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 제151조
누군가 연구실의 문을 작게 두들겼다. 유진은 부재중인 교수를 대신해 들어오라는 말을 한다. 이 애매한 저녁 시간에 연구실에 올 법한 사람은 정해져 있다.
철제 문이 끼익, 하는 소리를 내며 열린다. 그 틈으로 유준이 머리를 빼꼼 들이밀었다.
"교수님은요?"
"회의 중이신가 봐. 조만간 오실 거야."
유준은 조심히 문을 닫고 연구실 안으로 발을 들였다. 낮고 길쭉한 테이블의 세 면에 배치된 소파를 보고 어디에 앉을까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유진의 맞은 편 소파에 엉덩이를 걸쳐 앉는다. 하기사 일인용 소파는 상석이지.
"여자친구가 뭐래?"
"좀 이상한 사람이었대요. 자기한테는 세상의 이치를 통달할 권리가 있다고 계속 중얼거렸다던가."
"......거기 교리가 그거 아냐? 세상의 이치를 알아내는 거."
"그렇죠."
"그럼 너도 나도 네 여자친구도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건데."
"그런 거죠."
"객관적인 판단을 못하고 있구나......"
"그렇습니다."
유진은 입가를 비뚜름하게 하며 말을 맺었다. 유준은 들고 온 종이봉투에서 장렬교의 배포물을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최소한의 수량만 뿌리는 전단지에서부터, 교리가 적힌 얇은 소책자, 기도를 드릴 때 쓰는 안대, 두 사람에게 주어진 '예언'이 적힌 종잇장까지.
'너는 사흘 안에 검으로 죄를 범하게 될 것이다.'
'너는 사흘 안에 약으로 죄를 범하게 될 것이다.'
'너희,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지? 그 힘을 교주님을 위해 사용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인데.'
사람의 이성이 어떤 상태인지 알고 싶다면, 그의 눈을 바라보면 된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들 하니까.
유진은 '예언'을 읊은 간부의 눈을 바라보았다. 기묘한 기하학적 무늬가 새겨진 안대로 가려져 물리적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유진은 사람의 '기'를 볼 수 있다. 늘상 머리카락으로 가리고 다니는 왼눈으로 말이다.
태어날 때부터 왼눈의 각막이 기이한 채널과 연결되어 있었다. 생전 무당 일을 하셨던 외할머니의 영향이다.
슬쩍 머리카락을 넘겨 살핀 그의 눈은, 흐려질대로 흐려진 채였다.
두 사람은 장렬교에 입회하기로 했다. 이미 장렬교 신자인 유준의 여자친구의 도움을 받아.
카페에서 뛰쳐나온 유준은 제 애인을 답싹 붙잡았다. 그리곤 그대로 카페로 데려왔다. 놀란 토끼눈이 된 여자친구에게 그녀가 선호하는 음료를 한 잔 안겨주곤, 사전에 유진과 합의해 준비했던 변명을 늘어놓았다.
요즘 학교 안에 새로운 종교가 유행하는 걸 알고 있다. 내년에 졸업반이니 슬슬 마음이 갑갑해져 와서 종교라도 믿어볼까 했는데. 그 종교를 믿는 애들은 얼굴 표정이 이상하게 밝아 보이더라. 저 건물에 그 종교 시설이 있는 것까진 알아냈다. 그런데 시설에 들어가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마냥 고민하던 차에 네가 그쪽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따위의 말을 적당한 미사여구를 섞어 능숙한 구어체로 전달했다. 비언어적 연기를 하는 것도 물론 잊지 않고. 결론만 말하자면, 종교 선배인 네가 입회의 중개인이 되어줄 수 없겠냐는 호소.
혹여 갑작스러운 입회 중개를 경계하지는 않을까 걱정했건만, 그녀는 허무할 정도로 쉽게 승낙했다. 오히려 애인인 유준이 같은 종교를 믿고 싶어했다는 사실에 크게 기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분은 정말로 모든 걸 알고 계시니까 오빠에게도 큰 도움이 될 거라며.
유준은 앞날을 아는 게 제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될는지 잠시 고민했다. 일단 현 여자친구와의 관계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애당초 진지하게 미래를 약속한 사이도 아니니 도움이 되어봤자지만.
유진은 근처에 사는 외가 삼촌이라고 소개했다. 그녀는 어쩐지 둘이 닮은 것 같았다며 살갑게 굴었다. 타인의 인지를 왜곡시키는 일은 이렇게나 간단하다.
여자친구에게서 장렬교 본부의 위치가 표시된 작은 명함을 하나 받을 수 있었다. 편의상 명함이라고 지칭했지만 사람의 이름이랄 것은 적혀있지 않다. 다만 장렬교라는 타이포가 직사각형의 가운데에 위치해 있고. 그것을 둘러싸듯 드문드문 배치된 데코레이션이, 어딘가 위태위태한 느낌을 준다.
"이 명함을 가지고 문을 열면, 그 분은 언제나 어린 양을 구원해 주셔."
두 손을 맞잡고 황홀한 얼굴로 그리 말하는 모습이 역시 멀쩡하진 않아 보였다.
유준은 여자친구를 설설 어르고 달래선 귀가시켰다. 오늘은 우리 집에 안 와? 라는 어리광에 내일은 꼭 갈게, 하고 대답하니 바로 옆의 유진이 입꼬리를 실룩대더라.
"......재밌으세요?"
"한창 때다 싶었어."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확인하며 소곤대는 두 사람이었다.
유진은 휴대전화로 시각을 확인했다. 오후 세 시를 조금 넘었다. 카페의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햇살은 무척이나 따가워 보인다. 창가 테이블에 남은 세 잔의 유리컵엔 녹다 만 얼음만이 몇 개 씩 담겨있을 뿐.
"어떻게 할래? 당장 가 볼래, 아니면 좀 더 준비를 하고......"
"가죠. 쇠뿔도 단김에 빼라잖아요."
유준은 제 머리칼을 슥슥 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게 벌써 일주일 전이네요."
설명을 마친 유진이 시선을 은사에게로 향했다. 연구실의 주인은 어느새 안대를 집어들어선 관찰하고 있다. 긴 속눈썹이 느리게 껌뻑이는 모습을, 유진은 잠시 바라보았다.
선이 가는 얼굴이 천천히 이쪽을 향했다. 다갈색의 눈동자가 조명 빛을 받아 미려하게 번쩍인다.
"너희에게 주어진 예언을 보니 평범한 사이비가 아닌 건 확실하구나."
"네. 그 친구에게 명함을 받자마자 바로 입회해서 예언을 들었으니까요. 평범하게 사전조사를 할 만한 시간은 전혀 없었죠."
은사는 소파 앞 테이블에 안대를 내려놓았다. 자리에서 일어서는가 싶더니,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가 그 위에 어질러진 잡다한 무언가를 뒤적이기 시작한다. 대부분이 책이나 서류 따위의 종이뭉치다. 교수 양석민이라고 쓰인 삼각기둥형 명패는 그것들에 밀려 책상 모서리에서 아슬아슬하게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예언이라기엔 조금 허술하지 않니? 모호하구나. 신의 힘을 빌어 앞날을 내다보는 것치곤 질이 떨어져."
목적하는 물건이 잘 보이지 않는지 아예 책상 앞 의자에 앉아버린 석민이다. 장신의 몸을 떠받드는 의자의 스프링이 괴롭게 끽끽댄다. 유준은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교수의 행동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그는 항상 피로에 쩐 표정이니 실상 별로 피로하진 않으리라.
"삼 일 안에 검으로 죄를 범하게 된다면, 그건 분명히 장렬교를 향한 죄일 텐데 말이죠. 그것까진 내다보지 못한 건가......"
"미성숙한 술사라면 그럴 만도 하다만. 장렬교라면 분명 몇 년 전부터 있지 않았니? 그 사이에 성숙하지도 못했다니 이거 참 실망이 크구나."
"교수님이 감지하지 못하셨다니 그리 위험한 집단은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그 정반대일 수도 있지. 하지만 너희들의 얘기를 들으니 큰 위해가 될 것 같진 않고."
석민은 그제야 바삐 움직이던 손을 멈추었다. 붉은색의 기이한 언어가 적힌 누런 종잇장을 들고 있다. 외견 상의 특징으로 보아 떠오르는 건, 당연하게도 부적이다.
"장렬교에서 청년이 떨어져 죽은 건 나흘 전이었나?"
"어, 알고 계셨네요?"
"나도 인간 세상의 뉴스 정도는 본단다."
"뉴스에 장렬교라는 이름도 실렸던가요?"
가만히 두 사람을 번갈아보던 유준이 입을 열었다. 종잇장에 무언가를 써 넣던 석민은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한다.
"동료 교수한테서 들었지.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사이비 같은 게 횡횡하는지, 라면서 투덜대더구나. 그 사람은 언제나 말이 많아서 좋아. 남몰래 소식통으로 애용하고 있단다."
필기를 마친 부적을 옆으로 밀어놓는가 싶더니 이젠 서랍을 열어 뒤적인다. 다양한 재질의 물건이 목재 서랍 안에서 굴러다니는 소리가 일정한 데시벨로 들려온다.
"그게, 그 때 저희가 그 건물에 있었습니다."
"으응?"
"밤 예배를 드리고 있었거든요. 교회나 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의식이었습니다. 큰 강의실 정도 되는 크기의 방에서 오십 여 명이 다같이 신상에게 절을 드리는 방식인데."
행동을 멈춘 석민이 유준을 빤히 바라본다. 유준은 시선에도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특이점이 있다면, 역시 절을 하기 전에 안대를 찬다는 점이겠네요. 안대를 하고, 절을 드린 다음에, 안대를 푼다."
"......아, 저게 안대였니?"
"네."
"모양새가 조잡해서 말이다. 머리띠나 완장 같은 건 줄 알았구나."
실제로 타인이 본다면 안대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퀄리티긴 했다. 기다란 끈 가운데에 미묘한 모양의 다면체를 그려놓은 게 전부였으니까. 석민은 곱슬대는 머리칼을 한번 쓸어올리기나 한다. 하나로 길게 묶은 장발은 진한 갈색. 기장은 대략 날개뼈 말단까지.
"아아, 안대라...... 그렇다면 그 중 하나겠군."
"짐작가는 게 있으십니까?"
"죽은 청년은 보았니?"
석민은 다시 서랍장을 더듬거린다.
"공교롭게도, 그 날 처음으로 봤습니다. 봤다기보단 스쳤다고 하는 편이 나으려나. 그렇죠? 선배."
허리를 숙여 잡념을 골똘히 생각하던 유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머리카락으로 왼눈을 가리고 있지 않다. 은사의 곁에서는 항상 두 눈을 개방하는 그다.
"응. 신자들이 말한 '이상한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걸 바로 알겠더라."
밤 예배를 드리기 전, 여유 시간이 남아 장렬교 시설을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지난 며칠 간의 예배로 이 시설이 '간부 구역'과 '신도 구역'으로 나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진과 그의 은사가 목표하는 아이템은 분명 간부 구역에 있을 것이었으므로, 어떻게 하면 저 안에 발을 들일 수 있을까 머리를 굴리던 참이었다. 사실 굳이 머리를 쓰지 않아도 실력 행사로 나가면 그만이긴 하나......
정문 쪽에서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먼저 반응을 보인 건 유준이었다. 후배를 따라 고개를 돌린 유진은 처음 보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눈이 참 저렇게 죽어있기도 어려운 일이다. 유진은 그를 보자마자 생각했다.
물론, 사이비 교단이니만큼 이 안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멀쩡한 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모두들 정신과 이성의 일부분이 소실되어 있다. 그러나 이 남자의 이성은 그야말로 전무. 상실 그 자체인 터라. 유진은 그가 대체 무엇을 위해 육신을 이끌고 있을는지 염려했다.
남자는 벌겋게 충혈된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성큼성큼 건물 내부로 걸어들어왔다. 멍하니 서 있는 유진과 유준을 지나쳐 당당하게 간부 구역으로 직진했다. 남자의 발소리라도 들은 건지, 간부 구역의 방문 하나가 열리는가 싶더니 여자 한 명이 머리를 내밀었다. 예배 때 자주 보았던 얼굴이다. 신자들의 가장 앞에 서서 절을 올리던 간부 아니던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요."
유준이 지근거리에서 속닥였다. 유진은 고개를 주억대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저 안에 뭔가 중요한 게 있지 않을까요?"
"그냥 간부 대기실 아니야?"
"미친 사람한테 순순히 문을 열어주는 게 수상해요."
"음, 그럼 나 대신 기억해 둬."
혹여 무슨 소리라도 들리지 않을까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허사였다. 시간을 확인한 두 사람은 얌전히 예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예배는 간결한 절차로 이루어진다. 많은 수의 신자들이 오와 열을 갖추어 앉아 스스로 안대를 쓴다. 이후 간부의 목소리를 따라 절을 한다. 몸을 바닥에 붙이는 시간은 30초 가량. 또 다시 간부의 목소리를 따라 몸을 일으킨다. 스스로 안대를 벗는다. 차례대로 예배실을 나간다.
그런데, 이 날의 예배에는 약간의 이변이 있었다. 안대를 벗어도 눈앞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신도들의 불안한 웅성임이 금세 예배실을 가득 채웠지만, 단순 정전이라는 간부의 말에 소란은 곧 사그라들었다.
유진과 유준은 휴대폰 조명에 의지해 예배실을 나갔다. 그것은 주변 신도들도 마찬가지라, 주위가 제법 환해지는 효과가 있었다.
희끄무레한 액정에 표시되는 시각은 밤 열한 시. 이 건물의 다른 세입자들은 죄다 의사다. 24시간 영업하는 병원이 있지는 않은 듯하니, 정전 소동에 휘말린 건 장렬교 뿐이리라.
"밖에 비 엄청 오는 거 같은데."
"차 가져오셨어요?"
"어. 난 괜찮은데 유준이 네가 걱정이다."
"태워주셔야죠."
"비가 얼마나 오면 정전이 된대."
"태워주실 거죠?"
실은, 차에 기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유준을 데려다 주려면 필히 주유를 해야 할 것이었다. 이 근처 어디에 주유소가 있더라, 하며 유진이 고민하던 때에.
누군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먹먹한 걸 보니 가까운 곳은 아니다.
뒤뚱뒤뚱 정문으로 향하던 신도들이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작게 난 창문 쪽이었다. 대로변을 바라보고 있어, 그럴싸한 시트지를 붙여 위장해 둔 창문이다.
"사람이 떨어졌어!"
그런 어렴풋한 외침이 세찬 빗소리를 뚫고 들려왔다.
"그래서 당장 계단을 뛰어내려갔어요. 정전이라 엘리베이터가 먹통이더라고요. 119에 가장 먼저 신고한 사람은 근처를 지나가던 주민이었고, 저희는 괜히 휘말리기 싫어서 구급차 오기 전에 퇴각했죠."
"머리가 깨진 거 외에도 손톱이 열 개 다 망가져 있었습니다. 벽을 피 나도록 박박 긁은 것처럼요. 그것들 말고는 특이점이 딱히 없었습니다. 주머니라도 뒤져보곤 싶었지만 그건 너무 눈에 띄고."
"교단에서 무언가를 보고 제대로 미쳐버린 모양이구나."
석민은 소파의 상석으로 복귀했다. 아까의 부적에 더불어, 서랍에서 찾은 묘한 모양의 흰색 돌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의 의아하다는 얼굴은 본 척도 않는다.
"미쳐서 스스로 떨어졌거나, 아니면 감당할 수 없어서 떨어뜨렸거나. 둘 중 하나겠어."
"......감당할 수 없다뇨?"
유진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묻는다.
"그건 너희들이 알아봐 줬으면 좋겠구나. 이미 죽은 사람이니 지금의 우리와 별 상관은 없겠지만."
석민은 눈웃음을 치며 두 사람을 번갈아 본다. 선이 가는 예쁘장한 얼굴은 듬직한 체구와 상당히 대조적이다.
"그 청년이 죽고 벌써 나흘이 지났는데, 장렬교 안에선 어떤 움직임이 있지?"
"장렬교 안보단 밖에서 이런저런 움직임이 있었죠. 예배하는데 경찰이 벌컥 찾아오기도 하고, 머리카락을 뽑아가기도 하고."
"너희도 뽑혔니?"
"아뇨. 은근슬쩍 도망쳤어요. 공권력이랑 얽히면 귀찮으니까......"
유진은 어깨를 조금 움츠렸다.
"잘했구나."
의외의 답변은 아니었다. 은사와 필드 워크를 나갈 때면 항상 경찰의 눈을 피하곤 했으므로. 이계의 힘을 빌린다 한들 일단은 현세에 발을 붙이고 있는 몸. 그들의 질서를 부러 어지럽히진 않되 꼬리가 잡힐 만한 일은 하지 않을 것. 이것이 필드 워크의 대원칙이었다.
안대를 만지작대던 유준이 시선을 들어 대화에 참여한다.
"시신의 손톱에서 범인의 DNA가 발견된 것 같습니다. 머리카락은 유전자 대조를 위해 뽑아간 거겠죠. 그런데 유전자 대조로 범인은 이미 밝혀졌답니다. 늙은 여신도의 아들이라고 하던데요. 선배, 예배 때마다 앞에 나와 있던 간부 기억하죠?"
떨어져 죽은 남자를 간부 구역 안으로 들인 사람이기도 하다. 유진은 가볍게 고개를 주억였다.
"그 간부가 여신도의 딸이래요. 즉 범인은 간부의 남자 형제인 거죠."
"어머니가 신도에 딸이 간부라면, 아들도 당연히 장렬교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글쎄요. 그 모녀, 장렬교 초기 멤버라 교단 안에서는 나름 입지도 있고 유명하기도 해요. 근데 아들 이야기는 한번도 나온 적 없다고...... 여자친구가 그러던데. 그래서 다들 이상한 일이라 여기고 있답니다."
유준의 여자친구는 그가 장렬교에 입회한 것을 계기로 더욱 유준을 따르는 모양이었다. 이 일만 끝나면 헤어져야겠다고 투덜거리던 그의 짜증스러운 얼굴을 떠올리는 유진이다. 여자친구를 개심시킬 생각 같은 건 하지 않는 건가......
"뭐, 신도들이 모르는 곳에서 비밀스러운 업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꼭꼭 숨겨야만 할 일, 이를 테면, 신께 산 제물을 바친다던가......"
DNA가 발견됐다면 그건 그가 그 장소에 있었다는 방증이다. 무척이나 물리적이고 현실적인, 평범한 세계에 어울리는 과학적인 증거. 거칠게 말하자면 그 증거를 파헤치는 일은 민속학 연구 동아리의 활동 범위가 아니다.
남자가 떨어져 죽은 지 나흘이나 되었으니 경찰의 수사도 어느 정도 진척이 되었으리라. 어쩌면 신도의 아들, 간부의 남자 형제를 범인으로 몰고 갈 결정적인 증거를 이미 찾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경찰이 장렬교에 들이닥치는 건 시간 문제고. 행동대원들이 벌떼처럼 몰려와 장렬교 본부를 구석구석 수색한다면...... 그들이 지닌 '예언의 원천'을 회수하기 어려워진다.
"행동을 빨리 하는 게 좋겠구나."
뺨에 한 손을 대고 골똘히 생각하던 석민이 입을 열었다. 마음이 통하기라도 했는지 유진의 결심과 동일한 지시를 내린다.
두 사람의 휴대전화가 진동한 건 그 직후의 일이었다. 아직 눈에 익지 않은 Ui의 메신저 앱이 몇 번 점멸한다.
장렬교는 보안이 철저한 국외 메신저로 알림을 보낸다. 유진은 장렬교에 입회한 후 처음으로 이 메신저를 접했다.
"내일 아침 아홉 시까지 본부로 집합하라는데요."
유준이 액정을 내려다보며 메시지의 내용을 읊었다.
"낌새가 별로 안 좋은데. 가실 거죠? 선배."
"안 갈 수 있나."
석민은 두 사람의 앞으로 무언가를 쓱 밀어주었다. 아까의 부적 비스무리한 종잇장과, 기묘한 모양의 흰색 돌멩이다.
부적은 A4 용지를 사등분한 크기. 돌멩이는, 이걸 무슨 모양이라고 하면 좋을까. 한 발이 부러진 테트라포드? 그보다 좀 더 넓죽하긴 한데.
"통행을 막는 부적이란다. 문 앞에 붙이면, 그곳에 문이 있다는 인식을 회피할 수 있지."
유진은 제 손 위에 형용하기 어려운 모양의 돌을 올려놓는다. 손바닥의 6할 정도가 가려졌다.
"이 돌은 뭔가요?"
"호출 버튼. 두 손으로 삼십 초 동안 감싸고 있으면 된단다."
"호출이요? ......뭘 호출 할 수 있어요?"
"나를."
두 제자는 잠시 말이 없었다.
"장렬교의 원천이, 만약 내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너희 둘로는 상대하는 게 버거울 수 있어. 아아, 아니. 버겁다기보단 파훼법 자체를 알지 못하겠구나."
석민은 하나로 묶어내린 긴 곱슬머리를 주섬주섬 풀었다. 듬직한 등 뒤로 풍성하게 퍼지는 장발은 역시나 언밸런스하다. 다시 묶으려는지 머리끈을 손가락으로 크게 늘인다.
"그러니, 무언가 좋지 못한 것, 알 수 없는 것을 만나면 나를 호출하렴. 그게 무엇이든 간에 너희보다는 대처를 잘 할 수 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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