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Y시리즈

[고죠유지] 의미 없는 싸움

Boy 시리즈 5. 고죠유우, 고죠유지, 별것도 아닌 이유로 싸우고 화해한 고죠 사토루와 이타도리 유우지의 이야기

Lacto락토 by 락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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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지는 화난 얼굴을 하고 고죠를 바라보고 있었고 고죠는 굳은 얼굴로 창밖만 바라보았다. 이곳은 1학년 교실, 임무로 인해 후시구로와 쿠기사키가 없는 틈을 타 고죠와 유우지는 무려 첫 다툼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

"......"

"선생님, 말 안하고 계속 그렇게 있을거야?"

먼저 입을 연건 유우지였다. 기본적으로 유우지는 싸우거나 언쟁이 생기면 그 자리에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소한 다툼으로도 삐끗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죠의 행동에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곧 고죠는 임무를 가야하는 시간이었고 이대로 가버린다면 마음이 너무 불편할 것 같았다. 말을 하다보니 서로 격양되어 기분을 상하게 한 건 자신도 인정했다. 

"선생님, 내가 말을 막한 건 미안해. 그렇지만 나는 아직 아니라고 생각해."

"......"

"하아.. 선생님. 진짜 말 안 해?"

유우지가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을 걸어도 고죠는 묵묵부답이다. 슬슬 답답해져서 긴 한숨을 내쉰 유우지는 턱을 괸채로 고죠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성인이 되서 나아졌다고는 하나 도련님으로 자라온 고죠는 본인이 하고 싶은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휘두르며 살아온 날들이 너무 길어서 그게 당연한 줄 아는 사람. 워낙 자기 멋대로, 기분대로 하는 사람이라서 모든 사람들이 혀를 내두르며 질려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걸 또 가까이서 보기도 했다. 그런데 유우지도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고집이 대단한 편이었다. 쇠심줄보다 강하다는 말이 잘 어울릴 만큼. 유우지도 티는 나지 않지만 고집불통이기에 지금 이 상황이 싫었다. 고죠를 좋아하는건 변함없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알리기에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많은 단어들이 그를 조금 불편하게 했다. 

선생과 제자, 동성, 성인과 미성년자, 사형집행인과 사형예정자 등등. 생각보다 많은 단어가 두 사람 사이를 따라왔다. 

그러니까 현재 일어난 갈등의 주제는 간단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사람들에게 말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고죠는 당장이라도 유우지가 자신의 애인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싶어 했고 유우지는 조금만 더 있다가 하자고 했다. 처음에는 별 생각없이 이야기하던 것이 서로의 고집으로 인해서 결국 말싸움에 이르렀다.  

먼저 실수한 건 고죠였다. 유우지는 나랑 헤어질 것 같은가봐? 그래서 말하기 싫은거야? 그 말에 유우지의 고운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물론 고백할 생각이 없었다고는 하나 이렇게 된 마당에 유우지는 고죠와 쉽게 헤어질 생각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 말은 자신의 마음을 가볍게 취급하는 기분이 들었다. 여기서 어르고 달랬으면 이렇게까지 감정이 상하지 않았겠지만 그 말에 기분이 상한 유우지가 내뱉은 말도 고죠에게는 꽤나 상처되는 말이었다. 상처랄까, 어쩌면 꽤나 신경쓰고 있던 문제. 선생님이랑 나랑 나이 차이를 생각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그 말을 끝으로 두사람은 말이 없는 상태였다. 

최근 유우지와의 관계가 발전 한 후로 고죠는 안대를 벗고 있는 날이 많았는데 저 말을 하자마자 주섬주섬 안대를 쓰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어린애도 아니고. 유우지가 좋아하는 청량한 눈동자가 새까만 안대 뒤로 숨는 것을 보면서 정말 자신보다 나이 많은 어른이 맞나 싶었다. 

"하지 말자는 게 아니고 조금만 더 있다가 하자니까? 응? 선생님."

"어차피 할 거면 지금 하는거랑 뭐가 달라? 나는 이해가 안되는데. 유우지. 나랑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그게 신경쓰였어? 그러면 애초에 고백도 하지 말았어야지. 너가 먼저 말했잖아. 아니면 나랑 몰래 사귀어야 되는 이유라도 있는거야? 뭘까? 그 이유가? 아, 그냥 내가 나이가 너~무 많아서 그런가? 유우지는 창창한 10대고, 나는 곧 서른 살이니까? 유우지는 앞으로도 다른 사람도 사귀어야 되니까?"

그동안 말을 안하고 어떻게 참은건가 싶을정도로 다다닥-. 신랄하게 말을 쏟아내는 고죠를 보면서 유우지의 얼굴이 점점 빨갛게 달아오르다가 마지막 말에 폭발 했다. 나이 이야기는 자신이 실수해서 비꼰다고 쳐도 다른 사람 운운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고백했는데, 그것도 너무 어려워서 자고 있는 사람한테 도둑 고백을 했는데. 어색해질까봐, 다시는 웃는 얼굴을 못볼까봐 없던 일로 치고 싶어서 얼마나 전전긍긍했는데. 

결국 싸늘하게 굳은 유우지는 사람이 피가 거꾸로 솟을 정도로 화가 나면 오히려 차분해진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다시 고죠를 쳐다보는 유우지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더이상 이야기를 해봤자 서로한테 상처만 줄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유우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동시에 고죠의 상의 안에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고죠는 자신이 실수했다고 생각했다. 다른 말은 그렇다 하더라도 마지막 말은 하지 말았어야 하는 말이었는데 흥분해서 지껄이다 보니 헛소리를 했다. 싸늘한 유우지의 눈빛을 보자 아차 싶었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본래 나오는 말을 머리를 거치지 않고 할 때가 있는 고죠의 습관이 튀어나와버렸다. 지금이야 고죠도 성인이고 많은 일을 겪다보니 쉽게 누르고는 했는데 이상하게 유우지와 관련된 일은 그게 잘 안됐다. 서운해서, 서운해서 그렇게 말이 튀어 나온 거라고. 마지막 말은 실수였다고 입을 열려는 순간 유우지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자신에게서 고개를 돌려 버렸다. 차가운 눈빛 안에 서러움이 보였다면 고죠의 착각일까 싶을 정도로 낮고 서늘한 목소리로 유우지가 말했다. 임무나 가. 오늘은 기숙사 오지말고. 그대로 말을 마치고 유우지는 교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징징-. 하고 울리는 핸드폰을 꺼내다가 벌떡 일어난 고죠가 교실 문을 열자 복도 끝에서 계단으로 내려가는 유우지가 보였다. 하, 씨. 뒤도 안 돌아 보고 가네. 문소리가 얼마나 컸는데. 잠시 입술을 깨물고 있던 고죠는 징그럽게 울려 대는 핸드폰의 통화 버튼을 누르고 귓가에 댔다. 어디냐고 늦었다고 성화를 부리는 이지치의 목소리에 이지치, 따귀 백대. 라는 말만 남기고 끊어버렸다. 짜증스럽게 긁는 손길에 삐죽 솟은 하얀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차에 올라타 문을 있는대로 세게 닫으니 앞에서 이지치가 어쩔 줄 몰라하면서 안전벨트를 매고 있엇다. 가볍게 시작한 이야기가 이렇게 끝을 맺을 줄 몰랐다. 모든 사람에게 알리자는 건 아니고 적어도 쇼코나 나나미, 1,2학년 아이들에게만 이라도 밝히고 싶었다. 자신을 파렴치한으로 몰 사람들이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그냥, 말하고 싶었다. 이 아이가 내거라고, 내가 유우지를 끝까지 지켜낼거라고 다짐하듯 말하고 싶었는데 긍정할 줄 알았던 유우지가 단칼에 거절하자 섭섭했다. 마지막에 눈을 돌려버리는 유우지의 얼굴이 떠올라서 얼굴을 감싼채로 그렇게 한참이나 있었다.

임무지에 도착해 답답한 마음에 통제가 잘 안됐다. 있는대로 장막 안을  다 부수고 나서도 기분은 풀리지 않았다. 누가봐도 언짢은 고죠의 모습에 다들 숨만 죽이고 있을 뿐이었다. 특히 이지치는 위통이 시작된 듯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고죠에게 당하는 주령이 불쌍할 정도로 거칠었다. 마치 고전 시절의 고죠를 보는 것 같은 기분에 이지는 자신의 배를 잡았다. 그리고 고전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고죠는 가라 앉지 않는 주력을 내뿜고 있어 운전하는 이지는 이러다가 저승으로 먼저 떠나는건 아닐까 생각했다. 

고전에 도착해 땀을 뻘뻘 흘리는 이지치에게 돌아가라고 말한 뒤 고죠는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개씩 라인을 서로에게 보냈었는데 오늘은 단 하나도 없다. 임무지로 가는 내내, 돌아오는 내내 핸드폰을 껐다켰다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없다. 없어. 핸드폰을 부실듯 노려보던 고죠는 짜증이 난다는 듯 마른 세수를 했다. 덕분에 몇 번이나 안대가 머리위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반복하다가 바닥으로 툭 하니 떨어져버렸다. 그것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고죠는 다시 주워들고는 기숙사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물론 당장이라도 유우지에게 달려가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자꾸만 돌아서는 그 차가운 눈빛은 제멋대로의 고죠라도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돌아간 곳은 고전 내에 있는 교직원 기숙사의 제 방이였다. 


교실 문이 열리고 기분 나쁜 분위기를 폴폴 풍기며 고죠는 교실로 들어섰다. 늘 고죠가 들어오면 해맑게 인사를 하는 유우지는 고개를 창밖으로 돌린 채 쳐다 보지 않았다. 그 모습에 다시 울컥한다. 사실 별일도 아닌 일로 다툰것도 짜증나는데 생각보다 오고간 대화가 좋지 않았다. 고죠는 어렸을적 습관을 완전히 버리지 못해 나오는대로 지껄였고 유우지는 제 나이보다 더 진중했다. 그 진중함이 고죠의 비꼼에 상처를 받은 거다. 그렇게 두 사람의 대화가 오고가지 못한 건 오늘로 3일째였다. 

사귀기 전이야 임무다 뭐다해서 얼굴을 못본적도 꽤 있었지만 그 이후로는 전화나 영상통화로 잠깐이라도 서로의 안부를 물었기에. 고작 3일이라지만 두 사람에게는 꽤나 긴 시간이었다. 

들고 있던 책을 교탁에 던지듯 올려두며 고죠는 안대너머로 유우지를 바라보았다. 평소라면 고죠는 유우지만 보고 수업을 하고 유우지는 그게 좋은지 내내 해맑은 얼굴이었는데. 이 묘한 분위기는 벌써 3일째였고 불편한건 쿠기사키와 후시구로였다. 첫날엔 이상한 분위기를 느꼈지만 그런가보다 했고, 둘째날에는 고죠가 오전부터 이어진 임무로 교실에 오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로 3일째. 여전히 고죠를 외면하는 듯한 유우지의 행동에 교실의 분위기는 꽤나 무겁게 가라앉았다. 안대를 쓰고 있다고 해도 뿜어져나오는 기분 나쁜 주력에 쿠기사키는 대놓고 인상을 쓰며 둘을 번갈아 봤고, 후시구로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눈을 돌려버렸다. 

결국 참지못한 쿠기사키가 먼저 무슨 일이냐고 유우지를 닥달했지만 유우지는 입을 다물었다. 이들은 두 사람을 선생과 학생사이로만 알고 있으니까. 지금 제 행동이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실 처음 싸운 날 오지 말라고 했지만 고죠가 찾아올 줄 알았다. 싸운 적은 처음이지만 고죠는 늘 유우지에게 먼저 다가왔기 때문에. 그래서 방으로 오면 못 이긴척 받아주고 자신도 한 말에 사과하려고 했는데. 정말 안 왔다. 그리고 벌써 3일이나 대화다운 대화도 못했다. 그게 서운하고 화가 나서 유우지는 고죠를 외면해버렸다. 

어디든 머리만 대면 잘 자는 유우지가 3일동안 밤에 잠을 못자니 컨디션도 엉망이었다. 머리는 아프고 눈은 뻑뻑하고 기분은 안 좋고. 평소에 근육 고릴라라고 불릴 만큼 체력하나는 타고 났다고 생각했는데. 잠을 자지 못한 몸은 꽤나 버거웠다. 고죠가 교탁앞에서 뭐라 이야기하는게 들렸지만 별로 보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돌렸다. 아무렇지도 않아보이는 모습은 꽤 속상했으니까. 저는 이렇게 잠도 못자고 기다렸는데 반질해보이는 모습은 어른의 모습인 것 같아서 그게 싫었다. 이제는 싸운 이유보다는 싸웠음에도 여전히 여유를 간직하고 있는 그 모습이 미웠다. 아직 어린애인 자신과 어른인 고죠. 이건 어떻게 해서도 줄일 수 없는 차이였으니까. 

수업이 어떻게 끝났는지 모르겠다. 자신은 그저 계속 창밖을 바라보거나 책만 보고 있었다. 글씨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그냥 책상만 봤다. 자신을 간간히 쳐다보는 고죠의 눈빛을 느꼈지만 모르는 척 했다. 어제 한숨도 자지 못하고 핸드폰만 들여다봤던 눈이 뻐근한 기분이었지만 절대 교탁쪽은 쳐다보지 않겠다는 결의로 괜히 눈만 비벼댔다. 한 번쯤은 집중 안하냐고 지적할만 했지만 고죠도 그런 유우지를 부르는 일은 없었다. 정말 징글맞은 고집들이었다. 

"어이, 유우지. 대체 얼굴이 왜그래?"

"응?"

"눈밑은 판다만큼 쾡하고 맥아리도 없잖아. 잠 못 잤어?"

"조금?"

자신도 평범한 인간 축에 속하지 않은 체력과 운동신경을 가지고 있지만, 마키 또한 그랬다. 그래서 마키와의 훈련은 꽤나 좋아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3일이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유우지의 컨디션은 엉망이었고 오늘은 마키에게 상대가 전혀 되지 못하고 있었다. 정신을 못차리는 유우지를 바라보던 마키가 짜증스레 말을 던졌다. 마키의 말에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지만 마키는 그것조차 마음에 안드는 모양이었다. 유우지. 저기 가서 앉아 있어. 오늘은 너랑 못해 먹겠다. 쯧-. 하고 혀까지 차며 마키는 들고있는 긴 주구로 운동장 계단을 가리켰고 유우지는 괜찮다고 했지만 이내 후시구로와 쿠기사키에게 잡혀 앉혀지고 말았다. 안그래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아보이는 두사람이 유우지를 앉혀 놓고는 한참을 내려다 보며 노려 보다가 돌아오라는 목소리에 결국에는 걸음을 옮겼다. 

지금 일어나서 나섰다가는 정말 마키에게 죽도록 내동댕이 쳐지거나 쿠기사키에게 망치로 두들겨 맞을 것 같은 기분에 유우지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을 훈련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판다 선배와 이누마키에게 놀림을 당하고 있는 쿠기사키를 구경하는데 다리만 들린 채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을 보자니 마치 착시현상이라도 보는 것 같아 눈이 더욱 뻐근해졌다. 눈을 몇 번이나 꿈뻑이고 있자니 더운 날씨지만 건물이 만드는 그늘에 바람까지 살랑 불어오니 저절로 눈꺼풀이 더욱 무거워지며 자꾸만 스르륵 감긴다. 제아무리 초인과 같다고 하더라도 사흘의 불면은 꽤나 무거웠다. 

고죠는 체술 훈련을 하는 곳을 찾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유우지와의 대화가 없는 내내 고죠의 기분은 바닥을 칠대로 쳤기에 오늘은 살짝 한계였다. 별일 아닌 일로 싸운 것도 짜증이 나고 자신을 외면하는 유우지에게도 화가 났다. 오지말라고 했으면서 교실에 들어설때 자신을 보는 눈빛은 서운해보였고, 눈밑 또한 쾡해보였다. 다른 사람의 말이라면 무시하고도 남을 고죠가 자신의 어린 연인의 말은 무시할 수 없어서 마치 처분을 기다리는 사람마냥 있었더니 그게 아니었나보다. 사람과의 관계에 늘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옛말이었다. 

운동장에 다다르자 각자 나눠서 열심히들 하고 있었다. 2학년들의 리드아래 1학년들은 잘도 굴려지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은 안보였다. 체술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가장 신이났을 자신의 연인이 안보여서 눈알을 굴리고 있자니 운동장 계단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에 잠시 놀란 고죠는 잠시 서 있다가 걸음을 옮겼다. 자신이 곁에 왔음에도 숙인 고개는 들릴줄 몰랐다. 처음에는 아직도 화가 난건가 싶어서 심장이 서늘해지는 것 같았는데 자세히보니 졸고 있는 것 같았다. 유우지의 눈밑은 싸운 날에 비해서 검게 물들어있었고 볼을 살짝 패여있었다. 그게 뭘 의미하는지 모를 순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가슴께에 가지고 있던 화가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앞에서서 내려다보던 동그란 머리통이 슬쩍 기울어진다. 머리와 함께 몸이 같이 기우는 것을 보던 고죠가 얼른 손을 뻗었다. 손바닥에 닿는 보드라운 뺨과 따뜻한 체온에 화는 눈녹듯 사라지는 것 같았다. 3일 내내 연락 한 번 하지 않던 고집 또한 유우지였고, 나이에 맞지 않는 진중함을 가진 것도 유우지였다. 쓸데없이 이런 싸움으로 보내기에는 두 사람의 시간은 무한하지 않아서 안달이 난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유우지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아쉬웠다. 며칠을 제대로 보지 못한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과 조금이나마 재우고 싶은 마음은 부딪친다. 유우지를 보면 늘 몇가지의 마음이 부딪친다. 마치 자신이 부리는 술식처럼 모든 것은 파괴할듯 부딪쳐와 고죠의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엄지손가락으로 유우지의 뺨을 슬쩍 쓸어주자 움찔 하고 몸을 떤 유우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잠이 오는지 눈은 제대로 뜨지 못했고 그 밑은 검었다. 뺨은 살짝 푸석하고 입술이 조금 말라있었다. 그 입술이 오물오물 거리다가 곧 고죠를 불렀다.

"선생님."

"응."

"아직도 화났어?"

"아니. 안났어."

"왜 나 보러 안왔어?"

"유우지가 오지 말라고 했잖아. 차갑게."

그 말에 유우지의 눈가가 붉어지고 서러운듯 입술 끝이 내려간다. 그게 못내 귀여워 보여서 웃어버리자 이내 눈은 도끼눈이 되었다. 억울한듯 서러운듯한 눈빛은 늘쌍 귀여운 유우지 그대로였다. 

"잠 못잤어?"

"....조금.."

"조금이 아닌 것 같은데?"

"선생님 올 줄 알고 기다렸어. 나는 선생님처럼 어른이 아니라서 그렇게 싸우면 아무렇지 않을 수 없어."

"내가 아무렇지도 않아보여?"

유우지의 말에 고죠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얼굴은 슬쩍 굳었다. 이렇게 자신을 모르는 어린 애인을 어쩌면 좋을까 싶었다. 어른스러움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오히려 안달이난 건 자신이었으니까. 

언제쯤 고백해서 자신의 옆에 앉혀둘 수 있을까 쉼 없이 고민했으며 유우지의 고백을 날려먹지 않기 위해 부던히도 쫓아다녔다. 늘 몸을 맞대고 싶었고 조금이라도 곁에 있고 싶어서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그의 방의 문턱이 닳도록 찾아 갔다. 세상 사람들에게 이 아이는 제 거라고 알리고 싶었다. 알리자는 걸 거부한건 본인이면서. 그런 행동들에서 자신의 마음을 읽어주지 못하는 유우지의 행동에 또 서운한 마음이 고개를 든다. 어쩐지 자신이 없어보이는 유우지의 행동은 제법 얄미웠지만 고죠는 3일전의 그 일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고죠는 유우지의 뺨을 잡지 않은 손을 들어 안대 사이에 손가락을 넣었다. 그리고 슬쩍 잡아당겨 목에 걸고는 유우지의 뺨을 잡은 손에 힘을 주어 들어올렸다. 잠시 턱끝에 힘을 주어 버티던 유우지는 졌다는 듯 고개를 들었고 그의 커다란 눈은 더욱 커져 고죠와 눈이 마주쳤다. 자신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곧 유우지의 얼굴에 걱정이 한가득 담겼다. 입술을 슬쩍 깨무는게 꽤나 속상해 보여서 그건 또 기분이 좋았다. 

유우지는 평소와는 다르게 까칠해보이는 고죠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자신처럼 며칠을 못잔거처럼 눈밑은 거뭇했고 눈동자는 가라앉아 있었다. 지쳐보이는 게 여실히 드러나는 얼굴은 처음보는 고죠의 얼굴이었다. 언제나 최강인 사람, 자신은 반전술식으로 늘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한다고 했던 사람이었으니까. 고작 3일. 고작 3일이었다. 누가 들으면 웃을 수도 있는 그 짧은 날들. 뒤틀린 감정에 3일은 마치 몇달이나 되는 듯 두 사람 다 얼굴이고 컨디션이고 엉망이었다. 멍하니 그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 고죠가 물어왔다. 

"아무렇지도 않아 보여?"

"아니."

"그럼 어때 보여?"

"지쳐보여. 피곤해보여. 잠 못 잔 것 같아. 나처럼."

"정답이야."

고죠의 대답에 유우지는 제 뺨에 닿아있는 고죠의 손을 두 손을 잡았다. 그리고 고양이처럼 뺨을 부벼온다. 3일만에 느끼는 고죠의 약간 서늘한 체온이 좋았다. 그때 왜 쓸데없이 고집을 부려 싸웠나 싶을정도로. 어쩌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는데. 

유우지는 고죠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여기는 운동장이고 저쪽에는 고전 학생들이 잔뜩 있지만 이제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이렇게 좋은데. 이렇게 며칠 싸웠다고 마음이 아픈데. 자신들의 관계를 정의하는 수많은 단어들이 다 뭐라고. 유우지는 고죠의 배에 얼굴을 묻고는 작게 웅얼거리듯 말했다. 미안해. 그 말이 아주 작은 소리였음에도 고죠는 알아들은 것 같았다. 유우지의 머리에 닿는 손길이 다정했으니까. 곧 허리를 숙인 고죠가 유우지의 등을 토닥이면서 나도 미안해. 하고 말했다. 못된 말 해서 미안해. 유우지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면서 나도. 라고 말했다.


"그래서?"

"고죠 사토루와 이타도리 유우지는 서로의 남자친구가 되었습니다!"

어느새 체술 훈련이 끝났는지 모인 고전 학생들은 갑자기 신난듯 나타난 두사람에 모습에 심드렁한 표정을 했다. 우물쭈물하며 사람들에게 고죠 선생님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유우지의 얼굴은 꽤나 부끄러운듯 뺨이 상기되어있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붙들고 있던 두사람의 정적을 깬 건 유우지였다. 선생님 말처럼 비밀연애는 그만하자고. 그 말에 놀란 고죠가 괜찮겠어? 하고 물어 왔지만 유우지는 이미 마음을 정했다. 어차피 거짓말을 못하기도 했고 이제 그게 다 대수냐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말에 고죠는 기쁜듯 유우지의 뺨을 잡아 여기저기 입을 맞췄고 유우지는 그저 웃었다. 그냥 말하고자하면 사실 별거 아니었으니까. 

"그걸 여기 있는 사람들이 모를거라고 생각한거야?"

"응?"

"응?은 무슨 응?이야."

어이없다는 쿠기사키의 말에 유우지의 얼굴은 정말 모르는 얼굴을 했다. 한번도 다른 사람에게 두사  람의 발전된 관계 대해서는 말한적이 없었으니까. 절대절대 티를 냈다고 생각도 하지 않았고 평소처럼 행동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선배들이고 제 친구들이고 다들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죽었다 살아돌아왔을때의 관심없었던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것만 같아서 유우지는 굳었다. 물론, 그때처럼 쿠시사키와 후시구로의 표정이 넋이 나가있지는 않았다. 

"나.. 말한 적 없고..?"

"그래서?"

"티도.. 안냈는데?"

"뭐라는거야. 이 근육 고릴라가. 맨날 둘이 죽고 못 살고 수업중에 저 변태 교사는 너만 쳐다 보고 핸드폰에도 고죠선생님하고 하트까지 달아놨더만. 모르라는거냐? 모르는 척 해달라는거냐?"

"이타도리, 왠만하면 밤에는 조용히 말하면 안되냐? 니 옆방이 내방인건 알고 있는거지?"

유우지는 합죽이가 된 듯 더이상 말이 없었다. 슬쩍 고죠를 올려다보자 고죠는 웃고 있었다. 왠지 다 알고 있었다는 반응에 유우지만 바보가 된 것 같았다. 

"사토루는 맨날 우리 유우지, 우리 유우지가. 하면서 니 자랑만 하던데?"

"사토루는 바보니까."

주구에 몸을 맡기고 서 있던 마키가 귀를 후비며 말했고 판다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죠를 욕했다. 긍정한다는 듯 이누마키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주먹을 제 손바닥 위에 올리며 탁 쳤다. 

유우지는 이미 학생들이 다 알고 있다는 사실에 얼굴만 빨개졌다. 이건 부끄러움이 아니라 창피한거였다. 그렇게 티를 내고 있었다는 사실에 창피하고 이제와서 말한다고 굳게 마음을 먹은 자신이 바보같았다. 이미 모든걸 다 알고 있다는 듯 고죠는 그저 웃었다. 다 해피? 하면서 말하는 고죠의 행동에 쿠기사키가 해피는 얼어죽을 해피야. 하면서 주먹을 쥐고 어깨를 빙빙 돌리며 다가왔다. 

그 행동에 고죠가 유우지의 뒤에 숨으며 살려줘. 자기야~ 하며 장난스레 말했다. 어차피 무하한으로 맞을 일도 없으면서. 한참을 쿠기사키와 술래잡기를 하던 고죠가 어느새 유우지의 허리를 잡아 올리며 붕-. 하고 떠올랐다. 멀지 않은 상공으로 떠오른 고죠가 자신의 제자들을 바라보며 하하하. 하고 웃어댔다. 유우지만 여전히 바보처럼 이미..이미.. 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자, 놀만큼 놀았으니 우린 가볼게. 3일이나 떨어져있었더니 유우지 부족이야."

"꺼져!!"

이미 2학년들은 뒤를 돌아 걸어가고 있었고 약오른듯한 쿠시사키만 그 두사람을 보며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고 있었다. 후시구로는 제발 방 좀 바꿔줬으면.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하품만 길고 늘어지게 할 뿐이었다. 

그들을 내려다보던 유우지는 고죠를 쳐다보았다. 기분 좋은듯 웃고 있는 고죠를 보자 뭐 어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득 이해할 수 없는 말이 생각나 고죠에게 물어보았다. 

"근데 핸드폰에 선생님 이름에다가 하트 단 적 없는데? 이상하네."

"아, 그거 내가 해놨어. 유우지 핸드폰하다가 잠들어서 잠금 풀려있길래? 명색의 애인이니까 하트 정도는 달아줘야지. 내사랑사토루자기♥ 라고 해놓을까 하다가 나름 숨겨 보려고 하트만 단건데?"

그 말에 유우지는 주술계 모든 사람들이 이미 자신과 고죠가 그렇고 그런사이라는걸 다 알고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정말 의미없는 싸움을 한 3일을 돌려내고 싶은 억울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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