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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

들어주지 않아도 괜찮아

Last Fantasy by L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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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카나 X 산크레드

§ 파이널판타지14 기반 드림 2차 창작

https://youtu.be/AMLSMWOzIHw?si=ipjUAbVR9-Aaujgp


" 잠들 때 까지만 옆에 있어주면 안돼...? "

" ... ... "

에카나가 대의도, 타의도 아닌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입 밖으로 꺼낸 부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제 막 정신을 차린 주제에 손아귀 힘은 어찌나 강한 지, 붙잡은 소매자락을 놓아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영웅의 힘이 막강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체감할 줄이야.

산크레드는 애처롭게 매달린 손을 지긋이 내려다보았다. 솔직히 의외였다. 자신이 봐오던 에카나는 입에 자물쇠를 채운 것처럼 도통 말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나마 새벽의 혈맹 멤버들과 말문을 트긴 했지만, 사람은 쉬이 변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본래의 소심한 성격과 제 나이답게 어리숙한 모습은 한결같았다. 제 아무리 가면을 쓰고, 침묵으로 일관해도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진즉 눈치챌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성미 때문에 주변인들이 대신 답답해 하는 것은 일상다반사였다. 무언가 원하는 것이 생겼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가령 다같이 식사를 하러 가면 자유롭게 먹어도 될 텐데, 에카나는 미련하게 그런 순간에도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일이 적었다. 대체 누가 점심에 먹었던 양이 너무 적어서 하루종일 배가 고팠었다는 이야기를 삼 일이나 지난 후에 말을 꺼내는가? (이것마저도 야슈톨라가 교묘하게 추궁하고 나서야 밝혀진 사실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어 머리에 작은 두통이 일었다.

그런 에카나이기에, 이런 변화는 조금 기꺼웠다. 하지만 대상이 왜 하필 자신인지는 의문이었다. 조종을 당해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나 그의 목숨을 해칠 뻔한 일이 불과 몇 개월 전의 이야기이다. 그것 말고도 숱한 위협들을 받지 않았던가? 살인자라 모함당하며 수모에 빠지고, 수면제가 든 음료를 잘못 마셔 큰 일이 날 뻔 했다고도 들었다. 그 일로 인해 주점에 가도 탄산 빠진 맥주 한 잔 조차 제대로 입도 제대로 못 대게 되었지. 그런 녀석이 제 어디가 믿을 구석이 있다고 지척에 있어 달라 하는지 궁금했다. 침상 근처에 있던 의자를 끌어와 털썩 자리에 앉고, 사방팔방을 붕대로 칭칭 감은 그를 보며 조용히 물었다.

" 나보다는 위리앙제 녀석이나 야슈톨라가 낫지 않겠어? 너도 알다시피 말재주가 없어서, 좋은 말 같은 거 해줄 위안이 안돼. "

" 말 같은거 해주지 않아도 괜찮아... 귀찮았다면 미안. "

" ...나 참, 그렇다고 빠르게 포기할 것까진 없잖아. 환자면 눕기나 해. 옆에 있을 테니까. "

기쁨을 감추지 못한 그의 귀가 일순간 쫑긋 솟아올랐다 가라 앉았다. 그러고는 곧이곧대로 다시 침상에 얌전히 누웠다. 그 모습을 보면서 어색하게 침대 끄트머리에 손을 얹었다. 다 큰 사내에게 어린 아이처럼 토닥여주는 건 도저히 낯간지러워 견딜 수 없었다. 그러니 지금 정도의 거리감이 최선이었다. 에카나는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지 자신이 앉아 있는 곳을 시선으로 쫓기 바빴다.

지금까지 여동생 밖에 없었는데, 꼭 없던 남동생이라도 생긴 기분이군. 다만 그 대상이 제 동료일 줄이야. 산크레드 본인은 누군가의 옆에 굳건히 있는 것도, 지키는 것에도 소질이 없다 생각했다. 첩보 활동이 특기이니 최적의 때를 기다리거나 상대를 먼저 기습하여 허를 찌르는 것이 익숙했다. 그만큼 은밀하게 행동하는 것에 자신이 있었다.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에카나가 잠시 잠든 틈을 타 지금의 어색한 공기를 빠져나가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애초에 그와 한 공간에 있을 만큼 각별한 사이도 아니니까.

하지만 막상 그가 한결 편안해 보이는 안색으로 눈을 감았을 때, 어쩐지 발이 묶인 것처럼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한 다리를 꼬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소음 하나없이 조용히 있으면, 얼마 안 가 에카나가 색색거리며 작은 숨을 내뱉기 시작했다.

분명 약속은 잠이 들 때까지, 였던가. 침상에 얹어 두었던 손을 떼며 최대한 조용히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자 기민하게 알아채기라도 한 듯 돌연 손등 위로 포개어 지는 다른 손이 보였다. 그 움직임이 어쩐지 깨어나는 순간에도 옆에 있어 달라 말하는 것 같아 다시 스르륵 자리에 앉았다. 이것 만으로 그에게 졌던 빚을 갚을 수는 없겠지만, 이번만은 장단을 맞춰주리라 생각하며 산크레드는 해가 수평선을 넘어가는 시간까지도 병실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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