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죠유지] 사랑은 유리병을 타고

Lacto락토 by 락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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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윗에서 썰 풀었던 편의주술로 유리병에 갇힌 유지와 그런 유지를 짝사랑하는 고죠선배 이야기

  • 언제나 보면 끝이 ...... 날림이 심하네요😢

  • 포타와 함께 업로드 되었습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정은 천천히하겠습니다. 


장막안으로 들어온 사토루는 유우지의 잔예를 따라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요 근래 계속 유우지와 임무가 붙지 않아서 아쉬웠던 참에 그의 임무처가 근처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곧바로 날아온 참이었다. 임무를 대충 도와주고 얼른 유우지와 맛있는 파르페라도 먹으러갈까 하는 생각에 기분좋게 온 사토루는 처음보는 보조감독의 모습에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자신을 막아서는 행동에 순간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버린 사토루는 급하게 장막 안으로 들어온 참이었다. 

장막안에서는 유우지의 기척이 어쩐지 잔예 말고는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이쪽으로 날아오면서 듣기로는 유우지가 상대할 주령은 2급. 지금 유우지의 상태로는 손쉽게 제령할만한 등급이었다. 그런데 과연 주령이 문제일까. 기분나쁜 예감은 틀린적이 없다. 

자신이 알고 있지 않은 사람의 기척. 그 기척에 사토루의 새파란 눈동자가 순간 번뜩이며 빛나고 재빨리 뒤를 돌아서 손을 뒤로 뻗었다. 그러자 그가 지나온 자리에 있던 커다란 나무 위와 제 앞쪽에 숨어있던 사람이 순식간에 제쪽으로 끌려오는 걸 보며 사토루는 혀를 쯧, 하고 차댔다. 사토루 쪽으로 끌려온 두 사람은 서로 가슴을 부딪쳤고, 그대로 겹쳐진 몸을 발로 차버리자 커다란 소리를 내며 나무에 박혀버렸다. 겹쳐진 채로 나무에 박힌 두 사람은 컥컥 거리는 소리를 내며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툭 하니 떨어지는 무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를 단번에 제압한 사토루는 귀를 후비며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신음을 흘리며 정신을 잃은 두 사람을 바라보며 핸드폰을 꺼낸 사토루는 전화를 걸다말고 자신의 발밑으로 굴러오는 유리병을 바라보았다. 또르르, 하고 굴러온 유리병은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잼병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것은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순간 미간을 찌푸린 사토루는 걸던 전화를 끊어버리고는 유리병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유우지?"

사랑은 유리병을 타고

사토루는 침대에 올려둔 유리병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범한 유리병 안에서 정좌를 하고 앉은 유우지를 바라보며 잠시 한숨을 쉬었다. 유우지는 민망한듯 자신의 볼을 손가락으로 긁어댔다. 사토루의 표정은 꽤나 살벌해서 유우지가 되려 눈치를 보게 된다. 

주령은 금방 헤치웠다. 임무를 배정받을때 들었던대로 주령은 2급짜리. 사실 2급에도 못미치는듯 했다. 금방 제령을 한 탓에 강해진걸까? 싶은 기분이 들어서 들떠버렸다. 그게 실수였다. 자신 말고도 장막안에 누가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유우지가 뒤쪽에서 날아온 유리병에 등을 맞아 아파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그쪽으로 빨려들어가버렸으니까. 그리고 나타난 사람의 모습은 처음보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유우지가 빨려들어간 그 유리병을 들고는 씨익 웃으며 스쿠나의 그릇을 포획했다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기도 전에 그대로 그들의 손에 들려서는 어디론가 끌려가게된 유우지는 자신의 주먹과 몸을 이용해 유리병을 부수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렇게 이대로 끌려가나 싶었을때 나타난게 사토루였다. 

기사회생이라고 해야할까, 목숨은 건졌지만 어쩐지 화가 나 있는 사토루의 모습에 유우지는 혼나는 사람처럼 무릎을 꿇고는 그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사토루는 유우지가 생각하는 것처럼 화가 난 상태는 아니었다. 그냥 유리병 속에 작아진 유우지를 보느라 정신이 없을 뿐. 물론 그 안에 유우지가 그대로 끌려갔다면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찌됐든 사토루가 잘 구해냈으니 됐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정체를 알아내긴 해야겠지만. 생각해보니 자신이 정체모를 이들을 제압시킨 후로 장막이 걷힌 걸보면 이미 보조감독도 한패인 듯 했다.

일단 그건 다음으로 재쳐두고, 사토루는 지금 자신을 올려다보는 주먹만한 유우지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인형처럼 작아진 유우지는 사토루의 손바닥에 올려둬도 될 것 같았다. 어쩐지 이런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사토루는 자신의 방으로 유우지를 그대로 데려온 참이었다. 

처음에 방으로 데려왔을 때, 침대에 올려두자 유리병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작은 주먹으로 유리병을 여기저기치고 다녔다. 유우지가 치는대로 통통하는 소리가 울리기를 반복하더니 곧 기합을 넣더니 있는 힘껏 유리병에 주먹을 꽂았다. 팡! 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지만 미동도 않는 유리벽을 쳐다보다가 당황한 얼굴로 사토루를 올려다보는 모습은 마치 작은 인형같아서 순간 피식 웃어버린 사토루였다. 작아져서 유리병 안에 갇힌 유우지는 원래도 귀여웠지만 지금은 더 귀여워보였다. 약간 울상을 하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모습에 괜한 헛기침을 하며 얌전히 있으라고 하자 유우지는 더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알법 했지만 사정 설명을 하란 사토루의 말에 유우지는 어쩐지 눈치를 보면서 일에 대해서 간략한 설명을 했다. 

결국은 방심했던 유우지의 탓도 있지만 처음부터 그를 노린 일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사토루의 표정이 다소 험악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 험악한 얼굴에 눈치를 보면 유우지가 사토루에게 말했다. 

"선배라면 어떻게 할 수 있지?"

"글쎄, 조금 더 봐야할 것 같은데."

강한 술식은 아니었다. 어차피 그들도 잠시 유우지를 포획할 생각으로 만든 유리병인듯 힘은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사토루의 힘이라면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부서질 것 같았다. 하지만 사토루는 작아져서 좌불안석인 유우지를 보고 있으니 일이 이렇게 된 거 어디로 도망갈 수 없는 유우지를 하루정도는 독점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욕심이 새록새록 솟아났다. 언제나 사람들에게 둘러쌓여있는 유우지를 독점할 수 있는 날은 그다지 많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이 귀여운 모습을 다른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다. 자신의 마음을 아직도 전하지 못한 사토루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유우지의 눈을 피하며 괜히 시간을 끌어본다. 그런 사토루의 마음도 알지 못한 채 유우지는 놀란 얼굴을 하면서 유리벽에 달라붙어서 사토루를 재촉했다. 

"선배가 못하는 거면 얼른 다른 사람한테 알려야 되는 거 아냐? 나 도망간줄 알면 어떡해?"

"그건 뭐, 내가 알아서 할거고. 오히려 지금 알려지면 너 평생 거기 있어야 될지도 몰라."

사토루의 말에 유우지의 안색이 파리해진다. 사색이 된 얼굴로 설마라고 말하면서도 사토루의 말에 일리가 있는 기분이었다. 어쨌든 상층부는 아직도 유우지를 믿지 못하는 상태였고 없앨 수만 있다면 무슨짓이라도 할테니까. 이렇게 유리병 속에 갇힌 유우지를 보면 차라리 잘된거라고 할 수도 있었다. 물론 그게 사토루의 비약이기는 했지만. 유리벽에 손을 대고 꼼지락거리는 유우지를 바라보다가 사토루는 괜히 큰소리를 내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최강인 내가 안 못한다는데! 누구한테 부탁하래!! 이 멍청아!"

유우지는 버럭 소리를 지르는 사토루의 행동에 귀를 막았다. 마치 바로 옆에서 천둥이 치는 것철머 크게 들리는 그의 목소리에 귀가 울리는 것 같았다. 그런 유우지의 행동에 사토루는 잠시 멈칫하더니 입술을 우물우물거리다가 이내 아무런 말이 없었다. 사토루의 행동이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자신보다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이 하는 말이니 유우지는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유리병이 어떤 구조로 되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막혀있음에도 숨쉬는데에도 문제가 없었고 딱히 할일이 없다는 것 말고는 불편한 점이 없었기에 유우지는 그저 유리병에 자리를 잡아 앉아버렸다. 

어느새 침대에 팔을 괴고 누운 사토루가 유리병에 얼굴을 가까이 대면서 빤히 쳐다본다. 선글라스를 협탁 위에 올려둔 사토루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은 정말 예뻐서 유우지는 그걸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된다. 처음 만났을때도 선글라스 뒤로 보이는 그 푸른 눈동자에 마치 홀리는 기분이었다. 깨끗하고 깊은 호수같은 눈은 풍덩하고 빠져버릴 것만 같아서 바라보고 있을때면 어느순간 가슴이 설레고는 했다.  

그 후로 잠시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유우지는 그저 홍채는 얕은 바다처럼 반짝이고, 동공은 깊은 수면처럼 까만 그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었고, 사토루는 마치 유우지의 한 행동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유우지가 자신을 바라볼때는 어느순간 저렇게 멍할때가 있다. 그런 얼굴을 볼때면 사토루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기분이었다. 유우지의 호박색의 눈동자는 작은데도 반짝이며 빛난다. 그렇게 두사람은 잠시 말없이 서로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곧 유우지는 이내 유리병 안에서 몸을 뉘었다. 제 팔을 베고 누운 유우지는 다리를 까닥까닥이면서 심심한 듯 하품을 늘어지게 한다.  

"야, 이제 걱정 안 해?"

"걱정해봤자 달라지는 것도 없잖아. 뭐, 선배가 있으니까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꽤 심한 일을 당한 주제에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을 하는 것 보면 참 신기하다. 낙천적이라고 해야하나, 태평하다고 해야하나. 지금도 유리병에 갇혀서는 어쩔줄 몰랐던 건 꿈이었다는 것마냥 이제는 편안해보이는 그 모습에 사토루는 조금 어이없었다. 

유우지는 특급 주물인 스쿠나의 손가락을 먹고도 살아남은 아이였고, 그로인해 순식간에 뒤바뀐 자신의 삶도 웃으면서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뭐 저런 녀석이 있나 싶었지만 알면 알수록 재밌어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약한 주제에 사람을 구하고 싶다고 말하는 녀석을 볼때면 어느순간부터 사토루는 유우지를 어딘가에 숨겨놓고 싶은 기분이 든다. 아무것도 괴로운 일 없도록, 누구도 힘들게 하지 않도록 숨겨놓고 싶은 기분이 들어버려서 곤란했다. 그런 생각이 들고나면 순간 유우지를 꼭 끌어안아주고 싶어지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잠이라도 오는지 길게 다시 한번 하품을 한 유우지의 눈꺼풀이 느릿하게 깜박이기 시작한다. 자신이 옆에서 바라보고 있는데도 느릿하던 눈꺼풀은 어느새 닫혀서는 쌕쌕 거리며 숨을 내쉬고 있었다. 선배가 있으니까, 라는 말은 생각보다 기분이 좋아서 사토루는 그렇게 잠이 들어버린 유우지만을 한참을 구경했다.

이리저리 제멋대로 뻗쳐있는 분홍색 머리카락을, 동그란 이마와 감겨있는 눈, 코, 도톰한 입술. 사토루는 그런 유우지의 얼굴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조금 더 몸을 낮췄다. 눈밑에는 마치 스쿠나의 그릇이라는 걸 잊지말라는 듯 상처가 나 있었고 그 아래 뺨은 말랑해보였다. 들어보면 무게가 꽤 나가는데 몸은 슬림해보여서 유우지의 몸이 얼마나 탄탄한지 알게 해줬다. 처음에 들어보고 얼마나 꽤 나가는 무게에 놀랐던게 생각이 났다. 자신이 마음대로 만들어놓은 빨간색 후드티 사이로 보이는 목덜미를 바라보다가 사토루는 저도 모르게 살짝 얼굴을 붉히고 만다. 심장은 두근두근, 꽤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유우지를 보면 심장이 빠르게 뛰어서 사토루는 자신의 심장에 문제가 생긴줄 알았다. 누가봐도 남자다운 유우지를 보고 떨리는 심장이라니, 처음에는 믿을 수 없어서 얼마나 부정했는지 모른다. 자신은 꽤나 몸매가 좋은 여자가 이상형이었으니까. 

그렇지만 결국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건 유우지가 다른 사람과 함께 웃고 있는 모습을 볼때면 두근거림이 찌릿한 통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자신을 향해 웃어주면 그게 또 귀여워서 찌릿한 통증이 사르륵 녹아버리는 걸 느꼈다. 웃는 얼굴을 자꾸만 보고 싶어지고 자신을 더 많이 불러주길 바랬다. 그러니 인정을 하지 않을수가 없다. 자신이 아무리 감정에 둔감해도 그정도는 알 수 있었다. 아니, 알 수 밖에 없을정도로 심장이 뛰어댔다. 그렇게 인정을 하고 나니 감정은 폭풍처럼 몰아쳐서는 모든 시간이 유우지의 중심으로 흘러가는 느낌까지 들어버리고 만다. 

이렇게 단둘이 있는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 유우지의 상태를 알고 있는게 저뿐이라는 사실에 사토루는 왠지 기분이 둥둥 뜨는 느낌이었다. 잠시뿐이겠지만 아무도 모르는 둘만의 비밀. 그건 꽤 달콤하다. 

그때 기숙사 복도에서 들리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사토루는 어느새 몸을 옆으로 뉘고 자고 있는 유우지를 보고는 재빨리 유리병을 침대 아래로 숨겼다. 흔들리지 않게 조심히 움직이고는 아래를 바라보니 유우지는 깨지 않은 것 같았다. 아스팔트 위에서도 잘 수 있다고 큰소리를 떵떵치더니 제 발아래라 흔들려도 아무렇지도 않은듯했다. 입을 헤, 벌리고 자고 있는 모습을 침대에서 머리를 숙여 바라보던 사토루는 벌컥 열리는 목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사토루."

"스구루!! 노트하라고!!"

"그게 니가 할말이야?"

문을 열고 들어선 건 게토였다. 놀라는 사토루의 모습에 오히려 더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어깨만 으쓱하더니 방으로 들어섰다. 문이 닫히고 사토루는 침대에 앉아서는 스구루를 올려다보았다. 당황한 표정은 이내 진지하게 변해서는 곧 게토가 입을 열었다. 

"유우지가 돌아오지도 않았대."

"그래?"

"연락도 안 된다는데?"

"아, 뭐. 걔가 어린애도 아니고 여런히 알아서 하겠지. 뭐 그런거가지고 난리야."

"그래?"

게토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사토루를 바라보았다. 사토루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옆으로 길게 늘어진 눈을 바라보다가 순간 저도 모르게 눈을 피해버렸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일은 벌어지고 난 후였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힐끔거리며 유리병을 내려놓았던 침대 밑으로 시선이 가버렸다. 게토는 자신의 눈을 피해서 왠지 모르게 안절부절못하는 사토루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의 정적이 흐른다. 

사토루는 왠지 모르게 등에서 땀이라도 날 것만 같았다. 괜히 벌떡 일어나서는 침대에서 내려와 게토의 앞에서서는 뭐뭐, 하며 성질을 냈다. 그런 사토루의 어깨에 손을 올린 게토는 자신의 시선을 자꾸만 피하는 사토루를 빤히 바라보았다. 사토루는 기본적으로 뻔뻔하고 장난을 좋아하며 거짓말을 잘하지만, 유우지와 관련된 일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게다가 유우지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아무렇지도 않아보이는 이 행동은 분명 사토루는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평온할 수가 없다. 

언젠가부터 유우지의 일에 대해서는 크게 반응하는 사토루의 마음쯤이야 오랜시간 옆에서봐온 게토나 이에이리는 벌써 눈치채고 있었다. 사실, 오랜시간이 아니더라도 하루종일 유우지를 쫓는 그의 행동만 보고도 왠만한 고전사람들은 알고 있었으니까. 사람의 감정에 꽤 예민한 유우지가 모른다는게 더 황당할 뿐이었다. 아니면 사랑에만 둔감한건가 싶기도 했다.

"흐음...이상하네."

".....뭐, 뭐! 왜 그러는데!!"

"아니, 사토루라면 벌써 유우지 찾겠다고 난리나야되는거 아닌가 싶어서? 걔 걷다가 삐끗만해도 난리났잖아."

"내가 언제!!!!"

당황한 사토루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커다란 목소리에 게토는 자신의 귀를 후비면서 자꾸만 사토루가 힐끔거리는 침대 밑을 바라보았다. 그러니 사토루가 금세 게토의 앞으로와서는 시선을 차단한다. 게토는 사토루의 행동으로 대충 유우지가 이곳에 있는 걸 알아채고 말았다. 사실 이렇게까지 티를 내주니 모를 수가 없었다. 아마도 유우지가 있는 곳은 사토루가 아까부터 힐끔힐끔 쳐다보는 침대 밑이 아닐까 싶었다. 정확하게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토루가 함께 있다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게토는 사토루와 눈을 마주쳤다. 사토루의 새파란 눈동자가 잔뜩 일렁이며 흔들린다. 게토는 그런 사토루를 보니 왠지 놀리고 싶어지는 기분이 든다. 

게토는 다시 눈을 접어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친구의 사랑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은 이미 차고 넘쳤기에 이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이러다가는 사토루와 유우지는 평생 이런 상태일지도 모르니까. 조금은 도와줘볼까. 물론 이게 사토루가 원하는 도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게토와는 크게 상관없었다. 

"그래서 사토루?"

"뭐."

"유우지한테 언제 고백할, 읍!"

"아앙??!!!! 그 얘기가 지금 왜 나와!!!!"

갑작스러운 게토의 말에 사토루는 너무 놀라서 크게 소리를 지르며 그의 입을 막았다. 아주 가까이에 다가온 사토루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당황한 눈동자는 더 크게 일렁인다. 게토는 사토루의 그런 행동에 웃어버린다. 곱게 접히는 눈이 사토루를 빤히 바라보면서 한걸음 뒤로 물러선다. 제 입에 닿았던 사토루의 입을 한번 닦아내더니 굳어버린 사토루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사토루의 귀에 속삭였다.

"오늘이 딱 아닐까? 이러다가 평생 짝사랑만 한다?"

"........."

"유우지는 걱정하지 말라고 내가 전해둘테니까. 잘해보라고."

사토루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게토는 다시 한번 사토루의 침대 밑으로 시선을 둔다. 게토의 돌발 행동으로 살짝 굳어버린 사토루는 이번에는 게토의 시선을 차단할 생각도 하지 못한채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런 사토루를 보면서 살짝 손을 흔들어보인 게토는 그대로 사토루의 방을 나섰다. 문이 열리자 복도에서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고, 탁 하고 닫히는 문소리와 함께 밖에서는 후시구로와 쿠기사키의 목소리가 들렸다. 흥분한 듯한 두사람을 달래는 목소리가 점차 멀어진다. 

사토루는 천천히 뒤를 돌아서 침대로 다가갔다. 그리고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는 침대를 더듬어 유리병을 찾았다. 깊게 넣어두지 않아서 혹여나 게토에게 들켜서 그대로 상층부나 선생들에게 빼앗기면 어쩌나했는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고맙다고 해야하나. 

사토루가 먼지가 자욱한 침대밑에서 유리병을 꺼내자 유리병 바닥에는 희뿌연 먼지가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그 안에 유우지는 사토루를 등지고 누워있었다. 살짝 흔들어도 미동하지 않는 걸보니 아직 잠에서 깨진 않은 것 같았다. 괜히 깨어났다가 게토가 말한 고백 어쩌고를 들었을까봐 걱정했지만 아니었다. 휴, 하고 짧은 숨을 내쉰 사토루는 그 유리병 바닥의 붙은 먼지를 손으로 대충 털어내고는 제 침대 위에 올려두며 앉았다. 아까랑은 다르게 몸을 웅크리고 자고 있는 유우지의 얼굴이 잘 안보여서 조금 아쉬운 기분이었다. 추운가? 싶어서 자신의 손으로 병을 꼭 잡아보았다. 자신의 손의 온기가 유우지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꼭 쥐며 그 안을 바라보고 있자 귓가에 게토의 말이 맴도는 기분이었다. 

이러다가 평생 짝사랑만 한다?

그건 싫었다. 이왕 시작된 마음이라면 쌍방이 되고 싶었고, 유우지와 사귀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가져보는 첫 마음이었기에 꼭 같은 마음을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유우지 앞에서만 있으면 입은 제멋대로 움직인다. 유우지에게 제일 많이 하는 말은 멍청이가 아닐까 싶었다. 언제나 다른 사람을 더 위하고, 자신의 몸은 뒷전인 유우지를 볼때마다 걱정되면서도 화가 나서 그런 말이 먼저 나온다. 그러니까 아무한테도 보여주고 싶지 않고 더 숨기고 싶었다. 이제는 실력이 좋아진 유우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곁에 있을때면 지켜주고만 싶어진다. 그는 동화속의 공주처럼 지켜지기를 원하지도 않았고 충분히 제 힘이 있었음에도 사토루는 유우지를 볼 때면 그런 기분들었다. 자신의 곁에서 안전하게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도 유우지가 자신의 힘을 키워가는게 또 좋았다.  

침대에 앉아서 유리병을 꼭 쥐고 내려다 보면서 사토루는 웅크린채로 자고 있는 유우지를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연습을 한다면 역시 본인에게 하는게 좋겠지. 라는 생각을 한다. 내뱉으려는 말은 사랑의 고백, 그 낯간지러운 말을 내뱉으려고 하니 어쩐지 목에 턱 걸리는 느낌이 든다. 목 아래가 간지럽고 뜨끈한 기분에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한 사토루는 아주 조그맣게 그 달콤한 말을 내뱉는다. 

"좋아해."

"........"

"좋아해. 유우지."

그 말은 자고 있는 유우지에게 닿지는 않겠지만 사토루의 목소리는 어쩐지 목이 매이고 있었다. 턱 아래에 걸려버리는 말을 내뱉기 위해 배에 힘까지 잔뜩 준 사토루는 어느새 얼굴이 또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잠시 아무런 말 없이 방안은 정적이 맴돈다. 도쿄라고 해도 워낙 구석진 곳에 있는 고전인데다가 학생수는 적었고 임무로 인해 뿔뿔이 흩어지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아마 아까 찾아왔던 후시구로와 쿠기사키를 게토가 데리고 어디론가 간듯 싶었다.

유우지와 방으로 돌아온 것은 늦은 오후였고, 어느새 해는 다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해는 완전히 지평선을 넘어갔지만 아직은 하늘은 아직 푸르스름하게 빛이 있었다. 그렇게 창문에서 들어오는 약간의 빛을 받으며 사토루는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하아, 하고 깊은 숨을 내쉬고 빤히 웅크리고 있는 유우지를 바라보면서 고백의 말을 내뱉어본다. 

"좋아해. 우리 사귀자. 유우지."

"........"

"하, 씨.. 뭐하는거야. 진짜."

자기가 내뱉고도 어이가 없고 웃겨서 사토루는 짜증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연습이라고는 하나 자고 있는 사람에게 하는 고백이라니. 이렇게 구질구질할 수가 있나 싶었다. 고죠 사토루라 함은 누구나 돌아볼 만큼 잘생긴 외모에 능력까지 출중한데 자신보다 몇살이나 어린 후배에게 이렇게 도둑고백이라니. 사토루는 왠지 모를 현타가 오는 기분에 웃음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때 눈에 들어온 것에 순간 움찔하고 만다. 몸을 최대한 웅크린 유우지의 목덜미가 왠지 빨갛게 달아올라 있는걸 발견하고 말았다. 사토루는 순간 사고가 정지되는걸 느꼈다. 유리병을 살살 흔들자 유우지의 웅크린 몸이 잔뜩 흔들린다. 왠지 얼굴을 가리고 있는 손이 덜덜 떨리는 것처럼 보여서 그 유리병을 얼굴 가까이 가져와 쳐다보자 점점 더 얼굴을 가린 손이 떨려온다. 그 떨리는 손을 바라보는 사토루의 눈동자도 잔뜩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킨 사토루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유우지를 불렀다. 그 목소리는 고백의 말을 몰래 내뱉을때보다 더 잠긴 목소리였다. 

"유우지?"

"........."

"유우지... 자는거 맞지? 그치?"

사토루의 질문에 유우지는 반응이 없다. 여전히 손을 떨리는 것 같은데 반응이 없는 그 모습에 사토루는 눈만 깜빡였다. 그러나 그때 유우지가 새빨개진 얼굴은 당황함을 가득 담아서는 고개를 빼꼼하니 손 밖으로 내밀었다. 아직도 떨려오는 손은 주먹을 꽉 쥐고 옆으로 웅크린 자세에서 고개만 돌린 유우지와 사토루의 눈이 마주쳤다. 후드티와 똑같아 보일정도로 빨개진 그 얼굴을 보면서 사토루는 너무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주력을 내뿜었다. 그 주력에 유우지가 들어있던 유리병의 힘이 깨지면서 코르크 마개가 퐁, 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코르크 마개가 열리면서 완전히 힘을 잃은 유리병은 순식간에 파편이 되어 방안으로 쏟아졌고, 유우지는 원래 크기로 돌아와서는 그대로 공중에 떠올랐다. 

두 사람 다 눈이 커다래진채로 눈이 마주쳤다.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유우지가 공중에 떠 있는 모습을 커다래진 눈으로 바라보던 사토루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유우지를 잡아 당겼다. 깨진 유리병 위로 유우지가 떨어질까봐 자신도 모르게 한 행동이었다. 그대로 사토루의 품으로 떨어진 유우지는 사토루의 어깨에 얼굴을 기댄 상태가 되었다. 파편은 사토루와 유우지의 몸에서 무하한으로 인해 튕겨져 나가 바닥으로 쏟아진다. 유리가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가 잠시 울리고 찾아온 정적에는 두 사람의 당황한듯한 숨소리만 울릴 뿐이었다. 

유우지를 품에 안은 사토루는 상황에 대해서 빠르게 판단하려고 했지만 자신의 품에서 있는 유우지로 인해서 그것도 쉽지 않았다. 품에 안긴 유우지의 몸은 뜨거웠고, 어쩐지 심장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여전히 사고가 정지된 듯 그렇게 한참이나 부둥켜안은 두사람은 한참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눈을 깜빡이던 사토루가 먼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 들었어?"

".....응. 미안."

"어디부터. 아니, 어디서부터."

애꿎게 사과하는 유우지의 말에 사토루는 정말 낭패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백을 한다면 정말 멋들어지게 하고 싶었는데 어째서 일이 이렇게 되었을까. 쓸데없이 자신을 부추긴 게토에게 괜히 화살을 돌리면서 사토루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죄다 뜯고 싶었다. 어디서부터 들었냐는 사토루의 물음에 잠시 말이 없던 유우지는 여전히 사투루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채로 말했다. 

"게토 선배 방에 들어왔을때부터..."

"........."

"근데 고죠선배..."

"왜..."

"못 푼다더니... 유리병 엄청 쉽게 풀었네?"

그 말에 사토루는 더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더 알아봐야할 것 같다고 했던 거짓말이 그대로 들통나버렸으니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사토루의 행동에 유우지는 고개를 살짝 들었다. 이제는 완전히 어두워져버린 방안에서도 이렇게 가까이 있으니 그의 빨개진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 사토루는 그 시선에 유우지의 시선을 피해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창피해서 차마 유우지를 볼 수가 없었다. 

"고죠 선배... 나랑 그렇게 같이 있고 싶었어?"

"..... 조용히 해. 창피하니까."

밖에서는 이제 고전생들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는지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도 사토루의 방은 여전히 어둡고 조용했다. 두 사람의 숨소리가 다 들릴 정도로. 좋아하는 사람을 품에 안고, 몰래 한 고백까지 들켜버린데다가 자신의 사심까지 완전히 다 들켜버린 상황에서 사토루는 창피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창피하다고 말하면서도 혹여나 유우지가 다칠까 무하한을 켜둔 채로 한참이나 그를 안고만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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