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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챠 타입 2

1차

“레겐은 한 번 생각해본 적 있나요? 만약 이 세상이 평화롭지 않았다면, 그런 생각이요.”

“……그다지 해본 적이 없습니다.”

최근 들어서 데시드는 제가 생각한 걸 레겐에게 들려주었다. 레겐은 문자 그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솔직하게 말했을 뿐이다. 데시드는 마치 재미없다는 듯 레겐을 보았다. 어쩐지 어린애의 투정처럼 느껴지는 걸까. 레겐은 그제야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데시드가 말한 평화롭지 않은 세상을.

아마 사람들의 욕심이 가득하다면 지금과 달라질 수 있다. 제 이득만을 취하다 보면 차별받는 집단도 나오겠고, 좋지 못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겠지. 그 상황에서도 레겐은 위에서 시킨 임무를 충실하게 해내겠지. 여기까지가 레겐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였다. 레겐은, 다른 세상이 찾아와도 지금과 똑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았습니다만, 저는 다를 게 없을 거 같습니다.”

“재미없네요.”

자신에게 무슨 대답을 기대한 걸까?

애초에 두 사람이 만난 건 그리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이제 서로에게 조금씩 익숙해질 무렵이라고 해야 하나. 레겐은 어째서 데시드가 제게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알지 못했다. 단순히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을 상대가 없어서 그런 걸까? 그럴 수 있겠다. 만약 그렇다면 자신은 영 적합하지 않은 상대임에도. 레겐은 조용히 데시드를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데시드는 레겐이 하고 싶은 말을 알아차린 듯했다.

“거창하게 생각한 것도 아니에요. 딱히 그런 걸 바라지도 않았으니까. 그래도 상상이라는 건 나름 재밌잖아요. 돈도, 시간도 들지 않고.”

아, 시간은 드는 편인가? 데시드가 작게 중얼거렸다. 바로 그의 곁에 있었던 레겐에게도 똑똑히 들렸지만, 그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상사의 혼잣말 하나하나 반응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레겐은 배웠다.

과연 팀장님은 제게 무엇을 바라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마땅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었기에, 레겐은 무례라는 걸 알면서도 감히 물어보았다.

“실례지만, 어째서 팀장님은 그런 생각을 하시게 된 겁니까? 현재 세상은 평화로우며 모두 맡은 일은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별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어서. 단지, 만약이라는 가정을 붙였을 뿐이예요. 여기서 조금만 어긋났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다른 사람들이 중얼거리는 걸 듣다보면, 저도 모르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렇구나.

레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유라면 저도 모르게 한 번쯤은 생각해볼 법했다. 레겐에게는 해당하지 않았다. 그는 일어나지 않을 일을 생각하지 않았다. 눈앞에 쌓인 업무만을 처리하면 하루가 뚝딱 저문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팀장이 저렇게 말한다면. 레겐은 없는 사회성을 짜내보았다. 무미건조하고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은 생각을 과연 누가 궁금하게 여길까. 레겐으로선 알 수 없으며 동시에 이해되지 않았다.

그 대상이 데시드라면…….

레겐은 조금 더 생각해보았다. 제게는 별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데시드를 거치면 어쩐지 다르게 느껴졌다. 데시드는 그런 레겐을 보며 작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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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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