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죠유지] Sweet boys
Boy 시리즈 3. 고죠유우, 고죠유지, 고죠사토루와 이타도리 유우지가 연애하는 이야기
방금 씻고 나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유우지는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며 침대에 앉았다. 뭔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핸드폰 시계를 봤다가 협탁에 둔 시계를 한 번 봤다가 굳게 닫힌 제 방문을 한 번 봤다가 하는 등 안절부절못하며 정서불안인 것처럼 굴었다. 입술을 삐죽이며 핸드폰의 라인을 한 번 확인하고는 여전히 젖어서 조금 더 진해진 분홍빛 머리카락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침대에 누워버렸다. 그때 열려있는 방 창문에서 똑똑-. 하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상체를 일으키자 유우지의 눈이 커지다가 이내 예쁘게 휘어졌다. 초승달처럼 휘어지는 눈은 제 눈동자처럼 꿀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
곧 열린 창문을 닫으며 방으로 들어온 사람은 고죠였다.
"선생님!"
"유우지~"
벌떡 일어나 소리치듯 부르자 고죠가 다가와 유우지의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주었다. 분명 오전 수업 시간에도 만나서 반나절만의 만남이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듯 반가워하는 유우지의 모습에 고죠는 슬쩍 웃었다. 짧은 머리카락은 금세 고죠의 손가락을 빠져나갔다.
"머리 젖었는데 침대에 누웠어? 감기들라구?"
"아니, 금방 말리려고 했는데 선생님이 온 거야. 그리구 나 감기 안 걸려!"
"거짓말, 누워있는 거 다 봤어."
고죠의 말에 유우지는 볼멘소리를 했지만 기분 나쁘지는 않아 보였다. 3주 전, 자신의 고백인지 고죠의 고백인지 알 수 없는 고백을 주고받은 날 이후 두 사람은 이렇게 저녁 늦은 시간 밀회하듯 시간을 가졌다. 임무에 보고서에 할 일이 태산인 고죠라 늦은 밤이 아니면 좀처럼 시간이 나지 않았다. 특히나 요즘은 바쁜 시기이기도 했으니까. 은근히 피곤한 얼굴을 한 고죠의 모습에 안 와도 된다고 했지만 오히려 고죠가 섭섭해했다. 삐진 척하며 유우지는 내가 안 보고 싶은 거야? 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면 허리를 끌어안고 보고 싶어. 하고 수줍은 듯 말하기도 했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사람들과 친해지는 게 어렵지 않은 유우지였지만 왠지 모르게 고죠와의 관계가 변하자 조금 부끄러웠다. 귀엽다고 연신 얘기하는 고죠의 행동도 부끄러웠고 은근히 손을 잡아 오는 것도 부끄러웠다. 그렇다고 해서 싫은 건 아니었지만, 연신 두근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들릴까 봐 걱정이었다.
"머리 말려줄까?"
"응? 내가 하면 되는데?"
"싫어어! 내가 해줄래!"
유우지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던 고죠는 어린아이가 투정 부리듯 말했다. 그 행동에 유우지는 하하, 하고 웃으면서 알았다고 대답했다. 곧 드라이어를 가져와 유우지를 침대에 앉혀두고 머리를 말려주는 고죠의 손길은 서늘했다. 커다란 손이 유우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주고 따뜻한 바람이 너무 뜨겁지 않냐고 물어온다. 커다란 손길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원래 체온이 조금 높다 싶은 유우지였기에 서늘하게 느껴지는 고죠의 손을 좋아했다. 뺨을 대고 있으면 기분이 좋고 손을 잡으면 두근두근 거렸다. 이렇게 좋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드라이어의 기계음 소리와 더불어 고죠의 재잘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임무는 얼마나 거지 같았는지, 점심 디저트가 무엇이었는지, 얼마나 유우지가 보고 싶었는지에 대해 일장 연설하듯 이야기하는 걸 들으면서 유우지는 머리카락을 고죠에게 맡겼다. 맞장구를 치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짧은 머리카락은 금세 말랐다. 드라이어를 아무 데나 놓으려는 고죠에게 빼앗아 들어 원래 있던 자리에 잘 정리를 해둔 유우지는 다시 고죠의 옆으로 다가왔다. 어느새 유우지의 침대에 앉아있는 고죠는 자신의 허벅지를 탁탁 치면서 유우지를 불렀다. 그 의미를 모르겠다는 듯 침대맡에 서 있었다. 응? 하고 묻자 여전히 자신의 허벅지만 커다란 손으로 쳐댄다.
"여기에 유우지 의자 있어."
"엉? 선생님 다린데?"
"아니야. 유우지 전용 의자야. 빨리 와. 의자가 일을 안 해서 아쉽대."
"선생님, 나 무거워. 들어봐서 알잖아."
어이없다는 유우지의 표정과 말에 고죠는 재촉하듯 허벅지만 툭툭-. 칠 뿐이었다. 당황하거나 난감할 때 버릇인 듯 볼을 손가락 끝으로 볼을 긁적거린다. 쭈뼛쭈뼛하며 좀처럼 유우지가 다가오질 않자 고죠의 입이 슬쩍 나왔다. 아니, 댓 발 나왔다. 누가 어른이고 누가 아이인지 모를 정도의 천진한 행동에 유우지는 여전히 난감했다. 원래도 천진난만하다고 할 정도로 철이 없어 보이는 고죠였지만 유우지가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더 어린이 같아졌다. 여전히 가만히 서 있는 유우지를 안대 너머로 바라보던 고죠는 이내 그의 손목을 잡아 당겼다.
결코 가볍지 않은 유우지를 자신의 다리 위에 앉히고는 이내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허리에 감싸이는 강한 팔뚝에 유우지는 고장 난 인형처럼 뚝딱거렸다. 스킨쉽은 아직 부끄럽다. 이렇게 사람과 살을 맞대는 건 오랜만이었다. 할아버지가 아직 정정하고 자신이 어린이였던 시절 이후로 유우지는 딱히 어리광을 부리지 않았다. 다정하고는 조금 거리가 먼 할아버지였던 것도 있지만 부모가 없던 유우지는 조금 철이 일찍 들었기에.
"유우지 냄새, 좋아. 유우지, 나 보고 싶었어?"
"으응? 응. 보고 싶었어."
"그랬어? 나도 보고 싶었어. 유우지가 그리웠어."
유우지의 대답이 만족스럽다는 듯 대답하며 고죠가 유우지의 허리를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고죠의 허벅지 위라는 게 신경 쓰여 안절부절못하자 고죠의 입술이 유우지의 뺨에 닿았다. 쪽, 하고 귀여운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입술에 유우지는 자신의 뺨에 손을 대었다. 놀랄 정도로 뜨거워진 얼굴을 괜히 손으로 매만지고 있자 고죠가 웃는다. 씨익 올라가는 입꼬리가, 자신이 그리웠다고 말하는 이 커다란 사람이 조금 귀엽게 보였다.
안대로 여전히 가려진 눈이 보고 싶다. 고죠와 눈을 마주치면 꼭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아마도 온전히 자신만을 담고 있는 그 청량한 눈이 좋았으리라. 꼼지락거리던 유우지는 천천히 고죠의 안대에 손을 댔다. 고죠는 그저 유우지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혹시라도 눈이 쓸릴까 싶어서 조심스럽게 안대를 머리 위로 올리자 고죠가 돕듯 고개를 숙여주었다. 곧 삐죽 올라가 있던 하얀 머리카락이 스르륵- 하고 이마를 덮는다. 그로 인해 드러난 고죠의 청량한 눈동자는 오늘도 유우지만을 가득 담고 있었다.
사람이 눈빛은 속일 수 없다는 말을 간혹 한다. 그래서 유우지는 이 눈빛을 보면 이 사람이 자신을 정말 좋아하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반짝이며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은 달콤하게 느껴졌으니까. 꿀이라도 떨어질 듯한 눈빛이 부끄럽기도 하고 가슴께를 간질기도 했다. 고죠의 허벅지에 앉아있기에 지금은 유우지의 시선이 더 위였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고죠의 얼굴을 내려다 보다가 유우지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눈가를 어루만지자 고죠가 기분 좋은 듯 웃었다. 유우지의 손을 잡아 뺨을 비비고 곧 입술을 손바닥에 대었다. 말랑한 입술이 손바닥에 닿자 그 곳부터 화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곧 고죠가 드러난 치아로 살짝 깨물었다.
"왜 깨물어?"
"유우지, 그때 왜 도망갔어?"
"그때?"
"나한테 처음에 좋아한다고 했을 때."
고죠의 질문에 유우지는 또 당황했다. 벌써 한참이나 지난 일을 가지고 아직도 골이 난 사람처럼 구는 고죠의 행동이 어이가 없었다. 그때 자는 척 했던 건 선생님이잖아. 하고 투정 부리듯 말하자 고죠가 또 웃는다. 난 자는 척 하지 않았어. 라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모습에 유우지는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자냐고 물어봤을 때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으면 보통은 잔다고 생각하지 않아? 하고 따지듯 묻자 고죠는 슬쩍 웃으면서 대답했다.
"유우지가 그때 도망가서 유우지 안는 시간이 일주일이나 줄었잖아. 물어내."
"하아..?"
"물어내, 얼른. 응? 물어내라니까?"
어떻게? 하고 물어보자 많이 안아줘. 하고 대답하는 고죠의 목소리는 충분히 즐거워 보였다. 그 대답에 유우지는 살풋하니 웃었다. 자신보다 커다란, 물론 외양뿐 아니라 모든 것을 통틀어서 커다란 사람이 이렇게 어리광 부리듯 행동하는 게 귀여웠다.
한쪽으로 두 다리를 뻗고 있던 것을 벌려 고죠의 몸을 다리 사이에 감싸듯 하고 마주 보았다. 살짝 내려다보면 고죠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이런 자세가 부끄러웠지만 그런 기분이 들기도 전에 가슴으로 기대오는 고죠로 인해 품 안이 가득 차는 기분이 들었다. 더욱 가득 채우겠다는 듯 유우지의 팔에도 힘이 들어가고 유우지의 허리를 끌어안은 고죠의 팔에도 힘이 들어갔다. 숨이 막히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모르겠다. 그냥 이 만족감이 좋았다. 자신의 가슴께에 얼굴을 맞대고 숨을 들이마시는 고죠가 사랑스러웠다. 자신도 고죠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고는 숨을 들이마셨다.
혼자만 좋아한다고 생각했을 때는 가지지 못한 행복은 유우지의 가슴을 벅차게 만들었다. 평소에도 스킨쉽이 없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연인이 되어서 안고 입술이 닿는 건 생각보다 더 좋았다. 살을 맞댄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기분을 들게 하는 걸 몰랐다. 그래서 그 고작 일주일을 물어내라고 고죠가 투정을 부리나보다 하고 하얀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생각했다. 이런 행복이 오래오래 가면 좋을 것 같았다.
매일 매일이 행복하다고 하면 자신을 아는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재미라거나 흥미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 고죠이기에 '행복'이라는 단어가 꽤나 어색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 단어 말고는 표현할 길이 그다지 찾지를 못할 것 같다. 유우지와의 이 짧은 밀회와 비슷한 시간이 행복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그전에도 둘만의 시간을 가진 건 많았지만 바뀐 관계가 그 시간을 더욱 소중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관계의 이름에 집착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했다.
창문을 똑똑-. 하니 두들기자 벌떡 일어나는 유우지의 표정은 반가움이 잔뜩 서려 있었다. 기쁜 듯 웃는 얼굴에 저절로 풀어지는 제 얼굴이 느껴졌다. 어린아이답게 꾸밈없이 감정을 드러낸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고 표현될 만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고죠를 함락시키기 충분했다. 다가가 머리카락을 쓰다듬자 물기를 잔뜩 머금은 것이 방금 씻고 나온 것 같았다. 나타난 자신 때문에 얼굴이 붉어진 건지, 씻고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붉어진 건지 모르겠지만 어린아이 분내가 날 것 같은 유우지가 귀여웠다.
젖은 머리로 누워있다며 타박하자 볼멘소리로 반박을 한다. 머리를 말려주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앉아있는 유우지의 머리를 말리고 있자니 이런 기분은 또 처음이었다. 지켜주고 싶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기분과 만지고 싶고 괴롭히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 건 어째서일까. 기분 좋은 듯 눈을 감고 있는 유우지를 내려다보면서 기분 좋게 살랑이는 머리카락을 쓸어주었다.
기본적으로 유우지는 자신에게 약했다. 물론 자신도 유우지에게는 강하게 밀어붙이지는 않았지만 고집을 피우면 난감해하면서도 들어주었다. 그래서 그런가, 고죠는 유우지 앞에서는 어린아이가 된 듯 고집을 피우는 일이 많았다. 안 보면 보고 싶고, 보면 닿고 싶고, 닿으면.. 더 강하게 끌어안고 싶었다. 유우지를 자신의 다리 위에 앉히고는 슬쩍 허리에 손을 두르자 유우지가 어색하게 몸을 움직였다. 작은 아이가 아님에 자신의 품을 가득 채우는 유우지는 달콤한 디저트를 먹었을 때처럼 자신의 포만감을 끌어올렸다.
유우지가 고죠를 피해 다닌 일주일은 사실 꽤나 피가 말랐다. 어색하게 자신만 보면 어떠한 핑계를 대서라도 피하는 유우지는 그 고백을 없던 일로 하고 싶은 것 같았다. 그런데,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 선생과 제자로 끝날 것만 같았다. 처음엔 피하는 게 귀여웠고 시간이 갈수록 조금 화가 났고 찾아왔던 일주일째 되던 날은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이렇게 인내심이 부족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회를 날릴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유우지 앞에서는 꽤나 여유로운 척 했지만 사실은 안달이 난 상태였다. 결국 원하는 말을 끌어낸 고죠는 행복했다.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 이런 걸까. 원래도 세상을 자신의 발아래 두고 있던 자신이었지만 그것과는 또 달랐다. 정말 모든 걸 다 가진 기분.
서로를 끌어안고 보고 싶었다며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가는 게 너무 아까웠다. 시간을 멈추는 술식이라도 가지고 싶을 정도로. 분내나는 체향과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는 얼굴. 자신에게 맞춘 듯 품에 쏙 들어오는 몸. 낭창한 살결까지 이제는 모두 제 것이었다. 슬쩍 볼에 입을 맞추자 얼굴이 빨갛게 달아 오른다. 달달해. 세상 모든 디저트를 가지고 온다고 해도 이보다 달콤할까 싶었다. 안대를 내려주는 유우지를 돕고 눈을 맞추자 그의 빛나는 금빛의 눈동자가 더욱 빛난다. 자신을 담은 이 눈동자도 핥는다면 달콤한 꿀맛이 날 것만 같다. 얼굴을 매만져주는 손가락이 기분이 좋았다.
더 많이 이렇게 만져줘.
문득 함께하는 시간이 일주일이나 미뤄졌다는 게 꽤나 아쉬웠다. 도망다닌 유우지가 생각나자 괜히 심술이 나서 자신을 만지는 손가락을 깨물자 유우지가 살짝 미간을 좁힌다. 아프지도 않으면서. 자신을 피해 다닌 유우지의 행동에 보상이라도 받고 싶었다. 특히 이렇게 몸을 끌어안고 있노라면 더욱더. 자꾸만 물어내라고 떼를 쓰자 유우지가 물었다.
"어떻게?"
"많이 안아줘."
고죠의 말에 웃는 그 얼굴이 너무 예뻐서 숨이 막힌다. 말도 안 되는 투정이라는 것을 고죠도 알고 있었지만 괜히 어리광을 부리고 싶다. 유우지가 곧 자신의 머리를 안아주었다. 판판한 가슴에 머리를 기대자 유우지의 체향이 코를 가득 채웠다. 달달한 것을 입에 달고 사는 자신이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것을 머금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달큰한 체향도, 부끄러워하는 얼굴도, 선생님하고 불러오는 목소리도. 그 어떤 사탕이, 초콜릿이, 케이크가 이보다 달콤할까. 좋아한다는 감정을 깨달았을 때부터 알고 있었으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나니 더욱 달콤했다.
다리를 벌려 자신을 더욱 꽉 안아주는 유우지 품 안에 안긴 채, 뭘 했는지 요목조목 물어보았다. 떨어져 있던 반나절 동안 자신이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생각을 많이 했는지. 모든 걸 알고 싶고 모든 걸 듣고 싶다. 욕심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해내고 싶은 것도, 지키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런데 세상에서 이렇게 욕심이 나는 건 처음이었다.
고죠는 사실 유우지와의 연인이 된 이후 더 안달이 나는 기분이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얼굴이라도 잠깐 보고 싶었다. 급하게 임무지를 옮기는 차 안에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고 간단한 대화를 나눴다. 수업 시간에도 자꾸만 가는 눈길에 몇번이나 눈이 마주쳐 둘이서 웃고 말았다. 이상하게 쳐다보는 쿠기사키와 뭔가를 눈치챈 듯한 후시구로의 눈빛에 뜨끔한 적도 몇 번 있었다. 유우지가 임무가 없는 날에는 이지에게 문자 하나 덜렁 남겨두고 유우지의 방이나 자신의 방에서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진동하는 핸드폰은 저 멀리 던져두고 유우지가 만들어주는 밥을 먹고 함께 사 온 디저트를 뜯었다. 간질이는 기분. 케이크를 입에 넣으며 맛있다고 해맑게 웃는 얼굴을 보자면 모든 걸 갖다 바치고 싶은 기분이랄까. 모든 시간을 할애하고 싶었다. 세상이 어떻게 되더라도.
욕심은 욕심을 낳는다. 그 말은 뻔한 말이지만 온전히 체험하는 기분이다.
처음에는 그저 곁에 있고 싶었는데, 곁에 있으니 자신만 봐주길 원했다. 꿀을 담은 눈동자에 오로지 고죠만을 비추기를 원했다. 그렇게 자신을 봐주기 시작하니까 다른 탐욕이 머리를 내민다. 조금씩 내밀던 욕심을 꾹 눌러본다. 자신이 이렇게 추잡한 생각을 한다면 도망갈까 봐. 어차피 윤리나 도덕 따위는 유우지와 함께하면서 버렸다. 그 정도로 욕심이 났으니까. 정말 널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가 이 욕심을 참아낼 수 있을까. 꼭 참아야만 하는 걸까. 응? 유우지.
머리카락을 쓸어주면서 조잘조잘 이야기를 하는 목소리가 듣기가 좋다. 눈을 감고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곧 슬쩍 멀어지며 자신을 바라본다.
"선생님, 잠 와?"
"아니."
"피곤한 거 같은데 오늘은 그만 돌아갈래?"
유우지의 말에 입술이 또 삐죽여진다. 일부로 그러는 게 아니다. 이렇게 임무를 마치고 만나는 날이면 유우지는 자꾸만 자신을 돌려보내려고만 했다. 자신은 괜찮은데, 너랑 있는 게 더 이 피곤을 풀 수 있는 방법인데. 혼자 있는 방으로 돌아가봤자 니 생각만 하고 있을 텐데. 유우지는 아직도 자신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고죠는 픽-. 하니 웃어버렸다. 자신의 웃는 모습에 유우지는 여전히 걱정이 한가득하다.
"선생님 꼭 돌아가야 할까나."
"돌아가서 쉬어야 편하지. 내일부터 3일 동안 출장 간다며."
"아아, 유우지는 정말 바보구나. 맞아. 바보야. 그러니까 그렇게 도망가고 피해 다녔지."
꽤나 마음에 담은 듯 말하자 유우지가 또 당황한다. 귀여워. 귀여워, 유우지. 유우지의 가슴팍에 다시 얼굴을 기대고 부비면서 말하자 어깨를 찰싹 때리는 손길은 꽤나 맵다. 이제는 머리를 안아주지 않고 어깨를 밀어내는 힘에 고죠는 더욱 팔에 힘을 주었다. 유우지의 허리가 꺾일 정도로 힘을 주자 더욱 밀착되는 몸에 안정감이 느껴진다. 두근두근, 누구의 고동 소리인지 알 수 없다. 그저 편안하다.
"유우지. 선생님은 오늘 여기서 자고 갈래."
"응? 편하게 집에서 자는 게 낫지 않을까?"
으응!! 유우지랑 떨어지기 싫어. 꾸물거리듯 얼굴을 가슴팍에 묻고 웅얼거리듯 말하자 유우지의 손이 다시금 머리카락을 쓸어준다. 쓰다듬어주는 이 손길이 따뜻하고 기분이 좋아서 고죠는 왠지 가슴이 벅차올랐다. 떨어지고 싶지 않아. 이런 거 저런 거 더 많이 하고 싶고, 많이 알려주고 싶어. 잠시 고민하듯 고죠의 머리카락을 한참을 쓰다듬던 유우지는 그럼 씻고 와. 하더니 고죠를 밀어냈다. 하, 정말 이 어린 남자친구는 은근 엄격했다. 싫다고 또 떼를 쓰는 고죠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리면서 안 그럼 돌아가라는 말에 결국 지는 건 고죠였다.
간혹 자신의 방이나 유우지의 방에서 영화를 보고 시간이 늦을 때면 같이 잔 적이 몇 번 있었다. 사실 같이 있기 위해 새벽 늦게까지 붙들어두고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지쳐 잠든 유우지의 곁을 지킨 거나 다름 없었다. 그럴 때면 잠이 오지 않아서 잠든 자신의 애인을 한참이나 보다가 해가 뜨고 난 후에야 쪽잠을 자고는 했다. 그런데 그게 피곤하기는 커녕 더 기운이 나는 거다. 그걸 모르는 유우지는 바보다.
대충 머리를 말리고 유우지의 곁으로 가자 유우지가 일어났다. 그리고는 옷장에서 어디서 난 건지 침낭을 들고 바닥에 깔고 있었다. 응?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선생님은 침대 써. 난 여기서 잘게. 하는 말에 고죠는 어이가 없었다. 그러니까 넌 너무 뭘 몰라. 유우지가 들고 있는 침낭을 손을 쳐내 떨어뜨리고는 그대로 허리를 잡아 들어 올렸다. 별안간 발이 붕-. 뜨자 유우지가 놀란 듯 자신의 어깨를 붙잡았다. 넓지 않은 기숙사의 방을 금세 가로질러 침대에 유우지를 눕히고는 그대로 자신도 옆에 누웠다. 1인용 침대는 좁았다. 유우지와 고죠가 딱 붙지 않으면 금세 떨어질 것만 같았다. 벽에 붙은 침대에 안쪽으로 유우지를 밀어 넣다시피 놓고는 그 옆에 누워버리고 허리에 팔을 올리자 유우지는 옴짝달싹 못했다.
"좁지 않아?"
"좁아서 좋아."
"....선생님 취향 독특하단 얘기 많이 듣지?"
유우지의 말에 웃음이 터진다. 얘는 진짜 뭘 모르는 걸까,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걸까. 물론 전자겠지만. 내 취향이 뭐가 어때서? 라고 묻자 잠시 고민하는 얼굴은 꽤나 진지해서 웃음이 난다. 날 좋아하는 거? 하면서 샐쭉하니 웃는다. 그건 독특한 게 아니고 그냥 사랑에 빠진 거야. 라고 말하자 좀 닭살인데...? 하며 슬쩍 밀어낸다. 그런 소리를 하면서 얼굴이 빨개지는 게 귀엽다.
슬쩍 아래쪽에 깔린 팔을 유우지의 머리 아래로 집어 넣었다. 머리에 힘을 주고 있는 유우지의 머리를 팔을 굽혀 베게 하니 여전히 힘이 빠지지 않았다. 유우지는 어리광이 더 필요했다.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으니 자신이 유우지에게 하는 것처럼 더 자신에게 응석을 부렸으면 좋겠다. 배려가 몸에 베인 아이가 얼마나 더 지나야 자신에게 온전히 맡길까. 의젓해질 수밖에 없었던 유우지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마음껏 귀여워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모든 걸 다 해주고 싶었다. 오로지 자신밖에 모르던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웃음이 난다.
정말 빠진 거야. 너한테.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등을 토닥이는 사이 유우지의 숨이 고르게 변한다. 이제 팔에 느껴지는 머리의 무게가 제법 됐다. 잠이 쏟아지는지 금색의 눈동자가 점점 흐려진다. 좁은 침대로 인해서 숨이 가까웠다. 바짝 붙은 몸의 체온이 점점 달아오르는 것 같다. 따뜻했다. 어딘가 시린 바람이 불고 있는 고죠의 마음이 따끈하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등을 더욱 토닥여주었다. 눈이 점점 감기는 유우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이랑 더 얘기하고 싶은데... 자고 싶지 않은데... 라는 말을 내뱉다가 곧 완전히 감겼다. 이마에 꾹 하고 입술을 붙였다가 떼어냈다.
"잘자, 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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