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팝

[열화요수] 세 가지 규칙

열화요수 엽서북 《선령세상유람기》 참여 원고│w. 팝



세 가지 규칙

w. 팝

“나가거라.”

한 마디가 나지막이 울리자 문이 닫혔다. 모든 이들이 나간 방 안에는 피에 적신 성소와, 그의 귀비가 남았다.

어디서 온 지도 모르고, 이름도 알지 못한다. 종종 그들의 왕이 그를 ■■■,라며 애정을 담아 부르는 일이 있었으나 그것을 기억하는 이는 없었다. 그들은 그의 이름을 들어서도 안 되었고, 어찌 생겼는지 보아서도 안 되었다. 궁 속에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령연, 어디 다친 건 아니지? 아프지는 않고?”

문밖으로 넘어오는 목소리도 그들은 들어서는 안 되었다.

도릉궁에는 몇 가지의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하나, 붉은 머리는 보아서도 안 되고, 이야기를 해서도 안 된다. 다만 예외적으로 그가 누군가를 불러 ‘부탁’을 한다면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들어줘야만 했다. 그것이 정말로 얼토당토않은, 한겨울에 배 말랭이를 구해달라는 부탁이라 하더라도.

둘, 폐하가 무슨 이야기를 하시든 전부 그렇다고 대답해야만 했다. 모든 이야기에 그리 대답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특정 일부분에만 그리 적용되었다. 그의 귀비를 부르거나, 갑작스럽게 얼토당토않은 요구를 하시거나, 혹은··· 허공에 대고 누군가와 이야기할 적에.

대체로 말이 안 되는 요구는 첫 번째의 붉은 머리의 존재가 하는 요구와 비슷했다. 배 말랭이를 구해달라고 하거나, 동천의 이들을 불러오라고 하거나 하는 것들. 평소와 다르게 어린아이가 땡깡을 부리며 이야기할 법한 것들을 말씀하실 적에는, 그것을 무조건 들어드려야만 했다.

셋. 갑작스럽게 귀비가 있는 궁 안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오더라도 그렇구나 할 것. 성소가 피에 물들어 나오거나, 품 안에 무언가의 검을 안고 있더라도 모르는 척해야만 했다.

그들은 그렇게 세 가지의 규칙을 지켜야만 했다. 지키지 않은 이들의 결론은 실종, 혹은 참수형.

궁 안에는 피비린내가 끊이지 않았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