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이젠 내가 싫어졌어?

미워하지 말아줘

Last Fantasy by L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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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르로즈

https://youtu.be/jZO8N9JrOhk?si=zk358elU0xPsJq8A

♬ Warm and Soft


“…이젠 제가 싫어졌어요?”

“네? 로즈, 그게 무슨…”

카타로스가 속내를 힘겹게 털어놓으며 꺼낸 첫 마디였다. 메마른 입술 사이로 내뱉는 목소리는 깊이 가라 앉아있었다. 어떠한 대답을 듣더라도 현실을 직시하려 애쓰는 말투에 꾹 눌러담았던 감정이 스물스물 차올랐다. 평소에 생기 가득했던 눈동자도 드리워진 먹구름에 가려 탁한 색을 띄었다. 하늘을 닮아 푸르스름하면서도 회색이 섞인 잿빛이었다. 주눅든 시선은 상대와 제대로 마주하기 어려운지 헤이르가 아닌 애먼 구두의 앞코를 향했다. 울음을 터뜨리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자칫 잘못건드리면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처럼 위태로웠다.

한 번 내뱉은 말을 다시 주울 수 없다. 카타로스는 사람의 감정 또한 그것과 똑같다고 생각했다. 상대에게 이미 내보였다면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영역에 속해버린다. 그러니 말을 할 때에도, 표정을 지을 때에도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 지금까지 자신만의 불문율을 잘 지켜왔다고 생각했건만, 오늘로서 그 말을 철회해야 했다.
좀 더 좋게 말할 수 있었잖아. 자조적인 혼잣말과 함께 헤이르의 소맷자락을 붙잡은 손에 약간의 힘이 실렸다. 두꺼운 섬유 너머로 긴장감이 전해져왔다. 오랜만의 재회를 날이 선 언어 따위로 표현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늘 그래왔듯 “혹시 불편하게 했던 일이 있었나요?” 정도로, 상대의 앞에 그어진 선 앞에서 멈춰선 채 최대한 부담을 주지 않도록 물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마주하니 막연한 불안감이 올라오는 것은 물론이고, 자질구레하게 실수했던 기억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혹여 자신에게 싫증이라도 났을까 두려웠다.

“편지에 답하지 않았던 것 때문에 그런가요? 아니면 링크펄을 받지 않아서? …미안해요, 무어라 변명할 자격도 없어요. 임무 중이었다고 해도 끝나고 새벽에 답을 썼어야 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며칠이나 미뤘으니까요. ”

“…! 그런 일로 미워할 리 없잖아요. 로즈는 항상 바쁜 걸요.”

“그럼 어째서……”

오늘은 미소를 짓지 않았나요. 차마 꺼내지 못한 질문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가 가라 앉았다. 제 기억 속 헤이르는 당황을 하거나 소심하게 행동할 지 언정 입꼬리가 내려가는 일은 없었다. 함께 찻잔을 들던 순간에도, 근황을 전할 때에도 하물며 뙤약볕 아래에서 땀을 흘리다가 잠깐 불어온 바닷바람에도 곧잘 웃더랬다.
그랬던 헤이르의 표정은 오늘따라 미간이고, 입꼬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얌전했다. 식사를 할 때면 어딘가 허공을 보는 것처럼 멍한 눈으로 응시를 하고 있었고, 자리를 옮기던 도중에 느껴지던 시선은 제 눈치를 많이 보고 있었다. 참다 못해 고민이 있냐 물었을 때조차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런 모습들이 하나둘씩 겹쳤을 때, 자신과 거리를 둔다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어려운 이야기 정도는 서로 들어줄 수 있는 사이가 아니었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던가.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는 기분이었다. 가까운 이를 상대로는 제 초월하는 힘조차 해답을 주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던 헤이르는 한 쪽 무릎을 굽히며 눈높이를 맞췄다.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녀의 오른손을 살포시 잡아주었다. 차갑게 식은 손을 감싸쥐며 온기를 전했다. 그러고는 미처 다 꺼내지 못한 말을 마무리 지을 때까지 기다려주겠다는 듯, 배려와 걱정이 스며든 눈빛으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숱한 노력에도 조개처럼 꾹 다물린 입술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속절없는 침묵이 이어졌다. 저 멀리서 행인들이 오가는 소리도 멀게 느껴질 쯤 주변 공기마저 고요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굽혀진 무릎이 슬슬 아파올 텐데도 헤이르는 불평불만 하나 없었다. 그의 인내심을 알아준걸까? 그렇게 인고의 시간이 지나자 숙였던 고개가 들리며 카타로스는 상대와 마주보았다. 눈을 천천히 몇 번 깜빡이고는 돌연 눈물이 툭 흘러내렸다. 피부를 타고 흘러내린 그것은 뺨 위를 덮은 비늘 틈새까지 미세하게 적셨다. 그런 이를 달래주려던 순간, 눈가를 닦아주려던 손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만약 제가 싫어졌다면… 다시 마음을 얻을 수 있게 해답을 주지 않을래요? 역시 소중한 사람에게 미움 받고 싶지 않아요.”

참 이기적인 소망이죠? 눈물방울로 짓물렷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한동안 헤이르는 어떤 말을 해야할 지, 무슨 행동을 해야 할지 고뇌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짭쪼름한 바다를 머금은 바람이 오늘따라 차게 느껴졌다. 그렇게 뺨의 열기를 빼앗겨 서늘해질 때까지도, 두 사람은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외출하기 좋은 햇빛 만이 야속하게 계속 비출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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