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유성

[열화요수] 먹고죽은 통비가 깃털도 곱다.

열화요수 엽서북 《선령세상유람기》 참여 원고│w. 유성

이번에도 안일하고 납작한 로맨틱 코미디 유니버스. 밑도끝도없는 스토리.

소년황제와 조혼한 바보주작. 제법 어립니다. 어쩌면 꽤 많이.

중국 황제의 요리사는 뭐라고 불렀을까요? 저는 찾지못했습니다. 확마 대령숙수라고 불러버려...

중국요리가 참 많은데 역사가 삼천년은 안되더라고요. 왜지? 대부분의 재료가 실크로드로 들어왔다고합니다.

그래서 그냥 귀여운 상고시대 주작공자에게 아무거나 먹였습니다. 행복하겠죠...


먹고죽은 통비가 깃털도 곱다.

W.유성

그것은 전조도 없이 시작되었다. 태생부터, 아니 난생부터 날개를 달고 태어나 하늘을 가르는 재주가 있던 통비는 날개가 있음에도 날지 못해 슬픈 짐승들 사이를 거닐고 있었다. 농경시대에 가축을 키우기 시작한 역사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기 어렵다. 그렇다면 닭은 언제부터 가축이 된 걸까? 그나마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같은 유익종인 주제에 날개 달린 주작 공자는 저보다 빠르고 높게 날지 못해 푸드덕거리는 새고기를 제법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야생 닭들 사이를 뛰놀다 닭장 지기와 말을 나누게 된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결국 잡아먹기 위해 키우는 셈이지요."

"잡아먹을 거라고?"

"토실토실 살을 찌워서, 우리 안에 잘 가두어두면 언제든 먹고 싶을 때 꺼내 잡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닭장 지기는 생각에 빠진 공자가 귀여워 농담 삼아 덧붙였다.

"사람이 뭘 먹여 키우고 있다면, 그게 다 나중에 잡아먹으려고 수고를 들이는 일이랍니다."

"먹여 키우는 게 잡아먹기 위해서란 말이야? 그냥, 그냥 좋아서가 아니고?"

"에이, 다 그렇게 먹고사는 법이지요. 공자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닭장 지기는 그저 이 작은 공자에게 너도 그렇게 남이 공들여 일군 수확물을 먹고 자란 셈이다, 하는 만물의 교훈을 주려 하였으나. 한 평생을 남이 차려준, 따지고 보면 황제의 성은으로 먹여지고 재워지며 빈둥빈둥 놀고먹던 통비에겐 다른 소리로 들렸다. 인황폐하가 널 잡아먹으려고 살을 찌우고 커지길 기다리고 있단다! 바보같이 주는 대로 먹고 자랐구나! 그렇게 들린 것이다. 그 비슷한 소리도 하지 않은 닭장 지기가 들었다면 억울할 소리였다.

충격에 의심의 씨앗이 싹튼 샤오통은 궁으로 돌아와 저의 시중을 들던 궁인에게 넌지시 물었다.

"이건 내 친구 이야기인데~"

궁에 친구고 나발이고 어울려 다니는 상대가 폐하밖에 없는 통비의 말에 노련한 궁인들은 3초 만에 주어를 눈치챘다. 하지만 눈치 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도릉궁에서 아는 것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영리한 행동이 아니다. 그들은 총비가 또 무슨 깜찍한 생각을 하셨나 호기심을 죽이곤 모시는 비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도록 공손히 모른체해주었다.

"결혼을 했는데~ 령, 부군이 계속 언제 다 크냐고 해. 그러면서 맨날 맛있는 걸 먹여줘. 근데 누가 그랬는데- 잘 먹여키우는 건 나중에 크면 잡아먹기 위해 서래. 진짜야?"

통비의 우회적인(?) 질문을 들은 점잖은 궁인은 생각했다. 아이고, 또 어디서 잡것들이 이 순진한 분 앞에서 입을 털었구나. 내 이것들을 아주 그냥! 하지만 속마음과 별개로 숙련된 점잖은 궁인은 침착한 낯으로 설명할 말을 골랐다. 그러나 함께 있던 야망 있는 궁인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드디어 그날(?)이 온 것인가? 황제의 총애가 드높아 다들 귀한 막내 다루듯 돌보지만 어쨌든 언젠가는 어린 통비마마께서 이렇고 저렇고 그런 사정을 다 통달해야 승은을 입고 줄 잘 탄 궁인도 승진을 할 것 아닌가. 좀 이르지만 적당한 때가 된 것이다.

"예, 아무렴요. 민간에선 먹일 입을 덜기 위해 조혼하는 집도 있으니 모쪼록 데려온 아이를 잘 먹여 키우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다 다 자라면 입도 대보고 맛도 보고 하는 게지요. 폐하께서도 통비마마를 홀라당 삼키실걸요."

두 궁인의 말이 충돌하고, 그와 함께 둘의 시선도 충돌했다. '제정신이니?' '왜 이래 언니, 알 거 다 알면서.' 두 사람의 신경전에도 그 진상을 알길 없는 통비는 다시금 2차 충격을 받았다. 온 세상 인간들이 다 그래도 령연 형은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정말 나를 잡아먹으려고 여태 키웠단 말이야? 거짓말쟁이! 부부는 평생 같이 산다고 해놓고! 무고한 인황 폐하를 속으로 마구 매도하던 통비의 얼굴이 점차 불퉁해지며 오동통한 뺨이 빵빵하게 부풀어올랐다.

그리하여, 한창 바쁜 일정 속에도 정무를 마치고 총비와 식사 한 끼 하겠다고 찾아온 성령연은 난데없는 통보를 받는다.

"안 먹을래."

"오늘따라 왜 투정일까? 그럼 이걸 먹어보렴."

입술을 삐죽 내민 통비는 뭐에 심통이 났는지 알 수 없었으나, 성령연은 고 예쁜 새 부리에 전병 하나 더 넣어줄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황제가 친히 접시에 음식을 덜어주었건만, 이것이 얼마나 황공한 일인지 계급주의를 애교로 때우며 살아온 통비는 알지 못하고 고개를 팽 돌려버렸다.

"안 먹어. 싫어."

"잘 먹고 잘 자야 빨리 크는 법이란다."

"몰라, 령연 형은 바보야!"

당최 어디서 심통이 나 밥상머리에서 이런 소란이란 말인가. 성령연은 알 길이 없었다. 폐하는 요즘 일이 바빠 총비와 놀아줄 시간이 부족했는가 헤아려보았으나, 암만 생각해 봐도 바쁜 황제 폐하께서 이 정도로 시간을 할애했으면 도리는 다하다 못해 황제의 총애가 어디의 누구에게 있는지 온 궁안 사람들이 다 알만한 일정이었다. 하지만 통비의 심통은 풀릴 길이 없었다. 왜 이리 마음이 불편한지. 령연 형이 그래 먹기 싫으면 먹지 말고 좋아하는 것만 먹으며 오래오래 나랑 살자, 같은 말을 해줬으면 눈 딱 감고 먹어줬을 텐데. 이 와중에 매일 하던 대로 편식하지 말고 빨리 커야지, 하는 답이 오니 샤오통은 비단 옷을 쥐어뜯으며 벌떡 일어났다. 어린 비는 억울하고 원통해 죽겠는데 대체 뭐가 문제인지 표현할 말을 찾지 못했다.

"굶을 거야."

"뭐?"

"오늘부터 굶을 거라고!"

이렇게 제나라 최초 황제의 총비 단식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정작 뭐에 반항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지만.

때아닌 통비의 단식 선언에 불똥이 떨어진 것은 단연 도릉궁의 식사를 책임 지던 어선방이다. 한창 자랄 나이의 통비마마께선 찬투정은 없어도 마음에 드는 접시는 더 내오라 채근하며 맛이 매우 좋다, 또 먹고 싶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예법에 맞지 않으면 어떤가? 그럴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폐하보다야 가지런히 삼색 채소를 썰어 올린 땅콩소스 무침에 까르르 웃는 통비의 칭찬은 요리사를 칼춤 추게 만들었으니. 통비의 칭찬이 사라지자 직업만족도가 수직 하락할 수밖에.

혹여 음식이 맛이 없었나, 요새 찬이 마음에 안 드셨나?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 해도 꾹 다물린 새 부리는 밀랍이라도 붙였는지 말이 없으시다. 처음에나 조금 살피던 폐하께선 저러다 말겠거니 하며 놔두라 하셨는데. 아무리 그렇다고 하나 정말 굶길 수야 있겠는가.

결국 어선방에서는 [특명] 통비의 입맛을 사로잡아라!~통비의 볼살 사수로 나라의 안녕~ 요리경연 대회가 매일 열리게 되었다.

좋아하시던 새우 완자도 빚어보고 자주 찾으시던 아마씨를 갈아 넣은 빵도 빚어보았다. 하루 이틀을 지나 삼 일째에 도달하니 냅두라던 폐하께서도 슬그머니 한 마디 얹고 가셨는데, 온갖 귀하다는 산해진미를 끼니마다 차려도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쳐다도 안보다 급기야 식탁을 두고 도망쳐버리고 말았다. 야심 차게 준비한 30가지 요리를 내오던 내관들은 음식 냄새만 맡고도 꽁지 빠져라 도망친 통비 탓에 저 멀리 날아가는 붉은 꽁지깃만 조금 보고 식탁은 차려보지도 못했다.

그리하여, 황제의 암묵적 허락 아래 어선방 요리사들의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요리 수행이 시작될 뻔…… 하지는 않았고. 그저 그들은 차게 식어도 먹을 만한 요리를 손보는데 더 많은 시간을 들이기 시작했다.

차게 식혀도 기름이 굳지 않는 담백한 고기볶음을 두부피에 싸 오래 끓인 양고기 육수에 담가둔다던가, 뭉근하게 졸여 속은 포슬포슬하고 겉은 설탕이 굳어 바삭해진 고구마 조림을 대나무 찬합에 담아 슬쩍 낮은 선반에 놓아둔다거나. 이는 모두가 밤중에 몰래 담을 넘어 접시를 달그락거리며 젓가락을 휘젓고 가는 야참 도둑의 정체를 알기 때문이었다.

통비의 단식투쟁이 시작된 지 12시간 후,
늦은 밤 새벽 근무를 서는 병사들의 끼니로 만들어둔 냥피 3그릇이 사라졌다.

통비의 단식투쟁 시작 20시간 후,
아침을 준비하며 푹 쪄내고 갓 튀겨 식히고 있던 츠판가오 5개가 사라졌다.

통비의 단식투쟁 시작 27시간 후,
정무를 보는 관리들 요깃거리 하라고 뜨뜻하게 끓여둔 뇌차가 모조리 사라졌다.

이 소식을 보고받은 폐하께선 이마를 짚더니.

"마음이 풀릴 때까지 모른체해주어라."

하셨다.

폐하께서 그렇다 하시니 그 누가 총애 받는 통비의 만행을 대놓고 꾸짖을까. 그나마 귀하신 몸 굶지는 않는다니 다행이라, 혹여 아는체했다간 몰래 먹는 것도 줄일까 싶어 궁안의 모두가 눈 가리고 귀를 막은 셈 돌아섰다. 아무도 통비의 단식 이유를 모르지만 통비가 굶지 않는다는 것은 모두가 알면서 모르는 나날들이 이어지게 된 것이다.

물론 궁인들이야 그런 셈 치고, 우리의 폐하는 모른체 해주었을 뿐 정말 모르쇠로 방치하진 않았다.

"령연 자?"

"……"

"자는 거지?"

"……"

"휴, 드디어 잠들었다."

밤중에 담소나 나누자고 녹두떡과 대추를 넣은 쫑즈를 소반에 담아 가져온다든지, 안 먹을 거라고 눈을 부릅뜨면서도 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통비에게 '어선방에서 잔뜩 만들었기에 네 생각이 나 조금 몰래 가져온 것인데 정말 안 먹을 테야?' 같은 말도 해주고,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 통비가 몰래 나가기 쉽도록 자는 척도 해주었다. 통비는 제가 꽤나 철두철미하게 다니는 줄 알지만, 타고난 기질이 예민한 성령연에게 자다가 옆 사람이 방 안을 서성거리는 걸 눈치채고 깨어나지 않기란 참 어려운 일이었다. 이를 모르는 통비는 혹여 성령연이 깰까 봐 어깨를 흔들어보진 못하고, 비단 침상에 이불만 고이 덮어주곤 잔뜩 부스럭대며 침전 밖으로 빠져나갔다.

"녹두떡이랑 쫑즈를 만들었댔지. 히, 탕유바바도 있으면 좋겠다."

신나게 날개를 퍼덕이며 어선방으로 향하는 샤오통의 혼잣말은 밤이 고요한 탓에 제법 잘 들렸다. 당연히 총비의 기척에 귀를 한껏 기울이던 폐하의 귀에도 들어갔고, 폐하의 서늘한 시선이 일부러 창을 비운 채 방문 앞에 대기하던 내관에게 떨어졌다. 내관은 헐레벌떡 고개를 내저었다. 오늘 야식에 탕유바바는 없다. 찹쌀가루는 이미 쫑즈와 녹두떡을 만들 때 써버렸으니까. 가뜩이나 쫄깃한 간식들이라 양손에 쥐고 먹다 목이라도 멕힐까 떡은 제외했다. 설명을 들은 성령연은 고개를 끄덕이고, 오늘의 담당 요리사를 불러오라 일렀다.

세수나 한번 했을까 싶은 시간이 지나고, 헐레벌떡 뛰쳐나온 요리사는 자다 깬 것 같지 않게 멀쩡한 차림새였다. 방금까지 일하다 왔다고 해도 믿으리라. 하기는 이번 주에만 다섯 번째 호출이니 슬슬 그들 간에 당번을 정해 대기하고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아니다. 오늘의 요리사와 잠복 중인 황제, 그를 모시는 내관까지 세 사람이 어선방 주방 뒷문 틈새로 나란히 모였다. 기회를 봐 요리사를 투입해야 할 일이 없다면 요리사는 당직 중도 퇴근할 것이고, 아니라면 야근 시작 아침 퇴근의 길이 열릴 것이다.

"매콤한 냄새가 나. 고기도 있나?"

통비는 소쿠리에 한가득 쌓아둔 녹두떡부터 들춰보았다. 3단으로 쌓인 찜기에는 어수선하게 늘어진 쫑즈도 식어가고 있었다. 몇 개는 빠져도 티가 나지 않아야 통비가 마음 놓고 훔쳐먹을 테니, 매일 많은 양을 저녁 늦게 만들어두는 것도 일이다. 그렇게 통비가 훔쳐먹고 남은 음식은 새벽 경비를 도는 군사들의 끼니나 다음날 궁인들의 아침으로 사용되곤 했다. 과연 그것뿐일까. 부러 큰 그릇에 담아 덮어둔 절인 게, 아마기름에 볶은 양고기나, 마치 밑반찬을 준비하듯 넓은 접시에 썰어 담아둔 말린 무 오징어볶음, 질항아리에 담아둔 장수 육수까지. 통비가 뭘 꺼내도 당장 한상 거하게 차려 먹을 수 있을 것이다.

"탕유바바는?"

"없습니다요……. 냥피라도 준비하면 어떻사옵니까?"

"일단 두고 보지."

여차하면 요리사가 투입되어 '아 출출해서 못 자겠네 야참이나 만들까.' 하는 웃기지도 않은 연극을 해야 할 사태가 넘어갔다. 이를 모르는 통비는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슬쩍 주위를 둘러보다 녹두떡을 한 줌 가득 챙기고 장수 육수를 그릇에 퍼 담았다. 저녁 상을 보지도 않고 도망쳐 그게 저를 위해 준비된 요리가 아니라 저녁을 먹고 남은 음식이라 철석같이 믿었다. 그 사이 내관은 요리사가 적어준 재료를 구하러 헐레벌떡 식량창고에서 대기하고 있을 하인에게 뛰어갔다.

샤오통은 찜기에서 식어있는 쫑즈와 살짝 비어있는 찜통의 아랫자리를 보다가, 슬그머니 볶은 양고기 접시를 찜통 아랫단에 넣고 냄비에 불을 붙였다. 대추와 팥이 든 쫑즈는 식은 채 먹어도 쫀득함이 살아 맛이 있었으나, 모름지기 쪄서 만든 음식은 갓 쪄낸 따끈한 것이 제맛인 법이다. 제나라의 맛잘알 주작공자는 불빛이 새어나가지만 않으면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했다. 빤히 주방의 연기가 오르는 풍경에 저 멀리 별관에서 눈치껏 불을 끄고 있던 요리사들만 장작 제대로 두고 왔는지 기억을 헤아릴 뿐이었다.

찜기에서 따끈하게 데워지는 동안 미리 챙겨둔 녹두떡을 한입 크게 베어 문다. 포슬포슬하고 짭짤한 맛이 베어있는 녹두떡은 가볍게 간을 했는데도 입맛을 자극하는 구석이 있다.

"요즘 령연 형이 자꾸 다과를 가져온단 말이지. 어휴, 먹고 싶어서 혼났네. 말굽떡 먹고 싶다."

성령연의 시선이 요리사를 향했다. 요리사는 내일 만들어야 할 목록에 말굽떡을 추가했다. 내관은 식재 창고까지 뛰어갔다 돌아오자마자 다시 새 쪽지를 들고 식량창고로 뛰어가야 했다.

고소한 녹두떡이 부드럽게 입안에서 뭉개지는 것을 씹어 삼키다 보면 짭짤하거나 매콤한 것이 당기게 된다. 슬쩍 찜기를 건드려보았지만 양고기는 아직 미지근했다. 참깨 소스를 뿌려 백합과 함께 아마씨 기름에 볶은 양고기 요리는 냄새만 맡아도 향기로웠지만, 고소하고 달달한 것이 지금 땡기는 매콤한 맛은 아니었다. 고추기름에 달달 볶은 화끈한 굴 요리가 생각났다. 어제도 먹었으니 혹여 더 남은 게 있나 뒤적여보았지만 당연하게도 남은 것은 없었다. 아쉬운 대로, 샤오통은 고수를 듬뿍 넣고 절인 게장을 꺼내 한입 크게 물었다. 게딱지를 뜯자마자 입안 가득 차오르는 알싸한 풍미와 함께 촉촉한 게살이 육즙처럼 터진다. 샤오통은 양념이 흐르며 소매가 젖는 줄도 모르고 허겁지겁 앉은 자리에서 게를 다섯 마리나 해치웠다. 그야말로 게 눈 감추듯 빠른 속도였다.

"게는 몇 마리나 들어있지?"

"지금 다섯 개를 드셨으니 앞으로 넷, 아니. 두 개가 한입에 사라지네? 앞으로 두 개 남으셨습니다요."

정신없이 게딱지를 뜯고 나서, 그릇을 뒤적이던 샤오통은 고수와 채소로 덮인 그릇에 게가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몇 개 훔쳐먹는 것이야 티가 안 나지만 게가 전부 사라지다니! 이래선 누가 먹었다는 것을 눈치챌지도 모른다. 양념이 묻은 손을 쪽쪽 빨며 곤란해하던 샤오통은 무심코 녹두떡을 몇개 더 주워 먹으며 생각에 잠겼다. 배가 차며 생각이 단순해진 통비는 완벽한 증거인멸을 위해 게 껍데기들을 화덕에 쑤셔 넣었다. 불길이 조금 사그라들다가, 주작 공자가 허겁지겁 피워낸 불이 더해지자 냉큼 타올랐다. 내용물을 비운 그릇은 쌓여있는 설거지 그릇들 사이에 쑤셔 박았다.

"매운 걸 먹었더니 단 게 먹고 싶은데, 새콤한 것도 좋고. 장수 육수는 있는데 면이 없다니 이건 참 잘못된 일이야."

샤오통은 입가심을 위해 장수육수를 들이키며 중얼거렸다. 당연하다는 듯 황제의 시선이 쏘아졌고, 요리사는 눈물을 삼키며 내일 장수면을 대령할 예정이었다고 고했다. 간신히 창고까지 뛰어갔다 돌아온 내관은 다시 한번 더 왕복 달리기를 해야 했다.

슬슬 따끈하게 데워진 찜기를 툭툭 건드려보던 샤오통은 불을 끄고 새 접시에 쫑즈 세 개와 양고기를 덜어 담았다. 함께 먹을 말린 무 오징어볶음도 잊지 않았다. 푹 끓여 아마씨 기름에 볶아낸 양고기는 그 자체로 풍미가 깊다. 거기에 구운 백합을 더했으니 식사 시간에 먹었다면 오늘의 주역 요리는 양고기였을 것이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과 함께 퍼지는 향긋한 냄새가 이미 게로 채운 배를 기대하게 만든다. 저도 모르게 꿀꺽 군침을 삼킨 샤오통은 차게 식은 말린 무와 뜨끈한 양고기를 동시에 집어 입에 넣었다. 오래 말려 푹 삭힌 무는 짭조름한 맛과 함께 입안에서 결을 따라 찢겨진다. 그 사이로 기름진 양고기의 육즙이 스미면 소고기가 부럽지 않은 진미가 따로 없다.


"햐, 역시 고기가 좋아. 아니지. 여기에 고추기름을 끼얹은 냥피가 한 그릇 있으면 딱 좋겠는데. 냥피 한입에 고기 한 조각씩 먹으면 정말 딱일 텐데."

샤오통은 챱챱 입맛을 다시는 소리를 내며 쫑즈를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향이 깊은 양고기와 무로 입안을 자극한 다음, 쫀득하고 담백한 맛의 쫑즈를 씹으면 향이 강한 요리도 질리지 않고 계속 먹을 수 있다. 고소함에 입안이 기름진 느낌이 들면 오징어와 구운 백합을 한 조각 집어 입에 넣는다. 톡톡 씹히는 맛과 함께 살짝 달큼한 향이 입안을 감싸면 의외로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들었지? 아침엔 냥피를 준비하도록. 고추기름 얹어서."

"여부가 있겠습니까."

뒷문에서의 수군거림과 함께, 식량창고까지 세 번 왕복한 내관은 거의 숨이 넘어갈 지경으로 통비의 식사를 지켜보았다. 통비가 어선방을 떠나기 전까지 내관은 약 다섯 번을 왕복운동하였고, 다음 날 차려질 요리는 세 번쯤 더 바뀌었다. 그들의 고충을 아는지 모르는지 관심도 없는 폐하께선 그저 잘 먹고 볼살이 빵빵하게 차오른 통비를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저리 잘 먹는데, 대체 왜 안 먹겠다고 속을 썩이는지. 볼살이 더 오르면 날을 잡아 물어보기라도 해야겠지만. 요즘은 밤마다 마실 나오는 것에 재미가 붙은 모양이니 걱정은 잠시 미뤄둬도 될 것이다. 어느새 통비의 단식 사유는 뒷전이 되고, 뭘 먹여야 더 맛있게 훔쳐먹게 할까만 고민하게 된 폐하였다.

과연 통비의 단식, 아니 야식 일기는 언제 끝이 날까? 이는 현명하고 영특한 무제 성소마저도 아직은 알지 못하는 이야기로. 몰래 훔쳐먹고 잘 굶주리며 자란 통비가 황실 제일의 진미 부군 되시는 폐하를 홀라당 삼켜먹기까지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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