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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요수] 낙원

열화요수 엽서북 《선령세상유람기》 참여 원고│w. 팝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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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달게 낮잠을 자고 일어난 검령은 제 주인을 바라보았다. 자는 거야? 한참 고개를 기웃이더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깊게 자는 모양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악몽도 아닌데······.”

 

있었다면 그가 먼저 깼으리라. 여전히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바라보게 되어서 제 시야 앞에 무언가 생겨나는 것은 두려웠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없었다. 꿈도 꾸지 않고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눈앞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동천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으나, 그것은 정말 단순한 동천의 모습이었다. 꿈이라고 이야기하기에도 미묘한, 지금까지 겪었던 수많은 순간들. 다른 점이라 한다면 검령과 령연이 같이 그곳에서 놀고 있었고, 검령이 그의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손을 잡을 수 있다. 손을 잡게 된다는 건 검령에게 실체가 생겼다는 말이었다. 남들처럼 함께 손을 잡고 뛰어다닐 수 있고, 스승님이 령연에게 하는 것처럼 하나하나 책을 읊어 내려가면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는 령연의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자신이 두려워할 적에 일어나서 함께 있어 준 것처럼, 령연이 두려워하는 순간이 온다면 손을 잡고 함께할 수 있었다.

 

검령은 내리쬐는 햇살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올렸다. 너무 뜨거우면 안 될 텐데. 꿈에서 자신이 손을 잡았다고 오만하게 생각하게 된 것인지, 손을 들어 올린다면 햇빛을 가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령연의 눈가가 찌푸려졌으나,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잠이 깰 정도가 아니었다.

 

나도··· 손을 잡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성령연의 곁에서 그늘을 가려줄 수 없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것은 그게 처음이 아니었다지만, 생각할 때마다 묘한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세간에서는 그것을 질투, 혹은 동경이라 이야기하겠으나 아직 검령일 뿐인 이가 그것을 정확하게 정의하지 못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한 생각이 무색하게도, 동천 속에 있는 둘은 당연하다는 것처럼 손을 잡았다.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들을 그곳에서 이루겠다는 것처럼. 령연은 검령의 손을 잡았고, 그들은 다른 이들과 함께 뛰어다닐 수 있었다.

어린 시절에 그 무엇도 하지 못했던 것들을 꿈속에서 이루어낸 것이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자 하던 찰나, 꿈이 사그라들었다. 검령을 인식한 것처럼, 들여다보려는 순간에 손안에서 사라진 것이다. 결코 그들은 손을 잡을 수 없다는 것처럼.

 

꼭, 저주와도 같은 선고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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