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죠유지] 마법사나라의 초대 上

어릴 적 우연히 만났던 고죠와 유우지가 8년 후 재회하는 이야기

Lacto락토 by 락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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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조와 캐붕과 급전개


누구나 마음에는 여러 개의 선이 있다. 

그건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분명히 존재했다. 어떤 사람은 그 선의 허들이 낮아서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었고, 어떤 사람은 그 선의 허들이 매우 높아서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 고죠 사토루는 후자에 속했다. 

누구나와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할 수 있고, 뻔뻔할 정도로 누구에게도 친한척 할 수 있었다. 경계가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지만 그건 겉모습 뿐이었다. 그에게 진정으로 누군가를 마음에 품어봤냐고 물어 본다면 그저 웃고 말았다. 속으로 쓰게 웃으며 단 한 번 정도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게 꼭 연인으로써는 아니었다. 그는 가장 소중한 친우였기에. 그런 그가 자신과 함께 세상의 최강이라고 떠들며 지낸 건 그리 길지 않았음에도 등 뒤를 맡길 수 있는 든든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을 잃는다는 건, 생각보다 뼈저리게 아팠다. 세상을 위해 죽여야 마땅했지만 그럴 수 없었기에. 더 이상 아무도 제 마음의 선을 넘지 못하게 그렇게 살았다. 

그가 돌변한 후 그렇게 얼마나 임무에 미쳐서 살았을까. 아직은 그가 떠난게 뼈저리게 아팠던 그 시절, 무언가를 파괴하지 않으면 속이 남아나지 않았기에 그는 자신의 힘을 성장시킨다는 이유로 해외고, 국내도 어디든 돌아다녔다. 위태해 보이는 그를 걱정하는건 그의 친우의 문드러지는 마음을 보듬어주지 못했던 야가였고 셋이 함께 였음에도 방관자의 역할을 했던 이에이리는 이번에도 그저 바라만 보았다. 

햇빛이 뜨거운 여름 날, 센다이 출장에서 그 아이를 만났다. 어쩌면 고죠의 보이지 않는 벽으로 가로막혀 있는 마음의 선을 간단하게 부시고 넘어 올 그 아이를. 

아래 앞니가 다 빠져서 흘러 나오는 침을 단도리 하지도 못한 아이가 고죠에게 물었다. 

"형아, 형아 아파?"

침과 함께 콧물도 조금 나왔다. 그 모습을 보자 어이가 없어서 조금 웃음이 나왔다. 제령을 마치고 산 속을 내려오자 아스팔트에 아지렁이가 올라올 정도로 뜨거웠다.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자신이 이런 저급까지 처리를 해야하나 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지금 몰려드는 임무는 고죠가 자처한 것이었다. 

더위에 지쳐버려서 잠시 길가에 주저 앉아 버렸다. 날씨는 뜨거웠고 땀으로 인해 옷도 흠뻑 젖었다. 그렇게 한참, 내리쬐는 햇빛을 받고 있으니 머리에서부터 시작된 땀이 뚝뚝 떨어졌다. 흙바닥이 제 땀으로 젖어가는 걸 바라보며 다시 보조감독에게 전화를 할까 했는데 코 앞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는 우물우물거리며 아직 발음도 똑바로 못하는 목소리였다. 고개를 들자 저를 따라 쪼그려 앉은 아이가 자신을 올려다 보며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커다란 밀집모자를 쓰고 손에는 아이스크림이 들고. 뜨거운 날씨에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이 그 아이의 조막만한 손을 타고 질질 흐르고 있었다. 칠칠맞은 꼬맹이네. 그런 생각도 잠시 흘러나온 침을 손등으로 쓱 문대던 아이의 얼굴을 보며 대답했다.

"안 아파."

"그럼 더워? 시원하게 해줄까?"

귀찮다는 듯 대충 대답했음에도 아이는 민망한 기색 하나 없다. 뜨거워진 뒷통수에 고개를 들었지만 이번에는 얼굴로 내리쬐는 햇빛은 자비가 없었다. 하얀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리던 땀이 고개를 든 고죠로 인해 얼굴로 흘러내렸다. 안그래도 좋지 않은 기분이 더 불쾌해져간다. 씻고싶다. 끈적거리는 옷도 다 벗어버리고 싶은 기분. 전화한지가 언젠데 아직도 오지 않는 보조감독을 욕하며 선글라스를 고쳐 올리는데 별안간 얼굴로 바람이 끼쳐왔다. 

어느새  다 먹은 아이스크림 나무막대를 주머니에 쑤셔 넣은 아이가 자신이 입고 있던 나시를 꼬물 꼬물 벗어 그 나시 티로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작은 아이가 부채질을 해봤자 옷만 펄럭일 뿐이라 고죠의 뜨거운 머리를 식혀주지는 못했다. 그런 모습이 웃겨서 보고 있자니 어찌나 열심히 부채질을 하는지, 아이의 이마로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그게 웃겨서 턱을 괴고 쳐다보고 있자 시원해? 하고 물어온다. 별로. 짧은 대답에 아이는 더욱 힘을 들여 부채질을 했다. 펄럭, 펄럭. 힘도 안 든지 열심히도 부친다. 왜 이렇게 열심히 할까. 낯선 사람이 무섭지도 않은 건지 서스름 없는 아이가 신기하기도 했다. 자신의 얼굴이 잘난 얼굴이긴 해도 만만한 얼굴은 아닐텐데.

"그만해. 어차피 안 시원하니까."

"더 하면 시원할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우리집 갈래?!"

"뭐?"

"우리 집 가면 할아부지도 있고 시원한 보리차도 있어!"

뭔가 대단한 걸 자랑하는 것처럼 발을 동동거리는 모습에 고죠는 멍청한 얼굴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스크림이 덕지덕지 묻어버린 나시 티를 꼬물꼬물 입고 어느새 제 손을 잡아 온다. 술식을 풀지 않아 제 손이 닿지 않자 놀란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선글라스 너머로 보이는 아이는 해맑음 그 자체였다. 최강으로 태어나 경외감을 드러내는 인간들 사이에서 살았던 고죠에게 아이의 표정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두려움은 전혀 느끼지 않는 그저 놀람과 신기함, 그리고 흥미로움이 느껴졌다. 어쩌면 어린 아이라서 보여줄 수 있는 얼굴일수도 있었다. 

주령과는 다른 의미로 평번한 인간들과 섞일 수 없는 고죠의 마음을 흔들기엔 충분한 얼굴이었다. 황금색과 비슷한 노란색 눈동자가 잔뜩 일렁이며 저와 닿지 않는 고죠의 손에 몇 번이나 갖다대었다.

"신기해!! 형아 마법사야?"

"비슷한거야."

"우와우와!!! 짱이야!! 형아 짱이야!! 마법사라니. 그래서 머리카락도 할아부지처럼 하얀거야?"

할아버지처럼이라는 말에 허, 하고 어이없는 한숨이 터졌다. 그러면서도 순수하게 신기해 하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를 갈증이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여전히 신기한듯 제 손가락으로 제 손을 만져보려 하는 모습을 보다가 슬쩍 술식을 풀었다. 그에 살이 맞닿자 이번에도 동그란 눈을 하고는 고죠를 바라본다. 닿은 손가락의 감촉이 마음에 드는지 입을 한껏 벌려 웃는 얼굴은 이가 빠져 바보같으면서도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그러고보니 꽃분홍색을 한 머리카락이 보슬보슬해 보였다. 아이가 만지고 있는 반대편 손으로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주자 기분좋은 고양이처럼 부비는 모습 또한 귀여웠다. 흔하지 않은 머리카락 색과 더 흔하지 않은 붙임성을 가지고 있는 아이는 어쩐지 눈길이 갔다. 

다른 생물체, 특히나 인간에게 이제는 애정을 주지 않으려 하던 고죠는 새록새록 올라오는 이 기분이 생소하고 낯설었다. 그게 나쁘냐고 한다면 지금 입에 걸린 약간 미소가 그렇지 않다고 대변해주고 있었다. 귀여운 야생동물같은 아이는 어딘지 모르게 원하는대로 해주고 싶은 기분을 들게 했다. 그래서 결국 잡아 끄는 손길에 그 아이와 걸음을 옮겼을지도 모른다. 그가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르다고 해서 마음에 외로움이 없는건 아니었다. 여태까지 외면했던 그 감정에 마음이 지쳐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로 인한 생존본능이었을지도. 

"이눔아, 더운데 어딜 그리 싸돌아다녀?"

"할아부지, 마법사 형아야. 손을 잡았는데 막 붕붕 했거든? 그랬는데, 그랬는데 나중에는 손 잡았어!"

"뭐?"

알아들을 수 없는 아이의 말에 노인은 인상을 찌푸리며 고죠를 바라 보았다. 고죠는 선글라스 너머로 마주친 노인을 보며 고개를 까닥했다. 썩 예의없어 보이는 자신의 행동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표정은 더욱 안 좋아졌다. 저런 반응은 늘 있는 일이었다. 특히 노인네들과 상대할때는 더욱 더. 그때의 고죠는 지금보다 더 삐뚤어져 있었으니까. 고개라도 까닥인 걸 주술계 상층부 노인네들이 봤다면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라고 할 지경이었다. 그 정도로 인간에 대한 혐오감으로 둘둘 쌓여있었다. 

자신의 집으로 가자는 아이의 손길에 못 이기는 척 자리에서 일어난 고죠는 자신의 손을 잡아오는 아이를 위해 술식을 풀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풀지 않았던 술식은 따뜻한 아이의 체온에 허물어졌다. 아이들은 예민하기에 자신을 무서워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아이는 전혀 달랐다. 오히려 저가 마음에 드는 듯, 자꾸만 꼬물꼬물 손을 움직이며 손가락을 꼬옥 쥐어왔다. 대체 어디가 마음에 들었는지는 고죠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아이들은 마음에 든 사람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댄다. 마치 관심을 갈구하듯.

 지금 이 아이, 그러니까 유우지도 그랬다. 집으로 가는 내내 자신의 이름은 이타도리 유우지이며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고, 자신의 나이가 6살이라고 유치원에서 벚꽃반이며 친한 친구의 이름까지 술술 말했다. 

단 시간에 머릿 속에 들어오는 정보 중 몇 가지만 입력하던 고죠는 어느새 도착했다는 듯 자신의 손을 더 세게 끄는 아이의 힘이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꽤 세다고 생각했다. 도착한 곳은 일본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하고 오래된 주택이었다. 마당에서 잔디에 물을 주던 노인은 현관문을 열려는 아이에게 대뜸 호통을 쳤다. 그런 호통이 일상이라는 듯 전혀 타격을 받지 않은 아이는 자신에 대해서 소개했다. 소개라고 하기에는 다른 사람이 들으면 전혀 알 수 없는 이야기 뿐인지라 노인의 얼굴이 험악해질 수밖에 없었다. 

"할아부지, 보리차 줘. 마법사 형아가 많이 더워."

"하여튼 넌 매번 아무나 끌고와서는. 쯧."

혀를 차며 타박을 하면서도 잔디에 물을 주던 수도를 잠근 노인은 고죠를 슬쩍 쳐다보고는 거실로 이어지는 평상에 눈짓했다. 이런 적이 한 두번이 아닌듯,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만 있자 자신의 손을 다시 잡아 끄는 어린 손길. 한참이나 큰 자신을 목이 꺾일 정도로 올려다 보면서 더울때는 보리차가 짱이야! 하면서 여전히 끈적이는 손을 놓을 생각을 않는다. 그게 썩 나쁘지 않은 기분에 아이를 따라 평상에 앉았다. 신고 있던 꼬질꼬질한 슬리퍼를 벗어던지더니 거실로 들어가 선풍기를 끌고와 틀어주는데 그 집에서 나는 포근한 향이 훅 하니 끼쳐왔다. 주방으로 걸음을 옮기던 노인은 유우지에게 나갔다 왔으니 손부터 씻으라고 말했다. 그 말에 응응. 하고 대답만 할 뿐 저만 쳐다보고 있었다. 

노인과 아이가 단 둘이 사는 집에서 아이의 분내가 가득하니 몰려 온다. 반전술식을 터득한 후로는 몸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던 고죠였음에도 뜨거운 햇빛과 후끈한 공기를 마주한 하루에 왠지 노곤해지는 기분이었다. 어느새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아이가 발장난을 치면서 고죠를 불러왔다. 여전히 신경쓰이는 끈적이는 손도 같이 꼬물거렸다.

"형아, 또 무슨 마법 쓸 수 있어?"

"비밀."

"치-, 치사하네."

"원래 마법은 아무한테나 보여지면 안 되는 것도 몰라?"

"근데 보여 줬잖아. 어차피 보여준거 더 보여주면 안 돼?"

"응. 그러면 나 마법사 나라에서 쫓겨나."

"헤에, 마법사 나라가 있구나. 나도 가보고 싶다."

"별로야. 마법사 나라같은 건."

유우지가 말한 마법사의 나라라는 말에 주술계를 떠올린 고죠는 고개를 내저으며 별로라고 대답했다. 그 말에 유우지는 고개를 갸웃하며 왜 별로야? 하고 되물었지만 고죠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어느새 쟁반에 보리차 두 잔을 들고온 노인이 그것을 평상쪽으로 밀어주었다. 그것을 바라보기만 하는 고죠를 보며 아이가 유리잔을 건네주었다. 얼음까지 동동 띄어져 있는 보리차는 보기만 해도 시원해 보였다. 아이가 건네주는 잔을 받아든 고죠가 여전히 들고만 있자 유우지는 쟁반에 남아 있는 조금 작은, 제것이 확실한 유리잔을 들어 꼴깍꼴깍 소리를 내며 잘도 마셨다. 크하! 하며 제법 술마신 어른 같은 소리를 내는 아이의 모습에 참나, 하고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그 모습에 갈증이 더욱 심하게 몰려오는 기분에 고죠도 보리차를 들이켰다. 고소한 보리의 향이 코 안을 간지럽히고 목구멍으로 차가운 물이 쏟아져 들어가자 머리가 다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불쾌했던 기분 마저 가시게 하는 시원함이었다. 반쯤 남은 보리차를 마저 입으로 쏟아 부었다. 끈적했던 땀이 한순간 식는 기분. 

"시원해?"

"응. 그러네."

"형아, 형아는 그럼 마법사 나라에서 사는거야? 근데 왜 여기왔어?"

"볼 일 있어서."

"헤에, 마법사 나라는 화장실이 없어?"

'볼 일' 이라는 말에 화장실을 떠올린 듯 의아한 얼굴을 한 아이의 모습에 결국 웃어버렸다. 고죠의 웃음에 아이도 같이 따라 웃었다. 입을 한 껏 벌리며 웃는 얼굴은 천진난만 그 자체였다. 그 말에 딱히 정정해주지 않자 꽤나 집요한 유우지는 화장실 없는거야? 하고 몇 번이나 물어왔다. 뭐라고 대답을 해줄까 하다가 없다고 말하자 유우지는 갑자기 고죠를 불쌍한듯 바라보았다. 

"화장실이 없으면 불편하겠다."

"딱히?"

"에에,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가는데?"

"나는 마법사라서 화장실 같은데 안 가."

그 말에 유우지는 까르륵, 하며 자지러지며 웃었다. 그게 그렇게 웃긴 말도 아닌데 어린 아이의 웃음 포인트는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선풍기의 바람이 여전히 고죠를 향해 있어 어느새 땀이 거의 다 식었다. 해는 아직 뜨거웠지만 시원하게 들이킨 보리차의 힘인지, 아이의 천진난만함에 치유를 받은건지 어떤지 무거웠던 몸마저 가벼워진 것 같았다. 정말 이상한 꼬맹이였다.  

유우지의 할아버지는 한참이나 자신들의 곁에서 듣지 않는 척 이야기를 듣고 있더니 곧 일어나 주방으로 들어갔다. 고죠의 정체를 알 수 없지만 딱히 손자에게 해코지를 할 마음이 없다는 걸 알아챈듯 싶었다. 이 집의 사람들은 사람을 너무 쉽게 믿는다고 생각하며 고죠는 쓰게 웃었다. 어쩌면 평번한 사람들의 일상은 이런 걸지도 몰랐다. 처음엔 경계하고 의심해도 몇 분간의 대화만으로 그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 그렇게 사람과의 인연을 만들어간다. 그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입 안이 썼다. 그들의 안위를 위해 죽어나가는 주술계의 사람이 생각나서 일까, 아니면 비술사들은 원숭이라며 혐오하던 제 친우의 말이 떠올라서 일까. 고죠는 답이 없는 질문은 금세 지워버리고 이제는 자신의 옆에서 뒹굴거리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평상에 누워 이리 뒹굴, 저리 뒹굴하던 유우지가 꼬질꼬질한 손으로 눈을 비비려는 걸 고죠가 잡았다. 고죠의 손에 잡힌 꼬물꼬물한 손을 옆에 뒹구는 수건으로 닦았다. 꾀죄죄한 떼가 묻어나오는 손을 한참이나 닦고 있으니 간지러운듯 발을 동동 구른다. 

"이런 더러운 손으로 날 만졌단 말야?"

"우웅, 햇님이 아이스크림을 흐물흐물하게 만들어 버렸는 걸."

하얀 수건이 까맣게 묻어나는 걸 보며 고죠가 웃으며 말하자 잡히지 않은 손으로 자꾸만 눈을 비비려고 한다. 잠이 오는 아이의 습관인듯 했다. 그 손도 마저 잡아서 닦아주고 놔주자 결국 제 눈을 비비는 아이의 얼굴은 잠이 잔뜩 묻어있었다. 낮잠을 자던 시간인건지, 하루종일 뙤양볕에서 놀다와서 그런건지 꾸벅꾸벅 잠을 자려는 아이를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잠이 오니 시끌시끌 끝없이 떠들어대던 입이 조용해졌다. 고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곧 잠이 들어버릴 아이를 위한 약간의 배려였다. 어차피 곧 가야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까부터 울리는 휴대폰 진동을 애써 무시하고 있었으니까. 

선풍기의 덜덜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집 안에서는 칼질하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린다. 해는 조금씩 지고 있어 한 낮의 더위보다는 많이 가셨다. 땀은 진작 다 식었고 나른한 기분까지 느껴졌다. 아마 옆에서 어느새 고롱고롱 잠들어버린 꼬맹이 덕분인 것 같았다. 복슬복슬한 머리카락에 손을 얹어 살며시 쓰다듬어 보았다. 고맙다는 말은 낯간지러운 느낌에 잘 하지 않는 고죠였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이 꼬맹이한테 고맙다는 말이 하고 싶었다. 고작 시원한 보리차 한 잔으로 자신도 모르는 새에 지쳐버린 자신을 위로해준 것 같아서. 

"그럼 안녕. 꼬맹이."

잠이 들어 자신에게 인사를 되돌려주지 못하는 아이에게 인사를 건넸다. 앞으로는 보는 일이 없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니 괜스레 마음이 섭섭했다. 오늘 하루, 아니 단 몇 시간을 조우한 아이에게 아쉬운 마음이 들다니. 그렇다고해서 일반인인 아이를 주술계에 몸담은 자신과 굳이 인연을 이어가야할 이유도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세상의 위험과 더러움따위는 모르는채로, 제 할아버지와 함께 늘 이렇게 해맑기를. 위험하기 짝이없고 썩을대로 썩어버린 아이의 말을 빌리자면 마법의 나라인 그 곳을 영원히 모르는게 나으니까.  

아쉬운 마음에 괜히 마른 침을 삼키던 고죠는 엉덩이를 붙이고 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독하게 울려대는 휴대폰을 상의 주머니에서 꺼낸 고죠는 곧 통화 버튼을 누르고 귀에 댔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당황스러움이 잔뜩 묻어났다. 도대체 어디세요, 연락은 왜 안되는거냐며 징징거리는 목소리에 귀가 따가워 잠시 귀를 떨어뜨려놓았다. 그 전화소리가 얼마나 큰지 잠이 든 아이가 인상을 쓰며 뒤척인다. 쯧, 하고 혀를 찬 고죠가 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금방 날아갈 수 있는데 뭐 이리 화를 내는건지. 좋은 기분 다 망쳐놓았다며 따귀 준비하라고 말을 하던 고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현관 앞까지 걸어온 고죠가 다시 한 번 아이를 향해 몸을 돌렸다.

옆으로 누워있던 아이가 몸을 웅크렸다. 작은 몸은 더욱 작아져 있었다. 잠이 든 아이를 잠시 바라보며 고죠는 손바닥을 마주하며 살짝 쥐려는 찰나 잠에 흐려진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입모양으로 안녕, 하고 다시 한 번 인사를 건넨 고죠는 잠시 멈추었던 손을 움직여 쥐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아까 아이를 만났던 길 상공 위였다.

자신이 있던 곳에 정확하게 차를 대고 있는 보조감독 쪽으로 날아간 고죠는 뭐하고 있었냐는 타박에 귓구멍을 후비며 창에 올라탔다. 늦은 사람이 잘못이라며 시끄럽다고 일갈한 고죠는 그대로 차 시트에 몸을 기대며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마지막에 사라진 자신을 아이가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꽤나 즐거웠던, 그러나 아쉬웠던 만남을 곱씹었다. 

다시는 만날 일은 없겠지. 안녕, 유우지.



시끄러운 소리에 눈이 떠진 유우지는 전화 통화를 하는 고죠를 바라보았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잘생긴 마법사 형아가 전화를 하고 있었다. 마법사도 전화를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손을 잡으려고 해도 닿지 않는 것도 신기했고 다시 닿는 것도 신기했다. 할아버지처럼 하얀색 머리카락도 예쁘게 반짝거려서 좋았다. 

어느새 전화가 끊긴건지 다시 조용해졌다. 마법사 형아에게 물어볼 게 많은데 자꾸만 잠이와서 눈이 감겼다. 더 놀아달라고 말하고 싶어서 입술만 웅얼웅얼. 어렵사리 눈을 뜨자 두 손을 맞잡고 있는 그가 보였다. 입 모양으로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잘 보이지 않았다. 

마법사 형아랑 더 놀고 싶은데.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 분명히 눈 앞에 있던 사람이 사라졌다. 그런 상황이 신기했지만 쏟아지는 잠을 아이가 이길 수 없었다. 까무룩 잠이 들면서 유우지는 생각했다. 

마법사 형아는 마법사 나라로 돌아갔나부다.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시 만나면 나도 마법사의 나라로 데려가 달라고 해야지. 


신념을 달리한 친우를 마주한다는 건 생각보다 뼈가 시린 아픔이었다. 웃고 떠들던 그때가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지만 그는 이제 자신과 함께 하던 그가 아니었다. 비술사를 원숭이라 칭하며 혐오감을 드러내는 모습은 자신에게 약한 이를 지켜야 한다고 말하던 모습과는 상반되었다.

이 세상에서 진심으로 웃을 수 없다며 자신의 죽음을 받아 들이는 모습을 보며 태연한 척 했지만 자신의 친우를 제 손으로 떠나 보낸 아픔은 꽤나 매서웠다. 아무렇지 않은 척 제자들과 마주했지만 혼자 남았을 때의 그 고독은 뼈져리다. 그를 떠나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지만 함께 가던 길이 갈라지는 것을 바라보는 순간 그 배신감은 치를 떨게 만들었다. 그 배신감은 오랫동안 마음 속에 남아있었고 그건 쉽게 위로되지 않았다. 그때 처음 위로를 느낀건 작디작은 따뜻한 체온을 가진 아이의 손길이었다. 죽음이란 형태는 어떠한가,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그리움과 제 손으로 떠나보냈다는 죄악감이 감싼다. 

참을 수 없는 복잡한 감정에 떠오른 건 역시나 자신을 위로해주었던 손길이었다. 보슬보슬한 꽃분홍 머리카락 아래로 통통한 볼살이 올라 붙은 그 얼굴이 보고 싶었다. 제 손을 잡아오던 그 체온으로 다시 한 번 위로받고 싶었다. 위로가 필요하다니, 주술사로서 실격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옮겨지는 발걸음은 이미 제 지배 밖이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그때의 어린아이의 모습은 아니겠지. 그럼 어때, 그냥 지금은 위로가 필요한 걸. 그렇지 않으면 최강으로 꼿꼿하게 서 있어야만 하는 자신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야 얼마든지 괜찮을 수 있다.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면 온갖 후회가 몰려온다. 그건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최강의 인간미였다. 자신조차 착각하고 있었지만 고죠 사토루 또한 인간이었기에 외롭고 고독한 시간은쯤은 얼마든지 있었다. 

바쁜 임무 속에 잊혀졌다가도 간간히 생각을 하곤 했다. 그때의 만남을 그 아이가 기억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한 순간의 꿈으로 치부해버리고 말았을까. 마지막 집을 나올때 보았던 잠에 흐린 눈동자가 여즉 뇌리에 박혀 있었다. 강렬하다고 말할 수 없는 만남에 이리도 집착하는 자신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냥 그랬다. 그렇게 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이유따위 자신도 알 수 없다. 그저 머릿속에 남아있는 그 볼 빵빵한 얼굴이 아직도 선명했다. 

센다이 상공에서 내려다 본 풍경은 그때와 다를 것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 날아온 그 곳은 처음 봤을 때보다 더 낡아 있었다. 여전히 이곳에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찾아오다니, 아무리 제멋대로 사는 사람이라지만 자신도 참 대책이 없다고 생각하며 대문 앞에 섰다. 

깜깜한 밤. 집 안은 비어있는지 어둑했다. 다행히 대문 옆 문패에는 여전히 이타도리라고 적혀 있었다. 그 문패를 가만히 바라보던 고죠는 손을 뻗어 흙먼지가 내려앉은 곳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그 얼굴은 어떻게 변했을까. 7년이란 세월은 짧은 시간이 아니니 이제는 어린 아이가 아니라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겠지. 여전히 해맑을까. 아니면 여느 소년들처럼 발랑 까져 있을까. 단 몇시간 만났던 자신을 기억이나 할까. 많은 생각이 오고 간다. 머릿속은 진작에 엉망진창이었다.

대문을 지나 현관 앞에 섰지만 불이 꺼져 있고 사람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고죠의 특별한 눈은 문을 열지 않아도 아무도 없다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김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나서 뭘 어쩌려고. 다시는 만날 일 없을 거라고 자신의 흔적따위는 쥐어주지도 않았으면서. 아주 잠깐 만났을 뿐이면서. 몇 년이나 지나 그 아이를 만나서 어쩌겠다고. 그냥 피곤을 느낄 때면 떠오르는 손가락에 닿았던 따뜻한 체온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다는 욕구만 가득했다. 이 고독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게 해주기를.

하지만 한참이나 서성이던 문 앞에서 고죠는 뒤로 물러났다. 감정적으로 찾아왔던 그 집을 멍하니 바라보던 고죠는 어느새 찾아온 이성에 뒤를 돌았다. 어쩌면 아이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모르는 사람을 예전처럼 해맑게 위로해줄 아이는 이제는 없다. 그때는 이미 한참이나 전인데. 외롭다는 감정하나로 찾아온 자신의 경솔한 행동에 헛웃음이 나왔다. 정말 갈데까지 간건가 싶어서 크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한참이나 빈 집 앞에서 허리를 굽힐 정도로 웃어대던 고죠는 하아, 하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마주하진 못했지만 아직 여기에 있다는 걸 안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 들어왔을때와 같이 문패를 한 번 쓸어 만지고는 길을 나섰다. 

급한 마음에 술식으로 왔던 것과는 다르게 역으로 걸음을 옮긴 고죠는 센다이의 명물인 키쿠후쿠를 샀다. 좌석에 몸을 기대고 상자를 뜯어 곧바로 입에 물었다. 달달한 맛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그 달달한 맛에도 지친 마음은 여전했지만 아주 약간은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그래, 이거면 된거지. 몇 번 씹어 넘긴 후 같이 산 생크림을 잔뜩 올린 핫초코를 마시고 중얼거린 고죠는 창밖을 보면서 돌아오는 내내 상자를 비웠다. 

달다. 씁쓸할 정도로. 


그러니까 또 만나, 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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