 악한 사람, 전부 언젠가는 시간에 흘러 지나가리라. 나는, 나만의 이야기에 충실하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였다.
저의 이야기는 혁명의 불로 타오르는 길이었다. 당신의 시선에서 보자면 짧고도 짧은, 혹은 흔해빠진 이야기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당신은 알고 있지 않을까, 당신이라면 알고 있지 않을까 싶어 묻는다.
"그렇다면 당신에게는 제 극의 끝이 보이나요? 그 끝에 다다르면 저는 웃고 있을까요, 아니면 울고 있을까요?"
딱히 대답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신일지라 해도, 만다라일지라 해도 오지 않은 미래를 전부 꿰고 있다는 믿음이 없었다는 것이 확실하리라. 설령 그 끝을 알고 있다고 해도, 당신이 자신에게 말해줄 이유 또한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흐르듯 조곤조곤 말을 이어나갔다.
"이야기는 흔히 기승전결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죠. 저의 이야기에서 저는 지금 어디쯤 와있을까요? 아직 간신히 도입부에서 다음 계단을 찾으려 발버둥 중일까, 준비가 끝나 검을 들어 전장에 뛰어들기만을 기다리는 시기일까, 그도 아니면 마지막 한 장만 남긴 저물어가는 사람일까."
"당신의 이야기는…."
고개를 돌려 당신을 바라보았다. 당신의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어디까지 이어질까. 오랜 시간을 살아오고, 수많은 것을 본 만큼 당신의 이야기는 무한하고 무궁무진하고 흥미롭지 않을까. 기꺼이, 단 한 번의 기회를 준다 하면, 나는 어떤 이야기를 물어야 하나. 어떤 이야기를 들려달라 할까. 그도 아니면 자신의 품에 있는 청색의 꽃, 글리베릴에 대해 물어볼까. 아직까지 시들지 않은 것이 신기하면서도 약간 부러웠노라.
생의 끝에서 시들지 못하고 너무 일찍 꺾여 죽어간 진홍색 장미를 애도한다. 주변의 생명을 흡수해 어거지로 생을 이어가는 푸른색 장미를 증오한다. 마지막까지 홀로 피어나는 붉은색 동백에게 검을 겨누고, 백색 연꽃의 그림자에 얽혀든다. 홀로 떨어져 짓밟힌 하늘색 물망초는 핏빛 재에 쓸쓸히 묻혔고, 남은 일곱 송이의 꽃은 여전히 태양 아래 군림한다. 연보라색 캄파뉼라야, 우리들의 정원은 언제야 낙원에 도달할 수 있을까.
절대자라 하였습니까. 세상 꼭대기에 서 있는, 신들의 신이라 하였습니까. 그렇다면 답해주소서. 낙원은, 어디에 있나요?
"아니, 아직 이것을 물을 시기가 아니려나요."
미소 짓고 유려하게 흘려 넘긴다. 그리고 주제를 전환하듯 시선 또한 돌려 옥상을 눈에 담는다. 이곳 또한 정원이었지. 제 마음에 들 만큼 어여쁜 곳이었다.
"이곳의 꽃들은 당신이 관리하는 건가요? 이 정도 규모면 상당한 정성이 필요할 텐데. 아니, 당신에게는 나름 쉬운 일이려나요?"
아까의 기적 아닌 기적을 떠올리며 짧게 웃었다. 그리고 사뿐사뿐 정자에서 내려와 다시 신발을 신는다. 그래, 이 정도의 공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정자에서 조금 멀어졌을까, 몸을 돌려 당신을 바라본다.
그럼 캄파뉼라야, 밤을 노래해볼까.
제 허리춤에서 검 한 자루를 익숙한 손길로 꺼낸다. 이곳에 온 후로 한 번도 건드리지 않았다지만 그의 손길에는 망설임 한 조각도 없었다. 거의 한평생 검에 기대어 살아온 사람이었다.
"약속드린 대가를 치르기엔 지금이 딱 좋은 순간인 것 같은데."
달빛 무용이라니, 듣기에 얼마나 낭만적인가.
"검무 한 차례, 보시겠어요?"
고요한 하늘 아래, 캄파뉼라는 은빛을 머금은 검과 함께 달을 위한 왈츠를 추었다.
Written 18-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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