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할 때

Last Fantasy by L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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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이르 & 로즈

https://youtu.be/NuY-zuPEpd4?si=nHsrXwCaW9a5y2wo

♬ Sereno - 나의 바람


햇빛이 드리우는 칼라인 카페의 오후는 오늘도 활기가 넘친다. 수많은 모험가들이 각자 의뢰를 해결하러 떠나고, 파티원을 찾는 목소리들이 겹치면서 소란스러움을 더했다. 막 모험을 시작한 새내기들이 입구 앞을 서성거리고, 그 사이를 비공정을 타고 내린 승객들이 분주하게 빠져나왔다. 나오는 사람들 사이로 체구가 작은 모험가 한 명이 들어섰다.
흔히 보이는 종족들과는 다소 다른 외모를 가진 그녀는 잔머리를 뿔 뒤로 조금 넘겼다. 구름 조각이 걸린 것처럼 흰 머리칼이 미풍을 타고 흔들렸다. 손등과 얼굴 주변으로 흰 비늘이 얇게 덮여있었고, 푸른 눈동자는 해를 닮은 가을 하늘을 쏙 빼닮은 빛깔이었다. 무신경해보이는 표정을 고집한 채, 주위의 소음에는 아랑곳하고 그대로 직진해 카운터로 향했다. 작은 자루와 의뢰지를 올려두면서 굳게 닫혀 있던 입술이 한 마디를 내뱉었다.

“안녕하세요, 뮨. 약속했던 물건을 가져왔어요.”
“오늘은 빨리 왔네? 카타로스 당신은 좀 쉬엄쉬엄 하도록 해. 일을 좋아하는 건 알지만.”

걱정 어린 잔소리에 로즈는 멋쩍은 듯 웃어보일 뿐 명확한 답을 내놓지는 않았다. 적어도 이 침묵이 일을 줄이겠다는 답은 아니리라. 변명을 우호죽순 늘어놓기보다 애꿎은 의뢰물을 들이미는 쪽을 택했다. 애처롭게 늘어진 끈이 빨리 가져갈 것을 재촉했다. 작은 한숨과 함께 뮨은 보수와 새로운 의뢰지를 건네었다. 그것을 허리춤에 달린 작은 가방에 챙겨 넣고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 사이로 비공정 선착장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차는 중이었다. 보기만 해도 어수선했기에 입술을 꾹 다물고 지켜보았다. 저 사이에 녹아들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사람이 유독 많네요?”
“방금 림사로민사에서 비공정이 막 도착한 참이거든. 새로운 얼굴들이 많이 보이지? ”
“그렇네요. 간만에 시끌벅적 하겠어요.”

이 시기의 모험가들은 안락하던 둥지를 박차고 날개짓을 시작한다. 누군가는 가슴 뛰는 모험을 꿈꾸고, 또 다른 이는 제 업적에 남을만한 기회를 잡길 희망한다. 각자의 목적은 달라도, 새로운 시작을 위한 발걸음을 내딛는다는 건 같았다. 풋풋한 새내기 시절이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절로 띄었다.
슬슬 이동할까. 시간을 확인해보니 이제 막 점심시간이 오고 있었다. 보온병에 담아온 차를 느긋하게 즐기기 좋었다. 쉬기 좋은 장소를 찾으러 나가려던 그 때 비공정 승강장 계단 앞 인파 사이에서 유독 키가 큰 남성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잿빛 머리칼을 하나로 묶은 그 사람은 말랑한 귀 대신 앞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검은 뿔을 지니고 있었다. 동류의 종족인 것에 반가움을 느끼는 것도 잠시, 그의 표정에는 곤란함이 역력했다.

푸른 눈동자는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입꼬리는 턱 끝에 닿을 것처럼 아래로 쳐져있었다. 어찌나 당황한 건지 지도까지 거꾸로 들고 있는 데다가(그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듯 보였다.) 일행 하나없이 홀로 도착한 행색이었다. 남자는 카페의 입구까지는 발걸음을 옮기는가 싶더니 결국 내부로 다시 들어오며 왔다갔다를 반복했다. 척 보기에도 길을 잃은 듯 보였다. 그 모습을 함께 지켜보던 뮨과 시선이 교차했다. 그리고 서로 난감하다는 무언의 눈빛이 오갔다.

역시 도와주는 편이 좋겠지. 로즈는 대답 대신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자신이 맡을테니 다른 일을 보러가도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를 담은 신호였다. 두 사람을 번갈아가며 쳐다보던 뮨은 조용히 입모양으로 ‘그럼 부탁할게.’ 라는 말을 남긴 채 다른 모험가들이 있는 방향으로 사라졌다.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도 다행히 남자는 같은 자리에서 우뚝 서있었다. 사람들이 주위를 지나갈 때마다 긴장으로 빳빳해지는 꼬리가 꼭 고목나무 같았다.

그런 그를 보고 있자니 새내기 모험가였던 시절이 떠올랐다. 낯선 땅에서 나는 풀내음, 귀를 간지럽히던 잡담 소리. 아무것도 모른 채로 미지의 세상을 마주할 때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스물스물 올라오던 불안감. 모두가 같은 생각을 공유하진 않겠지만, 곤경에 처한 사람이라면 그 감정을 지금 느끼고 있겠지.
누군가는 이런 동질감에 대해 오지랖이라 칭할 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믿어온 것을 말해주고 싶다. 선의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돌고 돌아 결국 나에게 도착한다고 말이다. 혹여나 상대가 원하지 않은 도움이라 말한다면… 뭐라고 응수할 지 그 때 가서 다시 생각하자.

로즈는 지체없이 다가가 남자의 앞에 섰다. 그러고는 그가 들고 있는 지도 속에서 빨간 색으로 눈에 띄게 표시가 있는 지점을 눈으로 훑었다. 저 장소는 지금 위치와 완전히 정반대 방향에 있었다. 혼자 가도록 보낸다면 분명 길을 다시 잃겠지. 갈림길이나 좁은 굴곡 많은 그리다니아 특성상 불 보듯 뻔하게 예상이 되었다.
우선 상대가 놀라지 않도록 헛기침을 해 소리로 제가 있음을 알렸다. 이쪽으로 관심이 향했다는 걸 알고 나서는 손가락으로 지도를 짚으며 본론을 꺼냈다.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일거라 생각하니 시선을 맞춰주며 눈웃음을 짓는 것도 쉽게 느껴졌다. 물론 이 만남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건,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을 일이라는 걸 모른 채 사람 좋은 말투로 최대한 친근하게 말을 붙였다.

“저기요, 혹시 여기로 가고 싶은 거라면… 길을 안내해드려도 될까요? 아까부터 많이 곤란해보여서요.”
“아, 수상한 사람은 아니고… 전 카타로스에요. 직업은 모험가, 잘 부탁해요. 이름 모를 아우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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