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과 금 후기

All that glitters is not…

이것저것 by 공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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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어쩌다보니 읽게 된 은과 금… (긴모리가 그렇게 찐이라는 말만 듣고 시작했습니다)

<아카기> 이후로 <텐>을 읽은 뒤 세 번째로 접하게 된 후쿠모토의 만화입니다. (카이지는 드문드문… 몇몇 에피소드만 띄엄띄엄 알고 있는 수준입니다.) 아무튼 그래도 세 작품이나 읽게 되니 후쿠모토의 스타일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 상황에서, <은과 금>을 읽고 몇 가지 감상을 적어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아카기>와 <텐>의 스포일러도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조금 긴모리 cp스러운 이야기가 녹아 있습니다. 감상에 주의해 주세요!

1. 은과 금은 누구인가

우선 제목부터 생각해 보면, 이 ‘은과 금’이 가리키는 것은 명백합니다. 바로 돈이지요. (이제는 금본위제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 시대이지만) 은과 금은 그 자체로 화폐로 쓰이기도 했고, 화폐 가치의 척도가 되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작품 외적으로, 은과 금은 작중의 두 주인공 히라이 긴지와 모리타 테츠오를 가리킵니다. 은=긴지라는 것은 명백해요. 아예 ‘은왕’이라고 불리지를 않나, 이름에도 銀은 자를 쓰지를 않나… 그럼 모리타는 금이냐? 하면 그것은 조금 애매합니다. 일단 ‘테츠(鐵)’오잖아요? 본래 쇠 철 자는 금속의 뜻을 나타내는 금 자와 소리를 나타낼 뿐인 철 자가 합쳐진 건데… 일본어 한자에서는 약간 다르게 표기합니다. 이렇게요. (鉄) 파자하면 금金 자와 잃을 실失 자가 되네요. 이 금이라는 단어에 주목하면 결국 테츠오란 이름은 1. (금이 아니라) 쇠 2. 금을 잃다 라는 뜻을 가진 것처럼 보입니다.

심지어 작품 후반부에 도달하면 테츠오는 은왕과 나란히 설 수 있는, 혹은 그를 뛰어넘을 수 있는 ‘금왕’이 되고자 하는 목표를 잃고 말지요. 사실 이것은 제목에 이미 예견되어 있던 것인에, 애초에 모리타는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금이 아닙니다. 그는 단단한 쇠고 강철이지요. 작중에서는 내내 철도 금으로 바꿀 수 있는 연금술을 이야기하는데, 이게 정말 가능했을까요? 애초에, 철은 금이 되는 게 맞는 걸까요? 그러한 상전이가 올바르거나, 혹은 추구할만한 목표였을까요?

2. 후쿠모토와 니체, 니체와 긴지

조금 곁가지로 흘러가서, 후쿠모토 작품에서 꾸준히 느껴지는 몇 가지 테마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많은 사람이 이야기했듯이 후쿠모토 작품의 주인공들은 상당히 니체적입니다. 그들은 세상의 선악 구분에 휘둘리지 않고, 세상의 상식이나 얄팍한 법에 휘둘리지 않고, 세상을 움직이는 법칙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자신의 강한 자아를 바탕으로 밀고 나가는 이들이죠. 긴지도 그렇습니다. 긴지가 생각하기를 선악이란 평범한 사람들이 기대는 보루입니다. 그의 눈에 보통 사람들은 한심할 뿐입니다. 제 욕망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고 선량한 시민으로 남고자 하는 이들, ‘세상의 논리, 선악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전할 것이다’라는 무사안일주의. 이것들은 초인이 봤을 때는 마치 칠면조가 구덩이에 머리만 숨기고 제가 안전할 거라 믿는 바보짓인 거겠지요. 이들은 노예나 다름 없습니다. 제 욕망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휘둘려만 다니지요. 도덕 판단에 있어서도 결국 남들이 정해준 틀을 벗어나지만 않으면 괜찮다는 식입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려고 하지 않아요.

그러한 긴지가 보았을 때, 욕망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욕망에 완전히 휘둘리지 않고 (돈을 대가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거부하는) 모리타는 꽤 소질이 있는 인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초반에 모리타는 '어떤 노인'이 내세운 조건을 갖추고 있는, 그의 재산을 물려받을지도 모르는 청년이라는 떡밥이 나오는데 이거 연재 중에 결국 흐지부지되어 버린 것 같죠?) 게다가 모리타는 머리도 꽤 잘 굴러가는 편입니다. 후반부에서 긴지가 영입한 료헤이라는 청년과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지지요. 긴지가 보기에 모리타는 아직 수수한 쇳덩어리에 불과하지만, 조금만 더 성장하면 번쩍이는 황금으로, 귀중한 금으로 둔갑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재목이었지요.

앞서 쇠가 금으로 바뀔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었죠? 만약 긴지가 들었다면 '당연히 될 수 있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긴지는 버블 경제를 온몸으로 체감한 사람이에요. 결코 그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었던 물건들이 엄청난 가치를 가진 것처럼 둔갑해서 그 값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버블의 광기는 그러한 연금술을 가능하게 했어요. 작중 배경은 90년대로 이제 점점 버블이 꺼져가고 있는 시기기는 했지만, 긴지가 생각했을 때는 아직 가능했습니다. 모리타라는 평범한 청년이 눈부신 금이 되는 것 정도는요…

그리하여 긴지는 정말로 모리타가 자격을 갖춘 이인지 시험하기도 하고, 그의 성장을 돕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긴지가 모리타를 동등한 파트너로서 진정 인정한 시점을 성경 마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전에도 날개니 뭐니, 나의 송곳니와 너의 날개면 이 나라의 아성을 칠 수 있을 것이니… 이야기하지만) 세이쿄 마작 때 긴지는 말 그대로 자신의 운명을 모리타에게 맡겼습니다. 만약 그 마작에서 패배했다면 긴지로서는 심대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죠. 이때 모리타는 긴지를 위해 '지금 한 번 죽었다.'라고 말합니다.

3. 후쿠모토와 니체, 그리고 자본주의 비판

'죽으면 살 수 있다.' 긴지가 모리타에게 죽으라고 말하는 것과 아카기가 <아카기> 작중 내에서 내내 이야기 하는 것은 꽤 닮아 있습니다. 이게 정말로 자기 파멸을 감수하라는 말일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이 '죽어라'라는 말을 진짜 심정지, 생명의 사망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후쿠모토가 주인공들의 입을 빌어서 자주 말하는 이 '죽음'과 '삶'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죽으면 살 수 있다, 죽어야 산다… 이때 죽음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무사안일주의, 지금까지 구태의연하게 살아 온 삶을 끊어내라는 말입니다. 나의 안전을 위해 위험패를 피하고 나의 텐파이를 무너뜨리고, 도전하기를 포기하고, 그렇게 그저 목숨만 붙이는 삶… 이건 살아 있는 게 아니요. 일본극 주가조작 때 등장한 우메야도 같은 말을 합니다. 그냥 50억의 재산을 가지고, 은행 이자만으로 그저 편안히 살아 있기만 하는 삶… '그렇게 살 바엔 죽고 말지.'

어쩌면 그런 평안한 삶은 아무런 위기가 없는 일상 상태에서는 그리 나쁘지 않은 전략일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면요? 특히 세이쿄 마작 같이, 우리 상대편에 서 있는 이들은 이러한 '평범한 삶'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잘 알다 못해 그러한 평범한 삶이 가지는 맹점을 이용하여 그들을 착취해 오기까지 했죠. (쿠라마에 왈, 서민들에게 아직 쥐어짤 구석이 있다면 쥐어 짜야하지 않겠느냐며, 자신이 더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들을 더욱 착취하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후쿠모토 만화에서 등장하는 두 번째 테마, 자본주의 비판과도 이어집니다. <은과 금>은 얼핏 보면 황금만능주의를 찬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반대입니다. 첫 번째 장면을 보면, 모리타는 경마장에 흩날리는 마권을 돈으로 착각합니다. 긴지도 한 때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고 말하지요. 생각해 보면 경마장의 마권도, 돈도, 은과 금도 전부 사실 무의미한 물건입니다. 은식기를 써보셨을지 모르겠는데 이거 은근 변색 잘 돼요. 금도 순금은 굉장히 물러서 어디 일상적으로 쓰기 어려운 물건이지요. (물론 산업에는 둘 다 중요한 금속입니다만…) 그들은 그것이 가진 내재적인 가치 이상의 가치를 부여받고 있습니다. 즉 긴지도 모리타도 실제로는 없는 것을 향해 욕망하고 있지요. 그러한 욕망을 이용해서 기득권은 평범한 사람들을 착취합니다. (긴지나 모리타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좀 다르긴 한데)

이에 대항하려면 개인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없는 개인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죽어라!' 평범하게 사는 것을 거부해라! 도덕도 정의도 결국은 강자들이 만들어놓은 구실일 뿐, 거기에 얽매이지 마라! (악행을 저지르라는 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돈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건 당연히 잘못된 일이지요. 그런데 세상의 왜곡된 도덕과 규칙을 따르다 보면 쉽게 휩쓸리고 맙니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지 스스로 확신이 없다면 욕망에 휘둘려 쉽게 돈으로 사람의 목숨을 갈음하려고 해요. 이것이 니체가 말하는 '노예 도덕'입니다. 니체는 기독교 윤리를 비판한 거긴 한데, 사실 일반적인 공공 도덕의식도 마찬가지예요. 세상 사람들이 나쁘다고 하니까, 이렇게 하면 비난을 받고 이렇게 하면 칭찬을 받으니까… 따위의 얄팍한 세상의 관습에 휘둘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단순히 사람을 죽이면 법을 어기는 거니까, 수준의 도덕 의식을 갖고 있다 보면 욕망에 휘둘려 사람의 목숨을 해치는 일에 쉽게 휘말리고 맙니다. 독극물을 사용한 카와다처럼요.)

4. 은왕과 금왕

모리타는 이렇게 긴지의 가르침을 받아 금왕이 되기 직전까지 왔습니다. 세이쿄 마작 이후에는 격변하는 일본의 정치 상황을 보여주는 동시에, 긴지와 모리타가 굉장히 가까워졌음을 암시하는 몇 가지 장면을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긴지가 모리타와 같이 차를 탈 때면 운전대를 잡는 일이 많고, 또 이즈음에서는 아예 뒷좌석에 앉혀놓기까지 해서 일본은 한국과 자동차 예절이 좀 다른 줄 알았지 뭐예요…ㅎ 료헤이가 합류했을 때는 죽어도 본인이 운전 안 하더만요, 긴지 선생님… 그 외에도 긴지 뒤에 모리타가 그림자처럼 서 있는 모습이라든지, 카무이 일족 일을 맡길 때 보면 긴지의 자택에서 커피를 받아 마시는 모리타라든지… 아니 여기서 모리타 옷차림이 너무 가볍지 않아요? 누가 봐도 거기서 하룻밤 잔 것처럼 하고 있잖아! 솔직히 이쯤되면 모리타가 긴지 네 들어가서 같이 한 이불 덮고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친밀해져 있습니다… 두렵다…

아무튼 이쯤 되어서 우리들은 드디어 긴지의 목표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긴지는 아직 까마득한 이야기라고 하지만, 읽고 있는 우리들은 느끼고 있습니다. 긴지와 모리타는 능히 해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앞으로 쉽게 고꾸라질 거라고 보기는 어렵지요. 세이쿄 마작에서는 당초 생각했던 500억 엔에서 3000억 엔까지 따내지 않았던가요. (개인적으로 저는 이때 긴지가 '운명에 혹시란 없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야말로 간지 그 자체) 과거 긴지가 말했던 것처럼, 송곳니와 날개… 이 나라의 아성을 칠 수 있는 수준에 오른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개인적으로 '날개 달린 호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긴 했습니다. 근데 긴지 선생님이 호랑이요? 천 년 묵은 여우라면 이해하겠다만…) 아마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했더라면 두 거악이 탄생하는 것으로 만화는 결말을 맞이했겠지요.

그러나…

5. 철과 금

앞서 철과 금의 상전이에 대해 제시했던 두 가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철이 금이 될 수 있는가? 버블의 광기, 인간의 욕망이 가진 광기는 이를 능히 해낼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철은 금이 되어도 좋은가? 앞서서도 잠깐 언급했는데, 금은 그 성질이 잘 바뀌지 않는다는 것만 빼면 큰 가치가 없는 금속입니다. 순금 엄청 물렁물렁해요. 금은 갈아서 칼로 만들 수도 없고 그걸로 수저 젓가락을 만들 수도, 그릇을 만들 수도 없어요. 정확히는 그럴 가치가 없죠. 과연 철이 금이 되는 것이 진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모리타라는 사람을 들여다 봅시다. 그는 고상한 인간은 아니에요. 굉장히 거칠고, 질박하고. 대신 그는 매우 단단합니다. 쉽게 망가지지 않아요. 살해 위협을 받아도, 카무이 일족 사건처럼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해도 타인을 동정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금이라기보다는 이름처럼, '철'에 어울리는 사람이에요. (테츠오라는 이름도 정말 어딘가에서 성실하게 살아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나요?) 모리타 스스로도 자신의 가치에 대해 잘 알지 못했을 때에는 단순한 철이 아닌 금이 되어 긴지 곁에 서고 싶다고 합니다만…

그런데 카무이 일족 참사에서 모리타는 돈과 물질로는 모든 게 해결되지 않는 것을 깨닫고 맙니다. 쿠니오와 가츠히로가 받은 고통은 앞으로의 안온한 삶이나 물질 같은 것으로는 치유될 수 없습니다. 긴지는 버블의 광기, 인간의 욕망이 가진 광기로는 철을 금으로 바꾸는 연금술조차 가능하며, 물질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없다는 식으로 모리타에게 말해 왔으나… 모리타는 카무이 일족 참사에서 기억해 내고 맙니다. 사실 연금술이란 없고 눈속임뿐이라는 것을요. 아름답게 단조된 철을 보면 그것 또한 빛나 보이지요. 그러나 금이 빛난다고 해서 거기에 비할 바가 될까요? 모리타가 모리타일 수 있는 순수함, 순수한 강철이 가지는 아름다움을 버리고 금이 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일까요?

모리타는 긴지와의 작별을 고하면서, 금이니 은이니 번지르르한 말을 두르고 있었지만 그것이 가진 허구성을 짚습니다. 더 큰 악에 이용되는 것일 뿐, 또 쌓아올린 은과 금으로 정말 소중한 것은 지킬 수 없다는 점을. 아카기도 텐에서 하라다에게 한 이야기인데, 성공은 두르면 두를 수록 인간을 억압합니다. 설령 은왕과 금왕이 된다 하더라도 그 성공이 그들을 조종하여 그들이 진정으로 소중히 여기던 것을 지키지 못하게 만들 것입니다. 이는 모리타가 모리타가 아니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후쿠모토 세계관의 주인공들은 모두 '스스로가 스스로일 수 있음'을 매우 중시하는데, 이것도 상당히 니체적인 인물상들이죠. 심지어 긴지도 히라이 긴지로서 살아가는 것을 강조할 정도로…)

6. 파멸

결국 그렇게 모리타는 떠나 버리고, 긴지는 모든 의욕을 잃습니다. 솔직히 경마조작 에피소드에서는 긴지가 먼저 은행장에게 300억엔을 건 도박을 하겠다고 나서지를 않나, 긴지치고는 굉장히 허술하고 위험천만하게 일을 처리하질 않나… (패배하려고 하는 건 아닌데 조금 무모하게 움직이는 경향이 있지요) 누가 봐도 스스로가 파멸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움직입니다. 거기에 굳이 료헤이를 만날 때 경마장에서 그런다는 게… 이거 너무 모리타 생각이 나지 않나요, 긴지 선생님? 지금 꼭 누구를 그리워하는 것처럼요, 예?

결국 몇 센티미터 차이로 긴지의 파멸은 유예되는데, 이때 긴지가 누군가 자신에게 '이겨라!'라고 명령한 것처럼 느꼈다고 하지요. 왜냐하면 거기서 300억엔을 날리는 건 진정한 파멸이 아니니까요. 진정한 파멸은, 히라이 긴지가 자신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찾아오는 법이겠지요.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긴지가 은왕이 된다는 목표를 달성할 것으로 생각이 되긴 합니다. 다만 그것을 달성했을 때의 긴지는 그동안 모리타가 사랑하고 매료되었던 긴지가 아니게 될 뿐이겠지요… 아마 추악한 노인 하나가 남게 되지 않을까요? 아카기가 하라다에게 말했듯이, 성공이 쌓이다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그 직함을 연기하는 꼭두각시로 전락하게 된다고 합니다. 일본 경제계를 틀어쥔 '은왕'이라는 자리에 더는 히라이 긴지라는 인간이 없게 된다는 것이겠지요… 은왕이라는 직함을 연기하는 꼭두각시만 남을 뿐.

만약 <은과 금> 2부가 나온다면 타락한 긴지를 모리타가 거꾸러뜨리거나, 그를 구원해주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카이지 완결 내면 은과 금 2부 생각 있으시다면서요 후쿠모토 씨… 카이지 완결 낼 수 있는 거 맞죠…?

아무튼 <은과 금>… 정말 재밌었습니다. 초기작이라 그런가 좀 늘어지는 구간이 없다는 점도 아주 플러스 요소였습니다. 솔직히 <아카기>도 와시즈 마작이 너무 길어져서 좀 힘들었어요ㅋㅋ 그래도 재밌긴 한데…

후쿠모토는 자신의 작품에 자본주의 비판을 꼭 넣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은과 금>이 그중에서 제일 노골적인 자본주의 비판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후쿠모토의 니체적인 면은 아카기 시게루라는 캐릭터 안에 집대성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아카기는 13세부터 53세에 사망할 때까지 다 그려져 있으니까… 생일은 밝힌 게 없는데 기일은 공식으로 있는 캐릭터가 있다?)

솔직히 <은과 금> 지금 세 번 정도 정독한 상태인데, 처음 결말 봤을 때는 '뭐지 이 세기말 야오이 감성은…?'이라고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아니 두 사람이 결별한 것도 그렇고, 긴지가 호텔 스위트룸 창 너머로 야경을 바라보며 파멸을 곱씹고 있는 모습… 진짜 너무 세기말 야오이같지 않나요? 미치겠네…

긴모리… 긴모리 합시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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