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2 ss

형법 제319조

K=Potassium by KPo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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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분은 모든 걸 알고 계신다 ]

간결한 문장이 적힌 광고지를 눈앞에 둔 유선은 대단히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동현은 중후한 멋이 있는 테이블 건너편에서 상사의 눈치를 살폈다. 고용주와 고용자의 관계라고는 하지만, 행동을 함께한 지 어느덧 십 년이 훌쩍 넘은 것이다. 서당개도 고작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니까. 동현은 그녀의 표정을 분석하는 데에 제법 도가 터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감정을 읽어보자면, 저것은 분명 상당한 수준의 분노, 짜증, 더하여 증오 정도.

"......시킬 일이 있다면서?"

공석에서는 상사인 그녀에게 존댓말을 쓰지만, 둘 뿐인 사석에서는 반말을 쓰곤 했다. 두 사람이 마주보고 있는 이곳은 대표 변호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아버지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던 곳이다.

유선은 한쪽 벽에 걸려 있는 아버지의 사진을 옆눈으로 흘기다가, 테이블에 너저분하게 흩뜨러져 있던 서류며 파일을 그러모으기 시작했다.

"아빠 친구 아들이 자살했어."

초장부터 대뜸 강렬한 문장을 내뱉는다. 동현은 으음, 하며 낮게 신음했다.

"음, 진 변호사님, 그러니까 아버님의 친구 분의 아드님이? 어쩌다가."

"아마, 이거 때문에."

그리 말하며 그녀는 단출한 디자인의 광고지를 내밀었다. 아까의 간결한 문장이 백팔십도를 돌아 시야에 제대로 인식된다. 그 분은 모든 걸 알고 계신다, 라는 타이포가 정중앙에 배치되어 있다. 타이포를 둘러싸듯 조잡하게 배치된 디자인은 누가 보아도 미려하진 않았으나, 그 언밸런스함이 오히려 신비함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었다.

"......그쪽도 나랑 비슷한 처지였는데, 뭐, 그 사람은 법조계가 아니라 정치계지만, 하여간에 어느날 갑자기 행방불명이 됐었다고."

유선은 파일에서 서류 하나를 꺼내 동현에게 들이밀었다. 경찰이 접수한 실종 신고의 서류다. 서른 몇 살의 건장한 남성이 서울에서 실종되었다는 내용이 사무적인 어투로 적혀 있다.

"집을 나가서, 사이비 종교에 귀의하신 거야?"

진변 아버지와 커넥션이 있을 정도의 정치계 집안이라면 확실히 부유한 편이리라.

유선은 오른손으로 턱을 괴어선, 고개 한번 끄덕이지 않고 긍정의 대답을 읊조렸다.

"집은 나갔지만 완전히 모습을 숨길 생각은 없었는지, 휴대폰도 안 끄고 카드도 꾸준히 사용하셨데. 그래서 거처까진 쉽게 발견했어. 거기까진 좋았지."

"그런데...... 자살을 막진 못했다?"

유선은 두 눈동자만을 굴려 동현을 쏘아본다. 심약자가 본다면 놀라서 나가떨어질 것만 같은 모양의 눈이다.

"경찰이 찾아갔을 땐 그 사람은 거처에 없었어. 어딘가 외출한 거로 판단하고 근처에서 잠복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몇 블록 떨어진 건물 옥상에서 사람이 떨어졌다."

"그게, 그 아드님?"

"그래. 13층 짜리 건물에서 떨어졌으니 당연히 즉사. 실종되었던 사람이 자살 추정자로 발견되었으니 경찰은 사건성이 없다고 판단했지. 자살에 이르른 경위만을 설렁설렁 조사하다가, 그 사람의 거처에서 이걸 발견한 거야."

유선은 검지로 신비한 전단지를 두 번, 톡톡 두드렸다. 손톱은 언제나 단정하게 깎여있다.

"원래 이런 거에 흥미가 많은 사람이었다나. 사이비에 빠져도 별로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집요했대. 애초부터 정신이 이상했던가 보지?"

전단지를 두드리던 손가락을 들어 관자놀이 부근에서 빙빙 돌린다. 누구나 함의를 알아볼 수 있을 법한 제스처다.

"그래서, 그쪽 아버님은 아들의 자살을 겸허히 받아들이려고 하셨다. 그런데 갑자기 경찰 내부의 누군가가 의문을 제기했어."

유선은 파일을 뒤적이다가 서류 두 장을 꺼내어 내밀었다. 별 생각 없이 서류를 내려다 본 동현은 순간 숨을 멈추고 만다. 

두 눈을 단정하게 감고 있는 남자의 얼굴 사진이 크게 인쇄되어 있다. 목 윗부분을 중점적으로 찍은 정면 샷이 하나, 측면 샷이 둘, 후면 샷이 다시 하나. 

생명활동을 중단한 유기물의 화상임은 누가 보아도 명확했다. 창백한 피부 일부분에 떠오른 푸르딩딩한 자국은 상처거나 시반이거나 할 테다. 정면 샷에서 보이는 이마의 상처가 눈에 띈다. 피부를 꿰매긴 했지만 작지 않은 상처임은 확실했다.

유선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브리핑을 계속한다.

"남자는 측면으로 누운 채 발견됐어. 관자놀이 쪽이 박살났던가 목뼈가 부러졌던가 해서 죽었던 거지.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이마의 상처가 너무 심했던 거야. 발견 당시에는 피에 절어서 파악하지 못했다던가. 저게 어느 정도의 상처냐면, 그래...... 누가 머리채를 잡고 벽에 있는 힘껏 처박으면 나오는 정도의 상처라고 하던데."

"떨어지다가 간판에 부딪힌 거 아냐?"

"그러면 모서리에 찍힌 모양이어야지. 이건 평평한 벽 같은 곳에 강하게 부딪힌 상처야."

동현은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시체에 눈을 계속 두고 있기 어려워 시선을 유선의 쪽으로 돌렸지만, 이쪽도 계속 바라보긴 어려운 건 매한가지다. 결국 신비한 디자인의 전단지를 내려다보기나 하는 동현이다.

"......그래서 이건 자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혹이 생겼다. 경찰이 수사를 재개했고, 그쪽의 아버지는 노발대발해서 당장 범인을 찾아내라고 외력을 넣고 있는 상황이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 진변이 고용된 거구만."

"내가 맡고 싶었겠어? 아빠가 억지로 떠넘긴 거야. 골프 치다 만났는데 사람이 나쁜 것 같지 않다, 이런 일로 연을 만들어두면 언젠가는 꼭 보답이 돌아올거다,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아, 짜증나게."

유선은 신경질적으로 테이블 아래의 서랍을 열었다가, 빠르게 닫았다. 그곳에 흡연용품이 있다는 사실 정도는 한참 전에 파악해 두었다. 아마 이 대화가 끝나면 곧장 방을 나가 담배를 피우지 않을까.

"......하여간 이 건을 좀 더 조사해 줘. 지금까지의 수사 경과는 정리해서 메일로 보내줄 테니까. 난 당장 법정 나갈 거 준비하느라 바쁘다."

몇 년 만에 법조계로 복귀한 어쏘에게 이러저러 가르칠 게 많은 모양이었다. 한동안 서류며 상담 업무만 시키는 것 같더니, 이젠 윤변도 드디어 법정에 서는 건가.

유선은 기껏 닫았던 서랍을 벌컥 열고는 담배며 라이터를 주섬주섬 주워들었다.

"책상에 있는 거 다 갖고 나가. 전부 그 사건 서류야. 잘 부탁한다."

동현이 파일에 서류들을 철하는 사이, 유선은 빠른 걸음으로 대표 변호사실을 나가버렸다.

여름의 뙤약볕을 지나 탐정사무소에 도착했다. 그의 사무소는 차 하나 대기도 어려운 골목에 위치해 있어, 자가용을 끌고 다닐라 치면 근처 공영 주차장에 자릿세를 내어야만 한다. 동현은 이미 주차장의 공무원과 월간 계약을 마친 상태다.

주차장과 사무소의 거리는 대략 삼백 미터. 얼마 전까지의 시원한 장맛비는 어디로 갔는지, 이제는 구름 하나 없는 화창한 하늘이 탐정의 정수리를 가열차게 덥힌다. 아스팔트 위에서 일렁일렁 흔들리는 아지랑이를 지나 사무소 현관까지 도달한 것은 좋았는데.

현관의 구식 열쇠 자물쇠가 가로로 돌아가 있었다. 잠금이 풀려있다는 뜻이다. 꼭 잠겨 있을 땐 열쇠를 넣는 틈새가 세로로 서 있으니까.

동현은 후우, 하고 한숨을 쉬며 둥근 손잡이를 돌린다. 문을 열자마자 인공적인 냉기가 피부에 닿는다. 물론 사무소를 나올 때 에어컨을 틀어놓았던 기억은 없다.

"어, 왔어?"

익숙한 목소리가 소파 쪽에서 들려왔다. 싸구려 티가 나는 접대용 3인 소파. 동현이 서 있는 현관 부근에선 푸근한 등받이 뿐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팔걸이 위에서 까딱이는 발까지는 겨우 인식이 되어서. 동현은 문을 닫고 사무실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온다.

"남의 가게 문 좀 따지 마요~ 심장 덜컹했네."

"여기에 훔칠만한 게 뭐가 있다고 그러냐."

민석은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소파에 누워 있었다.

김민석, 올해로 조사원 생활이 대강 이십 년 정도 되는 베테랑. 동현보다 다섯 살 연상. 최근 탐정업이 정식으로 인정되었지만, 그 '탐정'이라는 호칭이 낯부끄럽다며 여전히 '심부름센터 조사원'을 자처하고 있는 남자다.

동현과 민석은 같은 스승을 두었다. 동문생이라고 보아도 좋으리라. 그러나 동현은 제 이름을 내세운 사무소를 개업하고 싶었으므로, 일단은 하산. 민석은 아직 스승의 슬하에서 일하고 있는 모양이다. 요즘은 나이를 먹어 간단한 일만 수임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그게 과연 진실일는지는 모르겠다.

동현이 하산하고 난 뒤로도 둘의 교류는 계속되었다. 하산했다고는 하지만 동현은 여즉 믿음직하지 못한 탐정이었기 때문에, 스승도 민석도 그를 챙겨주고 있는 게 아닐까. 그는 아직도 베테랑인 민석의 조사 스킬을 어깨 너머로 훔쳐 배우기나 하고 있다.

"손에 든 건 뭐냐."

민석이 눈동자만 움직여 물었다. 소파에 팔자 좋게 누워선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는 꼴이 꼭 백수의 전형적인 모습 같다. 동현은 묵직한 파일을 책상에 올려두곤 바퀴 달린 의자를 꺼내어 앉았다.

"일, 감."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을 주어 말해본다.

"또 그 로펌 일이지?"

"어, 어떻게 아셨어요?"

"본업이 비서 아니었어?"

"아이, 아니라니깐."

흥미가 돌았는지 주섬주섬 몸을 일으키는 민석. 가벼운 반팔 티셔츠에 시원한 반바지 차림이다. 집 앞 공원이라도 놀러나온 듯한 차림새에 동현은 픽 하고 코웃음을 친다.

"뭔데? 같이 좀 보자."

"도와줄 거예요?"

"재밌어 보이면."

동현은 허리를 낮춰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책상 오른쪽에 놓인 모니터가 은은하게 빛난다. 별 거 아닌 일은 금방금방 해치우는 유선이니까, 분명 이미 메일을 보내두었으리라. 그가 클릭 몇 번을 하고 있는 사이 민석은 소파에서 일어나 책상의 서류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뭐야, 사이비 아냐?"

"정치인 아들이 사이비를 믿다가 살해당한 모양이라던데요."

메일에 첨부된 멋진 용량의 파일을 다운받으며 민석을 곁눈질한다. 머리가 깨진 시신의 사진을 무표정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영 알 수 없는 형이다.

"정치인 아들씩이나 되면서 왜 사이비 같은 걸 믿는대?"

"그러게 말입니다."

동현은 무거운 용량의 파일을 열고 브리핑을 시작했다.

......실종자의 자살이 아니라 실종 후 살인이라는 의혹이 강해진만큼, 그쪽 경찰들이 열심히 조사하고 있는 모양이에요. 그 결과가 이 묵직한 서류철이라는 말씀. 정치인 A씨는 벌써 변호인까지 고용했죠. 네, 무려 저희 제이 로펌의 대표 변호사 님을. 사람 하나 죽은 거 가지고 좀 오바하는 것 같긴 한데. 뭐, 아들이 죽었다니 그럴 만도 하죠. 그래서 변호인 님께 공유된 경찰 측 자료를 로펌 소속 조사원인 제가 날름...... 했다, 이겁니다. 너무너무 질이 좋은 고급 정보죠.

어디까지 읽어보셨어요? 시신 검안서? 그럼 그 뒤 보고서가, 어, 아드님이 얽힌 사이비 얘기부터. 오케이.

아드님이 사이비 종교를 믿으러 천안까지 내려갔다, 이건 그의 거처를 조사하면서 기정사실이 되었죠. 그럼 그 사이비는 대체 무슨 특징이 있길래 서울의 도련님을 천안까지 끌어들였는가. 경찰이 외력에 난리가 나서 조사했습니다. 그에 관련된 서류가 형이 지금 보고 있는 보고서.

간단히 말하자면, 전국구 사이비 종교에서 갈라진 하나의 분파예요. 몇 년 전부터 천안 지역에서 세력을 슬금슬금 넓히고 있고요. 지금에 와서는 원본이 되는 사이비와 성향이 아주 달라졌다고 합니다. 원본 사이비는 신도를 하나라도 더 늘리려고 지상에서 포교를 하고 있지만, 분파는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고 매력을 느낀 신도희망자들이 스스로 찾아오는 판국이에요.

도련님도 어딘가에서 소문을 듣고 천안까지 내려간 거겠죠? 예? 사이비 이름이요? 아, 거기 안 써있어요? 그럼 뒷장에 있을 건데. 잘 찾아봐요. 

......네, 장렬교라고 합니다. 장렬하다의 장렬, 이 아니라, 장막 장에 찢을 렬을 써서 장렬. 장막을 찢는다는 직관적인 이름이에요. 왜 장막을 찢느냐? 교주의 말로는, 우주적인 존재가 평범한 사람들은 인지할 수 없는 장막을 만들어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답니다. 그러니 그 장막을 찢으면 우리는 개안하여 우주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 그것에 가장 가깝게 도달한 교주님의 말씀을 받들어 장막을 찢고 신세계를 만들어 가자...... 무슨 헛소리냐고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아까 장렬교는 입소문을 타고 퍼지고 있다고 했죠? 그 포교 아닌 포교 방법이 좀 독특해요. 요즘 어린 애들이 사주니 타로 같은 거 재미삼아 많이 보잖아요. 형도 본 적 있어요? 없을 줄 알았어요, 헤헤. 아무튼 장렬교는 사주며 타로 노점상을 세워서 포교를 해요. 어떻게 하냐면, 그냥 사주를 봐 주는 거예요. 그리고 용하다고 입소문이 나죠. 사람이 점점 모여들면 그때 손님들에게 넌지시 말하는 거죠. 자기를 이렇게 용한 사주가로 키워준 스승이 있는데 그쪽으로 가 보지 않겠냐고. 그러면서 장렬교 본부 주소가 있는 명함을 건네주면 끝.

......그런 거로 영악한 요즘 애들을 속일 수 있겠냐고요? 미래를 점치는 건 심리학적인 효과에 불과하다고요. 형, 형이 사람 속일 생각만 하면서 사니까 장사치들이 우스워보이는 거예요. 오케이, 형 말빨은 제가 인정하는데. 생각보다 많이들 간답니다. 그리고 거기서는 좀 더 자세한 점을 쳐 줘요. 점이라기보단 '예언'에 가깝다나. 예언이 맞아 떨어지면 그대로 포교가 끝나는 거죠. 자기 앞날 알기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테니까. 설령 싫다 해도 궁금해서 한두번은 더 보러 갈 걸요? 그러면서 사이비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자꾸 한심하다는 표정 짓지 마요. 애들이 힘드니까 그런 걸 믿는 거겠죠......

아, 이제 사건 설명을 해야지. 장렬교 본부를 파악한 경찰은 당장 쳐들어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불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그걸 쉽게 말해주겠어요. 다들 모르는 일이라고 했죠. 게다가 신도들이 하는 증언이라는 게, 그 신도 분은 뭔가 정신이 불안정해 보였다, 기도 시간에 허공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랑 말도 안 하고 항상 혼자서 다녔다. 뭐 이런 거였대요. 경찰이 답답했겠죠? 자살 정황만 키워주고 있으니까.

장렬교 본부는 마침 그 신도, 아드님이 추락사한 건물 7층에 있었어요. 위아래가 병원으로 꽉꽉 찬 알짜배기 빌딩에 어떻게 입주했는지 신기하긴 하네요. 돈을 많이 찔러주기라도 했으려나. 하여간 교주를 불러내는 데에도 실패한 경찰은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발자국은 고사하고 체모 같은 조그마한 증거도 하나 없었어요. 아드님이 추락한 날은 비바람이 엄청 심했거든요. 전부 빗물에 쓸려나갔겠죠. CCTV? 네, 바람이 너무 거칠어서 그 근방 일대가 잠시 정전이 되었었답니다. 하필이면 아드님이 그때 추락하신 거고.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시신의 손톱에서 남의 피부 조직이 발견됐습니다. 이걸 왜 그제서야 발견했냐고요? 사실...... 시신의 열 손톱이 전부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어요. 콘크리트 벽을 열의 넘치게 긁어대기라도 했는지, 깨지고 찢어지고 난리도 아니었답니다. 왜 사진이 없냐뇨. 사진으로 남길 필요가 없는 정보니까 그렇죠. 경찰은 거기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DNA 분석을 의뢰했던 거예요. 간단한 분석 결과 피부 조직의 주인은 남성이라는 게 밝혀졌고요.

그 후 장렬교 신도들이며 간부들을 있는대로 수색해 머리카락을 얻어냈대요. 피부 조직의 DNA와 대조하기 위해서였죠. 사이비 특성 상 도망가고 숨는 관련자들이 많아 모든 사람의 머리카락을 뽑을 순 없었지만, 그래도 60퍼센트 정도는 얻어냈다고 하고. 얻어내는 족족 과수연으로 보내서 DNA를 대조한 결과...... 유사한 사람이 발견되긴 했어요.

네, 일치가 아니라 유사. 그 말인 즉슨 피부가 긁힌 사람과 혈연이라는 거죠. DNA의 주인은 60대 후반의 여성. 조사 결과 남자 형제는 없고, 아버지는 당연히 돌아가셨고. 그런데 슬하에 딸과 아들이 한 명씩 있었답니다. 

경찰은 자녀들을 조사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게 웬걸. 딸은 장렬교의 간부고, 아들은 일찍이 독립해서 몇 년 간 얼굴을 보지 못했다고. 피부 조직 DNA의 주인은 남자인데도 말이죠.

......여기까지가 현재까지 경찰이 조사한 내용이에요. 그 다음은, 유선...... 아니 대표 변호사 님이 덧붙여 보내주신 자료. DNA가 유사했던 60대 후반 여성의 호적이네요. 음, 변호사 님의 코멘트. 혼인관계증명서를 떼어본 결과 이혼 후 재혼한 것으로 확인 됨. 전 남편 사이에도 아들이 하나 있으니 염두에 둘 것.

아, 전 남편이랑 장남 장녀를 낳았고, 이혼하면서 장녀를 데리고 갔네요. 그리고 재혼하면서 장녀 성을 새아빠 걸로 갈아치웠고, 지금의 남편과 아들을 한 명 더 낳았다. 편의상 차남이라고 하죠.

장녀가 지금의 장렬교 간부, 일찍이 독립했다고 주장하는 차남. 전 남편에게 놓고 온 장남은...... 대치동에서 학원 교사로 일하고 있네.

예에, 두 아들 중에 정치인 아드님을 죽음으로 몰고 간 범인이 있겠죠. 안 그래도 경찰이 열심히 조사 중일 거예요. 이 상황에서 변호사 님이 저한테 원하시는 건...... 뻔해요.

확증 찾기.

경찰이 조사하는 사이에 장렬교가 무슨 손을 쓸지 모르니까요. 어쩌면 경찰 안에 장렬교가 있어서 내부 상황을 흘릴 수도 있는 거고. 장렬교도 경찰도 서로를 주시하고 있을 테니, 그 바운더리 외의 제삼자인 제가 몰래 정보를 캐내 범인을 범인으로 몰아갈 수 있는 확증을 얻어낸다.

......뭐, 뭐예요. 왜 그런 눈으로 봐요. 고정 클라이언트가 있어서 좋겠다뇨. 그야 좋긴 한데. 하하핫. 그래서 형, 도와줄 거예요? 천안까지 내려가야 할 것 같은데...... 언제 가냐고요? 당장 내일 가야죠. 한시가 급한데 여유 부려서 좋을 거 없...... 

아...... 내일은 일이 없으니까 같이 가 주겠다? 형, 근데 대체 무슨 부업을 하고 있는 거예요? 영감님한테 물어봐도 딴따라라고, 이상한 소리만 하시고...... 딴따라 맞다고? 아이, 거짓말 그만하고. 아, 형~

......아무튼, 내일 아침 전까지 작전이랑 집합 장소 얘기해 드릴게요.

작전도 형이 짜겠다고?

나참, 그럼 여기서 작전까지 다 짜고 가요. 도구 뭐뭐 있어요? 도청기? 위치 추적 장치? 아, 제것도 있어요. 보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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