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4
앞니로 까득 물면 톡 하고 깨지는 느낌은 꼭 단단한 버튼 같다.
캡슐 담배를 사는 버릇이 생겼다. 편의점 계산대에 놓인 형형색색의 담배 광고판은 언제나 가볍게 무시하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눈에 밟혀서. 코끝에 닿았던 강렬한 단 향이 떠오른다. 유혹에 넘어가고 만다. 감질나는 함량의 담뱃갑을 손에 들고야 만다.
아무튼 달아서 조금 구역질이 났다.
이 도시의 가장 좋은 점은 사람이 없다는 거다. 편의점에서 아파트로 향하는 외길에는 낮에도 밤에도 영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편의점 앞에서 캡슐을 깨뜨린 담배 한 까치를 입술에 덜렁덜렁 매단 채 나는 집으로 향한다.
왜 이렇게까지 단 거지.
생각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너무 쉽게 빨린다. 평소에 피우던 빡빡한 던힐을 빨듯이 하면 연기가 훅 들어온다. 캡슐에서 흘러나온 단 향은 덤이다. 그러니까, 불쾌할 정도로 달아진다.
이렇게 달아빠진 게 내 인생에 있어서야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한 대가 전부 타들어갔다. 감질이 나서 한 대를 더 꺼냈다. 이번에는 캡슐을 깨물지 않았다. 그러니 맛이 좀 나았다. 감질이 나는 건 변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달아빠지지는 않았다.
달아빠진 인생을 생각한다.
굴곡이 없는 인생이라는 건......
그건, 어쩌면 나도 성취할 수 있는 인생이 아닌가.
매일 같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우스운 모양의 헤드폰을 쓰고 게임을 한다. 그런 모습을 인터넷 방송으로 송출해 사람들을 웃긴다. 요즘의 세상이란 그런 것만으로도 생활을 연명할 수 있다. 이십 년 전만 해도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다.
달아빠진 인생이다. 하지만 동시에 보람도 있는 인생일 거다. 그것만은 분명하다.
무심코 담배를 깨문다. 한순간 단내가 풍겼다.
이건 역시 내가 피워서는 안 될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반 쯤 태운 담배를 버렸다. 아깝게 뭐하는 거야, 라고 그가 말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착각이다. 그에게 아깝다는 개념이 과연 탑재되어 있을는지 나는 분간할 수 없다.
달아빠진 인생을 살고 있으니까, 그는.
나는 결국 피우던 던힐을 꺼내 입술로 짓이겼다. 만족스러운 정도의 유해물질이 정신을 얼얼하게 가격한다.
씁쓸하고 아리고 또 비린 맛을 묵묵히 음미하다가 유독한 연기를 길게 뿜어낸 후에는 더 이상 단맛이랄 것이 입에 남아있질 않았다.
한두 달 전의 일이다. 내 생일도 좀 남았던 날의 일이다. 김기철이 대뜸 집으로 찾아왔다. 그 당시의 우리는 연락을 하지 않고 있었다. 기철의 일방적인 연락 두절이 원인이었다. 나는 그가 잠적하게 된 이유를 찬찬히 되새기다가 설마 그런 이유로 잠적한 건 아니겠지 하고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이유랄 것은 그뿐이었기에 다소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 은근하게 화가 나 있던 상태였다.
그러니까, 기철이 지금은 애인을 끼고 살고 있고 자신은 기철의 이전 애인이었고. 수십 년의 세월을 거쳐 기철과 자신이 다시 만나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요즘 애들 말로 하자면 썸과 비슷한 행위라고, 기철은 생각했었던 것 같다.
혼자 그렇게 생각해 놓고 양다리 꼴이 될 것 같으니 내빼는 게 얼마나 황당한지......
꾸역꾸역 호감 너머의 감정을 접고 친밀하게 지내려 했던 내 입장은 뭐가 되는지......
하여간 나는 화가 나 있었다. 그리고 기철은 어느 날 갑자기 초인종을 눌렀다. 이 근처에는 앉아서 얘기할 만한 카페가 없기 때문에, 나는 별 수 없이 그를 집 안으로 들였다.
무슨 말을 하려고 온 건지 나는 예상을 할 수 없었다. 피해서 미안하다? 겨우 그런 얘기를 하려고 서울에서 이곳까지 행차하신 건 아닐 거 아니냐. 혹시 내가 돈을 빌리고 갚질 않았나? 나는 내 주위 사람들 중 가장 신용도가 높은 영감님한테도 돈을 빌리질 않으니 (애초에 영감님이 남한테 돈을 내어줄지도 의문이다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는 내 예상 범위 너머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래도 그는 얼마 전에 서 사장님의 부탁으로 뒷골목 의뢰 비슷한 걸 해낸 것 같았다. 조직 폭력배의 집안과 그에게 잘 보이고 싶은 A세력과 그걸 훼방놓고 싶어하는 B세력. 서 사장님은 B세력을 도왔고, 그 덕에 A세력에 쏠렸던 조폭 집안의 관심은 B세력에게로 옮겨졌다. 그 과정에서 기철이 서 사장님을 도운 건 분명하지만, 어떻게 도왔는지에 대해서는 말해주질 않았다.
그 이후 A세력은 자신들의 로비를 훼방놓은 녀석들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어떤 놈팽이들인지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던가 보다. 서 사장님 쪽에 A세력의 연락이 닿고야 만 것이다. 어딘가의 카페에서 간소한 접견을 하자는 요구가 있었고, 서 사장님은 자신의 대타로 기철을 내세웠다.
서 사장님은 얼굴이 팔리고 싶지 않았던 거다. 그러니까, 의뢰 과정에서도, 의뢰의 후처리 과정에서도 자신의 수족인 기철을 부린 거겠지. 한편으로 마흔 두 살의 기철이 여즉 서 사장님의 수족을 자처하는 이유가 있나, 하고 나는 몰래 생각했다. 단순한 친목 도모라기에는 그 리스크가 좀 높다. 하지만 기철은 그것을 받아들인다. 나는 두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고, 그것들은 동시에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첫 번째는 서 사장님에 대한 기철의 호감, 그리고 두 번째는 흥신소 일에 대한 기철의 흥미.
기철은 서 사장님을 대신해 접견 장소로 향했다. 평범하게 사람들이 많은 대형 카페였다고 한다. 카페에 들어서서, 약속했던 A세력의 따까리를 만나 적당한 협박과 언쟁을 벌인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곳에 기철과 내가 아는 사람이 있었다고.
따까리는, 기철과 얼굴을 마주하기 전까지 그와 대화하고 있었다고.
나는 재빠르게 기철과 나의 인간관계망을 그려냈다. 20년의 공백이 있었던 터라 망의 교집합은 썩 크지 않다. 아니, 크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애초에 겹치는 부분이 거의 없지 않나. 의아해 할 새도 없이 기철은 그의 정체를 입 밖으로 뱉었다.
카페 구석 자리에서, 소나무가 따까리와 대화하고 있었다.
그래서, 기철은 그가 어쩌면 수상한 일에 몸을 담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단다.
그와 금전적 관계를 맺고 있는 내가, 이전 모종의 사유로 그에게 신분을 미세하게 들켜버린 내가, 걱정되어서...... 구태여 말해주러 온 거다.
"그냥 친구인 거 아니야?"
나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기철은 몇 번 반박하다가, 내 표정이 변하지 않는 것을 보고 논파를 관뒀다.
그 뒤에 어떤 말을 했더라.
기억이 나질 않는다. 소나무 씨에 관한 일로 머리가 복잡했다. 대외적인 감정의 컨트롤을 세밀하게 조정할 여유는 없었던 것 같다. 어쨌든 기철을 집에서 내보냈다.
그 뒤로는, 생일 카페 앞에서 우연히 마주치기 전까지는, 연락도 만남도 전혀 없었다.
생일 카페 앞에서 우리는 적당한 정도의 화해를 했다. 나는 그렇게 정의내렸다. 하지만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거다. 그가 두 번째의 애정을 느껴버린 이상. 그 멜랑꼴리한 감정을 떼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이상.
메신저 앱에 표시된 그의 생일을 보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또 고민했다.
어떤 축하의 말을 보내는 게 옳을까 하고......
애초에 축하를 하는 게 옳은가 하고......
다 태운 던힐을 마지막으로 빨아들인다.
코가 찡하다.
오늘따라 담배가 아리다.
달아빠진 맛을 봐 버렸으니......
어쩔 수 없는 처사다.
생일 축하해.
즐거운 하루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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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2_cm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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