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kmt와 타나토스(Thanatos)
히라이 긴지와 파멸에의 충동
긴지 씨의 300억 경마 맞대기 보면서 떠오른 걸 썼습니다. fkmt 작품에서 종종 느껴지는 파멸…… 죽음의 맛이 정말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긴지 씨 외에도 이래저래 떠오르는 fkmt 캐들을 전부 썼습니다. (주로 아카기……)
이런 건 대체 무슨 글이라고 해야 하는 거지? 캐해석 글? 그냥 생각 난 걸 대충 써 둔 거니까요 가볍게 즐겨주세요.
인간에게 제1욕구가 있다면…… 그것은 생존 욕구겠지요. 생존 본능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인간뿐만이 아닌,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합니다. 생존 욕구에 딸려 있는 나머지 다른 것들은 부가적인 것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생존 욕구은 제1욕구이자 가장 강력한 욕구인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아주 당연하고 합리적인 이야기……
하지만 글쎄…… 과연 인간에게는 살고자 하는 욕구뿐일까?
존재한다, 인간에게는…… 파멸, 죽음, 비존재에 대한 희구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죽음에 대한 충동, 프로이트는 이를 '타나토스(Thanatos)'로 지칭합니다. 그는 인간에게 생존 욕구, 삶을 향한 의지, 욕망, 투쟁, 생산을 가리키는 에로스(Eros)와 함께 절망, 허무, 파괴, 망각을 원하는 공격적인 충동, 타나토스가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애초에 우리는 모두 살아 있는 한 언제든지 죽을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 생명체는 삶과 죽음,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에 서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치열하게 살아가다가도 문득 그런 생각을 하고 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죽으면 이 모든 건 아무 쓸모 없는 짓이 되는 거겠지?' 애써 쌓은 모래성을 내려다 보면 갑자기 그것을 뭉개 버리고 싶은 충동이, 끝을 모르는 절벽 위에서 한 발자국을 디디고 싶은 충동이 종종 찾아 오는 것입니다.
fkmt는 인간이 가진 이러한 타나토스적 욕망을 아카기 시게루의 입을 빌려 이야기합니다.
아무도 파멸과 죽음을 바라지 않는다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살짝 엿보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그토록 싫으면 그냥 피하면 될 것을, 한편으로는 바랍니다. 파멸과, 죽음을 부르는 도박과, 스피드와, 피비린내 나는 결투를. 즉 '스릴'이라고 불리는 것들을요. 우리가 스릴을 느끼는 상황은 일반적으로 위험한 상황입니다. 줄 하나에 매달려서 허공으로 몸을 던진다든가, 극한의 스피드에 몸을 내맡긴다든가…… 하지만 이런 반론도 가능합니다. 아무리 스릴이 좋다고 한들, 다들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하지 않느냐는 점을요. 줄을 매달지 않고 번지점프를 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도박에 가진 돈을 다 털어넣는 사람이 있다고 한들, 정말로 그냥 파멸하고 싶어서 그러겠냐는 겁니다. 이렇듯 어떤 면에서 스릴은 실제로 죽음을 바라는 것이 아닌, 오히려 이러한 위험 속에서도 '살아남았다!'라는 쾌감을 느끼기 위해 추구하게 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사실 우리가 절벽에 서 있을 때 낭떠러지로 몸을 던지는 상상을 한다거나 하는 것은 뇌의 자기 방어 기제 중 하나라고 하더군요. 위험한 행동을 상상함으로써 반대로 그것의 위험성을 깨닫고 경각심을 가지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가진 생존 본능이 죽음 충동과 맞물려서 나타난다는 점은 언제나 조금 흥미롭다고 생각해요.) 이처럼 보통은 이성적인 자아가 죽음 충동을 조절합니다. 지금까지 모은 돈을 도박에 다 날리면 안 돼,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가면 위험해 같은. 스릴은 어디까지나 이러한 이성의 제어 하에서 위험을 즐기는 행위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파멸의 대가 아카기 시게루 선생께서는…… 그것만으로는 스릴을 즐기는 인간의 마음을 전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치킨 레이스에서 액셀을 밟을 때, 요행을 바라고 있는 돈을 모조리 걸 때…… 파멸, 그 자체를 추구하는 마음이 얼핏 스친다는 것입니다. 죽어버리는 것 자체에 대한 욕구, 그런 설명 불가능한 위험한 마음이……
탄생과 삶이 가진 그것의 본질적 속성으로 인해 (태어난 것은 모두 죽는다) 그 곁에 파괴와 죽음이 도사린다는 것은 합당하게 느껴집니다. 합리성의 곁에는 언제나 비합리가 존재합니다. 인간이 언제나 합리적으로만 살 수는 없기 때문에, 이성적인 자아의 끈이 느슨해지는 순간 죽음에 대한 충동은 불쑥 튀어나옵니다.
예를 들어 카이지 늪 편에서 사카즈키 아저씨가 늪에 돈을 모조리 날리는 장면에서, 그는 일종의 황홀경을 느끼는 것처럼 묘사됩니다. 늪에 구슬을 넣으면 넣을수록 점점 이성적인 판단은 녹아내립니다. 분명 나름의 계획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늪 앞에 앉아서 빠칭코 구슬을 밀어넣는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그러한 합리적인 계획이나 계산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돈을 따겠다는 의지, 성공하겠다는 목표마저 저 멀리로 사라져 버리고 이대로 돈을 넣으면 그것을 전부 잃을 게 자명한 상황 속에서 그저 밀어넣습니다. 파멸이라는 수렁 속으로 걸어들어갑니다. '늪'에서 그는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혹은 빠져나가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일지도……
어쩌면 이러한 파멸에 대한 충동이 바로 도박의 본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도박은 비이성적인 행위니까요. 이성적으로 따져봤을 때 도박은 미친 짓입니다. 희박한 확률, 돈을 잃을 게 뻔한 상황에서 아무 근거 없는 일확천금을 노리기 위해 가진 돈을 다 쏟아 붓는 짓거리. 도박 자체가 불합리한 짓이기 때문에, 도박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미쳐갑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도박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어요. fkmt는 모리타의 입을 빌려 도박의 비합리성을 극대화하여 말합니다. "도박(갬블)이란 투신자살. 바닥이 보이지 않는 절벽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모리타가 말하는 도박(갬블)의 이미지란 바로 ‘투신자살’. 여기에 대해 듣고 있던 야스다는 ‘그런 생각으로는 오래 살지 못한다.’라고 하지만 히라이 긴지는 모리타의 생각에 동의하며, 그것이 바로 도박의 본질, ‘갬블의 쾌감’이라고 말합니다.
한 번 실수하면 저 아래로 떨어져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종종 우리가 절벽 앞에서 스스로가 저 아래로 뛰어내릴지도 모른다는 기괴한 충동과 공포심에 휩싸이는 것처럼…… 도박도 마찬가지입니다. 잃을 게 뻔한 순간, 파멸할 게 뻔한 순간에서도 사람은 멈추지 못합니다. 뛰어내린다, 죽는다, 죽고 싶어 한다, 파멸하고 싶어한다……. 도박이란 그러한 마음을 주렁주렁 매달고 사선을 넘는 행위라고, 아카기 씨도 말하지 않았던가요? 도박의 위험성이란 단지 확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에게는 파멸 그 자체를 추구하는 마음 또한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닐지요.
물론 앞서 말했듯이, 이러한 죽음에 대한 충동은 어디까지나 '충동'입니다. 평온한 상태의 보통 사람은 이러한 충동을 잘 제어합니다. (종종 카이지에 등장하는 도박중독자들이 조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후기를 읽곤 하는데, 이게 보통 사람의 생각이겠지요. 지나치게 안전한 곳에, 자아가 스스로를 완벽히 조절하는 지대에 있어서 충동 따위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혹은 어쩌면, 제 안에 충동이라는 위험한 본능이 내재되어 있음을 거부하고 싶어하는 듯한 발작적 거부처럼도 느껴지는 반응들이지요.) 평상시의 사람에게 있어 죽고 싶어하는 마음, 파멸을 추구하는 마음은 아주 작은 것입니다. 그게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요…… 하지만 어떤 계기가 자아와 충동 사이의 균형이 무너져 버리면……
더 추구하고, 더 쌓아올리고, 더 욕망하는 에로스―삶에의 의지가 무너지고 만다면.
왜냐하면 모리타, 네가 없으면 이 모든 것이, 내가 건설할 왕국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가 건설할 왕국에서 그와 함께 왕국을 통치하고 그의 유산을 모두 물려받을 모리타가 없다면……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에 언재나 죽고서도 계속해서 살아갈 방법을 탐구해 왔습니다. 그것은 히라이 긴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에게는 확고한 꿈과 야망이 있지만 그것을 이루기에는 그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야망 왕국을 건설하기도 전에 불의의 사고로 허망하게 죽어 나자빠질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된다면 히라이 긴지가 일궈놓은 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 버리겠지요. 하지만 모리타 테츠오가 있다면 그런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리타가 카무이 편에서 긴지 씨를 떠올리며 얼마든지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히라이 긴지 또한 모리타를 생각하며 얼마든지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니까. 죽음으로 모든 것이 종말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니까. 죽음 이후가 완전한 암흑이 아니라, 나의 뜻을 이어받아 계속 살아갈 누군가가 있으니까……
그리하여 모리타 테츠오를 잃은 긴지가 마지막 경마 편에 이르러 자기 파괴의 절정으로 내달리는 것은 아주 당연해 보입니다. 누구도 그에게 그러라고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먼저 은행장에게 나서서 300억 엔을 두 배로 만들겠다며 얻어 오고, 무모해 보이는 경마 맞대기를 하고, 심지어 승부의 결정적인 순간에는 모든 것을 하늘에 맡겨 버립니다. 이것은 승부사로서의 면모가 아닙니다. 그동안 긴지는 결코 공정한 승부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승부를 위해서 무엇이든지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세이쿄 마작 때도 결정적인 순간, 승부를 승리로 이끈 것은 모리타였습니다. 하지만 그때에도 긴지는 머릿속에서 플랜 B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런 계산 없이 승부의 결정적인 순간을 자신이 마음 깊이 믿는 파트너에게 맡긴 것도 아니고, 말 못하는 짐승에게 맡겨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히라이 긴지다운 행동이 아닙니다.
이후 긴지의 독백을 돌아보면, 긴지는 그 순간에 파멸하고 싶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 순간 그는 파괴되고 싶었습니다. 이대로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었습니다.
이는 굉장히 비합리적인 행동입니다. 믿음직한 파트너이자 후계자인 모리타 테츠오가 사라진 것만으로 이토록 강렬한 자기 파괴의 욕구를 느낀다는 게 이해가 안 될 정도입니다. 후계자라면 새로 찾아도 되는 법이잖아요? 아니면 은퇴한 모리타를 어떻게든 찾아내서 다시 끌고 오는 방법도 있잖아요? 하지만 히라이 긴지는 이러한 모든, 살아가기 위한 행동, 쌓아올리는 행동을 거부한 채로 그저 파괴되기를 선택합니다.
하지만 운명이란 참으로 얄궂어서……
결코 긴지에게 그러한 편안한 죽음을, 말끔한 파괴를 내려주지 않습니다. 이기고 이겨서, 결국은 히라이 긴지라는 제 모습이 남지 않는 재가 될 때까지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면 이기든 지든, 아카기 시게루로서 있고 싶어 하며 자신의 최후까지도 결정한 아카기가 떠올라서 조금 마음이 아파집니다. 깨끗한 죽음이야말로 어쩌면 특권일지도 모르겠군요. 반대로 수많은 사람을 파멸 속으로 떠밀어 온 악당인 히라이 긴지가 깔끔한 퇴장을 하는 건…… 그건 공정한 일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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