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캐 연성

라리안 캐니안 레헬른 에유 중셉

2020.03.29

“언니가 왜 여기 있어?”

캐니안은 가면을 쓴 사람의 망토를 붙잡고 물었다. 그 자는 답하지 않았다.

 

가면을 쓴 이는 레헬른에 널려있었다. 이유야 어쨌든 잠입하기는 편리했다. 그저 가면을 쓰고 어울리면 되는 것이다. 같이 파견된 몇몇 동료는 축제보다도 가면 자체에 들떴다. 정체를 숨기고 누가 누군지 모르는 장소에 섞여드는 것이다! 캐니안은 가면을 썼다고 딱히 무모하게 굴지는 않았다. 우선 정체를 숨긴다는 것이 캐니안으로서는 별로 특별한 경험이 아니었고, 얇은 가면으로 자신을 전부 가릴 수 있다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알아내려 든다면, 알아낼 수 있는 신호는 많았다. 체형, 억양, 걸음걸이, 사소한 습관 등. 아주 친밀한 이는 뒷모습만 봐도 누구인지 알 수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저기 광장에, 저 정도 키에, 파란 코트 계열의 옷을 입고, 가로등 모양의 스태프를 들고 다니는 이는......

 

“.....언니?”

캐니안은 느긋하던 태도 그대로 굳었다.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그자는 문득 고개를 돌렸다. 캐니안쪽을 바라보았는데 캐니안은 눈이 마주쳤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자는 고개를 돌려 그대로 시선을 떼었다. 확신할 수 없는, 그러나 부정할 수도 없는 애매한 감이 캐니안을 부추겼다. 순간 캐니안은 충동적으로 달렸다. 파란 코트를 입은 자는 축제의 무리에 섞여 들었다. 캐니안도 따라 인파에 파고들었다. 망토 자락이 사람들 사이에서 흩날렸다가 다시 가려졌다.

 

“언니? 야, 라리안! 멈춰 봐!”

 

애타게 불렀으나 소음에 쉽게 묻혔다. 캐니안은 입술을 악물었다. 여기저기서 치이며 사람을 헤치고 깊숙이 들어갔다.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형형색색에 사방이 현란했는데 유일하게 짙푸른 자락이 딱 하나 있었다. 캐니안은 무작정 손을 뻗어 파란 천 자락을 확 끌어 당겼다. 파란 코트를 입은 이가 휘청거렸다. 캐니안은 그 틈을 타 그자에게 한 발짝 더 파고들었다. 인파가 갈라놓을 수 없게 밀착해 붙었다.

 

“언니.”

 

그 자가 캐니안을 내려다보았다. 흰 반가면 이었는데 섬짓한 무표정이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캐니안은 개의치 않았다.

 

“언니, 언니 맞지?”

 

그자는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외관 설명

 

“언니가 왜 여기 있어?”

 

캐니안은 가면을 쓴 사람의 망토를 붙잡고 물었다. 그 자는 답하지 않았다. 묵묵히 캐니안을 쳐다보다가 캐니안의 손을 떼어내고 발걸음을 돌렸다. 캐니안은 황망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지켜보지만은 않았다. 캐니안은 그자의 어깨를 잡고 달려들어 가면을 쳐내었다. 가면이 떨어지고 조금은 놀란 듯 크게 뜨인, 그러나 기본적으로 무심한 보라색 눈이 마주쳤다. 캐니안은 짙게 웃었다.

“어딜 도망가려고 해, 라리안?”

 

라리안은 껄끄러운 기색으로 가면 없는 맨얼굴을 더듬었다. 그리고 엄하게 캐니안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짓이지, 캐니안?”

“네가 먼저 생 까고 그냥 가려고 했잖아?”

“아무리 그래도 가면을......!”

“그 까짓게 뭐라고 날 지금.....”

 

라리안은 턱짓으로 사람들을 가리켰다. 캐니안은 무심코 쳐다보았다가 말을 멈췄다.

 

사람들이 일제히 맨얼굴인 라리안을 보고 있었다. 축제가 차갑게 멈춘 듯, 주위가 고요했다.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수십 명의 시선이 냉정하게 꽂히자 캐니안도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캐니안과 라리안을 빼놓은 둥근 원이 그려졌다. 캐니안은 공유하지 못하는 불쾌함이 그들 사이에 스며있었다.

 

라리안은 그 와중에서도 침착하게 가면을 주워들어 착용했다. 그리고 담담하게 캐니안에게 말했다.

 

“자리를 옮겨서 마저 얘기하지. 여긴 곧 클리너가 올 거다.”

 

라리안은 앞장서서 걸었다. 라리안이 가는대로 사람들은 물러났다. 군중과 부딪히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 캐니안은 가만히 뒤를 따라 걸었다. 가면 너머의 시선이 가만히 따라 붙었다.

 

라리안은 익숙하게 뒷골목으로 파고들었다. 머뭇거리지 않고 걸었고 몇 번 모서리를 꺾어서 다른 광장으로 나왔다. 캐니안은 여기가 어디쯤인지 가늠해 보려했으나 쉽지 않았다. 애초에 이 도시에 온지 몇 시간 밖에 되지 않았다. 지리를 다 익혔을 리가 없었다. 캐니안은 투덜거리며 물었다.

 

“대체 어디로 가려는 거야?”

“얘기 나누기 적당한 곳.”

 

라리안은 손가락을 들어 위를 가리켰다. 건물 사이에 늘어진 장식용 천이나 지붕에 붙여둔 장식들이 따위가 보였다. 그렇지만 캐니안은 빠르게 이해했다.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눠야 할 때는 상대방이 듣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아무도 없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지만 외부에서 차단되어 있는 공간은 내부에서 외부를 감시하기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잠긴 문에서 나누는 대화는 문에 귀를 대고 있을 상대를 주의해야 하는 것처럼. 그렇기에 아예 개방된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상대의 접근을 차단할 수는 없지만 빠르게 알아차리고 대화를 중단할 수는 있다. 두 레지스탕스 자매는 그걸 열 살 즈음에 이미 깨우쳤다.

 

지붕 위에서는 축제가 한눈에 보였다. 술에 취한 이들이 얼굴이 붉어진 채로 깔깔댔고 음악에 취한 이들은 음악가 주변에 몰려들어 호응했고 춤에 취한 이들은 끊임없이 스탭을 밟으며 빙그르르 돌아댔다. 그 셋에 전부 관심 없더라도 분위기에 충분히 취할 수 있을 만큼 흥겨운 광경이었다. 오히려 즐겁지 않은 것이 비정상적으로 여겨지는 장소였다. 죽을 만큼이나. 그러나 영 섞일 줄 모르는 한 사람과 섞일 생각이 없는 한 사람은 그저 내려다 보았다.

 

“어쩌자고 그랬어. 여기에서는 쉽게 용서 받지 못 하는 행동이야.”

“뭐가?”

“가면을 벗긴 거.”

“아, 그거? 뭐, 언니니까.”

“내가 봐줄 거라고?”

“안 봐주면 어쩔 건데?”

 

캐니안은 뻔뻔스레 대꾸했다. 라리안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캐니안은 미소를 지우고 라리안을 슬쩍 보았다. 흰 가면, 깃털로 장식된 모자. 보석이 내린 귀걸이, 금사로 문양이 잔뜩 수놓인 조끼, 흰 블라우스의 칼라와 손목에 달린 금속 장식 핀, 벨벳 망토. 언니의 저런 화려한 모습은 난생 처음 보았다. 라리안은 그런 의상을 입었던 적이 없었고 캐니안이 따로 떠올려본 적도 없었다. 막연하게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잘 녹아들었다. 캐니안은 그래서 기분이 더 묘했다. 지나치게 어울려서 라리안이 아닌, 축제에 어울리는 다른 누군가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 가면이 나인줄은 어떻게 알았고?”

 

캐니안은 태연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 언니. 순진하기는. 정말 가면을 쓰면 못 알아 볼 거라 믿어?”

“후드 하나만 믿고 위장이라면서 나다니는 네게서 듣고 싶지는 않은 소리인데.”

“그것 봐, 나는 그렇게라도 돌아다녀 봤지만 언니는 어디 한번이라도 그래 본 적이 있어? 없잖아. 이 분야에서는 언니는 초보자야. 전문가의 말을 잠자코 들어.”

 

라리안은 어깨를 으쓱였다.

적어도 너보다는 경계할 줄 안다.”

 

캐니안은 꺄르르 웃었다.

 

라리안은 지붕에 바르게 걸터앉았다. 캐니안은 가장자리에 앉아 아래로 발을 휘저었다. 라리안이 위험하다고 경고하려는 것이 보였으나 캐니안은 무시했다. 라리안은 작게 한숨을 쉬었고 그냥 고개를 돌렸다. 캐니안은 라리안을 보지는 않았지만

출처: https://leavinggarden.tistory.com/70 [방치될 정원:티스토리]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